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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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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
미국 속담에 “돈을 잃은 것은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아니고, 건강을 잃은 것은 조금 잃은 것이며, 명예를 잃은 것은 전부를 잃은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명예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J.G. 휘티어는 “신용을 잃고, 명예를 잃었을 때 그 사람은 이미 죽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고 산 소크라테스도 “명예로운 죽음은 불명예로운 삶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격언에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虎死留皮 人死有名. 호사유피 인사유명)”는 말이 있습니다. 명예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들입니다. 우리 전통사회는 명예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명예는 선비들 사이에 중요한 도덕적 품위로 여겨왔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멍석말이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머니를 잘 모시지 못하고 불효를 하는 아들을 마을 어른들이 불러다가 멍석으로 말아서 매로 때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문과 마을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것입니다. 옛날 조선시대에는 집안을 더럽힌 망나니가 생기면 문중 어른들이 의논하여 사형을 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관에서도 이를 묵과하는 것이 관행이 있었답니다.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사람에게 내리는 가문형의 극형으로 “도모지”라는 형이 있었습니다. 조상을 모시는 사당 앞에서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 자를 집안 장정들로 하여금 기둥에 묶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조선 종이에 물을 적셔 한겹 두겹 얼굴에 발라 나갑니다. 그럼 서서히 숨을 못 쉬게 되고 끝내 질식시키는 사형시키는 형입니다. 조선 말기 천주교인들이 순교당할 때 이런 형을 당하였습니다. 정조 11년 때 이언이라는 이는 10대에 홀로된 된 조카 며느리 구씨녀가 바람을 핀다는 풍문을 들었답니다. 가문의 명예가 깎인 것입니다. 명예를 더럽힌 조카며느리를 가문형을 가하기로 합의하고 시집식구뿐 아니라 친정 오빠까지 가세하여 꽁꽁 묶인 10대 과부를 치마에 무거운 바윗돌을 안은 채 깊은 물에 잠기게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명예 살인은 지금도 이슬람권에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매년 요르단에서는 25명, 파키스탄에서는 300여명, 인도에서도 5000여명이 가족의 손에 의해 명예를 더럽혔다고 살해되고 있다고 합니다. 문명이 발달된 나라에서는 이렇게 명예살인을 하지는 않지만 명예를 중요시해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할 때는 명예훼손죄로 고발당합니다. 명예란 사람의 품성, 덕행, 신용 등 세상으로부터 받은 객관적 평가를 말합니다. 형법상 명예라 함은 사람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말합니다. 명예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외부적 명예입니다. 사람의 신분·성격·혈통·용모·지식·능력·직업·건강·품성·덕행·명성 등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입니다. 둘째는 내부적 명예입니다. 자기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자기 자신의 주관적인 평가, 즉 명예의식 또는 명예감정입니다.
외부적 명예가 침해 받을 때는 명예훼손죄에 해당되고 내부적 명예가 침해당했을 때는 명예 모욕죄에 해당됩니다. 형법상 명예훼손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사실 또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摘示)하여 사람의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일반적인 인격에 대한 평가를 침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민법상에는 고의 또는 과실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는 불법행위가 되어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개인의 명예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 10조에는 인간의 존엄성 존중 조항을 두고 있고 17조에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조항을, 37조 1항에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자유와 권리의 존중 조항 두어 개인의 명예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명예를 훼손할 때는 형법에 의해 처벌받고 민법에 의해 보상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라에서 개인의 명예를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람의 신분이 바뀌고 어떤 지위에 오를수록 명예는 더욱 중요합니다. 대통령이 오락실에 들어가 하루 종일 오락하고 있는 것이 보도되면 얼마나 수치스럽겠습니까? 유명한 회사 회장이 바람피우는 것이 보도되면 얼마나 불명예입니까? 목사인 제가 술먹고, 도둑질하고, 바람피우다 경찰에 잡혀 언론에 보도된다면 얼마나 수치스럽겠습니까? 노숙자가 그랬다면 언론에도 나오지 않을 텐데 목사가 그랬다면 대대적으로 보도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에서 특별한 소유, 거룩한 백성, 제사장의 나라로 신분을 만들어 주시고 신정통치의 백성으로서 헌법을 주시면서 명예를 다루십니다. 이제는 노예가 아니라 자유민이 되었고, 바로의 백성이 아니라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지켜야 할 명예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켜야할 헌법인 십계명을 주시면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라는 제 1계명을 통하여 우주의 통치자는 하나님이 시니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면 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만이 참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배의 대상의 오직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만 예배드리라고 했습니다. 제 2계명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통하여 진정 행복하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라가 평안하고 인생이 대대로 보장받는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제 3계명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자, 우주의 섭리자,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이름, 즉 하나님의 명예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명예롭게 사는 방법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명예롭게 사는 길은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명예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신성모독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아버지의 명예는 곧 아들의 명예와 연관됩니다. 