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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룻1:1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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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축복을 불러오는 4대 마음
본문: 룻기 1장 15-18절
< 가족을 행복하게 하십시오 >
오늘은 추석 명절입니다. 명절은 오랜만에 가족끼리 모여 한 가족임을 확인하고 행복을 나누는 날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일은 명절에 가족이 모여 돈과 재산 문제 등으로 서로 상처 입히고 싸우는 것입니다. 인간은 연약해서 가족끼리 미워하는 경우도 생기지만 그래도 함께 모여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날이 바로 명절입니다.
가끔 명절 때 가족 모임 때문에 예배를 빠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 그때는 더 예배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예배 때 말씀을 듣고 마음의 치유를 받고 가족을 만나면 훨씬 좋은 명절을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가족을 전도하고 가족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성도의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어떤 분은 남에게는 매우 친절하게 대하면서 배우자와 자식에게는 함부로 대합니다. 그런 모습은 뿌리도 없이 열매를 따려는 삶과 똑같습니다. 우리는 가족을 어느 누구보다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아름다운 본문입니다.
< 축복을 불러오는 4대 마음 >
어느 날, 유대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살던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드림을 가지고 모압 지방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모압 드림을 이루기도 전에 남자 3명이 다 죽고 시어머니와 모압 출신 두 며느리만 남게 되었고, 가진 재물도 다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모압으로 갈 때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유야 어떻든 베들레헴(말씀의 집)을 떠나는 것은 불행의 시작입니다. 특히 먹고사는 문제로 하나님을 버리고 예배와 기도의 자리를 빠지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았던 에서의 태도와 똑같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에서를 미워했습니까? 먹는 문제로 하나님의 축복을 팔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삶에 흉년이 들어도 신앙에는 흉년이 들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말씀과 기도와 봉사의 자리를 떠나서는 안 됩니다. 고난을 피하면 다시 또 다른 고난이 다가오지만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내면 반드시 고난 이상의 축복이 다가옵니다. 하늘의 것을 추구하면 얼마 후에는 땅의 것도 따라오지만 하늘의 것을 버리면 얼마 후에는 땅의 것도 사라지게 됩니다.
결국 나오미는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갈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 두 며느리들을 생각해서 “고향 집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오르바는 고향집으로 돌아갔지만 롯은 끝까지 시어머니와 함께 가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 결정으로 롯은 나중에 베들레헴의 대부호인 보아스와 재혼하게 되고,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고,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 이방 여인으로서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리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특별히 본문에 나오는 룻의 모습을 보면 축복을 위해 어떤 마음이 필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이 시간에 4가지 축복을 불러오는 마음을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효심(孝心)
나오미가 “고향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니까 룻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본문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이 고백을 보면 시어머니를 위한 룻의 효심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새 부모님이 돈이 있으면 효도 경쟁이 벌어지지만 돈이 없으면 괄시를 받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가 거의 알거지 수준이었지만 아무 계산도 없이 친어머니도 아닌 시어머니를 최대한 섬겼습니다. 그런 룻에게 축복의 문이 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레위기 19장 3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공경하라.”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어르신을 공경하는 것을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처럼 중요하게 여기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부모님을 하나님처럼 섬겨드려야 합니다.
십계명을 보면 제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 관계와 관련된 계명이고, 제 5계명부터 사람 관계와 관련된 계명인데, 사람 관계와 관련된 계명 중에서 첫 번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효도이고, 가장 위대한 이웃 사랑이 효도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부모님께 잘하는 것을 하나님께 잘하는 것으로 보십니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가 이 땅에서 무엇보다 잘해야 할 일은 효도하는 일입니다.
흉조로 알려진 까마귀도 늙은 어미 까마귀를 잘 모신다고 합니다. 거기에서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까마귀보다 못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 성도는 아무리 현재의 삶이 힘들고, 과거에 상처가 있고, 부모가 원망스러워도 부모님의 은혜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진짜 큰 부모님의 은혜는 거의 대부분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부모님께 불효할 수 없습니다.
때로 부모님의 생각이 나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때도 부모님을 최대한 존중해야 합니다. 때로 부모의 지혜롭지 못한 표현이나 방법이 내게 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부모의 마음 중심은 언제나 선한 마음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큰일은 못해도 결코 불효자는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그처럼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세심한 관찰과 대화와 지혜가 필요합니다. 부모님이 우리를 배려해서 하는 얘기는 대개 반대로 듣고 섬겨야 합니다. “얘야! 이번 추석에는 절대 선물 사오지 말아라”고 하면 꼭 선물을 마련해야 합니다. “얘야! 길도 막히는데 여기까지 올 필요가 없다!”라고 하면 기를 쓰고 가야 합니다.
