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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갈5:1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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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 참고 : | http://je333.com |
시기와 질투
본문: 갈5:19- 26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19-21)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26)
한 농부가 염소와 나귀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무거운 짐을 묵묵히 잘 나르는 나귀를 매우 사랑했습니다. 염소는 주인의 이런 태도가 못마땅했습니다. 염소는 시기와 질투를 느껴 나귀를 해칠 계략을 꾸몄습니다.
"나귀야, 너처럼 불쌍한 동물도 없을 거야. 주인은 네게 힘든 일만 시키니 이런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니. 내가 한가지 꾀를 가르쳐주지"
염소는 나귀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습니다. "짐을 싣고 개울을 건널 때 자꾸 넘어지렴. 그러면 주인은 네 몸이 쇠약한 줄 알고 다시는 힘든 일을 시키지 않을 거야 "
나귀는 개울을 건널 때 일부러 계속 넘어졌습니다. 주인은 평소 건강하던 나귀가 넘어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의사를 데려왔습니다. 의사는 "나귀의 기력이 약해졌으니 염소의 간을 먹이면 금방 낫는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주인은 즉시 염소를 잡아 나귀를 치료했습니다.
'시기'와'질투'는 부메랑 같은 것입니다. 이것의 희생자는 항상 자신입니다.
중병에 걸린 두 사람이 같은 병실에 입원했습니다. 그 방에는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한 사람은 치료의 과정으로 오후에 한 시간씩 침대 위에 일어나 앉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명의 환자는 하루 종일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했습니다. 매일 오후 창가의 환자는 바깥 풍경을 맞은 편 환자에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창을 통해 호수가 있는 공원이 내다보이고 오리와 백조들이 떠다니며 아이들이 와서 모이를 던져주면서 모형 배를 띄우며 놀고….”
누워있는 환자는 이야기를 즐겁게 들으며 생생하게 들려주는 묘사를 통해 마치 자신이 지금 바깥 풍경을 내다보고 있는 듯 착각이 들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왜 창가에 있는 저 사람만 이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인가? 침대 위치를 바꿀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고 싶다.’
어느 날 밤 창가의 환자가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서 그는 비상벨을 눌러주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창가의 환자가 숨이 완전히 멎을 때까지도…. 아침에 시신을 치워갔습니다. 맞은 편 환자 침대는 창가 쪽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는 안간 힘을 다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얼른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하지만 창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맞은 편 건물의 회색 담 벽이 가로 막고 있었을 뿐입니다. 뼈를 마르게 하고 자신을 상하게 하는 시기와 질투를 버리십시오.
예일대학의 심리학 교수 살로비(P.Salovey) 박사는 미국 범죄의 20%가 질투 때문에 생긴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질투는 무서운 범죄행위의 암적인 요인이 됩니다. 그런데 질투의 특성 중 하나가 자기와 관계없는 사람에 대하여는 거의 질투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옷가게를 하는 사람이 어떤 농부가 농사를 잘해 거금을 벌었다고 해서 질투하지 않으며, 회사원이 같은 동네의 식료품점이 잘된다고 해서 질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분야에서 경쟁관계에 있을 때에는 질투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질투의 불길이 아주 가까운 인관관계 속에서 작용하기 시작하면 더욱 그 불꽃이 사나워진다고 합니다. 부부관계, 애인관계, 친구관계에서 이 질투의 불꽃이 일어나면 반드시 그 불길에 화상을 입는 사람이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질투의 임상학’을 저술한 화이트(G.White) 박사는 이혼한 부부의 30%가 질투 때문에 갈라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질투의 십중팔구는 열등감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결함을 질투로 바꾸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되고, 분발의 동기로 바꾸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상에 나타난 시기와 질투의 사례 몇 가지를 보면
1. 가인이 동생 아벨의 재물은 하나님이 열납하셨으나 자기의 재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지 시기함으로 아벨을 죽입니다.(창4:3-8)
2.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여종 하갈이 먼저 잉태하여 자기를 멸시하자 이를 시기하여 하갈을 학대하므로 하갈이 결국 도망하게 됩니다.(창16:4-6)
3. 야곱의 처 라헬과 레아가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므로 여종들을 야곱과 동침하게 만듭니다.(창30:1- 15)
4. 요셉의 형들이 아비가 요셉을 그들보다 더 사랑함을 알고 시기하여 애굽의 종으로 팔아버립니다.(창37:4- 11)
5. 사울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는 여인들의 소리를 듣고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고자 합니다.(삼상18: 7,8)
6. 바벨론의 방백들이 다니엘을 시기하여 죽이고자 합니다.(단6:3,4)
7.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십자가에 못박도록 고소합니다.(막15:9,10)
8. 유대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시기로 비방하고 핍박합니다.(행13:45, 행17:5)
질투의 특징과 동기 그리고 결과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시기와 질투는 잔혹하며 죽음같이 강합니다.
