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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구원과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

시편 복음............... 조회 수 2711 추천 수 0 2011.02.07 07:23:22
.........
성경본문 : 시17:1-15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주의 구원과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

 

 

본문 17편 1- 15

1.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2.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

3.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4.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5.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7.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8.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9.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10. 그들의 마음은 기름에 잠겼으며 그들의 입은 교만하게 말하나이다

11. 이제 우리가 걸어가는 것을 그들이 에워싸서 노려보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12. 그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13. 여호와여 일어나 그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14.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 주는 자니이다

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어느 날 아프리카 선교사 로버트 모펫에게 한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그 여인은 성경 한 권을 얻기 위해 25킬로미터를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인 죄송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책이 없습니다."

"뭐라고요? 그럼 저는 빈손으로 돌아가야 합니까? 저는 며칠 전 친구에게서 한 권의 책을 빌려 보았습니다. 그 책을 읽는 가운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책을 다시 가져가버렸습니다. 지금 저와 제 가족은 슬픔 가운데 있습니다. 참다운 행복을 주는 책이 지금은 없기 때문입니다. 가서 우리를 위해 제발 책을 가져다주세요. 분명히 어디엔가 한 권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저를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지 마세요. 제발 한 번 찾아봐 주세요."

그녀의 간청에 선교사는 여기저기 뒤져서 다행히 성경을 한 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성경을 받아 든 여인은 얼마나 기뻤던지, 선교사의 손을 잡고 쉴 새 없이 입을 맞추면서 감사의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가슴에 꼭 안고 기쁨에 가득 찬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이 정도로 말씀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송이꿀보다 더 달콤한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빠져보십시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119:103)

 

 먼저 교독문 11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던 자가 무고하게 고통당하면서 드리는 기도의 시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이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를 담고 있는 시입니다. 그래서 표제를 보면 '다윗의 기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 시에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간절한 탄원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로움을 호소하고 원수들의 악함을 고소하며 그 가운데 자신의 구원을 간절히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를 형식상으로 분류해 본다면, 탄원시로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시의 배경을 볼 때, 지금 다윗은 원수들에게 쫓기는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시의 내용을 볼 때, 아마도 적들로부터 포위를 당하고, 적들이 언제 공격을 감행해 올지 모르는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가 본문에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무죄함을 토로하는 것을 볼 때, 아마도 사울왕에게 쫓기던 그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하튼 다윗은 원수들에게 쫓기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구원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가 이 시에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무죄함을 강조하고 이와 대비하여 원수들의 잔악함을 고소하며 그리고 그것에 기초하여 자신의 구원을 간구하고 있다는 점이 큰 특징입니다.

 

본문 1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의 요구를 즉각 들어 주지 않을 때 실망합니다. 고속도로 상에서 일가족을 태운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막내딸은 자기 아버지의 차가 다른 차들을 제치며 앞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면서 즐겁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우리 아빠 차가 제일 좋다. 우리 아빠 차가 이 세상에서 제일 빠르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다른 차가 그 차 앞에 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빠, 빨리 저 차를 따라가요, 어서요!’ 하고 재촉했으나 아빠가 말을 듣지 않자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가족은 얼마 후 충돌 사고가 난 차량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무리한 추월 경쟁을 하다가 사고가 난 것입니다. 만일 아빠가 딸의 요구를 들어 주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것은 기도에도 적용될 수 있는 진리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나타나지 않을 때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가?’ 하는 의문에 휩싸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신앙을 더욱 성장시키기 위해 응답을 유보하시거나 침묵하실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요, 기도자에게 유익이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혹시 우리 기도가 응답되지 아니할 지라도 사드락과 메삭과 야벳느고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말한 것처럼(단3: 18) 내 구주 예수를 더욱 더 사랑하고 사모해야 합니다.(찬송가314장)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시28:1)

 

