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딤후2:3-13 |
|---|---|
| 설교자 : | 윤여성 형제 |
| 참고 : | 새길교회 |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십자가 그늘에서
- 고난도 유익 -
(딤후 2:3-13)
2011년 1월 16일 주일예배 말씀증거
윤여성 형제
신문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소똥냄새를 맡고 사는 사람들이 암에 걸릴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줄어들더라는 연구 보고였습니다. 그 이유는 세균이 많은 환경, 즉 덜 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됨으로써 평소에 인체의 방어력이 향상되어 암에 걸릴 확률이 떨어진다는 결과로 나타났다는 겁니다. 반대로 좋은 환경에서만 자란 부유층 사람들이 암에 더 쉽게 걸린다는 결과가 나와 위생적인 환경이 결코 건강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를 요즘 의학자들은 ‘위생 가설’로 설명합니다. 최근 20 - 30대 연령층에서 A형 간염이나 아토피·알레르기 질환 등이 급등하는 한국의 상황을 이 가설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위생상태가 좋지 않았던 과거엔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세균과 바이러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 등에 노출되어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항체가 생겨 이런 병들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위생적인 환경에서 자라는 요즘 세대는 자신의 면역체계가 직접 적과 싸워 단련을 받을 기회를 갖지 못해 쉽게 병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재미있게도 미국의학협회 저널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애완동물이 있는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알레르기에 걸리는 경우가 애완동물이 없는 집보다 77% 더 낮았다는 사실입니다. 애완동물을 키우면서 접한 환경(박테리아 등)이 자연 백신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을 냈습니다.
물론 극도로 나쁜 위생환경은 암을 유발하겠지만, 약간의 덜 위생적인 환경이 건강에 오히려 유익하다는 결론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이것이 집안 청소를 안 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곤란하겠지요. 잘못 이해하시면 아니 됩니다. 맞벌이 부부 자식 집에 가보니 집안 청소를 안해서 집안을 지나가는데, 폭탄들을 피해서 겨우 지나갔다는 어느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즘 젊은 부부가 집 청소를 안하는 핑계로 이 ‘위생 가설’을 말한다면 곤란하겠지요. 주부가 집 청소를 안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면, 성경을 자기 편안대로 해석하는 것과 같은 것이겠지요.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시편 119편의 71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고난을 당하는 것이, 내게는 오히려 유익이 되었습니다. 그 고난 때문에, 나는 주님의 율례를 배웠습니다.” 고난이 오히려 우리에게 유익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고난 받기를 즐거워하나요? 아니 고난 받지 않는 삶이 하나님이 주시는 삶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오늘 성경 본문과 시편 말씀에서 분명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의 올바른 삶을 위하여 우리에게 고난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지만, 앞에서 말한 뉴질랜드의 경우나 ‘위생 가설’ 같은 이야기를 통하여 어렴풋이 이 뜻을 알 것 같기도 합니다.
황수관박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잘 알려진 endorphin은 한때 우리 사회에 엔돌핀열풍을 일으켰습니다. 이 엔돌핀은 사실 우리 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 체내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몰핀의 몇 십 배의 강력한 통증완화제이며 중독성도 거의 없는 천혜의 선물입니다. 물론 지나치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잘못 이해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 엔돌핀은 웃음을 일으키는 호르몬이지, 웃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억지로 웃는 것이 안 웃는 것보다는 좋겠지요. 웃음 자체는 우리의 건강에 유익하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요. 어쨌든 엔돌핀에 대하여 우리가 아직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엔돌핀은 오히려 일종의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엔돌핀이 우리 몸 안에서 최고조로 만들어지는 시기는 고통상태일 때가 많습니다. 즉 마라톤을 할 때 거의 골인지점에 가까이 왔을 즈음, 최고조로 고통스러울 때 많은 양이 분비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후 엔돌핀 분비로 인해 기분이 좋아지는 현상, 즉 'Runner`s high'라고 알려진 현상이 있게 되지요. 그뿐 아니라 산을 등반할 때에도 정상에 다다를 때, 최고로 힘들었을 때 엔돌핀이 최고조로 나와서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산 정상에 섰을 때 우리는 기쁨의 환희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겁니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분만시에 이 엔돌핀이 많은 양으로 분비되고, 모든 사람의 경우 사망 직전에 가장 많은 양이 분비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호르몬도 관여되겠지요. 