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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

창세기 복음............... 조회 수 3003 추천 수 0 2011.03.15 19: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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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2:1-25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

창세기 2: 1- 25

 

  어느 날 아담은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갑자기 갈비대 하나가 그 몸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브가 만들어졌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신 것이죠. 아담은 너무나 예쁜 이브를 보았습니다. 마음이 무척이나 감동되고 황홀했습니다.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

 

뼈들 중에 가장 중요한 뼈를 희생했습니다. 곧 아담의 뼈가 함께 섞여진 한 몸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아담은 자신의 뼈가 하나 사라진 사실 때문에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결혼은 하나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결혼은 제일 중요한 부분을 나누는 것입니다. 결혼은 생명을 지탱해 주는 뼈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랑의 관계는 나누는 관계입니다. 건강한 사랑은 가장 소중한 것을 기꺼이 베푸는 것입니다. 나누어진 뼈는 서로의 건강과 생명을 지탱해 줄 것입니다. 아담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준 뼈 때문에 자신의 자존심이 상하거나 모자라거나 비틀거리진 않았습니다. 서로 나눔으로, 서로 헌신하므로, 서로 섬기므로 더욱 아름다운 하나가 될 것입니다. 소중한 헌신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욱 아름답게 만듭니다. 소중한 헌신은 더 값진 것을 만들어 냅니다. 소중한 헌신은 서로를 만족케 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 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19:5-6)

 

  이 장은 인간 타락을 설명하기 위한 서론적인 장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신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고귀성과 존엄성을 분명하게 부각시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생명나무와 선악과 나무에 대한 언급은 인간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순종해야 함을 강력히 주지시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할 때 가장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순종과 불순종이라고 하는 주제는 향후에 전개되는 인간 역사의 복과 화를 결정짓는 근본적인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본 장을 통해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을 통한 가정제도도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처음서부터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근거한 것으로서 인간을 위한 가장 선한 제도로 두신 것임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 2, 3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어떤 목사가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전 세계에 단 한 그루의 장미만 창조하셨더라면 세계 사람들은 그것을 보려고 몇천 마일을 여행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몇천만 그루의 장미를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장미에 그리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단 한번만 축복해 주신다면 우리는 그것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평생 그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등한시하는 것이다."

주일 선물에 대하여도 그렇습니다. 그분이 1년에 52주일이나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흔히 이 중대한 은사를 배반하고 감사할 줄 모를 뿐 아니라, 그 날을 잘못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온 우주의 창조 사역을 완성하신 하나님께서는 7일째 되는 날 안식하셨습니다. 이 안식은 하나님의 능력에 이상이 있어서 취하신 휴식이 아니라 이제부터 새로운 형태의 피조물을 다시 만들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공식 선언인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안식이 필요 없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단지 하나님의 안식은 창조 사역의 완성이 있었기에 7일째 되는 날을 기념하고 거룩히 구분하기 위한 안식이었습니다.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의 날이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레23:3)

 

  본문 7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본 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에 대해서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인간이 흙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아무리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다 해도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라 흙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교만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그 능력을 입혀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흙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 된 것이 아닙니다. 흙에 불과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존귀로 관을 씌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비천함과 연약함을 늘 기억하고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섬겨야 합니다.

인간이 흙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또 인간의 마지막 운명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것들이 온 곳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전3:20)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 달려 있으며, 하나님을 떠나면 언제든지 티끌처럼 날아가 버리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3-14)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늘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흙으로 돌아갈 우리를 위해 영광스런 부활을 예비해두셨습니다. 부활할 때 우리는 흙으로 지음을 받은 이 육체와는 전혀 다른 영광스러운 몸을 입게 됩니다. 우리의 몸은 흙에서 왔으나 주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이 땅에 오셨습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전15:47) 그 날에 우리는 주님처럼 영광스러운 신령한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15:49)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얼마나 은혜롭고 아름답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 '생령'이란 말은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셨다는 말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부모를 통해서 이 땅에 태어나지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므로 우리는 단순히 흙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이성과 인격과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부어주셨습니다. 여기에 인간의 존귀함과 가치가 있습니다. 사람은 비천한 존재임과 동시에 존귀한 존재입니다.

