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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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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본문: 시편15: 1- 5
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4.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흠모할만한 별명이 있다면 '하나님의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세속화의 영향을 극복하기 어려운 우리들의 삶의 모습은 여전히 돈의 사람이요, 권력의 사람이요, 명예의 사람이요, 쾌락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된다는 것은 얼마나 도전할만한 목표인지요. 그런데 유일하게 다윗에게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칭호가 부여된 것입니다. 시편 15편에서는 '주의 장막에 거할수 있는 사람'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주의 장막에 거할 것이며, 누가 주의 거룩한 산에 설수 있는 자 이겠습니까! 그의 행실은 정직하게 사는 것이며, 옳은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시대는 부정직함을 지혜로 부추기며, 불의함을 용기로 착각하게 유도합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정직을 참된 지혜로, 공의를 진정한 용기로 드러내는 사람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언어는 진실해야 합니다. 언어는 마음의 거울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진실한 언어를 말해야 합니다. 그 혀로 남을 비방하지 않고, 자기 친구를 해하지 말고, 이웃을 헐뜯지 말아야 합니다. 이웃을 축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언어가 이웃을 세우는 도구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인정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가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형성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우리의 가치관의 출발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은 우리의 가치관의 완성입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의 부동의 가치, 영원한 가치는 이웃에 대한 약속의 지킴이로서의 신실함, 맡겨주신 재정에 대한 깨끗함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흔들리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살아있는 간증이 될 것입니다.
본 시는 ‘입당송’의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입당송’이란 예배하는 자들이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가려 할 때 사제에게 입당 자격을 묻고 대답하는 형태로 된 노래를 말합니다. 내용을 보면 형식적인 자격이 아니라 내면적인 자격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전하고 의로운 삶을 힘쓰는 자가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원토록 그 분과 동거할 수 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주의 장막’은 공식적인 예배 장소를 가리키며, ‘주의 성산’은 주의 장막이 자리하고 있는 시온 산을 가리킵니다. 대구 형식으로 나열된 이 두 구문은 동일한 의미의 반복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다스리시는 곳, 곧 하나님의 나라를 전체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장막’과 ‘성산’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을 볼 때에 다윗이 재위하고 있던 시절임을 역사적으로도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아직 성전이 건축되지 않고 시온 산에 설치된 장막 안에 옮겨진 때에 본 시가 씌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할 자’와 ‘거할 자’는 곧 하나님 안에서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복을 받은 자를 가리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시84: 1)
본문 2절을 읽겠습니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유물론자였던 토머스 홉스는 ‘사람은 사람에 대해 이리’라고 인간의 본성을 설명했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역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람은 사람에 대해 장사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처럼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경남 마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어린아이가 사나운 개에게 물려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직 초등학교에 취학하기도 전의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셰퍼드에게 물린 것입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더욱 슬프고 화나게 하는 것은 그와 같은 참상의 현장에 10여 명의 장정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그런 처절한 현장을 목격하고도 그 사나운 개에게서 어린 아이를 건져 주려고 뛰어들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물릴까 두려워서 수수방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공의와 진실을 보여 주고 심어야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소망이 없어진 듯하고 더 이상 살맛이 나지 않아 보이는 이곳에 참생명의 역사를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1997년 말에 몰아닥친 IMF(외환위기)때 30대 그룹 가운데 절반 이상이 사라지고, 1980년 이후 생긴 수십 개 그룹 가운데는 단 두 개만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 이랜드의 박성수 회장이 경영하는 이랜드 그룹도 위기에 빠졌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외국인들이 투자를 해주어서 살아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1차로 5억 달러(그 당시 한화로 약8,000억원)를 이 회사에 투자해 주었는데 박성수 회장이 그들에게 물었답니다.
“지금 우리나라 회사는 모두 헐값이어서 당신들에게는 매우 좋은 기회일 텐데 왜 사들이지 않고 있느냐?”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도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소. 이미 좋아 보이는 수십 개의 회사를 방문해 투자를 하려고 했지만 조사 결과 모두 장부가 두 개(이중장부)라서 투자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랜드는 장부가 하나였기 때문에 그들이 투자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랜드 박성수 장로님이 사랑의 교회 바치는 십일조만 순 매출 1300억 원에 대한 온전한 십일조 130억을 내고 있다고 합니다. 정직한 기업을 하면 망할 것 같은데 하나님이 붙들어 주고,지켜 주면 안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랜드 박성수 회장이 말합니다.
