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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출16:22-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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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
우리는 주일날 예배를 드리며 기쁨의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주일성수의 문제는 때때로 성도들에게 하나의 짐이 되기도 합니다. 첫째는 부득이하게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주일날 생업을 해야 하는 경우입니다.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주일성수를 하지 못하고 있으며 신실한 그리스도인일수록 큰 마음의 짐을 느끼고 삽니다. 둘째는 주일에 대하여 자유롭게 사시는 분들입니다. 주일과 안식일이 다른데 왜 안식일에 대한 구약의 율법을 지키느냐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개혁이후 서기관과 율법학자들은 안식일을 범하지 않기 위해 모든 종류의 농업이나 상업이나 가정생활의 일상적인 노동을 금지하는 39개조의 법을 공식적으로 정하였는데 그것을 지켜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전쟁이 일어났는데도 무기를 들지 않고 죽음을 택했는데 그렇게 해야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안식일 성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6번의 공격을 받았는데 우리가 안식일을 그대로 지킬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율법 폐기론을 주장하며 주일을 자유롭게 지내는 사람들입니다. 셋째 부류는 신앙이 연약하신 분들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으로 막연히 주일 성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휴식과 놀이를 위해 야외로 나가면서 그래도 약간의 죄책감을 가지고 사는 경우입니다. 우리는 오늘 만나와 안식일의 관계를 통하여 주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지키길 원하는지 교훈을 받기 원합니다.
1. 하나님은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고 복 주신 날로 지키시기를 원하십니다.
만나를 거둘 때 하나님이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을 봅니다. 22절을 보십시오. 평일 때는 아침마다 각기 식량을 거두웠는데 여섯째날은 각 사람이 두 배를 거두어들이게 하였습니다(22). 단지 만나 거두는 것이 아니라 미리 굽고 삶아 놓으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날은 이렇게 해 놓으면 모두 상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냄세도 나지 않고 벌레도 생기지 않았습니다(24) 왜 하나님은 안식일 날 거두지 말라고 했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기 때문입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안식하였는 즉”입니다. 26절을 보십시오. 같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 7일째 안식하셨습니다. 여기서 쉬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처럼 휴식을 취했다는 말이 아니라 천지 창조사역을 완성하시고 창조사역을 멈추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날에 대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성경 창세기 2장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 2:3)” 출애굽기에서도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20:11)”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인간도 이 안식에 동참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만나를 먹이시면서 그것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여기서 거룩하다는 말은 특별히 구별하여 다른 날과 차별화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이 날은 복된 날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으로 법제화하면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유익,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였습니다.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낙원을 인간에게 주시고 그곳에서 주신 복을 누리게 하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축복은 안식일 성수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날을 지키지 않으면 인생의 모든 질서는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출31:14-15을 보십시오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라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니라. 무릇 이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생명이 끊어지리라"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면 어떻게 됩니까?
이사야58장 13절에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하여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으리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주신 약속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이방인에게도 주신 약속입니다. 이사야 56:6-8을
보십시오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그렇다면 왜 우리는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까?