 본 구절은 시 전체를 여는 다윗의 간절한 탄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는 여기서 자신의 탄식과 부르짖음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간절히 호소하는 것으로 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은 무엇이 느껴지십니까? 그의 간절하면서도 강렬한 호소력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그의 삶에서 베어 나오는 담대함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저는 이 기도문을 보면서 '아 사람이 가지는 삶의 진실함이란 이렇게 베어 나올 수 있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만큼 그는 진실하게 간구하고 있고, 그러한 그의 기도는 강렬한 호소력을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삼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게 그 감정이 전달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하튼 그는 자신의 기도를 정직한 탄원으로, 거짓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오는 기도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기도는 하나님의 공평한 판단을 간구하는 것으로, 또 자신의 무죄함을 호소하는 것으로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내 영혼을 찾는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하시며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들이 뒤로 물러가 수모를 당하게 하소서 아하, 아하 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뒤로 물러가게 하소서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시70: 1- 5)

 

본문 2- 5절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사람의 행사로 논하면 나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삼가서 포악한 자의 길을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시인은 무엇보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음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감찰하사 판단하시고 이 고통스런 상황에서 자신을 구원하여 주실 것을 탄원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어찌 보면 당돌하다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무엇이관데 감히 하나님 앞에 무죄하다 말하는가? 그리고 아무리 자기 생각에 허물이 없다 해도 어찌 티끌 한 점 없겠는가 또 감히 하나님 앞에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저의 이러한 생각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정신과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지 않고, 어느덧 하나님 앞에 저의 존재를 묻는 것으로 저를 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늘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늘 죄인의식만을 가지고 살면 좌절감과 낙심에 빠지고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우리는 늘 추악한 자신을 쓰다듬고 살아야 하는 비운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서 이탈하는 순간, 우리는 끊임없는 자학 속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켜 생각하자마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발견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도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죄인으로 발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어떠한 담대함도 평안도 있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다윗이 보인 이런 담대함이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 존재를 묻고 탐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신 복음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거짓 복음입니다. 그리고 그런 거짓 복음을 가지고는 우리 안에 성령의 생명의 능력을 이루어 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과 복음 안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속박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자유케 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깊이 또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아는 것,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안에 구원으로 오신 복음을 아는 것, 그리고 그 가운데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에서만 갖게 되는 것임을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를 분리시켜 생각하고자 하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도록 늘 자신을 경계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하나님이 내신 언약의 법을 따라 보면 다윗은 무죄한 자입니다. 자신의 말처럼 주님께서 자기 안에서 어떠한 허물과 죄도 찾지 못한 것입니다. 티끌만큼도 죄 없냐?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는 그의 입술로 어떠한 죄도 짓지 않았습니다. 그 말씀을 지키고 어떠한 강포한 자의 길도 가지 않았습니다. 늘 하나님의 길을 좇고 그 길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는 담대함 가운데 하나님을 향해, 주께서 친히 저를 판단하여 달라고, 아무쪼록 공평하게 살펴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여기 다윗이 하나님 앞에 갖는 정직함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그가 말하는 정직함이란 하나님의 언약의 법에 대한 신실함입니다. 주의 말씀을 굳게 지키고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강포한 자들의 길로 행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길로 행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이 내신 언약의 법으로서 율법을 따라 행하는 것, 그것에 대해 조금의 거리낌이나 부끄럼이 없는 것, 그것이 여기서 말하는 정직함인 것입니다. 다분히 언약적인 개념이고 관계적인 의미입니다. 여하튼 다윗은 언약의 법에 신실했으며 강포한 자들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참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가운데 온유하고 겸손하게 주와 동행하였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그의 기도의 힘은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주의 뜻을 이루시게 하는 힘, 그의 간구를 듣게 하시는 힘은 바로 이러한 그의 삶에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야고보서 5장의 말씀처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은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우리의 이러한 삶이 뒷받침되는 기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허공을 맴도는 무기력한 기도가 되지 않도록 우리의 삶을 바르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기도가 될 수 있도록 주 앞에 흠 없이 드러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기도가 담대하고 강력한 호소력을 가질 수 있도록 언약을 따라 정도(正道)의 길을 가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고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는 자를 하나님은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고 눈동자 같이 보호하시고 돌보십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금문교(Golden Gate Bridge) 는 관광 명소로 유명합니다. 높이 227미터의 탑에서 늘어뜨린 두 줄의 케이블에 매달려 있는 총 길이 1,280미터의 이 다리를 건설할 때 처음 1년 동안 23명의 사람이 떨어져 죽었습니다. 빠른 물살과 잦은 폭풍과 안개가 작업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건설 회사는 궁리 끝에 거대한 그물망을 깔아놓았고, 그때부터 떨어져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공사 진행이 그물망을 쳐놓기 전보다 약 20%나 빨리 진척되었다는 점입니다.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는 생각이 인부들의 작업 능률을 그만큼 높였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위협 앞에서 움츠러드는 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이 세상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런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는 분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피하는 자는 어떤 화나 재앙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실족하지 않도록 그물망을 쳐서 보호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하루를 살아갑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시91:9-10)

