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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메시아인가?

마태복음 정용섭 목사............... 조회 수 2589 추천 수 0 2011.02.16 01: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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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1:2-11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455382 

emoticon 정용섭 목사  2010.12.12

“당신은 메시아인가?”

(마 11:2-11), 12월12일, 대림절 셋째 주일

 

    세례요한과 예수

     복음서 기자들은 세례요한을 예수님의 운명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같은 제자들도 물론 중요합니다. 제자들은 말 그대로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이 부르심에 순종하고, 예수님의 명령을 그대로 따랐고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초기 공동체의 지도자들로 활동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오히려 예수님의 선구자 역할을 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는 죄를 씻는 종교의식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세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복음서가 예수님의 세례를 언급한 이유는 세례가 예수님의 공생애를 보증하는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이 전설적인 인물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에서 활동한 실존 인물이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요한은 예수님의 활동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 이외에도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관계가 긴밀하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요소들은 많습니다. 오죽했으면 예수님을 가리켜 당시에 죽은 세례요한의 환생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겠습니까.

     오늘 설교 본문의 내용은 세례요한이 죽기 전 옥에 갇혀 있을 때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서 이렇게 묻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3) “당신은 메시아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대망했습니다. 메시아는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원래 구원은 하나님의 고유한 행위입니다. 메시아는 하나님과 존재론적으로 동일합니다.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기다렸다는 말은 곧 하나님을 기다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메시아를 대망한 이유는 자신들의 노력으로 구원의 세계를 실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유대인들의 고유한 메시아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역사를 안일한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근본적으로 새로운 깊이에서 보았습니다. 인간세상은 인간의 노력으로 새로워질 수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이 오셔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유대의 메시아 대망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세례요한의 사역에 대해서 마태는 3:1-12절에서 자세하게 전합니다. 그는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회개의 복음을 외쳤습니다. 청중들을 가리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으면 찍혀 불에 던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요한은 유대의 마지막 예언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회개의 설교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헤롯왕의 부도덕한 행위를 비판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런 상황을 견뎌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보다도 변화의 조짐이 전혀 없는 세상 앞에서, 그 어디에도 구원의 불빛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세상 앞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례요한은 감옥에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도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웬만큼 듣고 알았을 겁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 수는 없었습니다. 요한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것은 비밀이었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들어가기 전의 요한은 어떤 점에서 예수님과 경쟁관계에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을 메시아로 믿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추종자들이 이리 몰렸다가 저리 몰렸다 했습니다. 세례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의 제자로 온 이들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예언자 활동을 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세례요한은 감옥에 들어가서 예수님에 관해서 더 진지하게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메시아인가가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 예수인가?’ 그는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냈습니다. 당신이 메시아인지 알고 싶다는 겁니다.

 

    실족하는 자

     예수님은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마 11:4) 당신이 메시아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듣고 보는 것’에서 대답을 찾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맹인이 보고, 못 걷는 자가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못 듣는 자가 듣게 되고, 죽음 자가 살아나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이사야 35:5절 이하와 거의 일치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오실 때 일어날 일에 대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런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세상입니다.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다른 민족들도 똑같이 기대했습니다. 오늘 정치인들도 그런 것을 약속합니다. 과학과 의학도 그런 세계를 약속합니다. 당시 유대의 여러 메시아 운동을 일으켰던 사람들도 모두 이런 약속을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소문도 많았습니다. 한국교회의 손 아무개 장로는 그런 일을 합니다. 믿음만 있으면 모든 난치병과 장애까지 치료될 것처럼 주장합니다. 치료되었다는 소문도 나돕니다. 이런 소문은 어디나 있는 것들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듣고 보는 것’들이 예수님의 메시아 성을 확실하게 보장해주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인정한 건가요, 아니면 부정한 건가요, 또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건가요?