사람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생기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육신과 영혼을 가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어야 하고, 피곤하면 쉬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육신의 양식만 가지고는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혼을 가진 사람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이 없다면 그 영혼은 죽어가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멀어지게 됩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영혼의 양식인 말씀은 등한시하고 육신의 양식만을 위해서 수고하며 바쁘게 사는 사람은 없습니까? 사람에게 이보다 더 심각하고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금년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묵상하기를 힘쓰기로 다짐했습니다.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말씀을 붙들고 살도록 합시다. 우선순위를 확실하게 해두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 묵상하는 것이 일하는 것보다 우선이 되도록 합시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하고,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영혼이 강건해지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세워집니다. 육신의 양식만 위하여 살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늘 묵상하며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 8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그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셨습니다. 에덴동산은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가 풍성한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산 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이렇게 먹을 것이 풍성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또 물이 풍부했습니다. 동산에서 시작된 물은 4개의 큰 강을 이루었습니다. 우리는 첫째 강인 비손과 둘째 강인 기혼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셋째 강인 힛데겔은 티그리스 강이며, 넷째 강인 유브라데스도 우리가 아는 이름입니다.

에덴동산은 먹을 것과 물이 풍부한 곳이었으며, 부족함이 없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참으로 낙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에덴동산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 하나님께서 사람을 동산에서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다시는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 후로 에덴동산은 잊혀진 동산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우리에게 낙원을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실 낙원은 에덴동산보다 더 복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제 모든 것이 완전하게 갖추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고, 그 모든 것을 다스릴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하여 특별히 아름답고 완전한 낙원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그곳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이제 사람은 아름답고 부족함이 없는 낙원에서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 가운데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복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의도하신 모습이었습니다.

 

  본문 9절을 보겠습니다.

“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만드셨습니다. 사람은 이 완전한 낙원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주신 사명을 따라 모든 것을 다스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에덴동산은 인간의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왕국이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었습니다. 그 법은 두 그루의 나무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 두 나무는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나무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생명나무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나무들을 통하여 사람에게 계명과 약속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먼저 생명나무부터 살펴봅시다. 생명나무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생명나무자체에 어떤 신비로운 힘이 있어서 그 나무의 열매를 따먹기만 하면 무조건 그런 엄청난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나무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맺으신 언약이었습니다. 사람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흙에 불과한 인간에게 영원한 영광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이 생명나무가 다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2:7)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계22:1-2) 사람이 타락함으로 사라져버렸던 생명나무가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지키고 승리한 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영광과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에덴동산이 다시 회복될 것인데, 그보다 훨씬 영광스럽고 복된 낙원이 회복될 것입니다. 우리는 흙에서 온 육신을 입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출세를 해도 사람은 흙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얼마나 얻었고 누렸느냐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원한 그 낙원을 바라보며 준비해야 합니다. 세상에 빠지지 말고 믿음으로 잘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생명나무와 같은 언약을 다른 측면에서 보여줍니다.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흙에 불과한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경고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자체에 어떤 신비로운 힘이 있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나무 역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나타내는 표시였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사람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스스로를 하나님처럼 여기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뱀이 와서 하와를 유혹했을 때, 선악을 알게 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들렸습니다. 사탄은 바로 이것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처음에 사람은 에덴동산의 청지기로 만족했습니다. 그리고 완전한 기쁨과 만족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속에 교만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청지기로 사는 것에 만족할 수 없었으며 스스로 왕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선악을 안다는 것은 자기가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선과 악을 판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선이란 내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것이 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 악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의심 없이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스스로 선과 악을 구별하여 판단하기를 원하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선이고, 자기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악인 줄로 압니다. 그 결과 엄청난 불행이 오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무엇이나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처럼 큰 재앙은 없습니다. 갈수록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살기를 원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좋아지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더 많은 불행과 문제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맘대로 살게 됨으로써 나타나게 된 대표적인 현상 한 가지를 봅시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이혼이라는 말은 매우 생소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이혼율이 30%나 된다는 통계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40%라고 합니다. 젊은이들이 자기 맘대로 해버리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오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맘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비극을 가져오는지 모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메시지였습니다. 흙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절대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야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사는 사람은 티끌처럼 사는 사람들입니다. 혹시 당신이 티끌처럼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결국 티끌과 같이 덧없고 허무하며 곤고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은혜를 주십니다.

