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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보라 .....

사도행전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413 추천 수 0 2011.05.07 23: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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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3:1-10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10·02·19

초대 교회에 임하신 성령께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누가는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2:43) 본문에서 누가는 그 중에서 특별하고 대표적인 한 예를 들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제 구시 기도 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다가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한 앉은뱅이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이 일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라자, 베드로는 여기서 다시 그의 두 번째 설교를 시작합니다. 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오천 명이 회개하는 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하여 초대 교회는 큰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박해로 인하여 교회는 다시 모여서 기도했으며, 다시금 성령께서 교회에 충만하게 임하셨습니다.

교회 -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속하는 그의 몸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으며 이제는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몸은 이제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여전히 세상에 계실 때와 같이 지금도 계속해서 이 땅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물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서입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를 일으킨 베드로와 요한은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지체들로서, 그리스도의 뜻대로 일하는 능력의 도구였습니다. 이 땅에 계실 때 수많은 병자들과 연약한 자들을 고쳐 주시던 주님께서 그날 베드로와 요한을 통하여 그 분의 능력을 다시 나타내셨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계속해서 일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능력 있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까?

세상에 계실 때 주님께서는 많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주님께서는 말씀을 전하시기 위하여 이적을 행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이적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보여 주었으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이 진리의 복음임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하신 일들 중에서 이적들은 부수적인 것들이었으며, 본질적인 것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잘 깨닫지 못하면서 이적만 보고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오늘 우리에게도 남아 있습니다. 교회에는 필요할 때에는 이적도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늘 이적만을 사모하며 추구하는 것은 건전한 일이 못됩니다. 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것은 이적이 아니라 말씀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계속해야 하는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은 말씀 사역입니다.

기도 시간에

이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 때는 제 구 시 기도 시간이었습니다.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1절)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으로 들어가다가 이 앉은뱅이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아침 9시와 정오, 그리고 오후 3시). 여기 구시는 오후 3시를 가리킵니다.

초대 교회는 쉬지 않고 기도하기에 힘쓴 교회였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살펴 본 바 있습니다. 이렇게 정해진 시간에 모여 합심해서 기도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기도에 힘썼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늘 기도하는 생활도 중요하며, 특별히 정해진 시간에 합심해서 기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새벽 기도와 심야 기도회에 참여해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도 훈련이 안된 분들은 특히 새벽 기도에 나와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해야만 살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힘이 없고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기도해야 세상과 싸워 이기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열심히 봉사하고 전도하고 충성하기로 늘 다짐하지만 잘 안 되는 이유는 기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생활이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기도와 예배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청년이 직장에 다니는데, 새벽부터 나가서 밤늦게 돌아오기 때문에 도무지 기도하고 성경 읽을 시간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청년은 이렇게 결심을 했다. “점심을 먹지 말자!” 얼마나 단호하고 뜨거운 결단입니까? 그는 점심시간을 아껴 가면서 회사의 캄캄한 창고에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향해서 문을 닫아 버리고 내 사랑하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서 저는 삶의 활력을 얻습니다.” 당신은 바쁘고 피곤한 생활 속에서도 기도하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초대 교회의 능력, 앉은뱅이를 일으킨 베드로와 요한의 능력은 기도를 통하여 주님께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우리는 본문에서 환상의 콤비네이션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기가 막힌 콤비였습니다. 사도행전에서 그들은 거의 항상 함께 나타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홀로 가는 종교가 아닙니다. 함께 모이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교제하는 종교입니다. 혼자서 기도 많이 하고 혼자서 성경 많이 읽는데, 다른 사람들과는 교제할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성경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십시오.

본래 베드로와 요한은 매우 대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아주 적극적이고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항상 앞에 나서고 있는 베드로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바다 위로 걸을 때, 신앙을 고백할 때, 주님께서 너희가 다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실 때, 제사장들이 하속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을 때 …). 요한은 주님께서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실 만큼 성격이 급하고 괴팍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주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그가 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눅9:54) 자, 이런 두 사람이 만났으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이 두 사람은 너무나도 잘 맞는 짝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어떤 문제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가 제자들 중에 가장 연장자였다면 요한은 막내였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에게는 세대 차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서신을 보면 신앙적으로도 기질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강하고 도전적이었던 반면에, 요한은 신학적이고 사색적이며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함께 사역하는 데 어떤 문제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서로 보완하고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콤비네이션을 이루었습니다.