저의 어머님은 “어머님! 저희와 같이 여행 가시지요!” 하면 항상 “너희들끼리 가라!”고 합니다. 그래도 같이 모시고 가면 제일 좋아하십니다. 우리는 부모님의 말을 지혜롭게 듣고 최대한 공경해야 합니다. 용돈을 드릴 때에도 하나님께 헌신하듯이 드려야 합니다. 부모는 구제의 대상이 아니고, 오직 섬김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처럼 부모님을 최대한 섬겨드릴 때 하나님은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2. 인심(人心)
본문에서 룻이 시어머니와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 힘도 없는 시어머니를 두고 도저히 그 곁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룻은 윤리적인 효심 이전에 사람 자체가 인심과 인정이 많은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요새는 친딸인데도 어머니를 모시기 싫어서 연락도 끊고 지내는 경우가 있는데 룻은 과부 며느리인데도 시어머니와 함께 하겠다고 고생길을 자처했습니다. 얼마나 나오미에게 힘이 되었겠습니까?
사실 부모의 제일 큰 기쁨 중의 하나는 자식이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자식이 멀리서 전화 한 통만 해도 부모님은 흐뭇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부모님을 자주 뵙고, 우리 자녀를 부모님께 많이 보여드려야 합니다.
서울 강남의 어떤 대형교회 목사님은 손자들 때문에 하루에 양치질을 5번 한다고 합니다. 손자들이 “할아버지! 입 냄새 나요!”라고 멀리하니까 뭇 사람의 존경을 받고 아무 부러울 것이 없는 대형교회 목사님도 손자들에게 좋게 보이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사실 손자 손녀 때문에 담배를 끊는 할아버지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 모습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손자를 같이 있게 해드리는 것이 얼마나 큰 효도인지 알게 됩니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는 아무나 뽀뽀를 잘해줍니다. 그러나 조금 크면 점차 담배 냄새나 입 냄새 나는 사람을 멀리합니다. 그리고 사춘기가 되면 친구들만 좋아하고 가족들을 멀리합니다. 그러다가 더 크고 성숙하면 비로소 부모와 가족을 생각하고 부모님과 같이 있는 시간을 많이 내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많이 내는 것이 바로 성숙함입니다. 또한 그런 교육을 보고 자라야 나중에 자기 자녀들도 부모에게 관심을 기울여줄 것입니다.
이번 주에 아내와 식탁에서 그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나중에 늙었을 때 아이들이 “부모님! 같이 어디 가시지요?”라고 권하면 따라가기는 하겠지만 우리가 먼저 어디에 가자고는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그냥 외로울 것 같습니다. 게다가 배우자가 떠나면 더 외로운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새는 아내가 저보고 “일찍 죽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미국에서 혼자 공부할 때, 겉으로는 활달하게 지냈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외로웠는지 모릅니다. 젊은 사람도 혼자 지내면 외로운 법입니다. 어르신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우리는 부모님과 최대한 같이 있는 시간을 많이 마련하고, 우리 교회에서도 권사님들을 좋은 자리에 많이 초청하고 최대한 즐겁게 해드려야 합니다. 어르신들의 가장 큰 고통 중의 하나는 외로움입니다. 그 외로움을 덜어드려야 합니다.
저의 어머님도 지금 79세이시니까 같이 시간을 보내며 효도할 기회도 몇 년 남지 않았고, 우리 아이들이 할머니를 볼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남은 시간에 할머니를 더 많이 볼 수 있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좋은 심성의 뿌리는 깊어지게 됩니다.