 

  본문 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선하고 아름답게 창조하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들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으며,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셨습니다. 사람은 존귀하면서도 티끌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할 때 사람은 그야말로 존귀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임의 은혜가 없다면 사람은 흙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돈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지위가 높다해도 사람은 티끌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서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그 은혜를 힘입어 살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하여 에덴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과실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이 풍부하여 에덴으로부터 시작된 물줄기가 네 개의 큰 강을 이루어 흘렀습니다. 에덴동산은 아름답고 완전한 낙원이었습니다. 그곳은 완전한 평화와 기쁨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에덴이라는 뜻은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에덴동산은 기쁨의 동산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이 아름다운 곳에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들을 다스리며 복되게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여기에 사람의 사명과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족함이 없는 낙원인 에덴동산에서 날마다 즐기며 놀게 하신 것이 아니라 일하게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일한다는 것은 고되고 힘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큰 기쁨이며 즐거움이며 보람이며 축복이었습니다. 사람이 타락한 후 노동은 고통과 수고를 동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의 노동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청지기였던 것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아니면서 주인으로부터 대부분의 권한을 위임받아 주인의 집을 다스리는 종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는 사명과 책임을 부여받았습니다.

여기에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자연을 다스리며 지키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들은 자연을 두려워하며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해와 달과 별을 신으로 알고 숭배합니다. 산과 바위와 나무를 숭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동물들을 신으로 알고 숭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돼지 머리를 갖다놓고 절합니다. 사람이 자연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며, 자연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다스리며 돌보아야 할 대상인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대로 자연을 잘 다스려왔습니까? 그렇지 못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자연을 잘 다스리고 돌보지 않고 착취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자연을 파괴하고 훼손시켜왔습니다. 많은 동물과 식물들이 멸종되었으며, 생태계가 파괴되는 결과가 오게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자연이 파괴되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 사명 때문에 환경보호론자들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벌금을 물기 때문에 쓰레기를 안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휴가철이 지나면 전국토가 쓰레기로 몸살을 앓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생각 없이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연을 잘 돌보며 가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놀랍고 엄청난 피조물들 중에서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 중에서 가장 훌륭한 걸작품이며 창조의 면류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시며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이나 태양이 아니라 바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어떤 것들보다 사람에게 가장 관심을 가지고 계시며,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십니다.

 

  본문 18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영국의 정치가 비스콘필드에게는 현숙한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언제나 그와 함께 다니며 그에게 조금도 불편함이 없도록 신경을 써 주었습니다. 그가 수상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의회에 나가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도 그녀는 함께 동행하였습니다. 남편이 연설을 하는 동안 아내는 방청석에 앉아 확신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그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스콘필드는 아내의 손에 붕대가 감겨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니, 웬일이오?" 그러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아까 당신이 차에서 내릴 때 문을 너무 세게 닫는 바람에 조금 다쳤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꽤나 아팠을 텐데 왜 아까 말하지 않았소?" "그거야 당연하지요. 어찌 나라 일을 논하러 가는 당신에게 제 상처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릴 수가 있겠어요." 그녀는, 주님께서 일찍이 여자를 남자의 돕는 배필로 창조하셨던 그 창조의 의도에 충실했던 여인이었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엡5: 22, 23)

 