 

 본문 6, 7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육상종목 3관왕에 오른 ‘월마 루돌프’는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4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서 걸을 수 없게 되었지만 부모님은 월마를 위해서 기도밖에 해줄 것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은 어떻게 되든 좋으니 월마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고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졌는지 3년 만에 월마는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걸을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의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느낀 월마는 자신은 걸을 수 없다며 자포자기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월마가 소아마비에서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 자신의 기도가 응답받은 것이라고 믿었고 그렇다면 일어서는 것뿐만 아니라 뛸 수도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월마에게 믿음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며 지금 시도하지 않으면 평생 걸을 수 없으니 다시 한 번만 해보자고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월마는 어머니의 확신을 느낄 수 있었고 자신도 걷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4년이 지난 후 비록 절뚝거렸지만 걸어서 등교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다시 뛰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어느덧 고등학교가 되었을 때 그녀는 전교에서 가장 빠른 육상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한계를 의심치 않았고 그런 끝없는 시도가 올림픽 3관왕을 이루었습니다. 그녀가 올림픽 결승전의 출발선에 섰을 때 마음속으로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월마, 한 번 더 뛰어봐, 넌 할 수 있어.”

기도로 간구했다면 그것을 믿음으로 받으십시오. 기쁨으로 단을 거두기 위해 믿음을 가지고 한 번 더 시도하십시오. 간절히 사모하고 찾는 자에게 주님은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십니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시86:7)

다윗이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습니다. 다윗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응답과 은혜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말하고 있습니까? '피하는 모든 자들을 오른손으로 건지시는 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크신 은혜'를 나타내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 기도에는 하나님을 향한 안타깝고도 간절한 마음,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애타는 심정이 녹아 있는 것입니다. 그가 바라는 구원은 어떤 것입니까?

어려울 때 하나님을 찾고 부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가 나타날 것을 꼭 믿었습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시108:6)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시9:1)

 

 본문 8절을 보겠습니다.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란 옛말이 있습니다. 눈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일 것입니다. 그래서 눈의 구조는 위로는 머리뼈, 앞으로는 코뼈, 밖으로는 광대뼈가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넘어지더라도 코가 깨지고 눈두덩이가 터져도 눈만은 보호되도록 창조주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중요한 외부 정보의 80%을 눈을 통해 얻습니다. 그러나 눈에서도 눈동자는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눈의 핵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눈의 애플(apple)이라고도 말합니다. 우리의 안구는 하루 약 10만 번씩 움직이고 눈꺼풀은 약 5천 번이나 깜빡인다고 합니다. 눈의 각막 뒤에 빛이 들어가는 둥근 입구를 우리는 동공이라 일컫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 소중한 눈동자를 눈을 깜빡이며 보호합니다.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잠7:2)

이렇게 잠언기자는 우리가 주의 명령과 교훈을 눈동자처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기독교인들은 ‘한 책의 사람들’(People of the Book)이라고 일컬어집니다. 우리는 이 책의 교훈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였고 예수의 제자가 되어 살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의 모든 여정을 한마디로 묘사한다면 이제부터 그의 명령을 지키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에게 최고의 장식이 있었다면 말씀으로 집을 장식하고 몸을 치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공동체로 여행을 하거나 주거지를 옮기면 제일 먼저 챙겨야 할 것이 주의 말씀인 토라였습니다. 토라는 공동체의 최고의 자산이었고, 공동체를 지키는 질서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기초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눈동자처럼 지키고 있습니까?

