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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27: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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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하나님 없는 자의 헛수고
본문: 시편 127편 1- 5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라는 책에는 바다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는 노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바다에서 많은 날들을 기다리다가 천신만고 끝에 커다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노인은 그 물고기를 배에 매달고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건져보니 오직 앙상한 뼈만 남아 있었습니다. 상어떼들이 습격하여 물고기를 다 뜯어먹어 버렸던 것입니다. 노인은 심한 허탈감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헛된 목표를 정하여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허무한 삶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그가 일생을 바쳐 헌신한 일의 결과는 앙상한 물고기의 뼈와 같이 아무런 유익이 없을 뿐더러 허무하기까지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목숨을 걸고 직장과 사업터에서 생존 경쟁을 치르지만 그 결과는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물거품과 같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이런 헛된 세상적 목표를 향해 줄달음질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적인 거창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애씁니다. 그러나 그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자기 뜻과 자신의 목적대로 사는 인생은 결국 노인처럼 후회와 실망이 가득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돌이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좇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삼상12:21)
본문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지혜의 왕이라 불리웠던 솔로몬이 지은 것으로 인생의 생사화복과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사실을 확증함으로써 모든 인생이 겸손히 하나님을 의뢰하여야 함을 권고하는 지혜서입니다. 이러한 본문은 그 내용이나 표현이 잠언과 유사할 뿐 아니라 그 주제가 뚜렷하고 시어가 시편의 다른 시들에 비해 매우 아름다워서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고 있는 명시(名詩)입니다.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공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잠11:18)
오늘 본문 시편127편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모든 사람의 연인이라는 미국의 배우 마릴린 먼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나는 젊고 아름답습니다. 나는 돈이 많고 사랑에 굶주리지도 않습니다. 수백 통의 팬 레터를 매일 받습니다. 건강하고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미래에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나는 너무나도 공허하고 불행합니다. 뚜렷이 이유를 찾을 수 없지만 나는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결국 마릴린 먼로는 1962년의 어느 날 밤 ‘나의 인생은 파장하여 문 닫는 해수욕장과 같습니다’라는 글을 남기고 자살했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많은 행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도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지 않으시는 인생은 허망합니다. 붙잡았다고 생각되는 순간 이미 현실이 아닙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고 극단적인 반복법을 사용해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누려 본 경험이 있는 솔로몬이 하는 말이니 그것은 새겨들을 만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 행복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토대 위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가 범죄한 결과 땅은 저주를 받고 사람은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게 되었습니다.(창3:17) 인간은 수고하고 노력하고 땀을 흘려야 의, 식, 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잘 살려고 하면 더 많은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능력과 지혜만으로 수고하여 이 세상을 살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나의 마음대로, 나의 계획대로, 나의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농부가 아무리 수고해도 하늘에서 햇빛과 단비를 주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수험생이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어도 시험당일 건강상태가 좋지 않으면 헛수고일 뿐입니다. 고린전서 3장 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우리가 아무리 심고 물을 주고 수고했어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헛수고입니다. 수고로운 가운데 그 소산의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의 수고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수고로움의 의미가 있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시편 기자 솔로몬 왕은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왕입니다(대하2:1-5:1). 그의 아버지인 다윗 왕이 그리도 성전을 건축하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의 아들인 솔로몬 왕으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성전 건축의 경험이 있는 솔로몬 왕이 오늘 본문 1절에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는 말씀은 의미심장한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성전을 건축하여 주님께 헌당할 때 주로 목회자나 건축 위원회 등 성도님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어려운 점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만큼 성전 건축은 참 쉬운 일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다시피 얼마나 많은 개척교회와 이민 교회가 교회 건축으로 인하여 시험에 들어 교회 안에 분쟁이 일어납니까. 그러기에 교회 건축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솔로몬 왕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집”이란 “성전”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솔로몬 왕의 하나님께서 성전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다는 말씀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어느 한 개인과 단체의 교회가 절대 아닙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교회는 우리가 붙잡는 약속의 말씀인 마태복음 16장18절 말씀처럼 주님께서 세우셔야 합니다. 우리는 그저 “세우는 자”들로써 주님의 도구입니다. 마치 집을 지을 때 건축가들이 연장들(tools)을 사용하듯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주님께서 세워 나아가실 때 우리는 그의 연장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세워 나아가시는 주님의 말씀에 그저 복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면 “예”하고 그렇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눅12: 16- 20)
주님께서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인생은 한 순간의 꿈일 뿐, 아침에 돋아난 한 포기 풀과 같이 사라져 갑니다.(시90: 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잠23:5)
시편90편 모세의 기도를 보면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7,80 인생, 자랑이 수고와 슬픔뿐이라는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저는 더불어 전도서 말씀 중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라는 말씀도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평생 사는 동안 수고와 슬픔뿐인 세상, 헛되고 헛된 일만 하다가 마치기에는 너무나 신속히 가는 삶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또 다시 던져 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오늘 본문의 가르침과 연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참된 의미 있는 삶은 오직 주님 안에서만 가능함을 인정하며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 밖에서 하는 모든 일이나 수고는 그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 밖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수고는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오직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주님께서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일을 하실 때 그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은 것입니다.
