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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483 추천 수 0 2010.11.19 08:15:52
.........
성경본문 : 출2:23-25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430년간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총리인 요셉으로 인하여 성대한 대접을 받고 좋은 땅에서 풍요롭게 살았습니다. 430년 만에 70여명의 사람들이 장정만 600여 만 명,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200만이 넘는 당시로는 큰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새 왕이 등극을 하였습니다. 그는 이제이스라엘 민족이 자신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위협적인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때 적군과 연합하여 이집트를 대적하고 민족 해방을 추구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인구 억제 정책으로 무섭게 탄압하였습니다. 감독들을 세워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 성을 건축하게 하였습니다. 힘겨운 노예생활이었습니다. 그런데 학대받을수록 인구가 더욱 늘어나자 산파들을 시켜 이스라엘 남자가 나면 다 죽이라는 유아 살해 명령을 내렸습니다. 참으로 처절한 고통을 당하여야만 했습니다. 정치적 자유를 잃었습니다. 종교적 박해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수탈을 당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생명을 유린합니다. 다행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산파들에 의해 아이들이 살아나자 애굽 왕은 애굽 국민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남자 아이를 낳으면 모두 강물에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매일 매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는 통곡하는 소리가 들렸을 것입니다.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80년이란 긴 세월입니다. 이제 새로운 왕이 등극하였습니다. 모세의 정적이었던 투트모스 3세가 죽고 그의 아들인 아멘호텝 2세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백성들은 새로운 왕에 대한 기대를 가졌을 것입니다. 새 왕이 등극하였으니 좋아지겠지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아질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들을 알아 줄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대는 산산이 무너졌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아주 강퍅한 왕이었습니다. 더욱 이스라엘 백성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였다고 했습니다. 노예 노동은 악화 일로에 이르렀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무려 80년이란 세월입니다. 처음에는 “조금 지나면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대가 지나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이 다가오자 하나님을 원망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고통을 스스로의 힘으로 버틸 수 없었습니다. 사람은 자신 스스로 고통을 해결하지 못하면 타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때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부르짖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짜아크”인데, 막다른 상황에 부딪쳐 외치는 영혼의 절규입니다. 민족적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절규하는 부르짖음 어떻게 어루만져 주었습니까? 우리가 고통 가운데 부르짖을 때 어떻게 반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까?

1.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3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밀한 관심을 가지시고 들으신다는 말입니다. 오늘 날도 우리의 고통을 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집사님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 장로님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권사님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 모두의 고통 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속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읽어 보십시오.
'들으시고'란 말은 “솨마”입니다. '주의 깊게 경청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신음의 소리를 주의 깊게 듣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신음 소리를 외면하시지 않으십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사람들은 80년 동안 외면당한 것같았지만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듣고 계신다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찾아 보세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출 3:7)”
“이제 애굽 사람이 종을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출 6:5)”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라 (출 22:23)”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 소리를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갖가지 고통이 찾아 옵니다. 요즈음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통지수(苦痛指數, misery index)가 7년 만에 가장 높아졌다고 합니다. 지난 달 26일에 한국은행과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고통지수는 9.0으로 7년 만에 최고치라고 합니다. 고물가, 고환율, 고유가로 살기 힘들다고 합니다. 우리는 때로 물질적 궁핍으로 고통을 당합니다. 육체적 질병으로 고통을 당합니다. 정치적 속박으로 고통을 당합니다. 지적 무지로 고통을 당하기도 하고 실연(失戀), 부모 형제 등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사업의 실패, 각종 시험의 실패, 원치 않은 결혼과 이혼, 가정 파괴, 실직, 불의의 사고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인하여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당합니다. 이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아무도 내 고통에 반응하지 않는 것 같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렘 33:3)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앞도 막히고 뒤도 막히고 옆도 막힐 때 위를 향해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 58:9)”
히스기야가 병이들었습니다. 불치의 병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와서 살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때 아이 하나도 낳지 못했습니다. 나라는 외적의 침범으로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이런 때 왕이 병이 들었습니다. 이 때 히스기야는 포기하지 않고 낯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응답해 주었습니다. “내가 네 기도소리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라고 말씀하십니다.(왕하 20:5)