“정직하면 항상 손해를 보지만 정직 때문에 결국 흥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흥한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16:3).
여러분,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누가 여호와의 장막에 거할 수 있다고 했습니까?.
여호와의 장막이란 하나님이 계신 곳을 말합니다. 누가 하나님 앞에 갈 수 있습니까? 정직하게 행하며 라고 했습니다. 정직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타밈) “순수함, 변덕 없는 성품”을 의미합니다.(욥1:1)하나님께서 욥이라는 사람을 소개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이랜드 박성수 장로님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보통 때는 이중장부가 이익을 주겠지만 결정적일 때는 정직한 장부만이 살아남습니다. 정직하면 항상 손해를 보지만 그러나 정직 때문에 결국 흥합니다”
여러분, 거짓은 마귀편입니다(요8:44). 그러므로 정직해야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습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 김동호 목사님이 쓴(나는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는다)라는 책에 “투명한 설렁탕”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김천에서 설렁탕집을 운영하고 있는 집사님이 있었는데 어느 날 본래 쓰던 재료가 안 오고 하품이 왔더랍니다. 거래처에 전화를 하자, 재료가 바뀐 것 같다며 “사장님, 오늘만 커피 프리마를 타시죠(나쁜 재료에다 프리마 타는 집이 많다), 정상 재료는 3일 후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그 집사님 내외분이 그날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끓이던 설렁탕 국물을 모두 내다버리고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가게 앞에 이런 글을 써 붙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설렁탕 재료가 좋지 않아 좋은 재료가 도착 할 때까지 3일간 휴업합니다”
그런데 그 설렁탕집이 정직한 집이라고 소문이 나서 장사가 더 잘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전7:29)
정직한 사람이 승리합니다, 성공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 길을 형통케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변덕 부리지 않는 사람, 정직한 사람을 좋아 합니다.
진실이란 히브리어(에메트)로 “마음에 믿을 만하고 정직하여 무엇을 맡겨도 될 만한”입니다. 진실과 정직은 사촌지간입니다.그 게 그 말입니다.“한 사람의 진실한 벗은 천명의 적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그 힘 이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에센바흐)의 말입니다.
여러분, 의사들이 그러는데 이 세상에서 뇌 수술하기 제일 편한 사람 순서가 있답니다. 첫째는 도서관 직원입니다. 도서관 직원들은 머릿속에 모든 것이 가나다 순으로 정열되어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회계사입니다. 회계사들은 머릿속에 모든 것을 일렬번호로 메겨 놓기 때문이고, 셋째는 전기기술자입니다. 이분들은 항상 모든 것을 머릿속에 색깔 별로 구분해 놓는 습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정치인들은 수술하기가 제일 쉽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정치인들은 골이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뼈대도 없고, 간도 쓸개도 없고, 안면몰수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랍니다.
여러분, 진실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님은 중심에 진실함을 원하신다”(시51:6)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잠12: 22)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시145:18)
본문 2절부터 5절까지는 주의 장막과 성산에서 거할 수 있는 자의 10가지 자격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장막에 머무를 첫 번째 자격은 정직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도덕적으로 신실한 삶을 살기 위하여 힘쓰고 애쓰는 자를 말합니다. 두 번째 자격: 공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 즉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이며, 사람에 대하여는 사랑과 도덕적인 규범을 지키는 자입니다. 세 번째 자격은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양심을 속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표리부동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며, 바리새인과 같이 외식하지 않는 자를 가리킵니다.
본문 3절을 보겠습니다.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집에는 매일 정치가ㆍ문학가ㆍ군인ㆍ실업가 등 괴테의 문학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으레 험담과 악담이 있기 마련인데, 그럴 때마다 괴테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런 자들의 말을 중단시켰습니다.
