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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룻4: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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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9·03·20
누구에게나 일생에 결정적인 기회가 세 번은 찾아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세 번의 기회를 잘 붙잡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결정적인 기회를 잘 붙잡았습니까? 지나고 보니 그때 그 기회가 결정적이었는데 놓치고 말았다는 회한이 남아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우리 청년들이 결정적인 첫 번째 기회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지금 최선을 다해서 그 기회를 붙잡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청년시절의 기회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합니다. 쓸데없는 것들을 쫓아다니다가 정작 이 중요한 기회를 놓쳐버리지 않도록 하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붙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오미의 남편이었던 엘리멜렉에게는 가까운 친척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보아스이고 또 한 사람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보아스보다 더 우선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쉽게 포기해버렸습니다. 반면에 보아스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붙잡았습니다. 그 결과 두 사람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기회를 놓친 사람
룻은 비록 모압 여인이었고 가난한 과부였지만 매우 현숙한 여인이었습니다. 마치 진흙 속에 묻혀 있는 진주와도 같은 여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과연 누가 이 현숙한 여인 룻을 얻게 될 것인지를 놓고 벌어지는 숨 막히는 사건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건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고 본문을 읽는다면 본문을 읽을 때 손에 땀을 쥐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난밤에 룻의 청혼을 받은 보아스는 흔쾌히 그녀의 청혼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엘리멜렉의 친척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선권은 바로 그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아침 일찍 그 사람을 만나러 갑니다.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1절)
성문에서 그 사람을 만난 보아스는 그들의 친척인 엘리멜렉의 기업 무르는 일에 대해서 말을 꺼냅니다. “보아스가 그 기업을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3-4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장면은 정말 아슬아슬한 장면입니다. 룻이 청혼한 것은 보아스인데, 엉뚱하게 우선권을 가진 다른 사람이 룻과 결혼을 하게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만일 일이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애석한 일입니까? 그런데 보아스가 계속해서 설명을 합니다.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5-6절)
이 사람은 룻과 결혼해서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자기에게 손해가 될 것 같아서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사람은 엄청난 기회를 놓쳐버리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보아스는 다행스럽게도 기회를 잡아서 룻과 결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룻과 결혼하기를 거절함으로써 현숙한 여인 룻의 남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룻과 결혼하기를 거절함으로써 이 사람은 그리스도의 계보에 들어가는 엄청난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영광스럽고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던 것입니다. 결국 이 사람은 성경에 그 이름조차도 남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보아스는 이 기회를 잡았으며, 룻과 결혼하여 큰 축복과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아스를 기뻐하셨고 그에게 큰 복을 주셨습니다.
기회를 놓쳐버리게 된 이유
이 사람은 왜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게 되었을까요? 그 사람 자신의 말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6절) 이 사람은 자기에게 손해가 될까봐서 그 기회를 포기해버렸습니다.
현실적인 이해타산만 따지는 이기적인 사람은 기회를 놓치기 쉽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일에 자기의 이익과 생각을 앞세우면 순종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쳐버리게 됩니다.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여 기회를 놓쳐버리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는 대개 책임과 헌신이라는 그릇에 담겨서 올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으면 그 기회를 놓치기 쉽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에게 이익이냐 손해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시느냐,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게 됩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인간적으로 볼 때 큰 손해가 될 것이 뻔한 경우에도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안정된 고향에서의 모든 기반을 버리고 가나안 땅에서의 나그네 삶을 선택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영화를 버리고 하나님 백성과 함께 고난당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다니엘은 우상에게 바쳐졌던 산해진미를 거절하고 채소를 먹기로 작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기뻐하셨고 크게 복을 주셨으며,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기회를 붙잡은 보아스
룻과 결혼하기를 거절한 사람이 기회를 포기한 반면에 보아스는 자기에게 돌아온 기회를 적극적으로 붙잡았습니다. 그는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모든 절차를 밟아나갔으며, 즉시 룻과 결혼했습니다. 그 결과 보아스는 가장 현숙한 여인 룻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기회를 붙잡은 보아스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후손으로 다윗이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엄청난 축복입니까? 뿐만 아니라 룻과 보아스는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보아스는 어떻게 자기에게 돌아온 기회를 굳게 잡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평소에 보아스가 가지고 있었던 신앙과 인격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결정적인 기회를 붙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책임지는 사람
보아스는 자신의 이익보다는 책임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르고 룻과 결혼하는 것이 자기에게 이익인지 손해인지를 따지기에 앞서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이행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더 가까운 친척이었던 사람은 자신에게 손해가 될 것 같아서 책임을 회피했으며, 그 결과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자신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7-8절)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율법의 규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면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으로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의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 내게 행하지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말할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를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노라 하면 그의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의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고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김을 받은 자의 집이라 부를 것이니라”(신25:7-10)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책임을 회피하는 자가 가장 악한 자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책임을 회피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문제는 오늘 우리 중에도 책임지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이전하는 중요한 일들을 추진해나가면서 우리 성도들이 교회에 대해서 너무나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확인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좋은 교회를 세워나가려면 책임지는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이웃에 있는 대형교회를 보십시오. 그들은 학교를 세우고 예배당을 몇 차례나 건축했습니다. 그러느라고 계속해서 힘에 겨운 책임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책임 없이는 결코 좋은 교회를 세워나갈 수 없습니다.