아들이 명예를 더럽히면 아버지의 명예로 더럽힘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존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필요에 따라 요청된 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적 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인격자라는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이시다고 말씀하십니다. 시내산에서 신정 국가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 우리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고 천국 시민이 된 우리의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애굽의 노예 생활 속에서 신음하고 부르짖을 때 응답해 주신 “네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10가지 재앙을 통하여 살아계심을 보여주신 “네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쓴물을 단물로 만들어 주신 “네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네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와 대화하시고 기도에 응답하시고 구체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관계를 맺으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이해의 영역, 우리의 언어의 영역, 우리의 감각의 영역으로 내려오셔서 마음이 청결한 자, 영의 눈이 열린 자는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의 하나님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계셔서 함께하시는 우리 성도님과 저의 하나님이십니다. 신앙 좋은 아버지의 하나님, 기도하시던 어머님의 하나님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시고 특별한 소유로 삼으신 우리의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욕을 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겠습니까?
“망령되이”라는 말은 허망할 망(妄) 신령한 령(靈)자로 우리말 사전에는 “늙거나 정신이 흐려져서 말과 행동이 정상에서 어그러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히브리어 “라솨웨”는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라'와 함께 쓰인 '솨웨'는 '낭비된 것', '무질서한 것', '소모하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말은 '헛되이', '쓸데없이', '함부로'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일컫지”(티솨)라는 말은 '들어올리다', '취하다'(take), '운반하다'라는 뜻을 지닌 '나솨'의 명령형으로 부르다는 의미보다는 '사용하다', '적용한다'는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쓸데없이,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말은 소극적으로는
첫째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짓 맹세하는데 헛되이 사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맹세할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했습니다(레19:12 신6:13 신10:20 삼상 20:42).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신 6:13)” 다윗과 요나단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삼상20:42)”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거짓 맹세하는데 주님의 이름을 사용하거나, 지킬 의도가 없는 헛된 약속이나 서원을 하는데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레19:12)” 예전에 옷로비 사건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맹세하는 것을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았습니다. 이런 때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망령되이 일컫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약속을 어기는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어 명예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헛되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신성 모독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주의하게(함부로) 사용하여 남용하거나 오용하거나 악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출20장의 10계명을 번역하면서 공동번역이나 표준 새 번역은 “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야심이나 탐욕이나 즐거움을 위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오용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마치 자신이 하나님이나 된 양 능력의 사람이라고 하나님의 사자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일정한 기준이나 한도를 넘어서 함부로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단들이 그렇게 합니다. 자신을 어린양이라고 합니다. 자신에게 잘못하면 저주받는다고 협박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밥먹듯이 합니다. 마치 자신이 하나님을 부리는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합니다. 하나님의 능력 98%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종, 엘리야 겉옷, 모세의 지팡이, 바울의 손수건, 베드로의 그림자라고 말합니다. 자신을 신격화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잘못사용해서도 안됩니다. 악용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시골에서 어떤 목사님 두분이 오토바이를 타고 과속으로 달렸답니다. 교통경찰관이 세워보니 목사님들이었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봐주려고, “아실만한 분들이… 천천히 다니십시오. 사고나면 죽습니다.”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함께 타고 계십니다.” 그 말을 들은 경찰은, “그럼 스티커를 끊겠습니다.” “아니 왜요?” “3명이 타는 것은 위법입니다.” 악한 일을 하면서 주님의 이름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예레미야 7:10-11에 나와 있는 것처럼 도적질할 의도로 성전에 들어와서 "저는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자신의 탐욕을 성취하기 위해 이용하거나 남용하거나 악용하거나 오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에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주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쓸데없이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시 50:16-23).
