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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이 있을지어다

시편 복음............... 조회 수 2665 추천 수 0 2010.12.25 13: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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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122:1-9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평강이 있을지어다

 

본문: 시편 122편 1- 9절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예루살렘아 너는 조밀한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거기 판단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 집의 보화로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붕우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네 복을 구하리로다”

 

19세기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영국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는 평소에 믿음과 소망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죽자, 그의 친구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그의 삶은 평안이 무엇인지 보여 주는 살아 있는 교과서였습니다. 천국 은행에서 매일의 양식 즉 ''주님이 주시는 평안''(요 14:27)을 가져다 쓰는 듯했습니다. 구세주가 동요하지 않고 성령님이 화내지 않는 일에는 그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삶의 문제가 있거나 매우 심각하고 다급한 순간에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을 소유했습니다. 그는 좀처럼 서두르거나 신경을 곤두세우거나 속으로 원통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명철을 뛰어넘는 평안을 알았고, 그 평안이 없으면 살지 못함도 알았습니다."

나는 살아갈수록 이런 평안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절감하게 됩니다. 허드슨 테일러처럼, 나도 평안을 취하고 싶습니다. 조급하거나 안달하지 않아도 되고, 관심 받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거나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 하지 않아도 되는 평안을 갖고 싶습니다. 그 해답은 하나님입니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합니다. 그분의 온전한 사랑이 내 모든 두려움의 해답입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가면 복을 받습니다. 형통합니다. 그 사랑의 품에서 평안과 안식을 얻습니다.

마음속에 평안이 없는 이상 부귀 영화 공명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행복의 기초는 평안입니다. 누가 이 불안과 공포를 쫓아내고 우리에게 행복을 갖다 줄 수 있을까요. 불안보다 더 위대하고 공포의 대상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마음을 점령하시고 우리 속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다는 신념을 가질 때 불안과 공포는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지으셨습니다. 세계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내어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성령께서 나의 속에 들어와 나를 점령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체험해서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신념을 가질 때 불안과 공포를 불태워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눈에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계시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서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시27:1)

 

본문의 이 시는 표제어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다윗의 시입니다. 교회에 올라가자고 서로 권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받으시는 곳입니다.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시122:5)

 

성도가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형통의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성도는 교회에 가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1절)

사람마다 기뻐하는 것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여러 모임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기쁨으로 삼습니다. 어떤 이는 열심히 일하여 통장에 돈이 쌓여 가는 것을 인생의 가장 큰 기쁨으로 여깁니다. 학생은 학생대로 사업가는 사업가대로 기쁨의 대상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가장 큰 낙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다윗은 시27:4절에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하였습니다.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에 넘어간 후 아스돗 가드 에그론에서 벧세메스로 기럇여아림에 20년을 머물다가 올라올 때에 수레에 실어오는 궤를 만져 웃사가 손을 대어 즉사하고 오벧에돔에 머무르는데 그 온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주었습니다.(삼하6:12) 이제 궤를 메어가지고 올 때에 다윗이 제사를 드리고 힘을 다하여 춤을 추고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었습니다.

고라 자손은 시84:1- 4절에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하였습니다.

 

2. 교회에서 성도는 하나가 되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아 너는 조밀한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3절)

건물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지만 더 깊은 영적 의미는 교회에 올라온 성도들이 붙어 있는 건물처럼 서로서로가 하나가되어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12지파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절기 때마다 모여 한 형제 한 자매임을 확인했습니다. 비록 그들이 사는 지역이 다르고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지만 예루살렘에 모여 예배하고 교제함으로 서로 하나됨을 확인했습니다.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마12: 2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4: 5-6)

분열과 싸움을 끊어버리고 화평과 평화와 일치와 하나됨을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 인간들 상호간에 모든 단절과 분열의 담을 허시고 하나되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모든 닫혀진 담을 헐고 성령안에서 하나됨으로 누구도 흔들고 무너뜨릴수 없는 견고한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12)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5)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골2:19)

 

3. 예배에 감사해야 합니다.