"여러분이 종이 부스러기나 음식 부스러기를 흘리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남의 험담과 악담을 흘리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런 더러운 말은 주워가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그런 더러운 말을 저희 집에 가져오지 마십시오. 더러운 말은 티끌과 먼지보다 더 공기를 탁하게 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참소하며 행악하고 남을 훼방하는 자는 여호와의 장막에 유하지 못하며 주의 성산에 거하지 못할 것이라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누가 주의 장막에 거합니까? 공의를 일삼으며...라고 했습니다. 공의란 히브리어(차드크)“의리(義理)”를 말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 대하여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충실히 이행하고 순종해 드리는 것을 말하고, 사람에 대하여는 도덕적 규범과 약속한 바를 성실하게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의리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잠10:2)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의리는 죽음을 면케 하느니라”(잠11:4)
충실하고 변함없는 사람을 가르켜 “소나무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소나무는 육송(陸松), 적송(赤松), 여송(女松), 솔 나무, 소오리 나무, 솔, 암송 등으로 부르는데 푸른 침엽수로서 항상 변함이 없고,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선비 정신을 말할 때 “소나무 같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프라하한인교회 어떤 신자가 쓴 기도문에 보니까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주님, 의리라고 하는 것이 조폭들이나 지키는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 사람과의 의리라고 한다면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을 믿음의 태도로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의리인데, 오늘날 의리 있는 인생들을 목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님, 조폭들도 의리를 지키는데 어찌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랑과 신의와 의리를 쉽게 버리는지 안타깝습니다. 주님, 제가 의리를 지키는 자가 될 수 있도록 순간순간의 유혹에 미혹되지 않도록 인도하소서”
의리가 무엇입니까?. 자기의 이익을 버리고 서로 감싸주며 서로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을 지켜내기 위하여 한번 사귀면 아무리 이해관계가 있다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의리입니다. 그러므로 의리란 목숨까지도 내어 줄 수 있는 사랑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막에 거할 세 번째 자격은 참소치 않는 것입니다. 남을 함부로 중상 모략하거나 무고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자격은 벗에게 행악지 않는 것입니다. 출세를 위하여 친구나 그 누구를 밟고 올라서고, 악한 꾀를 쓰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경우에도 벗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사랑의 교제 속에 서로 도우며 위로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자격은 이웃을 훼방하지 않는 것입니다. 훼방하는 것은 비난하고, 무시하고, 모욕하는 것을 말합니다. 남을 함부로 멸시하며 비난하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참소는 히브리어(라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하여 험담하고 이간질 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귀의 특징은 거짓과(요8:44), 이간질입니다(계12:10). 따라서 은혜 받은 사람은 절대로 이웃을 해롭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심은 대로 거두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자꾸 남을 비판하니까 자기도 비판을 받는 것이고 남을 참소하니까 자기도 참소를 받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다 심은 대로 되는 것입니다.
벧전3:10에 “좋은 날 보려면 악한 말을 그치고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도 “여호와여 내 입술 좀 지켜 달라”(시141:3)고 기도했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말은 손이 없지만 손이 하는 일을 한다. 말로써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손으로 죽이는 것보다 말로 죽이는 것이 더 치명적일 때가 있다. 손은 가까이 있는 사람을 죽이지만 말은 화살과 같이 멀리 있는 사람도 죽인다. 또한 말은 멀리 날아가는 화살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다. 화살은 방패로서 막아낼 수 있으나 말은 그 어떤 방패로도 막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하였습니다.(잠18:20)
에베소서 4: 29- 32 말씀을 읽겠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본문 4절을 읽겠습니다.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장막에 거할 여섯 번째 자격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눈으로 보고 판단을 하게 되는데, 의인의 눈은 세상 사람의 눈과 달라야 합니다. 즉 가치 판단의 기준이 다른 것입니다. 불의한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를 조롱하고 멸시하며 권세 잡은 자들에게 아부하여 그의 삶을 이어나가지만 의인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해 판단하며 또한 하나님과 약속한 것은 인간적인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지키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성도의 판단 기준은 오직 하나님 중심입니다.