교회가 바로 이런 곳입니다. 여러 가지로 다른 사람들이 모였으나 오히려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 더욱 효과적으로 주님을 섬기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것은 마치 온갖 아름다운 보석이 모여서 완전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다 같은 사람들이 모였다면 얼마나 재미없고 단조롭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각각 다르게 창조하시고, 서로 많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연합하여 주님을 섬기며 가정을 이루어 살게 하신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차이점 때문에 불편해 하고 서로 다툴 것이 아니라 각 지체의 특징과 차이점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다양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매우 복된 선물입니다.

내게 있는 것

이 두 사람이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에 들어가려 할 때 구걸하기 위하여 미문에 앉아 있는 앉은뱅이를 보았습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2절) 나면서 앉은뱅이였던 이 사람은 40세였는데, 아마도 수십 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는 아무 소망도 갖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고침을 받는다든지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예배하거나 기도하는 일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고, 오직 예배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에 급급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 날 그 앉은뱅이를 처음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 사람이 거기 앉아 있는 것을 늘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날 베드로와 요한은 이 사람에게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이 사람을 주목하면서 베드로는 “우리를 보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아마도 사도들이 돈이라도 줄 것이라 기대하면서 그들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첫 마디를 듣는 순간 이 사람은 실망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서 베드로는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의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일어나 걸으며 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7-8절)

비록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가 기대했던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그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이름이었으며, 그리스도의 능력이었습니다. 비록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해도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좋은 것을 다 가진 사람이라 해도 그리스도를 모시지 못한 사람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프란시스가 걸식 수도단을 만들어 허락을 받기 위하여 교황청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교황이 많은 보화가 쌓여 있는 창고를 보여주면서 “이제 우리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라고 말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프란시스는 조용히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고 말할 능력도 없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중세는 많은 권력과 물질을 가졌으나 예수님을 잃어버림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무능한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소망이시고 구원이시고 능력이시며,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믿음으로 문제에 도전하는 교회

능력 있는 교회는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문제에 도전하여 그것을 이겨내고 해결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문제에나 무모하게 달려들어서 실수를 하지도 않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날 앉은뱅이를 처음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그들을 준비시키시고 인도하실 때까지 그들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제대로 포착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가 문제를 바로 다루며 성령께서 주시는 기회를 제대로 포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베드로와 요한이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깨닫고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인간적인 방법도 동원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크게 소리를 질러서 손뼉을 치며 찬송해야만 능력이 나타나는 것처럼 생각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에게서 전혀 이러한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문제는 소리가 크냐 작으냐에 있지 않고 오직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데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려면 말씀을 확실히 붙잡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만 합니다.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성령께서 감동하시고 역사하셨으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성령께서 역사하셨는데, 성령은 여기에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이름 뒤에서 역사하셨습니다. 사도들도 오직 주님의 이름 뒤에서 일했습니다.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이어지는 설교를 통해서도 이 일은 자신들이 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16절)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역사하시며, 우리도 모든 일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 한다는 진리를 잊지 마십시오.

이 이적의 영적인 의미

나면서 걷지 못했던 사람이 일어난 이적은 영적으로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세상과 인류를 가리키는데, 세상과 인류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과 같은 존재입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과 같이, 죄인은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와 같은 세상을 치유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죄와 저주 가운데서 고통하며 신음하는 세상을 근본적으로 치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합니다.

교회는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할까요?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합니다. 교회는 상처받고 지치고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 일으켜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이러한 사명을 감당하려면 자신이 먼저 앉은뱅이가 아닌지 점검해야 합니다. 뜨겁게, 열심히 기도함으로 자신이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하나가 되어 동역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문제를 향하여 과감하게 도전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고, 세상을 치유하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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