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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04: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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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는 하나님
본문: 시편 104편 1- 35
사람들은 유한한 인생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영토나 민족감정 따위의 문제로 끝없는 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태양계의 중심에 있는 태양 주위를 365일 6시간 정도에 한 번씩 돌고 있으며 이 움직임에는 수천 년이 지나도록 일 초의 오차도 없습니다. 우리가 어마어마한 별이라고 여기는 태양도 사실은 우주 공간에 널려 있는 수백만 개의 별 가운데 하나이며 태양보다 큰 별들도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태양도 사실은 은하계의 중심을 축으로 은하계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데 그 공전주기가 2억 년이나 된다고 합니다. 아울러 우리가 사는 지구가 도는 속도는 무려 10만 킬로미터 가까이 됩니다. 그렇게 빨리 달리고 있지만 지구상 어떤 물체도 떨어져 대기권 밖으로 튀어나가는 일이 없습니다. 이런 놀라운 우주를 지으시고 지금도 운행하시는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광활한 우주 속의 한 점과 같은 존재인 우리를 택하여 구원하는 역사를 실행에 옮기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은 오직 감격으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해 두셨나이다."(시8:1)
인간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 하나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삼라만상을 창조하시고, 우리의 현실 에덴동산도 만드셔서 우리가 구원 이루어 가는 데 필요한 맞춤 현실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이 현실에서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며 기쁨과 만족한 삶을 살아가기를 기대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심지어는 여러 가지 고난과 시련의 현실에서도 온전히 기뻐하기를 원하십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
그렇다면 우리는 지난날의 삶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왔는지 이 시간 돌아봅시다. 만약 온전한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없었다면 왜 그랬을까요? 종종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당신이 내 현실을 만나봐라. 그러면 당신도 별수 없을 것이다. …”
과연 이러한 넉두리를 하나님께서도 맞다라고 인정하실까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현실에 대해서 온전히 기뻐하며,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답을 우리의 삶에 적용시켜 날마다 감사와 기쁨, 찬송이 넘치는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은 본문 말씀에 의한 소망교회 김지철 목사님의 설교 내용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음악을 좋아합니다. 특별히 자연과 계절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기 위해 자주 듣는 클래식 음악이 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비발디의 “사계”나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듣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면 샘물이 흐르는 소리, 산들바람이 부는 소리, 새가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고,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들으면 마치 천둥치는 것과 같은 그런 소리도 들립니다. 이 음악가들은 자연 환경과 풍경을 이런 아름다운 음악으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음악들을 들으면 음악가들이 우리와 함께 아름다운 초원에 앉아 모든 만물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시편 104편은 바로 이런 노래입니다. 이 시편 104편은 ‘시편의 전원 교향곡’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중에 한번 시편 104편의 1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시인은 하늘과 땅을 보면서 묵상합니다. 구름과 바람과 바다를 보면서 마음속에 깨달은 것을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땅과 하늘에 있는 짐승, 새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어쩌면 이렇게 아름답게 지으셨는지, 어떻게 이들을 먹이고 키우고 계신지 그 사실을 노래합니다. 또한 우리 인간들에게 동물과 식물, 모든 자연을 선물로 주신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솜씨에 대해서 경외심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감사와 경탄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24절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하늘과 땅을 보니 하나님의 솜씨와 하나님의 그 능력이 너무나 탁월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음에 경탄합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지혜의 작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신인은 하나님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솜씨입니다. 식물들과 동물들이 먹고사는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고,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고 키우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동물과 식물과 하늘과 땅과 이 자연 피조물 속에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들을 살아 있게 만듭니다. 그들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그들을 조화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자연 만물을 바라볼 때 시인과 같은 그런 마음이 있으십니까? 오늘과 내일 사이에 장마가 다 끝난다고 합니다. 벌써 여름휴가를 다녀오신 분들도 있을 것 같고, 지금 계획을 세우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휴가철이 다가오게 되는데, 왜 휴가를 가는지 생각해 본 적 있으십니까? 신앙인으로서 휴가를 보내야 할지 생각해 본 적 있으십니까? 자연 만물을 만날 계획을 품고 계십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회색빛 시멘트 건물을 떠나서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의 그 아름다운 품을 맛볼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은 휴가의 모습일 것입니다. 