플로랜스에서 온 참사관들은 당시 이탈리아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던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에게 플로랜스의 대형 홀을 장식할 그림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아울러 당시 아직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젊은 무명 화가,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소문을 듣고 그에게도 역시 그림을 부탁했습니다. 레오나르도의 작품은 과연 그의 천부적인 재능과 명성에 걸맞을 만큼 화려했습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보았을 때, 플로랜스의 참사관들은 입을 딱 벌리고 말았습니다. 그의 그림 속에는 무의식적으로 표현된 불가사의한 매력과 영혼의 정열로 그린 흔적이 깃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젊은 화가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 소식은 레오나르도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그는 또한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이제 늙었어." 레오나르도는 끓어오르는 질투와 풋나기 화가 미켈란젤로 때문에 자신의 명성이 실추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남은 생애 동안 자신의 천재성을 더 이상 살리지 못하고 어둡고 우울하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아8:6)
둘째, 시기와 질투는 마음을 상하게 하고 뼈를 썩게 합니다.
한 수도사가 허허벌판 사막에서 영성수련을 위해 금식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마귀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를 유혹하여 기도를 방해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마귀는 먼저 아주 맛있는 음식으로 배고픈 수도사를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수도사는 끄떡도 안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의심, 공포, 육욕, 물질, 명예 등으로 유혹을 했지만, 이미 기도로 무장이 된 수도사를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약이 바짝 오른 마귀가 최후의 수단으로 수도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헤헤, 당신 동생이 글쎄, 당신네 교구 주교가 되었다더군." 이 말을 들은 수도사의 얼굴이 금새 울그락 불그락 해지더니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했습니다. 마귀의 질투를 이용한 유혹이 성공한 것이었습니다.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라"(잠14:30).
셋째, 시기와 질투의 특징은 세상적, 정욕적, 마귀적입니다.
한 무리의 정치인이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정적을 제거할 계략을 짜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게를 잡고 있는 어부를 만났습니다. 어부는 게를 잡아서 바구니에 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구니에는 뚜껑이 없었습니다. 한 정치인이 어부에게 말했습니다. “바구니에 뚜껑이 없군요. 그러면 게들이 다 도망칠 텐데요. “그러자 어부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아무 염려 없습니다. 이 게들은 정치인들과 비슷한 놈들이라서 한 마리가 기어오르면 다른 놈들이 곧 끌어내립니다. 다른 놈들이 올라가는 꼴을 보지 못하거든요."
오늘날 정치판을 보면 이 게들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지금 정치자금 문제로 각 정당이 서로 상대를 끌어내리기 위해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정치인들을 위해서 진정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진정 나라를 위해서 일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약3:14- 16)
넷째, 시기와 질투는 당해낼 수 없고 결국 자신을 파괴합니다.
미얀마의 전설에 어떤 토기장이가 한 세탁소가 번창하는 것을 시기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토기장이는 세탁소 주인이 사업을 못하게 하려고 황제를 설득하여 왕실의 검은 코끼리를 희게 만들라는 명령을 내리게 했습니다. 세탁소 주인은 황제에게 코끼리를 담을 수 있는 큰그릇이 필요하다고 아뢰었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토기장이에게 그 그릇을 만들라고 명령했습니다. 토기장이는 황급히 커다란 그릇을 만들어 세탁소 주인에게 배달했습니다. 그러나 코끼리가 그 안으로 들어서자 그릇은 곧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계속 다른 그릇을 만들었지만 코끼리의 무게를 감당할 수는 없었습니다. 남을 망치려고 한 그 계략 때문에 결국 망하게 된 것은 토기장이 자신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시기심이 별로 해롭지 않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재에 덮여 보이지 않는 불씨 같아서 끝내 큰불을 일으키고 자신을 파괴합니다.
당신은 요즘 누군가를 향한 시기심의 노예가 되어 있지는 않는지요?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잠27:4)
다섯째, 시기와 질투의 결과는 멸망을 가져옵니다.