 

 본문 9절을 보겠습니다.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인은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사랑과 인자를 베푸시지 아니하면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긴박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토로하며 구원을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8, 9절은 사방으로 원수에게 둘러싸여 곤경을 당하고 있는 시인의 부르짖음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두 가지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 하나는 나를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나를 눈동자처럼 귀하게 여기시고 상처 받거나 더러워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다른 하나는 주의 날게 아래 우리를 감추어 두시고 원수들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나를 압제하는 악인에게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나를 해하려고 에워싼 수많은 극한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그들을 다스려 주십니다.

나는 그의 날개 아래 편히 쉽니다. 모든 원수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험한 오늘의 세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돌보심과 원수를 다스려 주심을 간절하게 기도하게 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지켜주시고 모든 위험과 교만과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내 생명을 내 대적에게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시27:12)

 

 본문 10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기름에 잠겼으며 그들의 입은 교만하게 말하나이다”

어느 연못가에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꾀 많은 개구리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늘을 날 수 있을까를 궁리하던 어느 날 한 가지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연못에 물을 마시러 내려온 새에게 개구리는 말했습니다.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지 않을래? 지금 난 꼭 하늘을 날고 싶거든. 그래서 내가 기발한 방법을 발견해냈지. 이 나뭇가지의 한쪽 끝은 네가 입으로 물고 다른 쪽은 내가 물면 나도 날 수 있게 되지 않겠니?”

그렇게 해서 이 개구리는 드디어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다른 개구리들이 부러움과 선망의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물었습니다.

“그런 기발한 생각을 누가 했니?”

우쭐한 기분으로 하늘을 날던 개구리는 그 순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했지”라고 말하려는 순간 하늘에서 떨어져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교만과 자랑은 우리의 인생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게 하는 무서운 적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할 때 더 많이 겸손해져야 합니다. 항상 겸손한 자세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십시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잠언 기자는 누누이 말합니다. 인간이 타락하게 된 것도 하나님과 같아질 수 있다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지위와 특권을 이미 규정해두고 계십니다. 그것은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며,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지위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인간은 충분히 고귀하고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위치를 모르고 곰과 같은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곤란합니다.

"여호와께서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하감하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시나이다."(시138:6)

세상이 바뀌고 시대가 달라지면서 사람들이 삶을 논하는 기준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고대엔 철학자를 이상적인 인물로 보았고, 중세엔 성자를 이상적 인격자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엔 부자를 이상적 인간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인격도, 양심도, 의미도, 보람도 다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현대인들은 자기 비만증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바로 사용하지 못하고 축적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는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상대적인 박탈감이 팽배해지고 있습니다. 모으기만 하고 쓰지 않는 자들은 물질에 마음을 빼앗긴 물질 비만증 환자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주의할 것은 영적인 비만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를 누리고 그분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양식을 섭취함으로써 살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는 귀를 막고 세상적이고 외적인 것에 열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질은 없고 껍데기만 남아 있는 본말전도의 상황이 연출된 것입니다. 영적 비만증은 결국 사망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11, 12절을 읽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걸어가는 것을 그들이 에워싸서 노려보고 땅에 넘어뜨리려 하나이다 그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악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힘쓰는 의인들을 훼방하고 핍박하여 실족케 하려고 도모하는 것을 뜻합니다. 악인의 잔악함과 간교함을 사자가 몸을 숨기고 있다가 재빠르게 먹이감을 덮쳐 움켜잡는 것에 비유하여 나타내고 있는 구절입니다. 이러한 본 절은 9절과 같은 의미로 시인이 악인들의 급박한 위협을 받고 있음을 하나님께 그림을 그려 보이듯이 상세히 아뢰는 구절입니다.