셋째는 하나님의 이름을 쓸데없이 저주하거나 욕하는 일에 사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서양 사람들이 일이 잘 안되거나 화가 나서 욕할 때 'Jesus'란 말을 씁니다. 우리 표현으로 하면 '제기랄'이란 뜻입니다. 'Oh! My God' (하나님 맙소사), ‘God damn’ (신의 저주를 받으라는 뜻으로 ‘지옥에나 떨어져’) 등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대화 속에서 주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욕하거나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 아는 목사님이 개척 교회를 하다가 엄청 어려움을 당했답니다. 음악을 전공했는데 목회에 소명을 받고 신학대학원에 들어가 비전을 가지고 빚을 내어 개척교회를 했답니다. 교회는 부흥되지 않고 해가 지나가면 갈수록 빚만 늘어갔답니다. 대출 통장이 20여개가 넘어갔고 이자 주기가 너무 어려워 그 통장을 가지고 새벽기도회를 갔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강대상에서 던져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해요. 마음대로 하시라구요.”라고 말하면서 악을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통곡하고 울었답니다. 사람이 어려우면 하나님께 대어들고 욕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욥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어려운 상황에서 입술로 범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저주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사용하면 그 대가가 무엇입니까?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강한 부정과 강조를 중복적으로 사용하여 강력하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는 자들이 벌받지 않은 채로, 아무런 대가없이 살 수 있게는 결코 허락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쓸데없이', '함부로' 사용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오용하고, 악용하고, 남용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하고야 말겠다는 하나님 자신의 강한 의지의 표명입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국가 원수 모독죄, 국기 모독죄, 명예훼손죄를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위해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말라기 2:2에는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 복을 저주하리라". 신명기 28:58에는 "네가 이 율법에서 거룩한 이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재앙과 너희 자손의 재앙을 극멸하게 하리라"고 경고했습니다. 레위기 24:16에는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는 자는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 돌로 그를 칠 것이라 외국인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죽일지니라"고 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의 이름을 남용하여 맹세한 자를 사형에 처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고 말씀하십니까?
우리를 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시내산에 불러 하나님 백성으로 언약을 맺는가를 통해서 분명한 명예로운 하나님 백성으로 적극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출 19:5-6)”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말씀은 적극적으로는
첫째는 특별한 소유로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특별한 소유로 명예롭게 살려면 하나님을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른을 존경하는 뜻에서 그렇습니다. 적극적으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남용이나 오용, 악용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도구나 수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경배를 받고 찬양을 받기 위한 이름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해야 합니다.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존귀하게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통하여 존귀히 받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하나님이 없다고 부정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이 세대에서 우리가 십자가의 능력으로 일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해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일간지를 보니까 90세에 교회를 완공한 일본인 할머니 목사님 조비 마쓰의 간증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분은 목공소집 맏딸로 태어났는데 열 살에 전도를 받아 신앙생활을 시작했답니다. 그는 26세 때 세살 위의 결핵환자인 남편과 결혼했답니다. 가족들의 반대를 뒤로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결혼한 것입니다. 남편은 농부의 장남이었는데 스러져가는 10여 평 집에 10명의 가족이 모여살았답니다. 남편은 결핵 때문에 집 근처 1평 반짜리 방에 외따로 살았답니다. 이들 부부는 끊임없이 "병이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해 3년 만에 완치되었답니다. 교회가 없어 2톤 트럭을 몰고 왕복 6시간 거리의 교회에 출석했답니다. 인품이 좋은 남편이 교회도 건축하고 목회자가 되길 원했지만 하지 않아 남편과 10년 동안 별거했답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는데 아직은 싫다고 순종하지 않았답니다. 