느헤미야를 보십시오.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려고 합니다. 위기 상황입니다. 자신은 왕궁에서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왕의 총애를 받고 출세한 권력자입니다. 청와대에서 근무합니다. 부족함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명 때문에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나섭니다. 느헤미야는 주전 445년에 3차로 귀환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민족을 살리는 일에 헌신합니다. 그는 무너진 예루살렘 도성을 재건(1:1-7:4)하였습니다. 그러나 순조롭지 않습니다. 외적들이 반대합니다. 날로 날고 그 반대는 심해집니다. 조롱하고 왕에게 반역한다고 협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힘있는 자들이 협조하지 않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느헤미야와 동시대의 사람입니다. 당시의 상황을 보면 제사장들을 자기 직무에 싫증이 났습니다. 예배드리는 것이 귀찮았고 형식적이었습니다. 여호와께 병들고 흠 있는 짐승들을 바치면서도 잘못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말1:6-14). 성직의 품위는 실추되었습니다.(말2:1-9) 이혼이 성행하였으며(말2:13-16), 부자들은 임금을 착취하고 약한 자들을 이용하였으며(말3:5), 가난한 자들은 흉년으로 자기 전답을 저당 잡히고 심지어 자녀를 노예로 팔았습니다. 이방인과 결혼으로 유대 공동체의 순수성이 파괴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느13:22-27). 이 때 느헤미야는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손이 도와 결국 완성하게 하였습니다. 100여년동안 이루지 못한 민족적 과업을 52일 만에 완성했습니다. 사회 경제적 문제로서 토지와 노예 제도를 정비하였습니다(5:1-19). 그리고 이제 영적 부흥을 일으키며 성전을 청결하게 하고(13:4-9), 안식일을 개혁하며(13:15-22),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지시켰습니다(13:23-28). 느헤미야의 기도응답처럼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 “주님은 하늘에서 들으시고, 큰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느헤미야 9:27-28)
오늘날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출22:27).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시 107:6)”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시 107:13)”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시 107:28)”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시 118:5)”
하나님께서 들어 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한 시편기자는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시116:1,2).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억울한 울부짖음, 우리의 고통당하는 심음 소리를 들어 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가 기도의 손을 모으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손을 펴실 것입니다.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2. 고통 가운데 부르짖으면 언약을 잊지 않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고 어떻게 하였습니까? 언약을 기억했다고 했습니다. 그 언약은 어떤 언약입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언약입니다. 사람들은 쉽게 잊지만 우리 하나님은 430년 전의 언약을 잊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좋은 것은 기억하지 않고 나쁜 것만 기억하고 원한을 만들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 죄과는 기억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복주시기 위한 약속을 끝까지 기억하시고 부르짖을 때 성취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창 15:13-14)”
이삭에게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창 26:24)”
야곱에게 약속해 주었습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창 28:13-14)”
이미 그 고통으로 이스라엘이 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대가 끊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때가 되면 그들이 나올 것이고 번성하여 자손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해방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민족의 번성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행복한 생활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기쁨과 즐거움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80년동안 끊임없는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자식들이 죽어야 하는 아픔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 왕이 되어 희망을 가졌는데 새 왕은 더욱 고통지수만 높여 주고 있습니다. 왜 그런 고통에 처한다는 것입니까?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심으로 진정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신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여호와 인 것을 확실히 아는 방법은 바로 예언하고 성취하는 것을 통하여 분명하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21절 이하를 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진술하라 또 이전 일의 어떠한 것도 고하라 우리가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리라 혹 장래사를 보이며 후래사를 진술하라 너희의 신 됨을 우리가 알리라 또 복을 내리든지 화를 내리라 우리가 함께 보고 놀라리라 (사 41:21-23)”
진정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증거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미래 일을 말하고 그것이 맞는가 맞지 않는가 보면 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언해 놓고 그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약속한 것을 우리가 붙들고 기도하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지금 비록 고통스럽고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말씀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 주어진 것이 없고 인간적으로 볼 때 불가능한 것 같지만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 7:7-8)” 말씀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70평생 고통 가운데 살았습니다. 아픔 가운데 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라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약속을 우리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불행합니다. 언제 행복이 다가 올지 망막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신 33:29)”라는 말씀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 염려와 걱정과 근심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인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라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아브라함의 자손 4대 만에 있으리라고 벌써 창15: 16에 약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취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출2:23-25)
바벨론 포로 생활을 보십시오. 바벨론 나라에 사로잡혀 간 유대 민족이 70년이 지난 후 회복 될 것을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통하여 그 약속이 성취되었습니까? 렘29:10-14, 겔36:37를 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 떼같이 많아지게 하되 (겔 36:37)”
엘이야에게 3년 반 동안 가뭄으로 메말랐던 땅에 비를 주시겠다고 이미 약속하였습니다(왕상18: 1). 그런데 그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었습니까? 엘리야 선지자의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왕상18:41-46).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신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오 신실 하신 주 오신실 하신 주 내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너를 지키시리라...”