  본문 23, 24절을 읽겠습니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첫 번째로 만들어 주신 공동체가 바로 가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만 있는 것을 보기에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너는 외롭다. 짝이 한 사람 더 있어야 되겠다.” 말씀하시면서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그렇게 약속하십니다. 이 과정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시고 이 자연 만물의 아름다움을 그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자연 만물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아담의 마음속에 있는 외로움과 고독을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다음에 만들어 주신 것이 새였습니다. 동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뛰놀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의 외로움은 없어지지 않았고, 행복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담을 돕는 배필로 여자를 만들어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함께 하나 될 수 있고, 지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감정적으로 서로 넉넉히 포용할 수 있고, 육체적으로 하나 되는 파트너를 만들어 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너무나 뿌듯해 하십니다. 홀로 있을 때는 보기가 좋지 않다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야, 보기가 정말 좋구나!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이 너무나 좋다!” 그렇게 우리 하나님께서 찬탄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만나서 결혼의 삶을 사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결혼을 만들어 주셨을까요? 결혼을 통해서 우리 사람들이 행복과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본문 말씀 창세기 2장 22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한 후에 그 갈비뼈로 여인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담아! 내가 네 짝을 만들어서 에덴동산에 숨겨 놓았다. 한번 좀 찾아보렴.” 친히 여인을 아담에게로 데리고 오셨습니다. 여러분, 결혼식에 참석해 본 경험을 떠올려 보십시오. 신랑이 먼저 입장하고, 신부가 사랑하는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신랑이 있는 곳까지 와서 신부의 아버지가 신랑에게 사랑하는 딸을 인계해 줍니다. 이 모습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창세기 2장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와를 붙잡고 그를 이끌어서 아담에게로 데리고 오는 역할을 하십니다. 그를 이끌어서 아담에게로 데리고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중매쟁이 역할을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아름다운 가정을 꾸미는 것을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하나님의 고귀한 사건이라고 우리들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 서로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게 될까요? 창세기 2장 23절을 보면 아담이 하와를 보자마자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합니다. “너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 사랑의 노래를 부르리라.” 나와 너의 고백입니다. 친밀한 고백입니다. 너는 나의 사랑이라고, 여인을 보면서 기쁨과 사랑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결혼이, 이런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이 어느 순간 갑자기 멈추게 되는 것일까요? 이 사람이 없으면 평생 살 수 없다고 그렇게 야단법석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이 사람과 나는 아무 상관이 없노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왜일까요?

심리학자들은 결혼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처음 단계는 연애할 때와 결혼 초기로 ‘밀월 단계’라고 합니다. 배우자들은 서로 보기만 해도 ‘아, 저 사람은 나를 이해하고 있구나! 나도 저 사람을 잘 이해하고, 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매우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취향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하는 것마다 서로를 잘 용납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에 푹 빠진 그런 경우입니다. 그래서 서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그녀)는 나의 모든 기대를 알고 있고, 나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헤아리고 있다.” 여러분, 이런 단계가 얼마나 갈까요? 우리 성도님들은 얼마나 오래 가셨습니까? 지금도 이렇습니까? 그런 분들은 훌륭하신 분들입니다.

결혼의 두 번째 단계는 단점과 문제점이 보이는 단계입니다. 보통 옛날에는 결혼한 지 3년 정도 지나면 이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고 했는데 요즘은 스피드 시대가 되어서 그런지 결혼 첫날부터 이런 단계에 접어드는 사람이 종종 생기곤 합니다.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점과 단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성격과 성품에도 문제가 발견됩니다. 화를 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기적이고 욕심쟁이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거짓말을 합니다. 무례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인격적으로 난폭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때로는 폭력까지 휘두릅니다. 술 취한 모습도 보게 됩니다. 이러면 먼저 부드럽게 상대방을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때로는 조소하기도 합니다. 애원하기도 합니다. 마침내 위협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다 마지막 한계에 도달하면 “나는 도무지 이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어!” 그러면서 결혼의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결혼의 세 번째 단계에 접어들면 마음속에 분노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비판합니다. 더 이상 행복하기를 포기하게 됩니다. 비통한 마음이 듭니다. 원한이 듭니다. 속았다고 생각합니다. 반항하기 시작합니다. ‘내 남편은 내가 믿었던 그런 남자가 아니었어!’ ‘내 아내는 내가 생각했던 그런 여자가 전혀 아니었어!’ 하고 마음속에 가졌던 상대를 향한 기대를 다 저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말다툼이 시작됩니다. 결국에는 이 사람과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이혼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결혼이란 하나의 예술품과도 같습니다. 나의 정성과 나의 기도와 나의 마음, 그 모든 것을 쏟는 만큼 우리의 결혼은 아름답게 예술 작품처럼 우리 삶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가까이 있는 이 사람, 함께 사랑하면서 살아야 할 사람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엡5:33)