자연 만물을 즐거워하면서 진정한 평안을 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휴가도 잘못 다녀오면 생기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휴가 후유증입니다. 휴가 중에 진탕 먹고 놀고 마심으로 자기 몸을 더 찌들게 만들어 진정한 휴가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형태의 왜곡된 노동의 찌들림으로 바꿔 놓는 그런 휴가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도대체 휴가란 무엇입니까? 휴가는 진정한 쉼이어야 합니다. 진정한 마음의 평안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태함이 휴가가 아닙니다. 게으름을 연장하는 행사가 휴가가 아닌 것입니다. 게으름 속에 마냥 빠져드는 것도 휴가가 아닙니다. 그동안 짜증났던 일과 노동을 거부하고 육체적 욕망을 채우는 것도 휴가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하던 일을 멈추고 쉰다는 소극적인 의미만 휴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휴가란 인간으로서의 우리 자신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 만물 속에 함께 들어가 그 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정도로 우리는 참으로 귀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을 감사드리며, 삶의 평안을 마음껏 누리는 데 휴가와 쉼과 평안의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휴가의 의미요, 따라서 우리는 이 도시를 떠나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 만물을 보면서 그 안에서 하나님을 경험할 줄 알고 하나님을 만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쉼이 우리 속에 있어야 진정한 평안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당신 자신을 보여 주시는 세 가지의 자리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렇게 예배드리면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읽는 가장 직접적인 계시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우리에게 이 땅을 베풀고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는 자리가 예배와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두 번째 자리는 시간과 역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간접적으로 나타나시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과정과 진행 속에 참여하십니다. 여러분들이 때로 간증을 하고 때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고백하는 것은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셨다고 하는 증거인 것입니다. 또 하나 간접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참여하시는 자리가 있는데 그것이 자연 피조물입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이 모든 피조물 세계에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그 놀라운 솜씨를 깨달으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04편은 1절과 마지막 절을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말씀으로 시작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내게는 찬양할 이유가 있다. 하늘을 봐도 찬양할 이유가 있고, 땅을 봐도, 들짐승을 봐도, 바다에 물고기를 봐도, 나무 한 그루를 봐도, 풀 한 포기를 봐도 내게는 찬양할 이유가 있다. 그 안에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자연 만물을 바라보면서 우리 마음속에 감탄과 놀라운 감격이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자연 피조물 속에서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 아름다움을 우리가 놀랍게 발견하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니, 이 세상을 벗어나서 좀 쉬려고 하는데, 자연을 보면서 쉬려고 하는데 거기서도 하나님을 발견하라니…. 그것도 또 하나의 일이 아닌가요? 그것 자체가 인간을 피곤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요?” 하고 질문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감탄하는 것은 결코 일이 아닙니다. 감탄하는 것은 쉼입니다. 감탄하는 것은 감격입니다. 감격은 우리에게 편안함과 쉼을 가져다줍니다. 감탄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줍니다.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만드신 이 우주를 보면서 감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삶의 새로운 비밀을 허락해 주십니다. 감탄하는 사람은 자기 속에 있던 어려움과 모든 찌꺼기들을 버리는 쉼을 통해 자신을 다시금 회복할 수 있고, 기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놀람의 경험입니다.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자연 만물을 보면서 놀라고 감탄할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보시면서 하나님 자신도 감탄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만들고 나서 감탄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나서 “야! 보기가 좋구나!” 감탄하셨습니다. 바다와 육지를 가르고 나서, 산을 만들고 바다 속에 물고기를 만들고 공중 나는 새를 만들고 짐승들을 만들고 나서는 하나님 스스로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도 당신 스스로 행하신 이 일에 대해서 감탄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즐기신 그 일을 우리가 이 땅의 모든 자연 피조물을 보면서 우리 기쁨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믿음의 사람들이 가져야 할 삶의 의무이고 책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사랑하시고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모든 만물을 귀한 것으로 만드시고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의도로 만드셨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밤하늘의 별을 쳐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낮의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뭉게구름을 바라볼 필요도 있습니다. 산을 보고 나무 한 그루를 보고 꽃송이 한 송이를 보면서 이것들이 얼마나 질서정연하게 하나님의 목적을 가지고 조화롭게 만들어졌는지를 볼 수 있다면, 그는 믿음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사람이고 신앙을 가진 사람인 것입니다.
