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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배신한 자들에게

시편 복음............... 조회 수 2038 추천 수 0 2011.03.08 04:20:43
.........
성경본문 : 시109:1-31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사랑을 배신한 자들에게

 본문: 시편 109편 1- 31

 

몇 년 전에 개봉한 <친구>라는 영화는 같이 죽고 같이 살자고 맹세했던 친구들이 뒤틀린 성장과정을 겪으면서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어릴 적 물놀이를 하며 뛰놀던 친구가 원수가 되고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는 모습을 표현해내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인간관계는 믿음의 관계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인간관계는 믿음의 관계가 아닙니다. 그렇게 친했던 친구도 배신을 하고, 그렇게 믿었던 직원이 돈을 떼먹고, 심지어 자식이 부모를 배반하고 고발하거나, 심하면 부모까지 죽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이런 일은 우리가 인간관계를 믿음의 관계로 잘못 오인한 데서 오는데, 믿음의 대상으로 사귀지 말고 사랑의 대상으로 대해야 될 것입니다. 믿음의 대상으로 여기면 그 믿음을 받을만한 그릇이 안 되는 이들에게는 부작용이 초래됩니다. '배신', '배은망덕', '그럴 수가', '있을 수 없는 일' 등의 단어가 당사자의 가슴에 한으로 맺힙니다. 그러므로 모든 관계를 사랑의 관계로 풀면 풀리는데 그 사랑은 죽기까지 용서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자신이 죽으면서 끝까지 배신자를 포옹하는 사랑, 그 사랑을 실행하는 사람은 세상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현대는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은혜를 모르고 배신하는 시대입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디모데후서 3: 1- 4)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여러 차례 배신의 아픔을 느낍니다. 사실 배신보다 더 찢어지는 아픔은 없습니다. 그런데 배신은 누구에게 당하는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가장 믿는 사람에게 당하는 것입니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 믿는 사람이 없다면, 배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오랜 기간 애정 쏟고, 헌신을 쏟아 부은 사람에게는 배신감을 느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므로 지금 명단을 작성해 보십시오. 가장 사랑하는 사람 10명, 가장 믿고 있는 사람 10명! 바로 그들이 배신 후보자들의 명단입니다.

그러면 배신감을 이기는 길은 무엇입니까? 너무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절대적인 기대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믿고 따를 분은 오직 하나님이고, 나머지는 모두 상대적이란 자세로 살면, 배신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라는 존재도 예외는 아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의지하는 모든 시도는 다 배신감의 고통을 품고 있는 씨앗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 주의 백성들입니다.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본문 시편 109편을 보면 가룟 유다의 죽음에 대한 것이 예시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자기가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함에 대하여 절규한 시었으나 사실은 가룟 유다에게서 이루어진 예언이었던 것입니다.(시109:8, 행1:20) 그리고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만이 멸망했습니다(요17:12). 이 말씀을 살펴보면 그는 멸망의 자식이 된 것이 하나님의 긍휼을 거부해서였으며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도 죄를 회개하지 않아서 멸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도를 배반하는 자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요 견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니라”(잠15:10)

 

  과연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자를 귀히 사용하실까요? 어제 성경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이 쓰셨던 모세에 대하여 하신 말씀 중 마음에 다가왔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모세의 120년 삶을 세 부분으로 나눠 어떻게 점진적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사용하시고자 준비시키셨는지를 깨닫게 해 주며 도전을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1) 모세가 애굽에 40년 있었을 때 그는 자기가 뭔가가 된 줄 생각했습니다.

(2) 모세가 미디안에 40년 있었을 때 그는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 습니다.