안식일의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마침과 완전 성취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눅 24:4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은 곧 구약 성경을 말씀합니다. 이 구약 성경에 예수님을 가르켜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면 살고 안식일을 죽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안식일의 요구를 다 이루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습니다(요19:30).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 10:4)”라고 말씀합니다. 율법에는 도덕법, 시민법, 의식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제사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번제를 드리지 않습니다. 당시 시민으로 살았던 시민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우린 지금 도피소를 만들지 않습니다. 바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고 율법의 마침이 되었다는 말은 바로 제사법을 다 이루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도덕법은 필요없습니까? 예수님 말씀합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 5:17)” 더욱 완성한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고 율법은 말씀하시지만 예수님은 미워하는 자마다 이미 살인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안식일 언약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새 창조를 완성이며 새 인생을 시작하게 하신 것입니다. 구속사역의 완성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 이 날을 주님께서 구속사업을 완성하신 날 즉 주의 날로(주일)로 시켰습니다.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던 제6일에(금요일)에 둘째 아담인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금요일 오전 9시부터 3시) 율법의 안식일 날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 아래 계셨습니다. 그리고 참 생명과 영원한 구원의 안식일을 주일을 부활의 날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담의 안식일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의로운 부활의 첫날 주일로 바뀌어 진 것입니다. 시118편에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없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의 기이한 바로다. 이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날에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라." 말씀하였는데 이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들어가다가 성전미문에서 앉은뱅이를 만나 고쳐주면서(행4장10-11절) 성령 충만하여 이 말씀을 인용해서 설교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셨습니다(마28:1). 부활하신 후 열 한 차례 나타났는데 여섯 번이나 안식 후 첫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요20:11-18, 마28:7 눅24:13-33 눅24:34, 요20:19-23, 요20:24-29)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자로 오셨고 부활로 그 율법을 완성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안식일의 완성실체입니다. 안식일은 장래 이루어질 주일의 모형이요 그림자였기 때문에 실체가 오자 그림자는 살아진 것입니다. 부활로 인하여 안식일이 폐지된 것이 아니라 완성된 것입니다. 사망을 정복한 날입니다. 율법의 노예로부터 해방시킨 날입니다. 모든 염려와 걱정으로부터 참 평안을 주는 날입니다. 영원한 천국 안식을 보장한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의 완성인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오순절 교회의 생일도 주일입니다.(행2:1-4) 고린도 교회는 안식 후 첫날 주일날 모였습니다(고전16:2) 성도들은 주일날 모여 예배드리고 떡을 떼었습니다(행20:7) 사도 요한은 주의 날에 성령의 감동을 받아 계시록을 기록하였습니다(계1:10) 주일은 거룩하고 복된 날입니다. 이 날을 구별하여 오늘날도 지킬 때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과 복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을 복된 날로 거룩한 날로 지킴으로 구속의 기쁨과 하늘나라의 평안과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주일을 안식하는 날로 지키시기를 원하십니다.
안식일을 어떻게 지키라고 말씀하십니까? 23절을 보십시오. 내일은 쉬어야 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29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쉴 수 있도록 나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준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했다는 것입니다. 30절을 보십시오. 그래서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안식일 날은 푹 쉬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생업을 위하여 일을 하지 말고 쉬라는 것입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엿새 동안은 거두어들일 수 있으나 이렛날은 거두어들이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거두로 나간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쉬기 위해 어떻게 합니까? 하루 전에 미리 예비하게 하였습니다(5,22,29). 여섯째 날 미리 음식을 갑절을 거두어 드리게 하였습니다. 그래도 상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모든 수고와 고통으로부터 쉬는 날입니다. “(사14:3)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너의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안식일과 주일이 영속성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재칠일 안식교는 불영속성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 폐기론 자들은 안식일 율법 역시 폐기되었기 때문에 구약에 지켰던 안식일 규례를 지키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아담에서 모세 때까지 안식일 지킨 흔적이 없었고 신명기 이후 1천여년 동안 안식일을 지킨 흔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10계명을 폐기했다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십계명 중 제 4계명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것입니다. 창조를 마치고 일곱째 날을 복주고 거룩케 하신 하나님은(창세기 2:2-3) 이 날을 십계명의 제 4계명으로 안식하는 날로 법제화시켰습니다(출20:8, 신5:12). 하나님은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신5:14)”라고 했습니다. 안식일과 주일은 영속성이 있습니다. 모형과 실체입니다. 그림자와 실물입니다. 우리는 주일날 무엇보다 안식, 쉼을 누려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죄와 구속의 필요성을 떠나 인간의 타락 이전에 제정된 창조 규례 네 가지는 “친자관계(창1:28), 결혼(창2:18-24), 안식일(창2:3), 노동(창2:15)”입니다. 이것들은 서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친자 관계 규례는 결혼 규례에 의존하고, 노동 규례는 안식의 규례에 의존합니다. 이런 것들은 인간 존재의 본질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은 단지 여가 선용이나 재충전을 위한 것이기 보다 모든 존재가 누려야 할 권리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숨 가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안식입니다. 일과 생산성이 삶을 지배하고, 한 사람의 생산성이나 성취가 사람의 가치로 평가되는 문화 속에서 생산과 성취를 위한 노동을 중단하고 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일을 안식의 날로 지키기 위해서는 끝없이 계속되는 생산을 위한 노력의 수레바퀴를 멈추는 안식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전략, 계획, 근심, 걱정, 긴장, 노력, 욕구, 폭력, 음란, 쾌락 등 끝없이 밀려오는 긍정적, 부정적 삶의 과제와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치고 안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쉼, 지적인 쉼, 정서적인 쉼, 육체적인 쉼, 사회적인 쉼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쉼은 낭비가 아닙니다. 글과 음악에도 쉼표가 있고, 조각에도 공간이 있으며, 그림에도 여백이 있듯이 인간에게 참된 쉼이 필요합니다. 활도 시위를 계속 팽팽히 당기고만 있으면 나중에는 쓸모없는 도구가 되고 맙니다. 가느다란 대나무도 마디가 있기 때문에 길고 강하게 자라납니다. 사람의 숨쉬기도 호(呼)와 흡(吸) 사이에 쉼이 있어 숨을 힘 있게 쉴 수 있습니다.
