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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전1:1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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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전도서(4) 인생은 영생의 리허설 (전도서 1장 12-18절)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은 ‘조용한 자포자기’의 삶을 삽니다. 휴가, 여행, 탈선, 외식, 명품소유, 여흥도 큰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짧은 흥분이 끝나면 피할 수 없는 단조로움이 또 찾아옵니다. 솔로몬은 해아래 괴롭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12-13절). 전도서에서는 인생이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14절)는 표현을 10번이나 씁니다. 특히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더욱 인생의 허무를 절감합니다(15절).
솔로몬 왕은 원하면 마음껏 다양한 쾌락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는 궁전에서 낮이건 밤이건 육욕을 채울 수 있는 1000명의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쾌락이 끝난 후에는 동일한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것은 쾌락으로 만족이 없다는 것입니다. 순간적인 황홀한 경험만이 괘락이 주는 유일한 만족이었지만 그 만족은 오직 순간으로 끝났습니다. 또한 지혜가 주는 만족도 역시 얼마 가지 않았습니다(16절).
지혜는 지식보다 중요합니다. 지식은 인생의 질(quality)을 높여도 인생의 가치(value)는 높이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일류 대학을 나오지 못해도 지혜롭게 잘 삽니다. 인생은 지식의 경쟁이 아닌 지혜의 경쟁입니다. 학교에서의 1등이 사회에서도 1등은 아닙니다. 지식이 없으면 지식 있는 사람을 월급주고 쓰면 됩니다. 그처럼 지혜가 중요하지만 솔로몬은 그런 인간적인 지혜도 허무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17-18절).
왜 솔로몬의 지혜가 평안을 주는 거룩한 지혜가 되지 못했습니까? 솔로몬은 왕실의 최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아버지 다윗이 신실했기에 신앙교육도 잘 받았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지혜를 받았습니다. 열왕기상 4장 29-34절 말씀을 보면 그의 지혜는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났고 잠언을 3000개 말했고, 1005개의 노래를 지었고, 식물학, 동물학, 조류학, 어류학까지 다방면의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혜로운 사람이 어떻게 말년에 그토록 무섭게 타락합니까? 그의 지혜가 이론적인 공부를 통해서 얻어진 지혜였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다윗은 솔로몬처럼 지식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의 지혜는 고난의 체험을 통해서 얻은 지혜였기에 그 수명이 길었습니다. 그처럼 문제와 기도제목과 고난의 체험이 지혜롭게 신앙으로 잘 극복되면 앞날에 더욱 큰 축복의 기초석이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세상적인 소유와 지위로 만족을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 인생은 영생의 리허설 >
옛날에 TV가 처음 나왔을 때 채널은 2-3개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TV 앞에서 좋지 않은 화면을 보며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지금은 채널이 100개 가까이 있어도 옛날에 TV를 볼 때 느꼈던 즐거움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많은 소유가 현대인을 결코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단적인 예입니다.
역사에 기록된 아주 중요한 사람들 외에 대부분의 부자나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들을 일반 사람들은 거의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너무 성공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현재의 소유와 지위를 가지고 너무 우월감을 가지지도 말고 너무 열등감을 가지지도 마십시오. 죽으면 한두 세대만 지나면 다 잊힙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시간과 능력과 지위로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이루며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교만이 틈타려고 하면 앞으로 자신이 죽은 직후에 어떻게 될지를 잠깐 상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때 자녀들이 무덤에 관을 묻거나 화장한 뼈를 병에 담아 안치할 것입니다. 그리고 귀가 도중에 식사하려고 갈빗집에서 LA갈비를 뜯고 여러 가지 담소를 나눌 것입니다. 그때부터 자신의 존재감은 점점 사라집니다. 그것을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허무한 모습입니까? 그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성공과 소유와 쾌락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떻게 인생을 정말 보람 있게 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애쓰면서 영생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결국 인생은 영생을 준비하는 리허설과 같습니다. 영생에 비하면 인생은 점과 같습니다. 그 영생을 잘 준비하는 것이 인생의 존재이유입니다. 그런 준비가 없으면 아무리 잘 살아도 그 인생은 낭비하는 인생입니다. 어떻게 영생을 잘 준비할 수 있습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십자가’입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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