(3)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간 인도하였을 때 그는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아닌 자를 쓰시는 줄 깨달았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1) 과 (2)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떨 때는 내 자신이 뭔가 된 사람인 것 같이 착각할 때가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저를 사랑하시사 제가 아무 것도 아님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 어느 정도 된 사람이란 것은 왠지 저로 하여금 "욕심"을 내게 만들고 또한 "교만"하게 만들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광야"로 인도하셔서 낮추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홀로 그 분 앞에 잠잠히 있게 하시고 또한 기도 하는 가운데 그의 말씀으로 제 마음을 죄를 들춰내시고 또한 회개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부드럽게 들려주시는 말씀으로 인해 위로와 힘을 받습니다(호2:14). 마가복음 9장29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기도 외에 …” (only by prayer). 마치 예수님께서 기도 외에는 귀신을 쫓아 내시 못한다는 교훈을 주셨던 것처럼 우리 안에 욕심과 교만 등 죄악 된 것들을 비우기 위해선 기도 밖에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본문 2-3절을 보시길 바랍니다.

“대저 저희가 악한 입과 궤사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거짓된 혀로 내게 말하며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무고히 나를 공격하였나이다”.

다윗의 원수들은 다윗을 해하는 독한 악담을 하였고(“악한 입”) 또한 허황한 말로서 다윗을 해하고자 하였습니다(“궤사한 입”). 더 나아가서, 이들은 아무런 허물이 없는 다윗을 억지로 죄 있다고 하여 압제하였습니다(‘무고히 공격함’).

참으로 혀는 유익한 면도 있지만 동시에 무서운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혀의 유익한 면은 물로 복음을 전하고 선한 말을 하며 남을 위로하며 격려하는 은혜로운 말을 할 수 있는 면이 있는가 하면 혀의 무서운 면은 우리의 혀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상처 입히기도 하며 또한 모함하며 비방하며 거짓말과 헛소문을 퍼트려 그 한 사람을 매장할 수 있기도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얼마 전 CNN 인터넷 뉴스에 미주리 주에서 발생했던 13살 여자아이 자살 사건 기사가 올라온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 미주리주에 사는 소녀 메이건 마이어(13) 는 미국 ‘온라인 관계 맺기’ 사이트인 Myspace에서 조시 에반스(16)라는 소년을 만났는데 이 소년은 메이건에게 “섹시하다”는 쪽지를 보내 유혹하므로 결국 그녀는 조시에게 푹 빠졌다고 합니다. 서로 쪽지를 계속 주고받다가 조시는 갑자기 떠난다고 말했고, 메이건은 돌아오라고 매달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시는 “너가 없다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거야”라는 쪽지를 보냈고 메이건은 20분 뒤 스스로 목을 매 결국 숨졌다고 합니다. 메이건의 부모는 얼마 뒤 조시가 실은 로리드루(49)라는 같은 동네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자살한 여자아이의 한 친구의 엄마가 남자아이로 위장하고 'My Space'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여자애와 사귀다가 나중에 폭언 내지는 악담으로 깊은 상처를 줬고 그로 인해 결국 여자아이가 자살한 사건입니다. 인터넷에 횡행하고 있는 악성 루머나 악플의 위험성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3장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다윗의 원수들은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혀로 다윗을 대적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141:3)

 

  몽고 지방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길모어 목사가 어떤 여인숙에 머물며 전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사람들이 와서,

“이 눈도 빼어 먹고 심장도 빼어 먹는 서양 귀신아!” 하며 욕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에 여인숙 주인이 듣다못해 화를 내며 나가서 그를 몽둥이로 때리려 하자 길모어 목사가 만류하였습니다.

주인이 분노하며 말했습니다.

“저 놈들이 벌써 사흘 동안이나 당신에게 욕을 하잖아요.”

그러자 길모어 목사는 오히려 주막 주인을 타이르며 말했습니다.

“내 이름이 서양 귀신도 아니요, 눈과 심장을 빼어 먹는 사람도 아닌데 그 말이 내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나는 저들의 영혼을 사랑합니다. 고로 나는 저들에게 기도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길모어 목사와 같은 상황에서, 또 적대자들의 온갖 적대와 비방을 당한 다윗과 같은 상황에서 취할 자세는 과연 무엇일까요?