어쨌든 이런 점에서 우리는 사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슬픔의 순간이 되겠지만, 죽는 당사자의 경우에는 최고로 기쁜 순간은 아닐까요? 너무 확대해석한 것일까요. 죽어보지를 않았기에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엔돌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넘길 수 있도록 우리 안에 생성케 하여 그 고통의 언덕을 넘어 기쁨이 되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이 바로 엔돌핀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역경을 만나게 하시는 이유는 아마도 그 사건을 통해 우리를 추스르고 돌아보게 하며, 올바른 길로 선택하게 하는, 정신 차리게 하는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이겠지요. 또한 우리 안에 엔돌핀을 생성케 하시어 그 고난을 넘는 피할 길도 주시고, 우리 안에 기쁨의 환희가 넘치게 하시려는 뜻이 아닐까요. 이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극한 상황을 만나게 하시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고난의 인생을 사신 분들이 많이 계시겠지만,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분이 계십니다. 전성천 박사님이신데, 제 주례를 서주신 분이기에 더욱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물론 이 분도 완전한 분이 아니기에, 우리처럼 교만했던 적도 있고 잘못 행동했던 적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지금 소개하려는 이 분의 인생의 한 부분에서는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따르는 모습을 우리에게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분은 일본 청산학원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석사, 미국 예일대학 신학대학에서 석사, 예일대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고 고국에 와서 정치가로서의 잘못된 길도 걸었지만, 그 후 목회자로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지금 제 마음 속에 남아있는 이 분에 대한 생각은 세상의 편안함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광주대단지(지금의 성남시)에 가서 고난 속의 삶을 산 시절입니다.
화가인 김병종 서울대교수가 2001년 동아일보의 ‘아침을 열며’라는 컬럼에서 이 분을 소개한 글입니다.
“ 그 삶 자체가 경이롭다. 아직 한반도가 캄캄한 어둠에 휩싸였을 때 경북 예천의 한 산골짝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 도쿄 유학을 거쳐 미국으로 가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다. 그 곳에서의 교수자리 제의를 마다하고 귀국하여 잠시 고위 공직자의 자리에도 있었지만 생애의 태반을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과 함께 보내왔다. 노동운동, 빈민운동의 현장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을 겪으며 많은 개척교회를 세웠다. 성서가 가르치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온전히 해 낸 것이다.”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성천 박사님이 나이 90이 되셨을 때 주위 분들의 권유로 ‘십자가 그늘에서’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쓰셨습니다. 그 책머리에 “나의 90 평생을 돌이켜보면, 그것은 역경과의 싸움이었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광주대단지(지금의 성남시)에 교회를 설립하던 때입니다. 그 분의 회고록에서 직접 이야기하고 있는 장면을 살펴보지요. 그 분의 말씀입니다.
“어느 날 미국에 있는 나의 친구 모테박사가 대학교수 초청장과 함께 비행기 표를 집으로 보내왔다. 나에게는 무척 반가운 소식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갈등이 없을 수 없었다. ‘내가 미국에 가서 대학교수노릇을 하면, 나나 내 가족은 평생을 굶주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만, 내가 그동안 하나님과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 사랑의 빚과 은혜는 무엇으로 갚을 것인가?’ 나는 여러 날 고민하다가 드디어 조국을 떠나 미국에서 여생을 보내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미국에 가서 대학교수나 하면서 여생을 보내기로 마음을 정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아내와 가족들도 오래간만에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나는 한국을 떠나기에 앞서 한 달쯤 우리나라 산천을 두루 돌아보고 싶었다. 나는 자동차를 가지고 가까운 경기도부터 돌기 시작했다. 그 때 처음 지나가게 된 곳이 광주대단지였다. 나는 거기서 자지러지게 놀랐다. 산비탈에 정연하게 처져있는 천막, 천막, 천막들. 1970년의 광주대단지의 모습이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이 말은 삶의 궁지에 몰린 인간에게 삶의 깊이와 높이를 알려주는 억만리 창공을 거쳐서 들리는 천사의 목소리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역경이 있고 또 가시밭 같은 행로를 걸어야 하게 되고 시련이나 궁지는 반드시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천사의 소리는 누구에게나 다 들려지는 것은 아니다. 지극히, 아주 지극히 소수의 사람에게만 이 천사의 소리는 가늘지만 따가운 비늘처럼 사람의 마음을 날카롭게 찌른다. 아니, 그 바늘에 찔려서 몸부림치는 인간의 소리이기도 하다. 땅에서 보면 천사의 소리요, 하늘에서 들으면 인간의 비명이다. 말하자면 ‘쿼바디스’는 천사와 인간이 동시에 발하는 총알과 비명의 합주곡이다.