세상 종말이 오기까지는 주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길에는 항상 핍박과 고난이 존재하기 마련임을 깨달아 그 같은 상황에 처하였을 때 우리는 낙심치 말고 더욱 더 주를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3:12)

 

 본문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일어나 그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다윗은 자신을 보호해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칼을 들어, 권능의 손을 들어 저들을 치실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친히 저들에게 보이실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저들은 이생에서 자기 몫을 다 누리고 사는 자들입니다. 저들에게 다음 세상이란 없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이생에서 주어진 육신의 복을 유일한 낙으로 삼고 삽니다. 저들은 부와 권세와 건강을 구하고 또 그런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께서 그 생명으로 기르신 모든 양식으로 배를 채우고 삽니다. 많은 자녀를 얻고 다복합니다. 그들에게 근심과 걱정이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가진 것을 다 쓰고도 남아 그 부를 자식에게까지 물려줍니다.

이에 반해 하나님의 백성 다윗은 어떻습니까? 그 앞에는 고난과 위험의 연속입니다. 조롱과 수치의 연속입니다. 저들은 배부르고 얼굴에는 기름기가 흐르고 있는데, 다윗은 배고프고 초췌합니다. 저들은 웃고 즐기는데, 다윗은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저들의 삶은 평안하고 그 쌓은 부는 하늘에 닿는데, 다윗은 그렇지 못합니다. 저들은 그 쌓은 부를 주체 못해 삼대를 대물림하고도 남습니다. 그런데 다윗 자신을 보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어쩌면 평안을 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부를 쌓고 힘을 쌓아 자기 세계를 구축하여 가는데, 정작 우리 손에는 아무 것도 없어 보일 때, 우리는 때로 두려움과 조급함에 빠질 수 있습니다. 세상의 부유하고 높아진 자들을 어느 결에 동경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저들을 시기하고 미워하거나 때로는 낙심 가운데 빠질 수도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와 건지시되 악인들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까닭이로다”(시37:40)

 

 본문 1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자니이다”

악인은 내세에 대한 소망이 없이 단순히 이 세상에서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인본주의적이고 현세 지향적인 사람을 말합니다.

인간이 누리는 세상 재물과 모든 소산은 실상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일반 은총적 선물입니다. 성도들도 이러한 재물로써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의 삶을 영위하지만 그 삶의 근본 태도는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쓰기를 힘씁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자신들의 배만 위하고 자신들의 가족만을 위할 뿐입니다. 그러나 악인에게는 장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원한 소망과 빛나는 영광스러운 장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십시오.

 

 본문 15절을 보겠습니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첼로의 거성’ 파블로 카잘스는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최고의 첼로 연주자로 많은 전문가들이 그를 뽑습니다. 스페인에서 태어나 평생 세계를 돌며 첼로를 연주한 그는 나이가 먹어서도 연습시간을 절대 줄이지 않을 정도로 음악에 엄청난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흔이 넘어서도 하루에 6시간 이상씩 매일 연습을 했는데, 그를 취재하기 위해 찾아온 BBC 방송의 한 기자가 연습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미 세계최고의 첼리스트로 인정을 받고 계십니다. 게다가 이제 나이도 적지 않으셔서 체력적인 부담도 클 텐데 어째서 아직도 그토록 많은 연습을 하고 계십니까?”

기자의 질문에 파블로는 즐거운 표정으로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하하하, 기자 양반 그건 나도 알고 있다네, 그런데도 내가 많은 연습을 하는 건 아직도 하면 할수록 내 실력이 조금씩이라도 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기 때문이네.”