     6절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듣고 보는 것’에 관해서 말씀하신 뒤에 뜬금없는 것처럼 들리는 말씀을 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복이 있다는 표현은 마 5:1-12절에 나오는 팔복의 문구와 똑같습니다. 팔복에서 거론된 복 있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등등입니다. 복이 있다는 말은 구원 받는다는 뜻입니다. 실족이라는 말의 헬라어 원어는 ‘스칸달리조’입니다. 그 단어는 요즘 유럽 언어인 스캔들(scandal)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추문 정도의 뜻이지만 원래 헬라어는 어떤 사람을 죄에 빠지게 하거나 믿음을 포기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는 의심하거나 화를 내거나 쇼크를 받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마틴 루터는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나에게 화를 내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 예수님은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나에게서 일어난 일을 보고 나를 믿으라고 하면 간단할 텐데, 왜 다른 말씀을 하신 걸까요? 예수님으로 인해서 실족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메시아 스캔들’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메시아 대망의 관점에 묶여 있는 사람은 예수님으로 인해서 실족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메시아가 세상을 정의와 평화로 통치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방식은 엘리야가 행한 것과 같은 초자연, 초능력의 기적입니다. 마태복음 기자는 이사야 35편을 거의 그대로 인용해서 묵시적 차원에서 보도했습니다. 장애와 난치병이 치유되었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놀라운 기적적인 사건들이 바로 메시아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기자는 그런 것과 다른 현상도 보도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는 엘리야의 초능력과 관계되기보다는 오히려 앞에서 언급한 팔복과 연관됩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것은 가난한 자들이 복이 있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은 엘리야를 연상할 수 있는 초자연적 기적만이 아니라 구원의 새로운 차원인 팔복을 연상할 수 있는 가난한 자를 동시에 거론합니다. 유대인들의 메시아 대망이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강조입니다. 이 사실을 외면한 채 유대인의 메시아 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예수님으로 인해서 실족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전통적인 메시아 관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독교를 향한 그들의 반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즉 메시아라고 한다면 이 세상이 완전히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니냐? 예수가 오기 전이나 온 후나 세상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마당에 어떻게 예수를 메시아라고 주장할 수 있느냐? 일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세례요한도 그런 심정으로 예수님에게 질문했을 겁니다. 이들의 주장은 기독교인들에게도 내면적으로 그대로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게 인간의 일반적인 기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복이라는 게 팔복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온통 부자 되는 것에만 신경이 가 있습니다. 수능을 위해서 교회가 공개적으로 특별 기도회를 열기도 합니다. G20 회의가 지난 11월 11,12일 양일간에 거쳐서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소위 잘 나가는 20개 국가의 정상들이 모여서 세계 경제 발전을 지속시키는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 잘 사는 나라는 좀 낮아지고, 못 사는 나라는 좀 나아지는 길을 찾은 게 아닙니다. 이번 회의에서는 환율정책이 가장 예민한 주제였다고 합니다. 그것도 결국 자기 국가 이익을 최대로 하려는 욕망의 몸짓입니다. 지구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모두가 풍요롭게 살아야겠다는 대전제가 자리하고 있는 이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의 메시아니즘과 다를 게 없습니다. 이런 생각에 고정되어 있는 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실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복 있는 자

     그렇다면 이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래서 참된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실족하는 사람의 경우와 반대되는 경우를 찾아야 합니다. 엘리야의 초자연적인 능력과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의 ‘메시아 비밀’에 영혼을 맡기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비밀의 방식으로 메시아입니다. 그 비밀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구원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실패입니다. 그 실패가 구원이라는 사실을 비밀입니다. 부활도 누구나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무로부터의 창조와 마찬가지로 종말이 와야 드러나게 될 생명의 신비입니다. 그 사건이 예수님에게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유대교의 메시아니즘, 이 세상의 사이비 메시아니즘이 말하는 구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구원 경륜을 받아들이는 것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실제로 복이 있을까요? 이 대답은 이미 실족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질문의 대답을 찾는 과정에서 주어졌습니다. 유대인들과 시대정신이 말하는 초능력, 기적, 경제성장과는 질적으로 다른 복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돌아간 뒤에 사람들에게 요한을 선지자보다 나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 11:11) 요한은 이런 칭찬을 들을만합니다. 자기의 운명을 던지면서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이 정작 하고 싶은 말씀이 뒤로 이어집니다.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이런 말씀을 단순히 덕담정도로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이 세상에서 운용되는 삶의 형식과 천국, 즉 하나님 나라에서 운용되는 삶의 형식이 질적으로 다르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질적으로 다른 생명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새로운 삶을 누립니다. 거기서는 모든 이들이 세례요한보다 큰 사람이 됩니다. 기대되지 않습니까?

     오늘 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어떤 구원을 원하십니까? 예수님을 믿음으로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병이 낫기를 워하시나요? 부자가 되기 원하시나요? 자식의 출세를 원하시나요? 대한민국의 경제가 더 발전하기를 원하시나요? 그런 것들은 모두 유대인들이 원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구원을 원한다면 결국 예수님을 통해서 실족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여러분의 그런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오히려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습니까?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삶으로 천국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오고 있습니다. 그때를 기다리며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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