숨을 못 쉴 정도로 어깨 통증이 왔고 병원에서는 병명도 몰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남편과 화해했는데 그 후로 질병에서 치유받게 되었답니다. 막내딸이 운영하던 일본식 풀빵 가게를 전도장소로 활용하여 전도했답니다. 공짜로 풀빵을 나눠주고, 성경책도 건네며 "꿈과 희망이 없을 때라도 절망은 마라. 하나님이 계신다."고 말해줬답니다. 70세가 되던 해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3년 뒤 졸업했고, 다시 3년 뒤 목사 안수를 받았답니다. 집주인이 기독교인은 싫다고 나가라고 해 '교회를 짓겠다'는 꿈을 가지고 기도했답니다. 교회 머릿돌을 얹었을 때 그의 나의 86세였답니다. 기적이 일어났답니다. 대기업 사장 부인이던 신학교 동기가 300평 크기의 땅을 매입해 줬고, 4000만엔이 들어가는 교회 건물 공사는 지역의 작은 건설업체가 "나중에 돈이 생기면 받겠다"며 자진해서 맡아 주었답니다. 자금 사정때문에 중단되면 조비 목사는 그 때마다 건설업체 대표를 찾아가 함께 손을 잡고 기도를 했답니다. 그러자 건설업체 대표도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되었답니다. 그의 삶을 선교위성방송이 소개하자 일본 각지에서 헌금이 들어와 90세에 건축을 완공했답니다. 그는 생명이 남아 있는 동안 히노카게 인근의 작은 마을 2곳에도 교회를 짓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마을을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이런 인생을 사는 사람을 통하여 얼마나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되겠습니까? 삼상 2:3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는 존중이 여기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도 그를 경멸히 여긴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거룩한 백성으로 명예롭게 살려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마6:9)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은 아닙니다. 구별된 거룩한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물로 사용하는 세속적인 세상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적극적으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다른 것과 `분리`하고 `성별`시키는 것입니다. `거룩`은 하나님 자신의 신성 자체이며 속성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모든 세속과 사악에서 구별되며, 절대 무흠(無欠)하신 지존자(至尊者)이십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성경을 필사할 때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면 몸을 씻고 새 붓으로 글을 썼다고 합니다. `여호와(야웨) 하나님`이라고 나오면 두려운 마음으로 그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주(아도나이) 하나님`이라고 읽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대제사장만이 1년에 한번 지성소에서 속죄의 제물을 바친 후에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경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경외”(이르아)는 단순한 공포심이 아니라 공경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바로 ‘하나님에 대하여 망령되게 하는 것`은 두려움과 떨림이 없는 신앙의 태도를 말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강조하다보면 두려움과 떨림이 없는 버릇없는 신앙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성전에서 간음하고 도둑질하면서도 뻔뻔하게 살아가는 엘리 제사장의 아들과 같은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물건을 훔치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이 얼굴 내미는 아간같은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시골 교회에 감나무와 사과나무를 심어 놓았는데 가을철만 되면 동네 개구쟁이들이 훔쳐갔답니다. 그래서 전도사님이 24시간 지칠 수 없어 팻말을 만들어 꽂아 놓았답니다. "하나님께선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신다!"라는 팻말이었답니다. 다음날 "이젠 별일 없겠지!" 하고 나가 보니 과일은 과일대로 없어졌고 그 팻말 밑에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비밀을 지켜 주십니다!" 라고 써놓았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세째는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으로 명예롭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었습니다. 특별한 소유, 왕같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바울은 “사나 죽으나 내 몸에서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여야 하며(빌1:21)”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어야 한다(롬14:8).”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런 백성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사는 비결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내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이름을 빛나게 해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부족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제프 하이든은 “명예를 획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명예를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고, 사후(死後)에도 유지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명예를 사후에까지 지킬 수 있는 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다고 초점을 맞추고 일관성있게 살면 됩니다.