안식일은 생존을 위해 벌이던 잔혹한 싸움을 그치는 날입니다. 모든 갈등 행위를 멈추고 샬롬의 평안을 누리는 날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함께 평화를 누리는 날입니다. 모든 걱정과 두려움, 염려로 부터 해방되어 내면의 평안을 누리는 날입니다. 지친 영혼이 생수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힘을 얻고 기진해진 육체가 쉼을 통해 회복되는 날입니다. 최고의 우상인 돈으로부터 독립하는 날이며, 긴장으로부터 탈출하고, 지친 세상으로부터 영원한 안식을 맛보는 날입니다. 계획과 시간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고, 내면을 성찰하며, 노동과 수고로 부터 쉼을 얻고, 속된 것을 멀리하는 날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맡겨 형식적인 의무에서 벗어나고, 기술 문명의 우상들을 숭배하지 않으며, 이익의 노예가 되지 않고 이웃을 향해 사랑의 눈을 여는 날입니다. 예배를 통해 참된 속죄와 평안을 회복하고, 기쁨과 희망으로 일어나는 날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구약의 안식일 계명을 단순히 폐기하지 않고 넘어 완성하심으로 주일 안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습니다. 율법의 구속으로 부터 벗어난 참된 안식을 주시려고 오신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안식일이 법제화되면서 안식일의 쉼은 강제력이 있었습니다. 쉬지 않고 일하면 죽였습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 쉼은 자유의 영역에 속합니다. 우리 예수님 안에서 참 주일날 참 쉼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파스칼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가 앉아 휴식할 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모든 걱정과 근심을 다 주님께 맡기고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은 주일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됨을 증명하시길 원하십니다.
만나를 통해 하나님이 교훈해 주시는 것은 먹는 문제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생명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가를 테스트하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만나를 주신 이유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3)” 하나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삶과 죽음의 문제가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 신뢰하고 나가면 광야 사는 날 동안 매일 매일 하나님께서 만나로 먹을 것을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후 한 달 하루가 지난 2월 16일부터 가나안에 도착하여 그 땅 소산을 먹은 출애굽 41년 1월 15일까지 정확히 39년 11개월을 굶주리지 않고 먹을 수 있도록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만나를 주시면서 한 가지 시험을 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만나를 주시면서 안식일을 통해 언약을 지키는가 안지키는가 하나님이 테스트를 합니다(4).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시면서 안식일에는 거두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 중에 일부가 어떻게 합니까? 27절을 보십시오. 몇몇 사람이 거두러 나갑니다. 그러나 허탕을 치고 돌아옵니다. 아담과 하와도 에덴 동산에의 테스트에서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에덴을 상실하였습니다. 에덴동산으로 상징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안식일을 통해 테스트를 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는 바알과 아세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먹는 문제로 유혹하는 신입니다. 가나안 토착민들이 바알과 아세라가 비를 내려 주어 풍년을 주고 있다고 믿는 신입니다. 바로 하나님은 안식일을 통해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관계를 시험하는 날입니다(25-27) 결국 허탕만 치고 돌아온 그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언제까지 내 명령과 지시를 지키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처벌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시내산 언약을 체결한 후에는 엄청한 처벌을 하십니다.(민11:4-35, 민15:32-36) 이 시험을 통해 하나님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온갖 우상 숭배로 가득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주일을 주일답게 지키지 못하게 하는 시험거리가 무엇입니까? 무관심입니까? 무감동입니까? 무감각입니까? 욕심입니까? 믿음 없습입니까? 질병입니까? 가난입니까?