“나는 기도할 뿐이라”는 다윗의 고백과 같습니까?

본문 시편109편4절을 보면 시편 기자 다윗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이 말씀은 다윗은 그의 원수들을 사랑하였지만 그의 원수들은 다윗을 대적하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윗은 “나는 기도할 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윗의 원수들은 다윗을 어떻게 대적하였습니까? 그들은 악한 말로 다윗을 대적하였습니다.

 

 본문 5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에겐 자부로의 작품 「사육」은 한 명의 흑인 병사를 짐승처럼 사육하는 일에 종사하는 소년이 체험한 비극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2차 대전 때 소년은 도시에서 떨어진 산 마을의 공동 창고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소년이 살고 있는 마을에 커다란 비행기가 떨어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곧 수색에 나섰고, 저녁 무렵 비행복을 입은 흑인 병사 한 명을 끌고 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멧돼지 덫으로 쓰이는 쇠사슬로 흑인 병사의 양쪽 발목을 묶고 지하 창고에 가두고는 짐승처럼 사육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멧돼지 덫에 묶여진 흑인 병사의 살갗이 벗겨져 염증이 생긴 것을 보고 덫을 풀어 주었습니다. 소년의 도움으로 흑인 병사는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시청에서 흑인 병사를 끌고 오라는 지시가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낌새를 알아차린 흑인 병사는 지레 겁을 먹고 당황하여 자기에게 자유를 주고 먹을 것을 주었던 소년을 인질로 잡아서 난동을 벌이는 반역을 하였습니다. 결국 흑인 병사는 소년의 아버지 손에 죽고 말았습니다. 모든 인류가 죄의 족쇄에 채워져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없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끝까지 믿지 못하고 환경에 지레 겁먹고 당황하여 예수님을 배반한다면, 그것은 곧 반역입니다. 그 반역의 결과는 영원한 죽음입니다.

다윗의 원수들은 악으로 다윗의 선을 갚았으며 미워함으로 다윗의 사랑을 갚았습니다.

 

 시편 109편 17∼18절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묵상해야 할 말씀입니다.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 뼈에 들어갔나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저주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저주하는 입술 자체를 싫어하시지만 저주하는 입술에 따른 결과 때문에 절대로 저주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

눅 6:27∼28절의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라”는 말씀은 행하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면 의외로 쉽게 적응할 수 있고 놀라운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축복의 입술을 열어 엄청난 복을 경험했습니다. 제가 경험한 말씀을 나누어 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그에게 아주 귀한 복을 내리십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하리니…”

원수를 축복하는 것도 어렵지만 복을 받아 잘 나가는 사람을 축복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누가 아브라함을 축복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도 복을 주십니다. 저는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달은 후부터 지역의 큰 교회 목사님들을 축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목사님들을 축복하자 하나님은 저에게 놀라운 복을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본문 17, 18절을 보면 저주하기를 좋아하였으며 또한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는 사람이라고 다윗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남을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였습니다. 오히려 저주하기를 기뻐하며 좋아하였습니다. 왜 다윗의 원수들은 이렇게 다윗을 저주하기를 좋아하였습니까? 그 이유를 본문 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가 긍휼히 여길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핍박하여 죽이려 한 연고니이다”.

다윗의 원수들은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 마음이 상한 자들을 전혀 긍휼히 여길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히려 다윗의 원수들은 그들을 핍박하여 죽이려 하였습니다. 이렇게 잔인한 사람들이 다윗을 대적하였던 것입니다. 대적하되 혀로 다윗을 저주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놓여 있었을 때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다윗은 그의 원수들이 악한 혀로 자기를 저주하며 해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나는 기도할 뿐이라’ 즉 ‘그러나 나는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 자신이 기도라는 뜻입니다. 곧, 그의 생활이 기도화 했다는 뜻입니다. 다윗의 기도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다윗은 그의 원수들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기를 기도하였습니다(6-20절).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악인들로 하여금 그의 원수들을 제어하시길 기도했습니다(6절). 그들은 정죄 받아 마땅하며 또한 그들의 기도 는 진정한 회개기도가 아니라 일시적인 아첨에 불과한 것이기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보다 정죄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7절).