백년에 한 번 들어볼까 말까한 유명한 흑인가수 마리안 앤더슨(Marian Andersn, 1902-1973)은 노래를 잘 불러 영광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23개국에서 명예학위를 받았으며 아이젠하워대통령, 케네디 대통령 취임시에 미국 국가를 독창했고, 58년에는 아이크가 유엔대표로 지명까지 했으며, 63년에는 존슨 대통령으로 부터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상패"를 받았다고 합니다. 흑인으로 그렇게 명예롭게 산 그가 40년간 성악활동을 하고 은퇴할 때 "나는 보잘 것 없는 노예밖에 될 수 없는 인간이지만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목소리를 주셨으므로 유명해진 것이지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명예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하였답니다. 그 때 연설을 들었던 시민들은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인간이 사는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명예도 지켜 주십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요 13:32)”
0 과 1의 수학공식을 생각해 보십시오. 1은 완전하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수, 0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존재라는 뜻에서 인간로 가정해 보십시오. '나'를 하나님 앞에 세우면 세울수록
0.1, 0.01, 0.001로 점점 작아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내 앞에 세우면 세울수록 10, 100, 1000, 10000로 그 수가 백배, 만배, 백만배로 늘어납니다. 달은 태양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움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쓸모 없는 진흙이라도 꽃을 품으면 향기를 내는 것입니다. 파리가 비행기에 늘어가면 세계 어느 곳에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어떤 핍박이 있어도 우리는 우리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질병이 있습니까? 그 질병을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이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의 앉은 뱅이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6)”고 했을 때 그는 일어섰습니다. 뛰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사업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인생의 무거운 짐이 있습니까? 낙심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앞에 놓고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외치며 나아가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민족을 구했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우리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이루어 드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줄 믿습니다.
7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출 20:7)”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09.11.29
외부적 명예가 침해 받을 때는 명예훼손죄에 해당되고 내부적 명예가 침해당했을 때는 명예 모욕죄에 해당됩니다. 형법상 명예훼손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사실 또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摘示)하여 사람의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일반적인 인격에 대한 평가를 침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민법상에는 고의 또는 과실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는 불법행위가 되어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개인의 명예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 10조에는 인간의 존엄성 존중 조항을 두고 있고 17조에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조항을, 37조 1항에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자유와 권리의 존중 조항 두어 개인의 명예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명예를 훼손할 때는 형법에 의해 처벌받고 민법에 의해 보상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라에서 개인의 명예를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특히 사람의 신분이 바뀌고 어떤 지위에 오를수록 명예는 더욱 중요합니다. 대통령이 오락실에 들어가 하루 종일 오락하고 있는 것이 보도되면 얼마나 수치스럽겠습니까? 유명한 회사 회장이 바람피우는 것이 보도되면 얼마나 불명예입니까? 목사인 제가 술먹고, 도둑질하고, 바람피우다 경찰에 잡혀 언론에 보도된다면 얼마나 수치스럽겠습니까? 노숙자가 그랬다면 언론에도 나오지 않을 텐데 목사가 그랬다면 대대적으로 보도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에서 특별한 소유, 거룩한 백성, 제사장의 나라로 신분을 만들어 주시고 신정통치의 백성으로서 헌법을 주시면서 명예를 다루십니다. 이제는 노예가 아니라 자유민이 되었고, 바로의 백성이 아니라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지켜야 할 명예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켜야할 헌법인 십계명을 주시면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라는 제 1계명을 통하여 우주의 통치자는 하나님이 시니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면 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만이 참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배의 대상의 오직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만 예배드리라고 했습니다. 제 2계명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통하여 진정 행복하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라가 평안하고 인생이 대대로 보장받는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제 3계명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자, 우주의 섭리자,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이름, 즉 하나님의 명예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명예롭게 사는 방법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명예롭게 사는 길은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명예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신성모독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아버지의 명예는 곧 아들의 명예와 연관됩니다. 아들이 명예를 더럽히면 아버지의 명예로 더럽힘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존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필요에 따라 요청된 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적 신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인격자라는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이시다고 말씀하십니다. 시내산에서 신정 국가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 우리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고 천국 시민이 된 우리의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애굽의 노예 생활 속에서 신음하고 부르짖을 때 응답해 주신 “네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10가지 재앙을 통하여 살아계심을 보여주신 “네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쓴물을 단물로 만들어 주신 “네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네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와 대화하시고 기도에 응답하시고 구체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관계를 맺으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이해의 영역, 우리의 언어의 영역, 우리의 감각의 영역으로 내려오셔서 마음이 청결한 자, 영의 눈이 열린 자는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의 하나님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계셔서 함께하시는 우리 성도님과 저의 하나님이십니다. 신앙 좋은 아버지의 하나님, 기도하시던 어머님의 하나님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시고 특별한 소유로 삼으신 우리의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욕을 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겠습니까?
