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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1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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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 참고 : | 이한규 http://john316.or.kr |
요한복음(73) 행복을 위한 3가지 원리 (요 12:24)
결혼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결혼의 진정한 목적을 잘 모릅니다. 결혼의 진정한 목적은 돕는 배우자가 되는 것, 즉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 돕고 섬기려면 썩어지고 죽어지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축복의 열매가 많이 맺어집니다(24절).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축복의 열매는 기대하면서 죽지는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문제의 해결책을 아주 잘 알아서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제가 죽으면 되는데 제가 죽지 않아서 그렇지요.” 답은 백점입니다. 그러나 맨 날 말로만 죽습니다. 행복의 길을 알면서도 그 길을 가지는 않고 행복을 요구하면 불행해집니다. 행복은 자신이 죽고 남을 행복하게 해야 주어집니다.
죽을 때 군말 없이 깨끗이 죽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죽는다고 하면서 자기를 알아달라고 몸부림하면서 죽습니다. 죽는 사람이 너무 말이 많고 너무 몸부림이 많습니다. 죽어야 사는 길이 열린다고 하면 어떤 성도는 말합니다. “목사님! 죽으려고 해 보지만 정말 안 됩니다.” 언뜻 들으면 맞는 말 같지만 그 말 자체가 벌써 죽은 것이 아닙니다. 죽으려면 깨끗하게 죽어야지 죽으려고 해 본다는 것 자체가 잘못입니다. 그것은 죽으려고 폼만 잡은 것입니다. 그렇게 폼만 잡으면 열매는 없습니다.
또한 죽는다는 것은 “나 죽었다!”고 한 후에 금방 열매를 기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은 썩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죽는 척 하고 “왜 열매가 없지?” 하고 금방 열매를 찾지 마십시오. 열매를 맺기까지 인내하십시오. 어느 공동체에 가든지 자기 죽음을 고백하고 섬겨주려고 할 때 진정한 행복도 주어집니다.
< 행복을 위한 3가지 원리 >
행복은 성공에 있지 않습니다. 막상 성공하면 성공도 별것 아닙니다. 성공하고 오히려 더 불안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스타들을 보면 화려한 무대에서 우레 같은 박수를 받고 겉으로는 성공한 것 같지만 사람들의 박수를 먹고 사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사실상 고달픈 일입니다. 왜냐하면 언젠가 인기는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괴롭고 불안하기 때문에 약에 의존하는 스타들이 많습니다.
연예인들이 인기를 좇아 기울이는 노력과 수고가 얼마나 엄청납니까? 그렇게 인기를 얻으면 그 후에는 그 인기를 지키느라 더 고생합니다. 혹시 인기를 잃을까봐 불안과 공포에 싸여 기쁨과 평안이 없습니다. 남을 기쁘게 하면서 정작 본인은 기쁘지 않으니까 죽을 지경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행복의 원리를 잘못 이해하기 때문이다. 행복에 관해 기억해야 할 3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행복은 은혜로 주어집니다. 은혜의 뿌리는 하나님입니다. 결국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없으면 참된 행복도 없습니다. 특히 은혜는 자격 없이 주어지기에 자신을 높이면 행복이 없습니다. 왜 똑똑한 사람의 행복지수가 낮습니까? 이것저것 따져보아도 자신이 제일 잘났는데 그것을 잘 알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주위를 보면 별 볼일 없는 사람도 자기보다 잘살기 때문입니다. 그런 교만한 마음이 행복을 차버립니다. 별로 시원치 않은 사람이 예상 밖의 행복을 누리며 사는 이유는 은혜에 열린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둘째, 행복은 깨달을 때 주어집니다. 많이 받아도 깨닫지 못하면 오히려 많은 소유가 행복의 감지력을 둔화시킵니다. 배부르면 코가 둔해지고 배고프면 코가 예민해지듯이 행복의 감지력도 그렇습니다. 부잣집 아이들은 용돈을 많이 주어도 행복을 잘 느끼지 못하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은 몇 푼에도 대단히 행복해합니다. 건강할 때는 늘 불평하던 사람이 병들면 귀한 건강의 은혜를 잊고 살아왔음을 깨닫고 비로소 은혜의 눈을 뜰 때가 많습니다.
셋째, 행복은 하나 될 때 주어집니다. 언제나 행복에는 수고와 희생이 따릅니다. 인생의 기쁨과 즐거움은 수고와 희생에 비례합니다. 수고와 희생 없는 기쁨은 참된 기쁨이 아닙니다. 그처럼 즐거움을 희생하고 남을 위해 나를 제한할 줄 알 때 행복해집니다. 남을 행복하게 해야 내가 행복해지는 원리를 모르면 헛된 세월만 보냅니다. 왜 잘사는 현대인의 불행지수는 더 큽니까? 혼자만의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남을 불행하게 해도 나는 행복할 수 있다는 착각이 진정한 행복을 멀어지게 만듭니다.
요새 결혼 적령기에 있는 상당수가 독신으로 지냅니다. 독신으로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혼자 산다는 불행감과 그로부터 당하는 정신적 고통으로 많이 신음합니다. 그처럼 독신의 고통을 억제하지 못하면서 왜 결혼하지 않습니까?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자신의 행복을 남에게 주고 싶지 않은 것, 즉 누구에게도 봉사하고 싶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결혼할 때 남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결혼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의외로 적습니다. 대개 “내가 저 사람으로 어떻게 행복을 받을까?” 하는 것만 열심히 계산합니다. 그러나 자기행복만 계산하며 사는 사고가 결국 자신을 무서운 불행의 함정에 빠뜨립니다. 반면에 남을 섬기려고 하면 생각지 못한 축복의 열매가 무수히 따라옵니다.
룻을 보십시오. 남편과 아들을 다 잃고 쓸쓸히 귀향하는 빈털터리 시어머니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너는 앞길이 창창하니 네 갈 길을 찾아 가라.” 그래도 룻은 기필코 시어머니를 따르겠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행복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보장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헌신적인 마음 때문에 결국 룻은 이방 여인으로서 메시야 족보에 끼는 큰 영광을 누렸습니다.
요즘 일부 사람들은 자기 행복만을 찾습니다. 자기 행복을 위해 결혼도 안하고 자식도 낫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이 불행을 부릅니다. 행복은 이기적으로는 결코 얻지 못합니다. 팔 걷어붙이고 기쁘게 섬겨야 남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합니다. 거룩한 수고를 남에게 떠맡기고 자기 행복만을 추구하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항상 밀알의 이치를 기억하고 미련 없이 자기 죽음을 선포하십시오. 그때 나도 살고 남도 살고 행복이 깃듭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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