본문 8-16절까지 말씀은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하되 그의 원수들인 극악자가 패가망신의 벌을 받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본문 17-20절의 기도는 자기를 저주하기를 좋아하는 그의 원수들에게 하나님께서 보응해 주시길 기도한 것입니다.

둘째는, 다윗은 하나님께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21-31절). 다윗이 하나님께 드렸던 이 구원의 기도는 “자기의 가련하고 불쌍한 처지를” 하나님께서 보시고 긍휼이 여기시사 구원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22-25절). 그래서 다윗은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중심이 상”한다고 말씀하였고(22절) 또한 “석양 그림자 같”이 쇠하였고 (23절) 기도를 하느라 수척해 졌다고도 진술하였습니다(24절).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도움과 더불어 구원의 간구하였던 것입니다(26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좇아 나를 구원하소서”. 다윗은 구원해 주시되 원수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음을 알게 하여주시길 기도했습니다(27절). 그리고 다윗은 이 구원이 확신이 있었습니다(28절). 그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궁핍한 자인 자기의 우편에 서시사 그의 원수들에게서 구원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또한 다윗은 자기의 원수들이 자기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해도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28절) “저희는 저주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 그리고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는 그의 원수들(18절)로 하여금 “자기 수치를 겉옷 같이 입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29절).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여 이렇게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본문 30절에서 이렇게 결심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무리 중에서 찬송하리니”(30절).

 

  본문 28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저희는 저주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 저희는 일어날 때에 수치를 당할지라도 주의 종은 즐거워하리이다”

아이들이 놀면서 주고 받는 대화를 듣다 보면 뜻밖의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부모의 말투나 습관적인 행동을 그대로 흉내 낸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본 대로, 들은 대로 행동합니다. 벤 자이어 복서의 『생명과 사랑의 선물』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이 그림을 그리는 데 얼마나 걸렸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화가는 잠시 주저하더니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고는 ‘36년이 걸렸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그림을 그리는 데 걸린 시간은 화판에 붓으로 물감을 칠하는 데 소요된 시간으로 계산될 수는 없습니다. 그의 과거 경험 하나 하나가 모아진 것이며, 온갖 노력의 마지막 결정체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는 행동, 미움과 사랑, 그리고 지금 하려는 말들은 모두 우리의 온 생애에 걸친 작품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상, 신앙의 스타일에 따라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상처를 받으며 성장한 사람은 남에게 상처를 입히며 살아갑니다. 생각과 삶의 방식이 그렇게 고정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처입은 우리를 싸매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상처난 부분을 싸매시며 우리를 복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30 ~ 3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무리 중에서 찬송하리니 저가 궁핍한 자의 우편에 서사 그 영혼을 판단하려 하는 자에게서 구원하실 것임이로다”

'말’의 원래 뜻은 ‘마음의 알갱이’라고 합니다.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말의 내용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평상시 무심코 하는 말이 사람들의 본심입니다. ‘괴롭다,’ ‘죽겠다,’ ‘힘들다,’ ‘나는 어쩔 수 없어’라는 말을 자주 쓴다면, 말 그대로 마음이 그렇게 죽어가고 있으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에게나 단점은 있습니다. 단점을 인정하되 그것에 얽매이지는 마십시오. ‘즐겁다,’ ‘자신있다,’ ‘신난다,’ ‘사랑한다,’ ‘행복하다,’ ‘건강하다,’ ‘힘이 난다,’ ‘믿는다’라는 말을 습관처럼 쓰다 보면 정말 말하는 대로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은 마음의 열매입니다.

즐겨 사용하는 말에는 우리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매일 ‘즐겁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죽겠다’, ‘힘들다’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 할지라도 습관적으로 낙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입에는 어떤 말들이 자주 오르내리고 있습니까? 항상 감사의 찬송을 드리는 사람에게 구원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감사 표현은 보류해 둘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바로 표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감사의 고백을 드리기 원하십니다.