“망령되이”라는 말은 허망할 망(妄) 신령한 령(靈)자로 우리말 사전에는 “늙거나 정신이 흐려져서 말과 행동이 정상에서 어그러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히브리어 “라솨웨”는 강한 부정을 나타내는 '라'와 함께 쓰인 '솨웨'는 '낭비된 것', '무질서한 것', '소모하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말은 '헛되이', '쓸데없이', '함부로'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일컫지”(티솨)라는 말은 '들어올리다', '취하다'(take), '운반하다'라는 뜻을 지닌 '나솨'의 명령형으로 부르다는 의미보다는 '사용하다', '적용한다'는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쓸데없이,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말은 소극적으로는
첫째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짓 맹세하는데 헛되이 사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맹세할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했습니다(레19:12 신6:13 신10:20 삼상 20:42).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신 6:13)” 다윗과 요나단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삼상20:42)”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거짓 맹세하는데 주님의 이름을 사용하거나, 지킬 의도가 없는 헛된 약속이나 서원을 하는데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레19:12)” 예전에 옷로비 사건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맹세하는 것을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았습니다. 이런 때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망령되이 일컫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약속을 어기는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어 명예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헛되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신성 모독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주의하게(함부로) 사용하여 남용하거나 오용하거나 악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출20장의 10계명을 번역하면서 공동번역이나 표준 새 번역은 “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야심이나 탐욕이나 즐거움을 위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오용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마치 자신이 하나님이나 된 양 능력의 사람이라고 하나님의 사자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일정한 기준이나 한도를 넘어서 함부로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단들이 그렇게 합니다. 자신을 어린양이라고 합니다. 자신에게 잘못하면 저주받는다고 협박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밥먹듯이 합니다. 마치 자신이 하나님을 부리는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합니다. 하나님의 능력 98%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종, 엘리야 겉옷, 모세의 지팡이, 바울의 손수건, 베드로의 그림자라고 말합니다. 자신을 신격화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잘못사용해서도 안됩니다. 악용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시골에서 어떤 목사님 두분이 오토바이를 타고 과속으로 달렸답니다. 교통경찰관이 세워보니 목사님들이었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봐주려고, “아실만한 분들이… 천천히 다니십시오. 사고나면 죽습니다.”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걱정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함께 타고 계십니다.” 그 말을 들은 경찰은, “그럼 스티커를 끊겠습니다.” “아니 왜요?” “3명이 타는 것은 위법입니다.” 악한 일을 하면서 주님의 이름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예레미야 7:10-11에 나와 있는 것처럼 도적질할 의도로 성전에 들어와서 "저는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자신의 탐욕을 성취하기 위해 이용하거나 남용하거나 악용하거나 오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에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주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쓸데없이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시 50:16-23).
셋째는 하나님의 이름을 쓸데없이 저주하거나 욕하는 일에 사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서양 사람들이 일이 잘 안되거나 화가 나서 욕할 때 'Jesus'란 말을 씁니다. 우리 표현으로 하면 '제기랄'이란 뜻입니다. 'Oh! My God' (하나님 맙소사), ‘God damn’ (신의 저주를 받으라는 뜻으로 ‘지옥에나 떨어져’) 등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대화 속에서 주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욕하거나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 아는 목사님이 개척 교회를 하다가 엄청 어려움을 당했답니다. 음악을 전공했는데 목회에 소명을 받고 신학대학원에 들어가 비전을 가지고 빚을 내어 개척교회를 했답니다. 교회는 부흥되지 않고 해가 지나가면 갈수록 빚만 늘어갔답니다. 대출 통장이 20여개가 넘어갔고 이자 주기가 너무 어려워 그 통장을 가지고 새벽기도회를 갔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강대상에서 던져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해요. 마음대로 하시라구요.”라고 말하면서 악을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통곡하고 울었답니다. 사람이 어려우면 하나님께 대어들고 욕하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욥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어려운 상황에서 입술로 범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저주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사용하면 그 대가가 무엇입니까?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강한 부정과 강조를 중복적으로 사용하여 강력하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사용하는 자들이 벌받지 않은 채로, 아무런 대가없이 살 수 있게는 결코 허락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쓸데없이', '함부로' 사용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오용하고, 악용하고, 남용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하고야 말겠다는 하나님 자신의 강한 의지의 표명입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국가 원수 모독죄, 국기 모독죄, 명예훼손죄를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위해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말라기 2:2에는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 복을 저주하리라". 신명기 28:58에는 "네가 이 율법에서 거룩한 이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재앙과 너희 자손의 재앙을 극멸하게 하리라"고 경고했습니다. 레위기 24:16에는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는 자는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 돌로 그를 칠 것이라 외국인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죽일지니라"고 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의 이름을 남용하여 맹세한 자를 사형에 처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살라고 말씀하십니까?