나는 행인지 불행인지 이러한 다급한 장면을 내 짧은 삶에서 몇 번이고 겪어왔다. 그런데 나는 지금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주머니에 넣고서 20만 명의 철거민이 득실거리는 광주대단지 언덕 한 모퉁이에 서 있다. 그 때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쿼바디스’였다. 말하자면 나는 이 난민을 두고서 미국으로 갈 것인가 또는 난민과 더불어 이 땅에서 그대로 살 것인가 하는 두 개의 갈등과 번민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나는 여러 시간 그 자리에 서서 고민했다. ‘미국에 가면 편안하게는 살 수 있다. 그러나 이 불쌍한 동포들과 한데 어울려 뒹굴면서 살아가는 것이 내가 그동안 받았던 그 많은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것이 아닌가?’ 선뜻 결정을 못한 채, 나는 우두커니 언덕에 서 있었다. ‘주여 제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합니까? 고통 중에 있는 내 동족들은 어찌합니까? 제게 응답해 주옵소서.’ 그 때 내게 들리는 미세한 음성이 있었다.
‘동족의 아픔을 보면서도 미국으로 떠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면치 못할 것이다. 누가 저 상처난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해준단 말이냐’
나는 부랴부랴 그 언덕을 내려왔다.”
그 후 이 분은 전 재산이다시피 한 집을 팔고 자신의 재산으로 광주대단지에 교회를 지어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철거민들의 장례를 치르는 일로부터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또 그 후 유명한 광주철거민사건(7만 난동사건)에서 철거민의 대변자로 정부와 담판을 하는 등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하게 됩니다.
이 사건이 해결되었지만, 전목사님은 광주 대단지 시민 궐기대회의 배후조정자이고 실제 주동자이기에 상황이 다 끝나고도 검찰로부터 소환장을 받아 검사실에서 3시간 넘게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조사가 끝난 후, 부장검사는 모든 사람을 방에서 내보내고 여자직원을 불러 깨끗한 돗자리를 깔게 했습니다. 방에 단 둘이 남게 되자, 돗자리 위에 앉으시라고 하고나서 땅바닥에 엎드려 큰 절을 부장검사가 했습니다. 그 때 장면을 회상한 전목사님의 글입니다.
“나는 몹시도 당황했고 또 민망했다. 그가 말했다. ‘전박사님! 저는 이 사건을 기소하지 않겠습니다. 오히려 상을 드려야 할 분인데, 제가 그런 입장이 아니라서 …’ 이 이야기는 그 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혹 그 검사에게 누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그 분이 살아있는지, 지금은 변호사 개업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지만,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은인의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어지러워도 한 두 명의 의인은 있게 마련인가 보다.”라고 전목사님은 회상하고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서는 검찰이 어지러움의 근원지처럼 종종 이야기되지만, 이 부장검사처럼 그래도 묵묵히 많은 일을 한 정직한 검찰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전목사님은 이제는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시기 1년 전까지만 해도 정정하게 사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성남에서 목회를 시작한 후, 평생 자신의 이름으로 된 재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시는데 불편함이 없었다고 말씀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 분은 그의 자서전에서 이 부분을 ‘하나님이 보내주신 땅, 광주 대단지’라는 제목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을 허락하십니다. 생명도, 건강도, 평안도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세상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성공하기를 원하실 겁니다. 그러나 그 성공은 세상적 성공이 아니라 세상에서 거룩한 자가 되는 성공을 의미할 것입니다. 전성천박사님이 ‘십자가 그늘에서’라는 책머리에서 “성공한 것도, 그렇지 못한 것도 모두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는가!”라는 말처럼, 우리 또한 세상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가 되어야겠지요. 그래서 우리가 세상 살다가 혹 고난의 시기가 닥치면,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 자가 되어야겠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신실한 일군, 즉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기를 소원해봅니다.
올 한해 우리 새길공동체의 모든 분들이 진실되고, 행동하는 예수따르미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