금년은 원래 저의 안식년입니다. 그런데 안식년을 가질 형편이 되지 못해서 대신에 1월에 2주간의 특별 휴가를 가져 어머님과 함께 있었고, 5월에 어머님이 한국에 오셔서 4일간 함께 휴가를 보냈고, 이번에 총회와 더불어 휴가를 가지면서 총회 외에 대부분의 시간을 어머님과 함께 있을 예정입니다. 결국 금년 세 번의 휴가를 모두 어머님과 함께 보내는 것입니다. 아마 어머님은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일 것입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어머님이 계속 미국 LA에 혼자 사시겠다고 하니까 멀리 떨어진 어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가지려면 비용도 만만찮게 듭니다. 아내가 재정 문제로 걱정을 하면 “우리는 어차피 돈 없이 살기로 했잖느냐?”고 말하면서 위로해줍니다. 우리는 부모님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서는 내 것을 아끼지 말고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1월에는 아이들이 버릇없이 굴어서 어머님 앞에서 큰소리를 쳐서 혼냈는데, 그 다음부터는 아이들 혼낼 때에도 어머니 앞에서는 혼내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어머님이 아주 난처하고 곤혹스러운 얼굴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보다 부모님께 잘해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효심 이전에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사람의 마음, 즉 인심(人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가장 큰 약점 중의 하나가 신앙은 있는데 인심이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을 통해 구원과 축복만 배우고 인격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진짜 말씀은 인격에서 나오는 것인데 인격이 사라진 말씀이 너무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흥회가 순기능도 있지만 역기능도 있습니다.
사실 부흥 강사의 화려한 말씀보다 담임목사의 인격에서 우러나온 말씀이 더 낫습니다. 부흥사는 성도와 인격적인 접촉이 거의 없고 그냥 메시지만 전하고 가버립니다. 때로는 약장사가 약을 팔듯이 메시지를 팔고 갑니다.
어떤 부흥사는 오면서 조건을 붙입니다. 마지막 날 저녁 헌금은 자신이 활동하는 어떤 사역을 위해서 자기가 가지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하니까 강단에서 헌금 봉투 명단을 읽는 세계교회사에 유례없는 부끄러운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많은 부흥회가 돈이 필요해서 열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요새 이름 있는 강사는 작은 교회에서는 초청도 못합니다. 오지도 않고 부르지도 않습니다.
오늘날 부흥회의 진정성을 회복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강사 사례비를 없애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 입장에서는 감사 표현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강사 자신은 절대로 돈과 유명세를 얻으려고 매번 똑같이 하는 말씀을 파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역시 제일 좋은 것은 담임목사 밑에서 꾸준히 말씀을 듣고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요새 영성 훈련을 한다고 어디 가서 3-4일 동안 천국 체험을 합니다. 그것을 신앙의 전부로 알면 안 됩니다.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계속하면 소박한 인심은 사라지고, 잘못된 영적 욕심과 화려한 허심만 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교회에서 꾸준히 일상적인 삶을 나누고 동고동락하며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화려하게 사는 것보다 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명한 것보다 진실한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심도 중요하지만 인심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믿음이 있다고 해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게을리 하지 말고, 인심의 중요성을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인심 속에 신심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초신자 때에는 최대한 교회에 가까이 차를 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자라면서 남을 위해 교회 멀리 차를 대고 기쁜 마음으로 걸어옵니다. 그래도 사력을 다해 교회 가까이 차를 대려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주차 문제는 있겠지만 그런 작은 실천이 바로 인심이고, 그것이 바로 참된 영성입니다.
3. 신앙심(信仰心)
본문 16절 후반부를 보면 롯은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고 고백합니다. 이방 여인의 입에서 나오는 이 하나님 고백을 보십시오. 이 고백을 보면 룻이 시어머니를 따르겠다고 하는 것에는 효심과 인심도 작용했지만 신앙심도 작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룻이 모압의 고향집으로 돌아가면 그녀는 다시 그모스와 같은 모압 신을 섬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룻은 이미 참 신앙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옛날의 잘못된 신앙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시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했을 것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 나오미가 모압 며느리들에게 신앙교육 하나만은 잘 시켰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게 신앙교육을 해도 두 며느리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오르바는 형식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여서 상황과 조건에 따라 옛날의 불신자의 모습으로 돌아갔지만, 룻은 진정으로 회심해서 어떤 형편에서도 참된 신앙을 지켰습니다.
또한 이 장면을 보면 우리는 오늘날 많이 나타나는 고부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신앙임을 깨닫게 됩니다. 시어머니에게 진짜 신앙이 있으면 며느리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가장 훌륭한 시어머니가 될 것이고, 며느리에게 진짜 신앙이 있으면 시어머니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가장 훌륭한 며느리가 될 것입니다.
룻은 그 신앙심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고, 물질도 포기하고, 재혼도 포기하고,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과 모압은 언제 다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신앙을 위해 자기 동족을 버릴 각오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축복을 내리시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요새 사람들이 세상적인 것을 조금 더 얻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좋은 유치원에 들어가려고 밤을 새워 줄을 서고, 전 국민이 판교 아파트 당첨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그처럼 돈을 얻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얻으려고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예배에 힘쓰고, 더 기도하고, 더 말씀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더 선교에 동참해야 합니다.