이미 세계 최고의 실력이었지만 아직도 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파블로는 연습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래 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나아짐을 느껴야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다른 사람보다 나아지는 것이 아닌 예수님을 닮는 것이기에 생의 마지막까지 계속해서 수련하며 정진하십시오.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시45:11)

다윗은 원수들의 압제에도 불구하고 어떤 불의의 길도 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오직 의로움 가운데 주님을 바라겠노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단지 주의 얼굴을 뵙는 것만으로 만족하겠다고 말합니다.

예수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주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기쁨이 큰 것을 의미합니다. 그립고 사모하는 주님의 얼굴 뵈올 때 얼마나 감격할까요?

여기 '깰 때에' 라는 말은 아마도 다윗이 지금 밤 깊은 중에 이 시를 짓기에 이런 표현을 쓰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아침이 되면 주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을 소망하는 그런 표현이 될 것입니다. 그는 아침이 되면 주의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원수에게서 승리하고 가나안 땅의 왕조가 굳게 세워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실제 그는 원수에게서 구원되어 무궁한 다윗의 왕조를 세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너무 부족한 것이 많지만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는 주님의 형상을 입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시는 분 계십니까? 감당키 어려운 시련을 겼으시는 분 계십니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주님의 능력의 오른 손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니다. 주님의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눈동자 같이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주의 날개로 우리를 보호하여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또한 그 길을 가셨습니다. 이전에 다윗이 걸었던 그 길을 가신 것입니다. 가시되 새로운 언약의 주로, 하늘에 속한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그 길을 가셨습니다. 그 모든 다윗의 삶을 하늘의 질서로 완성하시는 길을 가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원수의 조롱 중에도 온전한 신뢰의 길, 믿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다윗은 원수의 조롱에 대해 저주하고 그들을 고소하였으나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을 욕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저들을 용서하시고 긍휼히 여겨주실 것을 구하였습니다. 그는 다윗의 길을 가시되 그 길을 완성하시는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세상이 다 죄의 길, 불의의 길을 가고 있을 때, 주께서는 하나님 앞에 의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음에서 깰 것을 기대하셨고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을 소망하셨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시므로 죽음에서 그를 건지셨습니다. 우는 사자와 같은 원수의 손에서 그를 건지신 것입니다. 그는 이 땅에 계실 때, 말할 수 없는 눈물과 탄식으로 간구의 소원을 올렸고 결국 하나님의 들으심을 입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나라를 영원한 왕국으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을 온 세상 가운데 증거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의 구속함을 입어 주님의 길을 가는 자 되었습니다. 이전에 다윗이 갔던 길, 우리 주님께서 완성하신 길,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으며 신뢰함으로 걷는 의의 길을 가는 자 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하나님 앞에서의 기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삶이 뒷받침되는 말씀 중심의 기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간절한 기도이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승리를 본 자로서의 기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구원이 이르지 않은 것처럼, 아직도 그 승리를 못 본 것처럼, 탄식 중의 기도하는 것은 바른 것은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도리어 이미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하나님의 구원과 승리를 본 자로서 기쁨 중에 그 나라의 임함과 완성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확정된 소망 중에 우리의 구원의 성취와 완성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아직도 세상은 오만한 자의 입술로 그들의 높아짐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치 죽은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마치 세상의 부와 영광 앞에 부끄러움을 당한 자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의 구원을 볼 것을 기대하고 힘써 간구하며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며 하나님의 원하시는 의의 길을 묵묵히 가야 하겠습니다.

 

“ 기도: 자비로우신 주님, 나의 간구를 들어주소서. 주님 앞에 나아가오니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님께 빕니다. 악한 자와 질병에서 건져주시고 주님만을 사랑하게 하소서.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부어주소서. 성경책이 흔하다는 현상 때문에 말씀의 가치를 망각한 저희를 용서하시고 우리로 말씀을 눈동자처럼 소중히 간직하며 살게 하소서. 갈급한 마음을 주옵소서. 할 수 있다면 눈을 깜빡일 때마다 주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소서. 영적인 비만증의 요소를 물리치게 하소서. 신자의 미덕은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고 한 어거스틴의 말을 늘 기억하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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