3. 고통 가운데 부르짖으면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고통을 들으시고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마지막 어떻게 하였습니까? 25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였습니다. 권념이란 “라아”라는 말과 “야다”를 합하여 번역한 말입니다. “보다”와 “알다”라는 뜻입니다. “돌아본다”는 뜻입니다. 깊은 관심으로 속사정을 아시고 보살펴주신다는 자상한 돌보심을 말합니다. 섬세한 돌보심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당하는 고통을 알고 돌아보시고 자비를 베풀기로 작정하신다는 말입니다. 듣고 기억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적절하게 응답하여(시50:15 렘33:3) 보살핀다는 말입니다. 직접 약자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역사에 개입하신다는 말입니다. 80년간 백성들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고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시지만 다 아시고 하나님의 때가 되니까 그들을 돌보아 주기 위해 일하십니다. 어떻게 보살피십니까? 바로 3장으로 이어집니다. 그들을 해방시킬 모세를 80년 동안 준비시킵니다. 그리고 그 모세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신 것을 알려 주며 그들을 해방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권념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면 왜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왜 나만 이런 고난을 당하냐고,” “내가 무슨 죄를 졌기에 이런 고통을 당하냐고” 질문을 합니다. 고통을 선악의 대결로 봅니다. 인과론적 고통관을 갖게 됩니다.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라고 말을 합니다. 물론 고통은 자신의 잘못 때문에, 사회 구조의 잘못 때문에, 선조들의 잘 못 때문에 다가 올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 요나같은 경우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심각한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담배를 계속 피우면 폐암에 걸릴 확률이 많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담배를 피우다 폐암에 걸려 고통당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통은 반드시 무슨 잘 못 때문에 생기는 것만은 아닙니다. 성장통 처럼 누구나 거쳐야 할 필수적인 고통이 있습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불가피한 고통도 있습니다. 고통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하는 유익하고 유용한 고통도 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처럼 주님을 위해 자원하는 고통도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고 계셨는데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물어 봅니다. “선생님 이 사람이 소경된 것은 뉘 죄로 인함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부모 죄입니까?” 그들의 고통을 죄 때문이라고 제자들은 생각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 9:3)”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고통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드러내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확고하게 믿고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하기 위한 고통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편 119:71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이렇게 고통을 당하였습니까?
그들의 죄 때문입니까? 그들의 욕심 때문입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그곳에 보내었습니다. 오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나와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은혜를 잊어버린 배은망덕한 왕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왕이 미리 겁을 내어 반역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역을 시키고 사내 아이들을 죽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강해졌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입니다.
하나님은 이 고통을 통하여 무엇을 합니까? 기름진 나일강 유역에 안주하지 못하게 합니다. 구속사를 이룰 백성, 언약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성경을 기록하는 백성으로 만듭니다. 제사장의 나라로 만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오게 하실 백성으로 삼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고통의 과정을 통과한 후 어떤 간증을 합니까?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중역을 시키므로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 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신 26:6-9)” 그리고 무엇을 합니까? 여호와 앞에 경배하게 합니다(신 26: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을 인하여 너는 레위인과 너의 중에 우거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신 26:11)”라고 말씀합니다.