장막에 거할 일곱 번째 자격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는 자입니다. 성도로서의 합당한 판단 기준을 갖추고 있는 자라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게 섬기고자 하는 사람을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권세와 부귀를 잡은 자라고 할지라도 그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있다면 결코 존경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장막에 머무를 여덟 번째 자격은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자입니다. 하나님과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은 곧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위이므로 성도의 취할 자세가 아닙니다.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서원이란 히브리어(네데르)로 “맹세하다, 다짐하다”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나다르”에서 나온 말로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자발적인 약속을 말합니다. 오늘 말씀 4절 끝에 보십시오. “약속했으면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고 지키는 자가 곧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낫다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주의 사자(제사장-말2:7, 갈4:14) 앞에서 서약하였거든 실수 했으니 취소 하자거나 돌려 달라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전5:4- 6)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민 30:2)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에게나 약속을 중요시 여기며 꼭 지켜야 인정받습니다. 약속은 그 사람의 인격이기 때문에 자신의 자존심과 신앙심을 걸고 꼭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망령된 자란 히브리어(리메아스)로 “돈과 권력의 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거만하여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시편1편) “복 있는 자는 악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오만한 자가 바로 망령된 자를 가르킵니다. 돈이나 권력의 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큰 소리 치는 졸부들을 멀리해야 복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는도다”(시12:8)는 말씀이 있습니다. 비루함이란 더럽고, 악한 짓을 해서 돈 벌고 출세한 졸부들을 말합니다. 이런 자들이 큰소리친다고 겁먹지 말고 오히려 그런 졸부들을 경멸할 수 있는 사람이 주의 장막에 거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은혜 안 받은 사람은 그런 사람들의 돈 몇 푼에 굽신대고 절절 멥니다. 그러나 정말 은혜 받은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절대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기를 바랍니다(잠23:17-18). 정직하게 진실하게 살다 보면 하나님이 다 챙겨 주십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22:4)
본문 5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19세기의 영국은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이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2차 세계대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때의 영국의 정신적 상황에 대해 토머스 칼라일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영국인이 손대는 곳은 모두가 황금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증거이다.’ 19세기부터 20세기 전반의 영국은 유물론이 발흥, 자본주의의 발달에 힘입어 엄청난 부의 축적을 성취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자랑하던 성서는 물질의 기세에 눌려버렸습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영국의 태양은 서서히 빛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셰익스피어 전집을 쓴 것은 영국인이지만 영국인을 만들어낸 것은 성경이다’라는 이야기는 하나의 전설로 전락해버린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정권이나 나라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역사에 수없이 명멸했던 국가와 민족들의 흥망성쇠가 이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공평을 실현하는 사람은 흔들림 없이 자기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요동치 않게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편 팔을 믿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섭리하고 계시는 영원하신 하나님께 맡기고 바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장막에 유할 아홉 번째 자격은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가난한 형제에게 이자를 받거나 물건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 주는 일을 금하고 있습니다(레위기 25:35-38). 열 번째 자격: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법을 집행하는 자가 뇌물을 받고서 부당한 판결을 내리는 것도 금지하고 있습니다(신 16:19). 이는 하나님의 공의 실현을 위한 교훈입니다.
‘변리로 대금을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요즘에 “쩐의 전쟁”이라는 드라마가 유행입니다. 고리대금업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고리대금의 금리가 대부분 50%, 특히 어떤 곳은 66%였습니다. 최근 정부는 연30% 이자 제한 선을 발표했습니다만 사채에 한번 빠지면 인생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채는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사채놀이 하는 것을 은혜롭게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몇몇 연예인들이 고리대금 CF를 거절했다는데 잘한 일입니다. 신앙인의 입장에서 고리대금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 가는 일입니까?.
“네가 만일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 그리하면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얻을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출22:25, 신23:19, 20).
뇌물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뇌물(bribe)이란 정당한 사유없이 불의로 사람을 매수하기 위하여 물질을 주고받는 물질을 말합니다. 후진국(후진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부패하고 무질서하고 뇌물을 주고받는 일입니다.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출23:8)
“너는 굽게 판단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신16:19)
“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27:25)
그러나 선물은 자주 해야 합니다. 뇌물과 선물은 다릅니다. 선물은 은혜에 대한 보답이고 뇌물은 탐욕적인 목적으로 이득을 보고자 하는 잘못된 행동입니다. 그래서 뇌물이 나쁜 것입니다. 차라리 작더라도 정성을 담은 선물은 엄청난 뇌물보다 훨씬 더 효력이 있습니다.
선물은 그 사람의 길을 너그럽게 하며 또 존귀한 자의 앞으로 그를 인도합니다.(잠18:16, 잠19:6)
이와 같이 10가지의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키는 것은 곧 주의 장막에 유하게 되고, 주의 성산에 거하게 될 자격이 주어지고 영영히 요동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경외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천국 시민의 선결 요건이며 본분임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모두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머무르는 자, 주의 성산에 사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변치 않는 사랑으로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지금보다 더욱 더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영원히 주의 장막에 거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살게 하옵소서.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이웃에게 악을 행하거나 이웃을 비방하지 않게 하소서.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게 하소서. 우리나라 지도자들과 재판관들이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과 충성심이 어떤 환경에서도 조금도 요동치 않게 하소서. 날마다 영적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신실한 자로 살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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