고대 그리스에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몸이 빠른 한 육상선수가 2등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죽을 고생 끝에 결승선에 섰으나 군중은 그가 아닌 우승자에게 환호를 보냈습니다. 승자를 위해 축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는 다른 등외 선수들과 함께 서있어야 했습니다. 시내를 걸어 집에 돌아가는 그의 귀에는 승자의 이름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시내 한복판에 우승자를 기려 거대한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2등 선수는 평생 하루하루 그 동상을 보며 자신이 패자임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시기와 질투가 그의 영혼을 점차 장악해 결국 그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밤마다 잠 못 들고 그는 몰래 어둠 속으로 나가 승자의 동상으로 향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석상을 기초부터 조금씩 끌로 파냈습니다. 밤마다 거대한 대리석상은 조금씩 약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가 석상을 한 조각 더 파내자 육중한 선수 동상이 큰소리로 갈라지며 앞으로 쓰러진 것입니다. 거대한 대리석 챔피언은 끌을 든 작은 사람을 덮쳤습니다. 그는 즉사했습니다. 그러나 끌을 든 남자는 동상이 무너진 순간에 죽은 것이 아니라 그간 조금씩 서서히 죽어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하루하루 생각이 꼬리를 물때마다 그를 죽인 것은 질투의 무게였습니다. 질투는 자랑스런 일급 선수의 영혼을 끌이나 들고 타인의 행복을 벗겨내는 옹졸한 사람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질투의 치명적 독이란 그런 것입니다.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욥5:2)
여섯째, 시기와 질투는 자신의 재능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본 살리에르는 그의 비극을 알고 있었습니다. 살리에르는 위대한 음악가를 꿈꾸었고 자신의 재능이 최고이기를 바랐으며 또 그렇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모차르트를 대면하고 그의 천부적 재능을 확인하는 순간 살리에르는 좌절합니다. 그리고 신을 원망하죠. 모차르트같이 철없고 방만한 사람에게는 천재의 재능을 주고, 진정 하나님을 찬양하길 원하는 자신에게는 그것을 알아볼 정도의 능력밖에는 주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살리에르가 알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알아보는 혜안을 가진 자신이야말로 상당한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결국 살리에르는 그 질투 때문에 이후로는 자신의 음악적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맙니다. 당신은 혹시 누군가의 재능을 질투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당신은 혹시 질투로 당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달란트를 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눈 먼 질투는 많은 것을 가리고 보지 못하게 하며 듣지 못하게 하며 결국 파괴를 가져올 뿐입니다.
일곱째, 시기와 질투는 헛된 것입니다.
옛날 평양의 냉면집에 성질이 고약한 점원이 있었습니다. 이 점원은 주인에 대해 잔뜩 불만이 있었습니다. 주인을 골탕먹이고 냉면집을 망하게 할 셈으로 주인 몰래 고기를 두 점씩 썰어서 냉면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재료비가 많이 들어 냉면집이 망할 줄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냉면집에서 냉면을 먹어본 손님들은 냉면 속의 고기에 입맛이 들고 좋아해 냉면집이 망하기는커녕 점점 장사가 잘 돼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평양 냉면집의 전통이 지금도 남아 있어 냉면에는 두 점의 고기가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곁들여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하든지 망하게 하려고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왕성하고 잘 됩니다. 이런저런 것으로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것 때문에 더욱 잘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합니다.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여러 가지 교묘한 일로 인하여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4:4)
거지는 거지를 시기하고 시인은 시인을 시기합니다. 시기와 질투는 육신의 정욕에 속한 것이며(롬1:28,29), 자신과 행복을 파괴시킵니다. 즉 시기는 자신의 화살로 자살하는 행위입니다. 시기와 분노는 생명을 단축시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유혹이 미치지 못할 만큼 거룩하거나 은밀한 곳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시기와 질투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첫째, 시기와 질투가 일어날 때 자신의 시기와 질투를 합리화시키지 마십시오.
둘째,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와 자백하십시오.
셋째,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옛날 영국 런던에 아주 유명한 목사님 세 분이 계셨습니다. 한 분은 그리스도 교회의 목사님인 F.B 마이어라는 분이며, 또 한 분은 기독교 역사상 제일 설교를 잘 하시는 침례교회 스펄젼 목사님이며, 웨스트민스터 교회의 캠벨 몰간 목사님이십니다. 그런데 세 분 중에서 몰간 목사님이 잠시 미국에서 사역하다가 영국으로 돌아와서 웨스트민스터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이어 목사님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몰간 목사님이 미국에 있을 때는 기도하기 좋았는데 같은 도시에서 일하게 되니깐 그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게 되더라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이어 목사님은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 마음 속에서 이 시기와 질투를 없애 주옵소서."
아무리 기도해도 그 시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마이어 목사님께 이런 음성을 들려 주셨습니다.
"네 기도를 바꾸어라. 질투를 없애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그들의 축복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음성이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스펄전 목사님과 캠벨 몰간 목사님과 그 교회들을 축복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나니깐 마음 속에 평안과 기쁨과 자유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자기 교회의 공개 기도 석상에서 마이어 목사님이 이런 유명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몰간 목사님의 교회를 축복해 주셔서, 사람들이 메워지도록 해주시고, 들어갈 자리가 없거든 우리 교회로 보내 주시옵소서." 이 세 분은 아름답게 주를 위해서 사역했으며, 이 세 교회는 다함께 성장했습니다.