서양 격언에 “제일 가르치기 어려운 수학 문제는 우리가 받은 축복을 세어 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감사의 조건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감사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깨닫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만한 마음, 남과 비교하기, 마음속 욕망 등이 감사를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감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첫째, 감사와 불평도 습관입니다. 기왕이면 감사를 습관화해야 합니다. 둘째,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많이 깨닫는 자가 많이 감사하는 법입니다. 셋째, 기도하면 감사가 더 넘치게 됩니다. 기도는 원망을 감사로 만드는 거룩한 과정입니다. 넷째, 감사는 내 인생을 역전시켜 줍니다. 불평하면 불행이 평생 따르고 원망하면 원 없이 망하게 됩니다. 감사는 불행을 축복으로 바꾸는 통로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음에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아삽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50:23)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먼저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내 영혼이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보다도 기뻐하시는 것은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이 아닌 우리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 울려 나오는 진정한 감사와 찬양인 것입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고 기뻐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욥1:21)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16:25)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라고 했습니다.(시100:4, 5)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6- 7)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본문 5절을 보겠습니다.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

심판은 공의와 정의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평안은 공의와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 하나님 나라와 의(義)가 날마다 더해져야 합니다.

4. 성도는 교회의 평안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 형제와 친구를 사랑하고 평안을 구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형통의 복을 주십니다.(6-7절)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30)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눅18:28-30)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 7- 8)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1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 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 20- 24)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앞에 들어갈찌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대상16:29)

본문 8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내 형제와 붕우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지어다”

시인은 모든 백성들의 평안을 위하여 예루살렘과 그의 왕권이 견고하기를 기원합니다. 여기서 자기 왕권에 집착하기 보다는 먼저 백성을 위하는 시인의 이타적인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거하는 모든 이는 시인의 형제요, 친구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교회에 거하는 모든 자들도 주 안에서 형제요 친구이기에 교회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공동체를 구축해야만 참 사랑의 진리가 표출되는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이웃과 형제와 친구의 평안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엡1:2)

본문 9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네 복을 구하리로다”

일제시대에 만주의 북간도에 가서 전도하던 정운학 목사의 실화입니다. 신자들은 자꾸 늘어났으나 예배 드릴 교회당 건축이 문제였습니다. 마침 예배당 터로 적합해 보이는 수수밭을 발견했습니다. 일단 그곳으로 교회당 터를 정한 정목사는 매일 아침마다 가서 그 땅을 교회 부지로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작황을 알아보기 위해 나왔던 수수밭 주인이 이상한 소리를 듣고 가보니 한 신사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그 땅을 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미친 사람이 헛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에 이 농부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목사의 말을 들으니 온 세상을 다 가지신 분이 하나님이라는데 그 땅을 주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날 목사를 찾아가 교회 짓는 데 필요한 만큼 땅을 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큰 복을 주십니다. 물론 오늘날 교회당이 구약 시대의 성전과 같지는 않지만 성도들의 공동체라는 면에서는 동일하게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자를 통해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성전과 그에 대한 봉사와 예배를 위하여 예루살렘과 그의 왕권이 견고하고 형통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도 교회의 평안을 구하고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끝으로 성도가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형통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모스 5:24절에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잠언 10:9절 에 “바른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하였습니다. 평안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살라고 주신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江水)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7- 8)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진정한 평안입니다. 세상적 인간적인 평안은 곧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겁내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 무서워 말라. 근심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 내가 너를 붙들어 준다 내가 너를 지켜 준다. 내가 너를 보호해 준다. 내가 너를 인도한다. 나는 목자요 너는 나의 양이라 하십니다. 눈동자처럼 지켜 준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이러한 보장을 해 주신 주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만이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진정한 축복의 삶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살롬!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 기도: 평강의 주님, 저를 긍휼히 여기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만이 저의 영원한 빛이시고 높은 영광이십니다. 모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실 주님을 기대합니다. 주님이 나를 돌보아 주시니 감사와 찬양을 드릴 뿐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함 속에 늘 살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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