보아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힘을 다해 감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3:13하) 이러한 보아스야말로 그리스도의 계보에 들어갈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보아스를 기뻐하시고 큰 복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책임을 감당하는 신실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은 자신에게 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습니다.
청지기 의식이 투철한 사람
보아스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투철한 청지기 의식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소유한 그 어느 것도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사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심지어는 나 자신과 우리의 자녀들까지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하셨을 때 즉시 순종함으로써 자기의 아들까지도 하나님의 것임을 분명하게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단지하나님의 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이 원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철저히 적용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각 지파와 가족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땅은 그 지파와 가족들 안에서 보존되어야 했습니다. 설령 불가피한 형편에 의하여 다른 사람에게 땅을 팔았다 해도, 희년이 되면 그 땅은 본래의 주인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희년이 되기 전에라도 기업 무르는 제도에 의하여 정당한 값을 치르고 다시 찾아 올 수 있었습니다. 만일 당사자가 죽고 없으면 가까운 친족이 기업을 무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 끝까지 유지되도록 했습니다. 기업 무르는 제도에 있어서 그 근본이 되는 정신은 바로 “오직 하나님만이 주인이시다”라는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땅도, 재물도, 사람도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청지기일 뿐입니다. 보아스는 이 청지기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기꺼이 기업을 무르고자 했으며, 그 때문에 룻과 결혼하여 하나님께 큰 복을 받고 귀하게 쓰임 받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청지기 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셨던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다 잃어버렸을 때도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하게 고백했으며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는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1-22)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24:1)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다윗은 성전건축을 위하여 자신이 모은 막대한 재물을 아낌없이 다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감격적으로 고백했습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29:14)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땅은 물론 룻까지 사야 했으므로 그 값은 상당히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어떤 대가라도 기꺼이 치르기를 원했습니다. 보아스는 또한 룻을 사랑했기 때문에 많은 대가를 치르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청지기 정신이 투철했던 보아스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일이라면 어떤 대가라도 치르기를 원했습니다. 보아스는 청지기 정신에 투철했기 때문에 이 큰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당신도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투철한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더욱 크고 귀하게 쓰임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보아스는 상당히 많은 대가를 치르고 룻과 결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아스의 희생은 손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보아스를 기뻐하셨고 큰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결국 보아스의 희생은 큰 축복으로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손해가 날 것 같아서 기업 무를 책임을 회피했던 사람은 이 큰 기회를 놓쳐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조차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오늘 우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보아스는 자기의 신부 룻을 위하여 막대한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고 그녀를 구속해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위하여 헤아릴 수 없는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으므로 기꺼이 그 값을 지불하기 원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과 생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당신은 이 은혜를 알고 있습니까? 우리 주님의 구속의 은혜를 절실히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감사와 감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와 감격이 뜨거울 때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하게 회복됩니다. 나를 구속하신 그 놀라우신 은혜와 사랑을 진정으로 뜨겁게 감사하며 감격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셨던 것처럼 이제 우리도 주님을 위해 우리의 모든 것을 기꺼이 드리기 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일이라면 계산하지 말고 끝까지 책임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보시고 기뻐하셔서 큰 복을 주시고 더욱 귀하고 사용하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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