안식일은 언약의 표이고 언약준수의 시금석(출31:12-17; 겔20:10-26; 22:8,26 23:28)입니다. 출31장13절에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사이에 너희 대대에 표증이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알게 함이라 "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16~17전)
안식일을 하나님은 "표징"이라고 말씀합니다. 창9:12-16에 나오는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전 인류를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노아에게 맺은 언약의 표시였습니다. 창 17:9-14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함께 하시겠다는 언약의 표로 할레를 주셨습니다. 이러한 증표와 같이 하나님께서 또 다른 하나의 언약을 표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안식일을 언약의 표가 된다는 것을 계속적으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출 31:16에서 “안식일을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영원한 언약으로 삼으셨기에 도중에 폐기하거나 없어지지 않습니다. 안식일은 언약의 표징으로 영원합니다. 그 안식일은 주일로 영속성을 가지고 신약교회의 성도들에게 창조와 구원을 기억하게 하는 표징으로서 영원히 존속합니다. 바로 안식일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되듯 주일은 부활하신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평가하는 지료가 됩니다. 우리는 주일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일이 중심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받기 위해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 답게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왕이 잃어버린 아들을 찾았습니다. 그러면 왕자가 된 것입니다. 왕자가 되면 왕궁의 예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왕궁의 예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다시 거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왕자답게 살지 못하고 왕자로서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일을 어떻게 지키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거지처럼 사는가 하나님의 왕자답게 사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가난하면 우리는 더욱 주일을 잘지키면 하나님의 합격점수를 받아야 합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토요일이면 기도로 준비합니다. 주일이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는 모습이 얼마나 구별된 모습입니까? 말씀을 사모하는 시간을 가지고 말씀공부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중단해야 할 것을 중단합니다. 사회적일을 멈춥니다. 신령한 일에 관심을 가지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봉사에 헌신합니다. 구속 사역에 기쁨으로 동참합니다. 자선과 봉사의 일을 하면서 거룩하게 지냅니다. 구원의 공동체로서 기쁨의 교제를 나눕니다. 종말론적 기대 속에서 주님의 날을 사모하면서 기대합니다. 주일은 기쁨으로 지켜야 합니다. 영원한 안식의 소망을 가지고 지켜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9.9.13
1. 하나님은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고 복 주신 날로 지키시기를 원하십니다.
만나를 거둘 때 하나님이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을 봅니다. 22절을 보십시오. 평일 때는 아침마다 각기 식량을 거두웠는데 여섯째날은 각 사람이 두 배를 거두어들이게 하였습니다(22). 단지 만나 거두는 것이 아니라 미리 굽고 삶아 놓으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날은 이렇게 해 놓으면 모두 상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냄세도 나지 않고 벌레도 생기지 않았습니다(24) 왜 하나님은 안식일 날 거두지 말라고 했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기 때문입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안식하였는 즉”입니다. 26절을 보십시오. 같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 7일째 안식하셨습니다. 여기서 쉬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처럼 휴식을 취했다는 말이 아니라 천지 창조사역을 완성하시고 창조사역을 멈추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날에 대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성경 창세기 2장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 2:3)” 출애굽기에서도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20:11)”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인간도 이 안식에 동참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만나를 먹이시면서 그것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여기서 거룩하다는 말은 특별히 구별하여 다른 날과 차별화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이 날은 복된 날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으로 법제화하면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유익,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였습니다.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낙원을 인간에게 주시고 그곳에서 주신 복을 누리게 하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축복은 안식일 성수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날을 지키지 않으면 인생의 모든 질서는 무너져 버리는 것입니다. 출31:14-15을 보십시오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라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니라. 무릇 이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생명이 끊어지리라"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면 어떻게 됩니까?