우리를 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시내산에 불러 하나님 백성으로 언약을 맺는가를 통해서 분명한 명예로운 하나님 백성으로 적극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출 19:5-6)”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말씀은 적극적으로는
첫째는 특별한 소유로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특별한 소유로 명예롭게 살려면 하나님을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른을 존경하는 뜻에서 그렇습니다. 적극적으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남용이나 오용, 악용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도구나 수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경배를 받고 찬양을 받기 위한 이름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해야 합니다.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존귀하게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통하여 존귀히 받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하나님이 없다고 부정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이 세대에서 우리가 십자가의 능력으로 일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해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일간지를 보니까 90세에 교회를 완공한 일본인 할머니 목사님 조비 마쓰의 간증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분은 목공소집 맏딸로 태어났는데 열 살에 전도를 받아 신앙생활을 시작했답니다. 그는 26세 때 세살 위의 결핵환자인 남편과 결혼했답니다. 가족들의 반대를 뒤로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결혼한 것입니다. 남편은 농부의 장남이었는데 스러져가는 10여 평 집에 10명의 가족이 모여살았답니다. 남편은 결핵 때문에 집 근처 1평 반짜리 방에 외따로 살았답니다. 이들 부부는 끊임없이 "병이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해 3년 만에 완치되었답니다. 교회가 없어 2톤 트럭을 몰고 왕복 6시간 거리의 교회에 출석했답니다. 인품이 좋은 남편이 교회도 건축하고 목회자가 되길 원했지만 하지 않아 남편과 10년 동안 별거했답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는데 아직은 싫다고 순종하지 않았답니다. 숨을 못 쉴 정도로 어깨 통증이 왔고 병원에서는 병명도 몰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남편과 화해했는데 그 후로 질병에서 치유받게 되었답니다. 막내딸이 운영하던 일본식 풀빵 가게를 전도장소로 활용하여 전도했답니다. 공짜로 풀빵을 나눠주고, 성경책도 건네며 "꿈과 희망이 없을 때라도 절망은 마라. 하나님이 계신다."고 말해줬답니다. 70세가 되던 해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3년 뒤 졸업했고, 다시 3년 뒤 목사 안수를 받았답니다. 집주인이 기독교인은 싫다고 나가라고 해 '교회를 짓겠다'는 꿈을 가지고 기도했답니다. 교회 머릿돌을 얹었을 때 그의 나의 86세였답니다. 기적이 일어났답니다. 대기업 사장 부인이던 신학교 동기가 300평 크기의 땅을 매입해 줬고, 4000만엔이 들어가는 교회 건물 공사는 지역의 작은 건설업체가 "나중에 돈이 생기면 받겠다"며 자진해서 맡아 주었답니다. 자금 사정때문에 중단되면 조비 목사는 그 때마다 건설업체 대표를 찾아가 함께 손을 잡고 기도를 했답니다. 그러자 건설업체 대표도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되었답니다. 그의 삶을 선교위성방송이 소개하자 일본 각지에서 헌금이 들어와 90세에 건축을 완공했답니다. 그는 생명이 남아 있는 동안 히노카게 인근의 작은 마을 2곳에도 교회를 짓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마을을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이런 인생을 사는 사람을 통하여 얼마나 하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되겠습니까? 삼상 2:3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는 존중이 여기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도 그를 경멸히 여긴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거룩한 백성으로 명예롭게 살려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마6:9)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은 아닙니다. 구별된 거룩한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물로 사용하는 세속적인 세상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적극적으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다른 것과 `분리`하고 `성별`시키는 것입니다. `거룩`은 하나님 자신의 신성 자체이며 속성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모든 세속과 사악에서 구별되며, 절대 무흠(無欠)하신 지존자(至尊者)이십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성경을 필사할 때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면 몸을 씻고 새 붓으로 글을 썼다고 합니다. `여호와(야웨) 하나님`이라고 나오면 두려운 마음으로 그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주(아도나이) 하나님`이라고 읽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대제사장만이 1년에 한번 지성소에서 속죄의 제물을 바친 후에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경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경외”(이르아)는 단순한 공포심이 아니라 공경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거룩한 두려움입니다. 