때로는 룻처럼 하나님을 잘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때문에 다른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사람에게 그가 포기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축복과 신비한 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4. 결심(決心)
룻의 선택은 사실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젊은 여인이 자신의 꿈과 환상을 포기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룻 당시에는 꼼짝없이 수십 년 과부생활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래도 룻은 그 어려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도 선택의 순간에는 항상 룻처럼 편한 길보다는 힘든 길을 택하고, 넓은 길보다는 좁은 길을 택하고, 나에게 유익이 되는 길보다는 남에게 유익을 주는 길을 택하고, 인간적인 동기가 아닌 하나님의 사명을 생각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르게 선택한 후에는 그 선택한 것을 단호하게 밀고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살면서 좋은 선택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선택한 것을 끝까지 고수하는 것입니다.
본문 17절 말씀을 보십시오.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아주 확고한 결단입니다. 룻은 자기의 선택을 고수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한 신앙을 다짐했습니다.
요새 어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가는 곳이라면 천국도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평소에 얼마나 시어머니에게 한이 맺혔으면 그런 말이 나오겠습니까? 그러나 룻은 반대로 시어머니가 죽는 곳에서 자기도 죽어 장사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단호한 룻의 말에 나오미는 더 이상 고향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그처럼 아무 유익도 없지만 한번 선택한 방향을 밀고 나가기로 굳게 결심하고 베들레헴으로 떠나는 룻의 모습을 보십시오. 얼마나 복된 모습입니까?
누가 주님의 은혜를 받습니까? 주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꼭 나타나는 공통적인 삶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호하게 옛 삶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옛 삶을 떠나고 잘못된 자리를 떠난다는 것은 두렵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단호하게 결심하고 떠나면 하나님께서 앞에서 이끄시고, 뒤에서 호위해 주실 것입니다.
매일 새벽기도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잠의 유혹'을 떨치고 나오길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겨울 새벽기도의 맛은 꿀맛입니다. 집에서 나오면 찬바람이 살갗에 닿습니다. 고난입니다. 그때 교회에 들어서면 따뜻한 기운과 함께 고난을 이긴 승리자의 맛을 느낍니다. 게다가 눈보라까지 몰아치면 새벽기도의 맛은 더욱 꿀맛입니다. 제가 청년 때 가장 잊지 못할 일은 눈보라치는 길을 뚫고 변함없이 새벽에 교회에 나갔던 일입니다.
모든 삶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따뜻한 아랫목을 떠나지 못하면 영혼이 상쾌해지는 맛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사십일 동안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인생의 결정적인 변화를 위해서 편안한 일상의 삶을 떠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항상 안주의 유혹과 옷자락을 잡아채는 죄의 손길을 뿌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편안한 자리를 떠날 때, 우리는 홀로가 아닙니다. 바로 그때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권력 앞에서 단호히 죽음을 택했던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던져졌지만 그 풀무불 속에서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걷고 계셨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잘못된 모습을 과감히 버리면 주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에게 새로운 은혜 체험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 좋은 일은 단호하게 하십시오 >
요새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 사실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밖에 나가면 목사인 척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목사로 알아주면 얼마나 행동이 불편한지 모릅니다. 그래도 가끔 로만 칼라가 있는 목사 옷을 입고 밖에 나갑니다. 그러면 절대 차 새치기를 못합니다. 얼굴도 항상 밝은 얼굴을 해야 하고, 모든 언행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처럼 세상에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요즘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믿음의 길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뜻의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일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일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 일에 관심이 없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은 우리 일을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단호하게 하나님의 일을 밀고 나가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성수를 하고, 말씀과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일을 하고 남는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내 힘을 먼저 하나님 일에 드려야 합니다. 그처럼 해야 할 것은 과감히 하고, 끊어야 할 것을 과감히 끊어야 합니다.
왜 삶의 고통이 생기고 기도제목이 생깁니까? “끊을 것을 끊으라!”는 하나님의 싸인 입니다. 왜 삶의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됩니까? 위기는 우리가 꼭 끊어야 할 것을 끊는 아주 좋은 기회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둠의 행실을 버리지 않는 한, 세상에서 어떤 성공을 거두든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밝은 길로 나아간다면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입니다. 항상 굳은 결심을 가지고 따뜻한 아랫목보다는 주님의 일을 위해 단호하게 수고의 짐을 지는 삶을 살아서 축복을 예비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이한규목사(분당 샛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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