이사야58장 13절에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하여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으리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주신 약속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이방인에게도 주신 약속입니다. 이사야 56:6-8을
보십시오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그렇다면 왜 우리는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까?
안식일의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마침과 완전 성취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눅 24:4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은 곧 구약 성경을 말씀합니다. 이 구약 성경에 예수님을 가르켜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면 살고 안식일을 죽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안식일의 요구를 다 이루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습니다(요19:30).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 10:4)”라고 말씀합니다. 율법에는 도덕법, 시민법, 의식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제사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번제를 드리지 않습니다. 당시 시민으로 살았던 시민법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우린 지금 도피소를 만들지 않습니다. 바로 율법의 요구를 이루고 율법의 마침이 되었다는 말은 바로 제사법을 다 이루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도덕법은 필요없습니까? 예수님 말씀합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 5:17)” 더욱 완성한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고 율법은 말씀하시지만 예수님은 미워하는 자마다 이미 살인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안식일 언약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새 창조를 완성이며 새 인생을 시작하게 하신 것입니다. 구속사역의 완성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 이 날을 주님께서 구속사업을 완성하신 날 즉 주의 날로(주일)로 시켰습니다.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던 제6일에(금요일)에 둘째 아담인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금요일 오전 9시부터 3시) 율법의 안식일 날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 아래 계셨습니다. 그리고 참 생명과 영원한 구원의 안식일을 주일을 부활의 날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아담의 안식일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의로운 부활의 첫날 주일로 바뀌어 진 것입니다. 시118편에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없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의 기이한 바로다. 이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날에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라." 말씀하였는데 이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들어가다가 성전미문에서 앉은뱅이를 만나 고쳐주면서(행4장10-11절) 성령 충만하여 이 말씀을 인용해서 설교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셨습니다(마28:1). 부활하신 후 열 한 차례 나타났는데 여섯 번이나 안식 후 첫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요20:11-18, 마28:7 눅24:13-33 눅24:34, 요20:19-23, 요20:24-29)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자로 오셨고 부활로 그 율법을 완성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안식일의 완성실체입니다. 안식일은 장래 이루어질 주일의 모형이요 그림자였기 때문에 실체가 오자 그림자는 살아진 것입니다. 부활로 인하여 안식일이 폐지된 것이 아니라 완성된 것입니다. 사망을 정복한 날입니다. 율법의 노예로부터 해방시킨 날입니다. 모든 염려와 걱정으로부터 참 평안을 주는 날입니다. 영원한 천국 안식을 보장한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의 완성인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오순절 교회의 생일도 주일입니다.(행2:1-4) 고린도 교회는 안식 후 첫날 주일날 모였습니다(고전16:2) 성도들은 주일날 모여 예배드리고 떡을 떼었습니다(행20:7) 사도 요한은 주의 날에 성령의 감동을 받아 계시록을 기록하였습니다(계1:10) 주일은 거룩하고 복된 날입니다. 이 날을 구별하여 오늘날도 지킬 때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과 복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을 복된 날로 거룩한 날로 지킴으로 구속의 기쁨과 하늘나라의 평안과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주일을 안식하는 날로 지키시기를 원하십니다.