바로 ‘하나님에 대하여 망령되게 하는 것`은 두려움과 떨림이 없는 신앙의 태도를 말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강조하다보면 두려움과 떨림이 없는 버릇없는 신앙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성전에서 간음하고 도둑질하면서도 뻔뻔하게 살아가는 엘리 제사장의 아들과 같은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물건을 훔치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이 얼굴 내미는 아간같은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시골 교회에 감나무와 사과나무를 심어 놓았는데 가을철만 되면 동네 개구쟁이들이 훔쳐갔답니다. 그래서 전도사님이 24시간 지칠 수 없어 팻말을 만들어 꽂아 놓았답니다. "하나님께선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신다!"라는 팻말이었답니다. 다음날 "이젠 별일 없겠지!" 하고 나가 보니 과일은 과일대로 없어졌고 그 팻말 밑에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비밀을 지켜 주십니다!" 라고 써놓았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세째는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으로 명예롭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었습니다. 특별한 소유, 왕같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바울은 “사나 죽으나 내 몸에서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여야 하며(빌1:21)”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어야 한다(롬14:8).”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런 백성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사는 비결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내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이름을 빛나게 해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부족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제프 하이든은 “명예를 획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명예를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고, 사후(死後)에도 유지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명예를 사후에까지 지킬 수 있는 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다고 초점을 맞추고 일관성있게 살면 됩니다.
백년에 한 번 들어볼까 말까한 유명한 흑인가수 마리안 앤더슨(Marian Andersn, 1902-1973)은 노래를 잘 불러 영광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23개국에서 명예학위를 받았으며 아이젠하워대통령, 케네디 대통령 취임시에 미국 국가를 독창했고, 58년에는 아이크가 유엔대표로 지명까지 했으며, 63년에는 존슨 대통령으로 부터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상패"를 받았다고 합니다. 흑인으로 그렇게 명예롭게 산 그가 40년간 성악활동을 하고 은퇴할 때 "나는 보잘 것 없는 노예밖에 될 수 없는 인간이지만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목소리를 주셨으므로 유명해진 것이지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명예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라고 하였답니다. 그 때 연설을 들었던 시민들은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인간이 사는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명예도 지켜 주십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요 13:32)”
0 과 1의 수학공식을 생각해 보십시오. 1은 완전하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수, 0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존재라는 뜻에서 인간로 가정해 보십시오. '나'를 하나님 앞에 세우면 세울수록
0.1, 0.01, 0.001로 점점 작아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내 앞에 세우면 세울수록 10, 100, 1000, 10000로 그 수가 백배, 만배, 백만배로 늘어납니다. 달은 태양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움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쓸모 없는 진흙이라도 꽃을 품으면 향기를 내는 것입니다. 파리가 비행기에 늘어가면 세계 어느 곳에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어떤 핍박이 있어도 우리는 우리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질병이 있습니까? 그 질병을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이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의 앉은 뱅이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6)”고 했을 때 그는 일어섰습니다. 뛰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사업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인생의 무거운 짐이 있습니까? 낙심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앞에 놓고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외치며 나아가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민족을 구했습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우리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이루어 드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줄 믿습니다.
7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출 20:7)”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0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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