요셉이 억울하게 감옥에 간 것처럼 애매하게 당하는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니엘처럼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사자굴에 들어가는 힘겨운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욥처럼 가정 경제가 하루 아침에 파탄 나고 자식이 죽고 아내로부터 배신당하는 처절한 고통이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한나처럼 아이를 낳지 못하여 조롱받는 고통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처럼 해야할 일은 많은데 불치의 병으로 죽음의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다윗처럼 처절하게 쫓겨 다녀야할 고통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참으로 참기 힘든 모욕과 박해를 받으며 십자가를 지어야 하는 고통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고통의 현장에 있다하여도 우리 하나님이 친히 우리의 고통을 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 그 고통의 현장에서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중에 민수기 20장 16절에서 이렇게 간증합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우리 소리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어 인도해주셨다.” 우리에게도 이런 간증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함께 지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시면서 얼마나 섬세하게 돌보와 주셨습니까? 그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의 고통의 현장에 함께 계십니다. 먹을 물과 양식이 없고, 잠잘 곳이 없어 떠도는 사람, 일자리가 없어 신음하는 사람, 잠이 부족해 괴로워하는 사람, 상처로 아파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육체적 마음의 고통도 큰 고통이지만 정치적 억압, 전쟁, 경제적 착취, 계층적 차별, 문화적 소외, 종교적 박해 등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더욱 심각합니다. 이상 징후를 알리는 육체적 고통이 반드시 나쁘지만 않지만 회복 불가능한 장애, 선천적 장애로 인한 고통은 유익하지 않은 뿐 아니라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어떤 고통일지라고 그 고통의 현장에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우리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언약을 기억하시고 권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왜 나만 겪는 고통이냐고 슬퍼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너무 힘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손잡고 계시쟎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쟎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함을 믿는다면 어떤 고난도 견딜수 있쟎아요.”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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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4505 히브리서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히12:14  한태완 목사  2010-11-21 2918
4504 시편 하나님이 다스리심을 기뻐하자 시97:1-12  한태완 목사  2010-11-20 2426
4503 출애굽기 끝까지 세워주시는 하나님 출4:10-17  김필곤 목사  2010-11-19 2471
4502 출애굽기 내 손에 있는 것의 가치 출4:1-9  김필곤 목사  2010-11-19 2422
4501 출애굽기 인도하시는 하나님(하나님의 구원 계획) 출3장16-22  김필곤 목사  2010-11-19 3035
4500 출애굽기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 출3:13-14  김필곤 목사  2010-11-19 2697
4499 출애굽기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 출3:9-12  김필곤 목사  2010-11-19 2830
4498 출애굽기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 출3:7-8  김필곤 목사  2010-11-19 2447
4497 출애굽기 평생 잊을 수 없는 부르심 출3:1-6  김필곤 목사  2010-11-19 2705
» 출애굽기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 출2:23-25  김필곤 목사  2010-11-19 2483
4495 출애굽기 광야 훈련의 교훈 출2:16-25  김필곤 목사  2010-11-19 2813
4494 출애굽기 다 준비된 것 같지만 부족한 것들 출2:11-15  김필곤 목사  2010-11-19 2359
4493 출애굽기 새 시대 인물을 만드는 가정 출2:1-10  김필곤 목사  2010-11-19 2525
4492 출애굽기 새 시대를 향한 진통 출1:1-14  김필곤 목사  2010-11-19 1803
4491 마가복음 기념되는 인생 막14:1-12  김필곤 목사  2010-11-19 2749
4490 마가복음 예수님의 재림과 삶의 태도 막13:24-37  김필곤 목사  2010-11-19 2964
4489 마가복음 대환난과 삶의 자세 막13:14-23  김필곤 목사  2010-11-19 2449
4488 마가복음 종말의 징조와 삶의 태도 막13:1-13  김필곤 목사  2010-11-19 3191
4487 마가복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막12:35-44  김필곤 목사  2010-11-19 3474
4486 마가복음 사랑은 강력한 힘입니다. 막12:28-34  김필곤 목사  2010-11-19 2552
4485 마가복음 부활을 믿습니까? 막12:18-27  김필곤 목사  2010-11-19 2637
4484 마가복음 대적자들의 올무(신앙과 정치) 막12:13-17  김필곤 목사  2010-11-17 2148
4483 마가복음 악한 포도원 농부의 교훈 막12:1-12  김필곤 목사  2010-11-17 3213
4482 마가복음 성전 청결의 교훈(만민이 기도하는 집) 막11:15-18  김필곤 목사  2010-11-17 3880
4481 마가복음 마른 무화과 나무 교훈(입술의 권세를 가지려면...) 막11:12-14, 20-25  김필곤 목사  2010-11-17 2862
4480 마가복음 나귀 타고 입성하신 왕 막11:1-10  김필곤 목사  2010-11-17 2679
4479 마가복음 장애를 극복하는 인생(네가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막10:46-52  김필곤 목사  2010-11-17 2249
4478 마가복음 힘과 섬김 막10:35-46  김필곤 목사  2010-11-17 2967
4477 마가복음 한 가지 부족한 것 막10:17-22  김필곤 목사  2010-11-17 2553
4476 마가복음 어린 아이와 하나님의 나라 막10:13-16  김필곤 목사  2010-11-17 2840
4475 마가복음 행복한 가정의 원리 막10:1-12  김필곤 목사  2010-11-17 2787
4474 마태복음 가장 행복한 사람 마6:25-34  한태완 목사  2010-11-17 2637
4473 야고보서 죄와 허물을 고백하세요 약5:16  헌태완 목사  2010-11-17 2948
4472 디모데후 자녀에게 물려줄 유산 [1] 딤후1:3-5  한태완 목사  2010-11-19 3259
4471 로마서 화해의 복음 롬12:14-21  김홍도 목사  2010-11-19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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