자연 피조물은 우연의 부산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솜씨인 것입니다. 이 우주는 혼돈과 카오스가 아니라 조화롭게 만든 코스모스, 질서 있는 우주인 것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깨닫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축복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산업이 발전되고 풍요한 삶을 누릴수록 우리 스스로가 생태학적인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고 많은 자연 과학자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수질이 오염되고 있습니다. 쓰레기로 인한 공해가 우리 주위에 널려 있습니다. 우거진 삼림이 다 파헤쳐지고 홍수와 각종 재난을 겪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연과 동물이 인간의 착취 대상이 되고, 인간에 의해서 끊임없이 모든 자연 만물이 죽임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연 만물을 바르게 다스리라고 우리에게 책임을 맡겨 주셨는데, 우리가 이를 소홀히 함으로 나타나는 그런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이 모든 것들을 새롭게 해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영을 가진 사람들, 즉 우리가 새롭게 자연 만물을 즐거워하며 이를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사유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분석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와 직관적이고 경험적인 느낌의 사유가 있습니다. 전자에는 과학 정신이 속한다고 할 수 있으며, 후자에는 신앙 정신과 예술 정신이 속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성을 통해서 파악하게도 하시지만, 마음을 통해서도 깨달음을 주십니다. 자연 세계를 분석하고 탐구하는 정신도 필요하지만, 이 자연 세계를 그대로 느끼고 그것에 감사하고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런 정신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을 지닌 과학자, 생물학자, 의학자에게 질문해 보면 똑같은 대답이 나옵니다. 과학과 신앙은 병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명백한 것이 있습니다. 인간의 과학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을 대상으로 분석합니다. 그러나 인간 속에서 나의 신앙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피조물을 바라보며 이를 만드신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성장합니다.
성도 여러분, 그래서 신앙과 이성은 함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과학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 될 수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들을 바라보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깨닫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있는데 신앙과 우상 숭배를 구분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연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그 앞에 무릎을 꿇으면 우상 숭배이지만, 자연 만물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을 이 시인처럼 찬양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어떤 마음을 품고 계셨을까요? 예수님도 이런 마음을 갖고 계시면서 “저 공중 나는 새를 보라! 하나님께서 먹이신다. 하나님께서 키우신다. 저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하나님께서 저렇게 아름답게 만드셨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는 두 찬송을 불렀습니다. 40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와 78장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이라는 찬송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자연 만물을 귀히 여기고, 자연 만물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솜씨와 지혜를 깨닫는 믿음의 역사를 가져야 합니다. 휴가란 그냥 떠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휴가란 여태까지 하던 일을 그냥 잠시 멈추고 노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으로 끝나면 분명히 휴가 후유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휴가를 떠나 참된 쉼을 가지고, 가족간에 평화를 얻으며, 가족간에 있었던 어려움들을 함께 나누는 나눔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이 파괴되고 착취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깝게 여기고 이 자연을 바르게 보존하고 관리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이는 바로 신앙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지는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우주를 바라보게 되면 이 우주 전체의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프란체스코의 노래 중에 자연 만물을 보면서 함께 더불어 가는 삶을 표현한 노래가 있습니다. 그 노래에는 이런 기도가 들어 있습니다. “주여, 내 자매인 물을 통하여 찬미를 받으소서.” 그는 물을 보고 자매라고 합니다. “내 자매인 물을 통하여 찬미를 받으소서. 물은 매우 유용하고 겸허하며 귀하고 순수합니다. 주여! 내 자매인 달과 별들을 통하여 찬미를 받으소서. 당신께서는 하늘에 그 깨끗하고 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의 눈이 자연 피조물을 통하여 열려 있음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주여! 내 형제인 바람을 통하여 찬미를 받으소서. 그리고 공기와 구름과 아름다운 날씨를 통하여 찬미를 받으소서. 그것들을 가지고 당신께서는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먹여 살리십니다. 주여! 내 자매인 불을 통하여 찬미를 통하소서. 그것을 가지고 당신은 밤을 밝히십니다. 이 자연 피조물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솜씨입니다. 불은 아름답고 명랑하고 활기차고 튼튼합니다.” 그는 계속 노래합니다. “주여! 당신의 모든 생물로써, 특별히 내 형제인 태양으로써 찬미를 받으소서.” 이제 태양이 형제가 됩니다. “태양을 통해서 찬미를 받으소서. 태양은 대낮이고 그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빛을 쏟아 부어 주십니다. 태양은 아름답고 커다란 광휘로써 빛이 납니다. 태양은 가장 높으신 당신을 닮았습니다.” 이렇게 자연 만물 하나하나를 보면서, 그 속에 하나님께서 주신 그 아름다운 조화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노래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이번 휴가 중에 시를 한번 써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번 휴가 중에 자연 만물의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바라보면서 찬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만물을 보면서 미적 감각을 넓히는 것은 성경적인 것이고, 신앙적인 것이고, 지혜로운 것입니다. 자연 속에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느끼는 것은 영적인 감각으로 가능한 것이며, 영적인 감각을 통해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들과 함께 바깥에 나가 자연 만물을 보면서 한번 쉼의 호흡을 해 보기 바랍니다. “하나님, 이 맑은 공기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마음껏 들이마시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감사하기 바랍니다. 발로 땅을 디디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손과 발로 맨손체조도 해 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산을 향해서 “야호!” 하고 소리쳐 보기도 하고, 흐르는 계곡에 발도 담그며 ‘아! 물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구나!’ 