넷째, 다른 사람의 축복과 성공에 동참하십시오. 항상 생각 속에 하나님을 첫째 자리에 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를 섬기고자 하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옛 사람들은 여성의 질투를 칠거지악의 하나로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질투는 본인도 불행하게 만들고 상대방도 힘들게 합니다. 질투는 많은 사람을 가난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질투를 하면 내 속에 있는 잠재의식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의 지배적인 감정은 잘못된 질투입니다. 그들은 누가 잘되는 것을 질투합니다. 자신이 부자가 되려면 다른 사람의 부를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질투하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당신의 자녀들이 우상을 섬기거나 영적으로 잘못되어 있을 때 하나님은 질투의 불을 부으시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질투해야 하는 것은 사랑하는 자들이 우상을 섬길 때입니다.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이 잘되는 것은 마음껏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빌면 내가 행복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타인의 불행을 빌면 내가 불행해집니다.
다섯째, 사랑하고 믿어주십시오.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 스토리는 젊은 사관 굴리엘모와 그의 친구 페를란도는 각각 자기 애인의 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확신하였습니다. 두 친구는 각각의 애인이 과연 그러한가? 내기를 하였습니다. 두 친구는 변장하고 각각의 애인에게 접근하였습니다. 결과는 각각의 애인이 뒤바뀌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모든 동물은 같은 種(종) 끼리는 여러 상대와 관계 가질 수 있도록 디자인 되어 있습니다. 금실이 좋다는 기러기-거위-원앙-백조도 모두 여러 상대와 관계를 가진다고 합니다. 사람도 예외는 아닙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질투의 감정을 품게 됩니다. 진화론자들은 질투를 진화의 산물로 봅니다. 남자는 자기 여자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어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양육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가지고 있고, 여자는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재화를 다른 여자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질투의 원초적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자기 여자가 다른 남자와 오랜 동안 정서적 친밀감을 나누는 것보다 단 한 번이라도 육체적 관계를 했다는 사실에 불같은 질투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만큼 자기 여자가 다른 남자의 씨를 받은 것은 아닌지 불안한 것입니다. 반면에 여자는 자기 남자의 단순한 일회성 외도는 눈감아 줄 수 있지만 다른 여자와 오랜 동안 친밀한 교감을 나누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불같은 질투를 느끼는 것입니다. 만남이 오래되면 그만큼 재화를 빼앗길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질투의 감정은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그러나 의부증-의처증 같은 병적인 질투는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참으로 곤란합니다. 심리학자들은 병적 질투의 원인을 다른 사람과 성적 관계를 맺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상대 배우자에게 투사시키는 경우와 상대 배우자가 자기보다 더 나은 다른 사람을 찾아갈지도 모른다는 열등감에서 비롯되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섹스피어의 오셀로입니다. 오셀로는 자신이 흑인이라는 사실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 데스데모나가 흑인인 자신을 사랑하는 지 늘 불안했습니다. 그런 오셀로의 열등감은 이아고의 간교한 술책에 쉽게 넘어가 질투와 복수의 화신이 되었던 것입니다. 왜, 오셀로는 이아고의 술책에 넘어간 것일까? 왜, 오셀로는 자기 아내 데스데모나의 말보다 이아고의 말을 더 믿은 것일까? 오셀로의 열등감과 낮은 자부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조바심치며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믿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육체의 일을 버리고 오직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나의 약함을 아시는 하나님, 때로는 붙일 듯 일어나는 질투 때문에 내 마음이 도무지 안정되지 않습니다. 쓸데없이 남과 비교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맞는 나 자신을 세워가게 하시며 내 안에 사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기뻐하게 하소서. 선한 마음과 생각을 지키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예화: 여자의 질투심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자기 결혼전에 사귀던 여자 있었어? 솔직히 말해봐. 응?"
남편이 대답했다. "응. 있었어."
아내가 물었다. "정말? 사랑했어?"
남편 왈. "응. 뜨겁게 사랑했어."
아내가 다시 물었다. "뽀뽀도 해봤어?"
남편이 답했다. "해봤지."
아내는 드디어 열이 받아 물었다.
"지금도 그 여자 사랑해?"
남편은 "그럼 사랑하지. 첫사랑인데..." 라고 말했다.
완전히 열이 오른 아내가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럼 그 여자하고 결혼하지 그랬어 엉?"
남편 왈.
"그래서 그 여자하고 결혼했잖아."
"허~걱"
아내의 질투심도 사랑의 증거요 남편의 대답도 사랑의 고백이네요 처음의 그 느낌 잊지 말고 오늘은 수줍게, 애교있게, 무뚝뚝하게 나만의 스타일로 고백해보세요.
* 묵상: 남을 시기하고 질투한 적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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