시인은 대적자들에게 고난당하는 자신을 구원하실 여호와를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궁핍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고서 나아오는 자들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구원의 손을 내밀어 구원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고서 어떠한 환난 속에서도 그를 의지하고 찬양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어떠한 어려움과 역경 및 억울한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다윗처럼 기도하십시다.

“나는 기도할 뿐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다윗처럼 우리의 대적들이 악한 말로 우리를 해하려고 할지라도 ‘그러나 나는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항상 기도하고 있으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대적을 징계하실 것이며 우리를 그들의 손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입으로 하나님께 크게 감사드리며 찬송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기도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19-21)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도 있게 됩니다. 심지어는 원수 관계에 놓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원수된 자를 대할 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가 행하는 대로 맞서 대해야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태도가 아닙니다. 먼저 사랑으로 대하십시오. 비록 악으로 그 사람을 갚을지라도 실망하지 마시고 계속 사랑으로 대하십시오. 그리고 그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원수된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주신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기도: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 주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나 행한 것 죄뿐인데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심과 같이 나의 사랑을 배신한 자들에게도 주님을 본받아 기도하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나를 저주하는 사람과 나보다 더 큰 복을 받은 사람도 모두 축복하게 해주십시오. 오늘도 만나는 사람들 앞에 만왕의 자녀답게 당당하게 살게 하시고, 저의 입술로 복음을 전하며, 죄인의 습관을 좇지 않고 주님처럼 축복하며 살게 하소서. 나의 입술에서 긍정적인 말, 감사의 말이 항상 솟아나게 하소서. 죄를 짓지 않는 하루가 되도록 제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소서. 나를 눈동자 같이 항상 지켜 주시고 보호하여 주시고,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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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9 요한복음 본디오 빌라도의 5대 죄 요19:1-16  이한규 목사  2011-03-09 2501
4838 누가복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눅5:27-32  이한규 목사  2011-03-09 2973
4837 요한복음 진리에 속한 사람 요18:33-40  이한규 목사  2011-03-09 2033
4836 요한복음 제자가 되십시오 요18:19-27  이한규 목사  2011-03-09 2235
4835 요한복음 베드로가 실패한 4가지 이유 요18:12-18  이한규 목사  2011-03-09 2619
4834 요한복음 진짜 능력 2가지 요18:1-11  이한규 목사  2011-03-09 2035
4833 열왕기하 부흥과 승리의 3대 원천 왕하23:21-27  이한규 목사  2011-03-09 1935
4832 열왕기하 형통해지는 축복을 얻는 길 왕하18:1-8  이한규 목사  2011-03-09 2483
4831 사무엘상 인생승리의 5대 비결 삼상7:1-12  이한규 목사  2011-03-08 2399
4830 요한복음 하나 됨에 필요한 3가지 요17:20-26  이한규 목사  2011-03-08 4645
4829 시편 그리스도의 통치와 심판 시110:1-7  한태완 목사  2011-03-08 2066
» 시편 사랑을 배신한 자들에게 시109:1-31  한태완 목사  2011-03-08 2038
4827 룻기 축복 ..... 룻4:11-22  이정원 목사  2011-03-07 2142
4826 룻기 기회 ..... 룻4:1-10  이정원 목사  2011-03-07 2072
4825 룻기 안식할 곳으로 ..... 룻3:7-18  이정원 목사  2011-03-07 2170
4824 룻기 인생의 전환점 ..... 룻3:1-7  이정원 목사  2011-03-07 2287
4823 룻기 나오미가 깨달은 하나님 ..... 룻2:14-23  이정원 목사  2011-03-07 1943
4822 룻기 상주시는 하나님 ..... 룻2:8-16  이정원 목사  2011-03-07 3355
4821 룻기 구속자 ..... 룻2:1-7  이정원 목사  2011-03-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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