안식일을 어떻게 지키라고 말씀하십니까? 23절을 보십시오. 내일은 쉬어야 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29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쉴 수 있도록 나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준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했다는 것입니다. 30절을 보십시오. 그래서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안식일 날은 푹 쉬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생업을 위하여 일을 하지 말고 쉬라는 것입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엿새 동안은 거두어들일 수 있으나 이렛날은 거두어들이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거두로 나간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쉬기 위해 어떻게 합니까? 하루 전에 미리 예비하게 하였습니다(5,22,29). 여섯째 날 미리 음식을 갑절을 거두어 드리게 하였습니다. 그래도 상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모든 수고와 고통으로부터 쉬는 날입니다. “(사14:3)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너의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안식일과 주일이 영속성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재칠일 안식교는 불영속성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 폐기론 자들은 안식일 율법 역시 폐기되었기 때문에 구약에 지켰던 안식일 규례를 지키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아담에서 모세 때까지 안식일 지킨 흔적이 없었고 신명기 이후 1천여년 동안 안식일을 지킨 흔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10계명을 폐기했다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십계명 중 제 4계명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것입니다. 창조를 마치고 일곱째 날을 복주고 거룩케 하신 하나님은(창세기 2:2-3) 이 날을 십계명의 제 4계명으로 안식하는 날로 법제화시켰습니다(출20:8, 신5:12). 하나님은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신5:14)”라고 했습니다. 안식일과 주일은 영속성이 있습니다. 모형과 실체입니다. 그림자와 실물입니다. 우리는 주일날 무엇보다 안식, 쉼을 누려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죄와 구속의 필요성을 떠나 인간의 타락 이전에 제정된 창조 규례 네 가지는 “친자관계(창1:28), 결혼(창2:18-24), 안식일(창2:3), 노동(창2:15)”입니다. 이것들은 서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친자 관계 규례는 결혼 규례에 의존하고, 노동 규례는 안식의 규례에 의존합니다. 이런 것들은 인간 존재의 본질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은 단지 여가 선용이나 재충전을 위한 것이기 보다 모든 존재가 누려야 할 권리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숨 가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안식입니다. 일과 생산성이 삶을 지배하고, 한 사람의 생산성이나 성취가 사람의 가치로 평가되는 문화 속에서 생산과 성취를 위한 노동을 중단하고 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일을 안식의 날로 지키기 위해서는 끝없이 계속되는 생산을 위한 노력의 수레바퀴를 멈추는 안식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전략, 계획, 근심, 걱정, 긴장, 노력, 욕구, 폭력, 음란, 쾌락 등 끝없이 밀려오는 긍정적, 부정적 삶의 과제와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치고 안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쉼, 지적인 쉼, 정서적인 쉼, 육체적인 쉼, 사회적인 쉼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쉼은 낭비가 아닙니다. 글과 음악에도 쉼표가 있고, 조각에도 공간이 있으며, 그림에도 여백이 있듯이 인간에게 참된 쉼이 필요합니다. 활도 시위를 계속 팽팽히 당기고만 있으면 나중에는 쓸모없는 도구가 되고 맙니다. 가느다란 대나무도 마디가 있기 때문에 길고 강하게 자라납니다. 사람의 숨쉬기도 호(呼)와 흡(吸) 사이에 쉼이 있어 숨을 힘 있게 쉴 수 있습니다.
안식일은 생존을 위해 벌이던 잔혹한 싸움을 그치는 날입니다. 모든 갈등 행위를 멈추고 샬롬의 평안을 누리는 날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함께 평화를 누리는 날입니다. 모든 걱정과 두려움, 염려로 부터 해방되어 내면의 평안을 누리는 날입니다. 지친 영혼이 생수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힘을 얻고 기진해진 육체가 쉼을 통해 회복되는 날입니다. 최고의 우상인 돈으로부터 독립하는 날이며, 긴장으로부터 탈출하고, 지친 세상으로부터 영원한 안식을 맛보는 날입니다. 계획과 시간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고, 내면을 성찰하며, 노동과 수고로 부터 쉼을 얻고, 속된 것을 멀리하는 날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맡겨 형식적인 의무에서 벗어나고, 기술 문명의 우상들을 숭배하지 않으며, 이익의 노예가 되지 않고 이웃을 향해 사랑의 눈을 여는 날입니다. 예배를 통해 참된 속죄와 평안을 회복하고, 기쁨과 희망으로 일어나는 날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구약의 안식일 계명을 단순히 폐기하지 않고 넘어 완성하심으로 주일 안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습니다. 율법의 구속으로 부터 벗어난 참된 안식을 주시려고 오신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안식일이 법제화되면서 안식일의 쉼은 강제력이 있었습니다. 쉬지 않고 일하면 죽였습니다. 그러나 복음 안에서 쉼은 자유의 영역에 속합니다. 우리 예수님 안에서 참 주일날 참 쉼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파스칼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가 앉아 휴식할 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모든 걱정과 근심을 다 주님께 맡기고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은 주일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됨을 증명하시길 원하십니다.