감탄도 해 보고, 나무도 한번 끌어안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돌도 던져 보십시오. 자녀들과 사랑하는 가족들과 사랑하는 친구들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주신 이 땅을 밟으며 걸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을 보면 “걷는다고 하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 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한번 걸어 보십시오. 휴가를 통해 모든 가족들이 자연 만물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정신적이고 영적인 회복의 기간으로 삼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개성의 독특함, 풀잎 하나하나가 다른 것, 똑같은 풀이어도 다른 그 모습을 보면서 각자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음을 깨닫는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아! 나도 내 역할이 있구나. 나도 내가 속한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구나!’ 하고 깨닫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우리의 삶에서 다시금 깨닫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 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일하던 중 피곤하여 밤나무 밑에서 잠을 자려고 누워 있다가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구? 참 어처구니가 없단 말이야. 왜 아름드리 밤나무에는 조그마한 밤이 열리게 하고 새끼손가락보다 가는 호박 덩굴에는 큰 호박이 열리게 하셨을까? 만일 내가 하나님이라면 호박 덩굴에는 밤만한 호박이 달리게 하고 밤나무에는 호박만한 밤이 열리게 할 텐데. 그것 하나 따가지고 삶아서 모두들 나누어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투덜대다 그는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 코를 고는데 갑자기 ‘딱!’ 하더니 알밤 하나가 이마에 떨어졌습니다. 깜짝 놀라 일어난 그는 이마에 떨어진 알밤을 보고는 얼른 무릎을 꿇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밤이 호박만 했더라면 제 머리가 박살났을 텐데, 밤을 작게 만들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짧은 지혜로 모든 것이 자기에게 유익하게 만들어졌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며 땅에 가득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감사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찬송가 593장, 통 312장)
본문 29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흙)로 돌아가나이다”
이화여대 총장을 지냈던 김활란 박사께서 총장직을 물러난 후 당시 류형기 감독을 찾아가 목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나이가 63세였습니다. 그 연세로는 감리교 헌법상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감독은 그에게 평신도로서 복음을 전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자 김박사는 ‘보잘 것 없는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내가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내가 이화여대에서 가르치게 된 것도 하나님 은혜입니다’라고 감사하며 복음을 전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임종 직전에도 수많은 후배들과 제자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이여, 울지 마시오.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이제 또 하나의 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내가 죽은 후에 장송곡을 부르지 말고 할렐루야 코러스를 불러 주시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김활란 박사의 묘비에는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수많은 사람들이 결국 다 놓고 떠나와야 할 세상 것들을 하나라도 더 소유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기뻐하며, 기도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인데도, 자기가 노력한 대가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문 33, 34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어떤 감리교도인 노(老)가수가 후두암으로 수술을 받기 위해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는 의사에게 안타까운 목소리로 “선생님, 이 수술이 끝난 후에 다시 노래할 수 있을까요?” 라고 물었지만 의사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엾은 가수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며, 의사에게 자신을 좀 부축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의사의 도움으로 일어나 앉은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제가 다시는 노래를 할 수 없다고 하시니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말을 마친 노가수는 눈을 지그시 감더니 널리 알려진 와트 박사의 찬송시를 불렀습니다.
“내 호흡이 다 할 때까지, 내 평생 주님을 찬양하리!”
참으로 나를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알고서도 우리가 어찌 평생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 할렐루야”(시150:6)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시146:2)
실로 천지 만물 속에서 보여 지는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함과 주권성은 찬양의 제목이 되기에 넘치도록 충분한 것입니다. 즉 광대한 우주만물을 조성하시고 영원히 퉁치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함은 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이며, 특히 그 속에서 모든 피조물 하나 하나에 쏟으시는 하나님의 섬세한 보살핌과 사랑은 말로 다 형언키 어려울 정도입니다. 더욱이 그 자연 만물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능력이야말로 신비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은 이렇게 오묘한 자연과 그 섭리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 속에서 헤매고 있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롬1: 19- 23) 이제 그리스도께 속한 성도들은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생각하고 겸손히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롬11:36, 골1:16)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의 특권으로 땅에 가득한 하나님의 부유하심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십시오. 그리하여 작고 헛된 염려에 연연해 하는 것이 아니라 큰 은총에 감사함으로 부요한 삶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 대자연을 다스리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드립니다. 오늘 저희에게 자연 만물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귀한 솜씨와 지혜를 깨닫게 하시고, 저희도 자연 만물을 대하면서 이 시편의 기자처럼 노래하며 찬양하며 즐기기를 원합니다. 저희가 갖게 될 휴가가 놀고, 먹고, 마시는 그 자체만으로 끝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이 귀한 지혜를 다시금 깨닫고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쉼과 평안을 누리는 귀중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눈과 지혜를 열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보게 하소서.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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