시편 기자 솔로몬 왕은 예루살렘 성전만을 세운 것이 아니라 그는 또한 이스라엘 나라를 지혜롭게 잘 통치한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부귀영화를 구하지 않고 지혜를 구한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 잘 다스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뿐만 아니라 부귀와 영화를 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성전을 7년 만에 완성하고 궁전을 13년 만에 완성하는 큰 사업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큰 건축 사업을 하는 데는 국제적인 외교를 통해서 외부로부터 목재석재를 수입해 왔었습니다. 이방과의 접촉은 결국 그로 하여금 이방 종교의 수입을 허락하고야 말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지나친 국민 노동의 동원과 세금 징수로 국민과 부하들의 반감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알다시피 솔로몬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이방인들의 신들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이 솔로몬 왕이 오늘 본문 1절에서 “…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국가의 흥망이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라를 건설하시기도 또한 파괴, 파멸하시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렘1:11). 이 하나님께서 다윗 왕과 솔로몬 왕 시대 때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셨다가 솔로몬 왕의 범죄로 인하여 그의 아들인 르호보함 시대 때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찢으셨던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진정한 파숫군이 되셔서 그의 교회와 그의 나라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셔야 만이 교회와 나라가 견고히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역사가 없이는 우리 사람의 수고가 헛된 것입니다(1절).
본문 2절을 보십시오. 솔로몬 왕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여기서 잠은 평안과 안식을 상징하는 말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자는 자기 스스로 행복과 번영을 이루기 위해 온갖 수고와 노력을 다하여도 결실을 얻지 못하고 고통만 가증될 뿐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는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시므로 참된 안식과 행복을 누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또한 솔로몬 왕은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지 아니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아무리 열심히, 밤낮으로 고통스럽게 수고하여 사업을 하고 일을 할찌라도 진정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근로를 성공의 비결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근로도 신앙으로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솔로몬 왕은 우리가 밤낮 수고함에 있어서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수고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으로 근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으로 근로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이요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잠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자녀의 축복도 주십니다.
3절을 보십시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127:3)
하나님께서 여인의 태(胎)를 여시고 자식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은 성경에서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있는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생명의 탄생을 주관하십니다. 그렇다면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자녀를 허락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는 점 역시 수긍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결혼과 가정에 관한 전문사역자인 월터 트로비시는 그 사실의 성경적 근거를 하나님의 첫 번 주례사에서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와를 만드시고 아담과 짝지어 주실 때에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결혼에 관한 일반적인 원리를 함축하고 있는데, 자식에 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이 사실은 자식이 없는 가정도 하나님이 세우신 훌륭한 가정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새삼스럽게 확인시키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증자를 통한 인공수정과 시험관 아기, 대리모, 나아가 수정란 복제술을 통한 자녀 출산이 실시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생명윤리에 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실정입니다. 생명을 주관하는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의 복지를 가장한 기술에 의해 침해받는 일이 계속될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두렵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자녀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가정에게 주시는 상급(reward)라고 솔로몬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가 세우시는 가정 부부에게 자녀들을 은혜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받을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께로부터 우리가 자녀들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또한 솔로몬은 오늘 본문 4절에서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젊은 부모가 낳은 자녀들은 부모가 늙을 때에 절정기를 맞습니다. 그들은 부모가 약해지기 시작할 때에 자연스럽게 부모를 도와 가정을 지키는 방패가 될 수 있습니다. 부모들이 잘 키운 자녀들은 요긴한 화살과 같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장성한 자녀들과 함께 가정을 허무는 대적들로부터 가정을 지키는 것입니다. 건강한 자녀들이 많은 집은 외부의 적에 의해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건강한 자녀들이 많은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자녀들은 화살통에 가득 꽃힌 화살처럼 부모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이러한 부모는 화살을 충분히 가진 장수처럼 두려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부모는 “그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할 것“입니다(5절).
실로 한 개인의 건강, 한 가정의 창조, 한 나라의 건설, 세계 인류 공동체의 역사를 인도하시는 주권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으로 그분의 사랑이 없다면 인간의 계획은 그 어느 것도 이루어질 수 없는바 이를 직시하는 것은 허무주의의 시작이 아니라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참 비결인 동시에 참된 축복의 길로 들어서는 바른 행보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 9)
오늘 본문 시편127편에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교훈은 우리 육신의 가정이나 영적인 가정인 교회나 또는 국가는 주님이 세우시지 않으면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세워주시되 가정도 하나님께서 자녀를 상급으로 주셔야지 있는 것이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복된 가정, 복된 교회, 복된 나라는 주님께서 세우시는 가정이요, 주님이 세우시는 교회요, 주님이 세우시는 나라인 것입니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가정과 자식과 물질은 하나님의 상급이지만 그것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면 그것은 우상이 되고, 사탄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나의 능력과 힘과 지혜와 노력의 수고함으로 살아가려고 하지는 않는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내가 호흡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드리고 복을 누릴 수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기도: 영원히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으며 허덕이듯이 주님을 사모하고 사랑합니다. 이 세상을 살 때에 수고와 슬픔 나그네 인생길이 참으로 빨리 지나갑니다. 안개 같이 헛된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헛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세상의 헛된 것을 바라보고 자랑하지 말게 하소서. 언제나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만 의지하게 하옵소서. 한결같은 믿음으로 승리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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