만나를 통해 하나님이 교훈해 주시는 것은 먹는 문제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생명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가를 테스트하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만나를 주신 이유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3)” 하나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삶과 죽음의 문제가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 신뢰하고 나가면 광야 사는 날 동안 매일 매일 하나님께서 만나로 먹을 것을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후 한 달 하루가 지난 2월 16일부터 가나안에 도착하여 그 땅 소산을 먹은 출애굽 41년 1월 15일까지 정확히 39년 11개월을 굶주리지 않고 먹을 수 있도록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만나를 주시면서 한 가지 시험을 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만나를 주시면서 안식일을 통해 언약을 지키는가 안지키는가 하나님이 테스트를 합니다(4).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시면서 안식일에는 거두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 중에 일부가 어떻게 합니까? 27절을 보십시오. 몇몇 사람이 거두러 나갑니다. 그러나 허탕을 치고 돌아옵니다. 아담과 하와도 에덴 동산에의 테스트에서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에덴을 상실하였습니다. 에덴동산으로 상징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안식일을 통해 테스트를 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는 바알과 아세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먹는 문제로 유혹하는 신입니다. 가나안 토착민들이 바알과 아세라가 비를 내려 주어 풍년을 주고 있다고 믿는 신입니다. 바로 하나님은 안식일을 통해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관계를 시험하는 날입니다(25-27) 결국 허탕만 치고 돌아온 그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언제까지 내 명령과 지시를 지키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처벌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시내산 언약을 체결한 후에는 엄청한 처벌을 하십니다.(민11:4-35, 민15:32-36) 이 시험을 통해 하나님은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온갖 우상 숭배로 가득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주일을 주일답게 지키지 못하게 하는 시험거리가 무엇입니까? 무관심입니까? 무감동입니까? 무감각입니까? 욕심입니까? 믿음 없습입니까? 질병입니까? 가난입니까?
안식일은 언약의 표이고 언약준수의 시금석(출31:12-17; 겔20:10-26; 22:8,26 23:28)입니다. 출31장13절에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사이에 너희 대대에 표증이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알게 함이라 "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16~17전)
안식일을 하나님은 "표징"이라고 말씀합니다. 창9:12-16에 나오는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전 인류를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노아에게 맺은 언약의 표시였습니다. 창 17:9-14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함께 하시겠다는 언약의 표로 할레를 주셨습니다. 이러한 증표와 같이 하나님께서 또 다른 하나의 언약을 표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안식일을 언약의 표가 된다는 것을 계속적으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출 31:16에서 “안식일을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영원한 언약으로 삼으셨기에 도중에 폐기하거나 없어지지 않습니다. 안식일은 언약의 표징으로 영원합니다. 그 안식일은 주일로 영속성을 가지고 신약교회의 성도들에게 창조와 구원을 기억하게 하는 표징으로서 영원히 존속합니다. 바로 안식일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되듯 주일은 부활하신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평가하는 지료가 됩니다. 우리는 주일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일이 중심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받기 위해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 답게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왕이 잃어버린 아들을 찾았습니다. 그러면 왕자가 된 것입니다. 왕자가 되면 왕궁의 예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왕궁의 예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다시 거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왕자답게 살지 못하고 왕자로서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일을 어떻게 지키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거지처럼 사는가 하나님의 왕자답게 사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가난하면 우리는 더욱 주일을 잘지키면 하나님의 합격점수를 받아야 합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토요일이면 기도로 준비합니다. 주일이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는 모습이 얼마나 구별된 모습입니까? 말씀을 사모하는 시간을 가지고 말씀공부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중단해야 할 것을 중단합니다. 사회적일을 멈춥니다. 신령한 일에 관심을 가지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봉사에 헌신합니다. 구속 사역에 기쁨으로 동참합니다. 자선과 봉사의 일을 하면서 거룩하게 지냅니다. 구원의 공동체로서 기쁨의 교제를 나눕니다. 종말론적 기대 속에서 주님의 날을 사모하면서 기대합니다. 주일은 기쁨으로 지켜야 합니다. 영원한 안식의 소망을 가지고 지켜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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