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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19:28-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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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8·11·0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남기신 일곱 마디의 말씀을 알고 계십니까? 사람들은 이 일곱 마디 말씀을 간단하게 ‘가상칠언’이라고 부릅니다.
①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②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23:43)
③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6-27)
④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막15:34)
⑤ 내가 목마르다(요19:28)
⑥ 다 이루었다(요19:30)
⑦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내가 목마르다”,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두 마디 말씀을 중심으로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목마르다
타는 듯한 목마름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사람들이 당하는 특별한 고통이라고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진 것을 아시고 비로소 목마르다고 자신의 고통을 나타내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 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28절) 다윗은 시편 22편에서 예수님께서 당하실 이 고통을 예언했습니다.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시22:15상)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까지 우리의 모든 고통을 체험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당하는 온갖 고통들과, 심지어는 하나님께 버림 받고 지옥에서 당할 고통까지 우리 대신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고통을 아십니다. 이제 우리가 어떤 고통이든지 주님 앞에 가지고 나가면 다 아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어루만져 주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5-16)
성 프란시스가 하루는 자기 집 하인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인이 물을 길을 때 한 가지 이상한 행동을 했습니다. 우물에다 큰 물통을 내려 물을 가득히 담은 후 끌어올릴 때 항상 조그마한 나무토막 하나를 그 물통 안에 던져 넣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프란시스는 하인에 그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하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물을 퍼 올릴 때 나무토막을 물통 안에 넣으면 물이 요동치지 않게 되어 물이 밖으로 흘러넘치는 것을 최대한 막을 수 있어요. 나무토막을 안 넣으면 물이 제 멋대로 출렁거려서 나중에 보면 반 통밖에 안 될 때가 많거든요.” 하인의 설명을 들은 프란시스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자기 친구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흔들리는 마음의 물통을 가지고 있는가? 두려움으로 흔들리는 마음, 고통으로 심하게 요동하는 마음, 절망으로 부서지는 마음, 이것은 마치 심하게 흔들리고 춤을 추는 물통과 같은 것이지. 그러나 거기에 십자가라는 막대기를 던져보게.”
두려움과 고통과 절망으로 짓눌리고 요동할 때 십자가를 붙들라는 말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온갖 모진 고통을 당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고통을 아시며 도와주십니다. 우리의 고통을 함께 져주십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보면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신포도주
예수님께서 목마르다고 말씀하시자 사람들이 신포도주를 해융에 적셔 예수님의 입에 댔습니다. “거기 신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29절)
여기서 우리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드린 쓸개 탄 포도주와 여기 나오는 신포도주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에 도착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직전에 사람들이 예수님께 쓸개 탄 포도주를 드렸습니다.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마27:33-34)
사람들은 왜 예수님께 쓸개 탄 포도주를 드렸을까요?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왜 그것을 마시지 않으셨을까요? 쓸개 탄 포도주는 일종의 마취제였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이 너무나도 극심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기 직전에 죄수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이것을 마시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람은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감당하기 어려운 극심한 고통을 그나마 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쓸개 탄 포도주를 거절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온전한 정신으로 십자가의 모든 고통을 감당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모든 고통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하시는 것이었으며, 그 모든 고통을 다 당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게 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신포도주는 쓸개 탄 포도주와는 정반대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 지방 사람들은 한낮의 더위가 심하여 정신을 차리기 힘들 때 이 신포도주를 마시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며 죽어 가실 때 이 신포도주를 마시고 더욱 정신을 차리셨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이 모든 것을 온전히 감당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진지하게, 그리고 끝까지 십자가의 모든 고통을 감당하셨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도 고통 앞에서 주님과 같은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모든 고통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회피하거나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이겨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술에 빠져서 그것을 이겨보려고 합니다.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밖으로 나도는 사람도 있습니다. 포기하는 마음으로 드러눕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들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입니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고통 중에 무의미하거나 헛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며 연단하십니다. 우리는 이 고통을 회피하거나 다른 것을 통해 잊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환경과 상황에 지배를 당해서는 안 되며, 주님처럼 그것을 끝까지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늘 무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고통을 한탄하며 절망하거나 도피하려 하지 마십시오.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면서 이겨내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언이 성취
사람들이 예수님께 쓸게 탄 포도주와 신포도주를 마시게 한 것은 구약성경에 예언된 대로 이루어진 일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시69:21) 요한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경의 예언을 이루시기 위해서였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28절)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어 가시는 순간에도 예수님께서는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만이 아니라 로마 군병들이 행한 일도 구약의 예언대로 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 가진 것이 바로 성경에 예언된 말씀을 이룬 것이었습니다.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24절) 이 예언은 시편22:18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 군병들이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다리를 꺾을 때 예수님께서 벌써 운명하신 것을 알고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구약에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32-33절) 이것은 유월절 어린양의 뼈를 꺾지 말라는 율법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유월절 규례는 이러하니라 …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출12:43상,46)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5:7하)
로마 군병들은 자기들의 행동이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인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모든 예언을 다 아셨으며, 자신이 그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 오신 것도 아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 역시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들까지도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시기위해서 의도적으로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모든 일을 행하셨으며,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후 운명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예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30)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극심한 고통을 당한 자가 죽어가면서 지르는 외마디 비명으로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말씀은 승리의 외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고난을 당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오셨습니다. 이제 그 모든 일들을 다 감당하시고 하나님께로 가실 때가 다 된 것을 아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마음에 큰 기쁨이 솟아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사명을 다 이루시고, 특히 인간의 몸으로 감당할 수 없는 그 모든 고통을 다 감당하시고, 이제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되었던 것입니다. 생전에도 예수님께서는 늘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기쁨으로 아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실 때 기쁨이 충만하셨을 것임을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기쁨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기쁨입니다. 당신은 이 기쁨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 말씀에는 몇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구약의 모든 예언을 다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둘째, 죄인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구원을 다 이루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찢어졌습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막15:37-38)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막에는 성소와 지성소라는 두 개의 방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지성소에는 법궤가 놓여 있었으며, 아무도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오직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 몸을 정결하게 한 후에 그곳에 들어갔습니다. 지성소는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간주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그 지성소 앞에 드리워 있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그것은 이제부터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 즉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나타내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무한하시고 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이 어떤 것인지가 분명히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으로 명명백백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려 있게 한 것은 철 못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예수님의 죽음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시고 맑은 정신으로 마지막 고통까지 다 감당하신 후에 마침내 돌아가셨습니다. “예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30절)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죽음이었으며,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대신 죽으신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가 없으셨지만 가장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내면의 더 큰 고통도 당하셨는데,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죽으심으로 죄인은 누구나 죽어야만 한다는 하나님의 법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누구든지 나를 대신해서, 내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러한 죽음을 당하지 않고 구원을 얻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홀로 당하신 죽음이었습니다. 이렇게 죽으심으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이제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습니다.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총이며 축복입니까?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과거와는 달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살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1-4)
예수님께서 이렇게 죽으심으로 오늘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승리와 성공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맘껏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승리와 성공은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이야말로 가장 복되고 영광스러운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직도 영접하지 못한 분은 이 시간 마음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십시오. 즉시 구원의 은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제 구원받은 성도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오직 십자가의 주님만 바라보기로 결단하십시오. 그러면 결코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이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면서, 뜨거운 감사와 충성된 마음으로 당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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