 

  본문 25절을 보겠습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미국의 강철왕으로 유명한 카네기는 엄청난 대 재벌이기도 했지만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이였습니다. 그의 가족이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처음 이주해 왔을 때에는 매우 가난하여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책상보 장사를 했고 어머니는 하루에 열여섯 시간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카네기 자신도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청소부 노릇을 했습니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면 어머니는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내의를 빨아 난로에 말립니다. 내의가 한 벌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생하는 어머니가 몹시도 안쓰러웠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맹세합니다.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실 때까지는 결혼하지 않겠다.' 그는 정말로 그로부터 40년 후인 52세에 결혼을 하여 60세에 첫 아들을 낳았습니다.

부부가 된다는 것은 과거의 가난이나 연약한 점이나 수치스런 일 등을 모두 고백하고 서로 간에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타락 전 하나님의 거룩한 영의 형상으로서 온전히 창조된 아담과 하와의 순결한 영육은 부끄러움을 몰랐습니다. 수치심은 타락과 더불어 느끼게 된 것입니다. 즉 부끄러움은 인간타락의 결과로서 원초적 성결의 상실감에서 오는 부자연스럽고 불안정한 정신상태의 양상입니다.

“남편된 자들아 이와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벧전3:7)

 

  하나님은 실로 위대한 예술가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조성하실 때 하늘이 그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솜씨를 드러내듯이 그 우주 위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셨습니다. 땅과 바다를 채우게 될 피조물을 만드실 때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한 피조물만은 즉 인간만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습니다.(창 1:26~27).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다른 모든 생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고유한 본질을 가진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본성에 인격적, 도덕적, 영적, 그리고 신체적 자질과 능력을 부여하심으로 모든 인간이 하나님 자신을 닮도록 하셨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은 모든 인간이 그러한 능력과 은사들을 가지고 하나님과 이웃, 그리고 다른 피조물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선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기뻐 원하셨습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들의 이러한 인간됨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인간은 몸을 통하여 자신의 실재를 확인하고, 사랑과 기쁨 등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땅을 정복하고 다스림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성육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신성 뿐 아니라 인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참된 형상을 보여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전(고전 6:19)인 우리의 몸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 온전히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후에 바로 연이어 그에게 세상에 대한 지배권을 부여하신 사실(창 1:28)은 인간의 고유한 위치와 책임을 잘 말해줍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모든 창조세계와 피조물들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관리하고 다스릴 수 있는 청지기적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삶에 의도하신 선한 목적이 가장 충만하게 표현된 모습을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참된 "하나님의 형상"(고후 4:4, 골 1:15)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올바른 삶은 무엇인가를 성경적으로 규정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삶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하면 과연 하나님과 이웃 그리고 자연 만물을 향하여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는가를 규정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와 순종의 관계, 이웃과의 참된 사랑의 관계, 그리고 만물에 대한 통치의 관계 속에 사셨습니다. 이러한 삼중적 관계 속에서 그 역할을 다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또한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나타내는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 기도: 창조주 하나님 그리고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시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가 때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섭리를 깨닫지 못하고 불순종하고 낙심한 적이 많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 불신앙의 요소들을 제거하여 주옵소서.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며 살게 하소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우리 가정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가정이 되게 하시고 서로 사랑하고 헌신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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