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막10:46-52 |
---|---|
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귀 기울이고 경청하라
본문: 막10: 46- 52
한 젊은이가 대중 연설과 웅변술을 배우려고 소크라테스를 찾아갔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젊은이는 이 위대한 철학자에게 자신이 소개되는 순간부터 유창하게 계속 이야기를 쏟아 내놓았습니다. 그 젊은이가 너무 오래 이야기하는 바람에 소크라테스는 지혜의 핵심부는 고사하고 그 가장자리에서 흘러나온 말 한마디도 제대로 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소크라테스는 그 젊은이의 손을 입으로 가져가 거침없이 쏟아지던 젊은이의 입을 막았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여보게 젊은이! 자네에게는 수업료를 두 배로 받아야 할 것 같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불평을 했습니다. "수업료가 두 배라구요? 대체 왜 그런 거죠?" 소크라테스는 그 이유를 이렇게 답했습니다. "왜냐하면 말일세, 자네를 훌륭한 지도자로 만들려면 자네에게 두 가지 원리를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네. 첫째는 혀를 자제하는 법을 배워야만 하네. 그리고 나서야 혀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걸세."
훌륭한 지도자는 언제나 경청하는 사람입니다. 경청하는 것이 바로 훌륭한 지도자가 배우는 방법입니다. 경청하는 것은 훌륭한 지도자가 무슨 일이 필요한지를 평가하는 방법입니다. 불행하게도 때때로 우리가 신속하게 듣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는 말하는데 너무 빠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 귀와 한 입을 주셨으므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말하는 것의 두 배만큼 듣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은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우리가 이 성경 구절의 처음 두 가지 명령을 순종한다면 세 번째 명령은 자동적으로 따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한다면 자연히 성내기는 더뎌질 것입니다. 연구에 의하면 듣는 방식에는 네 가지 기본 형태가 있다고 합니다.
"판단하며 듣는 사람" - 이런 부류의 사람은 미리 자신의 마음을 정해 놓고 진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비평적이고, 부정적이며 선입견에 사로잡혀있습니다. 17%의 인구가 이런 부류에 속합니다.
"질문하며 듣는 사람" - 이런 부류의 사람은 경청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계속해서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은 대화에서 중요하지만 곧 쓸모 없어집니다. 26%사람이 이런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조언을 하며 듣는 사람" - 더 많은 수(35%)의 사람들이 이 부류에 속합니다.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신속한 평가를 내릴 만큼 충분히 듣고 나면 상대방이 원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 조언을 상대방과는 상관없이 전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갈 때 생기는 문제점은 무슨 조언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실제로는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당신은 상대방이 하는 말 전부를 듣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감정이 입을 하며 듣는 사람" - 22%만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접근법이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기분까지도 알아내기 위해 듣는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의 음색이나 얼굴 표정, 제스쳐와 같은 비언어적인 표현에도 주의를 기울입니다.
오늘부터는 귀로만 듣지 마시고 눈으로 들으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뭔가 새로운 것을 얻게될 것입니다.
경청은 귀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도 하고, 입으로도 하고, 손으로도 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계속 표현하십시오. 몸짓과 눈빛으로 반응을 보이십시오. 상대에게 진정으로 귀 기울이고 있다는 신호를 온몸으로 보내십시오.
아라비아 속담에 "듣고 있으면 내가 이득을 얻고, 말하고 있으면 남이 이득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철원의 군인교회에 가서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부대 지휘관은 자기 사무실로 안내해 직접 차를 끓여 주며 여러 차례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그는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습니다. 사무실 한쪽에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고 쓰인 액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들음으로써 마음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경청’이란 책을 읽다가 아주 좋아서 써놓았다고 했습니다.
살면서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는 큰 이유는 경청 결핍 때문입니다. 귀 기울여 들어주고, 공감하고, 존중해주면 싸울 일이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물질을 얻는 것보다 귀합니다. 하나님께서 입은 하나, 귀는 둘 만드신 이유는 경청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청득심의 대가이십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귀 기울이시고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경청하시듯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면 그분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 가난한 이웃들의 신음소리에 귀를 열면 그들을 주께로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잠31:2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2:29)
가정불화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할 일이 무엇입니까?
어린아이와 이야기 할 때에는 그들과 시선을 맞추고, 무엇인가 말하려고 할 때는 참고 기다리며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을 제거하고, 당신의 반응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고, 질문을 통해 관심과 흥미를 보여주십시오.
또한 청소년과 대화를 할 때에는 10대들은 독립적인 존재가 되려고 애쓰면서 권위를 거부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10대에게 귀 기울일 때 기억해야 할 5가지의 비결은 너무 많은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비판을 할 때는 가려서 하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10대가 말하고 싶어 할 때는 들어주십시오. 대화하기 적당한 장소를 찾으십시오.. 다음으로 노인의 말은 가슴으로 들어라. 푸대접을 받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노인들은 무례한 대접에 민감합니다.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고 비판을 하며 재축을 하고 얕보는 태도로 이야기하면 화가 나고 당황합니다. 이 경우 노인은 자신이 무능하고 아이같은 대접을 받는다고 느낀답니다.
손을 잡아줌으로써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확신을 주고, 시선을 마주침으로써 흥미와 관심을 보여주고, 이미 몇 번 들은 이야기라도 집중하여 들으십시오.
한 심리학자는 오늘 가정문제의 대부분은 배우자들 특히 남편들이 경청만 배워도 해결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남편이 집에 와서 내가 오늘 직장에서 들었는데 여자가 남자보다 갑절이나 하루에 더 많은 말을 하고 산다(남자는 1만 5천, 여자는 약 3만 단어의 말)고 하더라고 하니까 아내가 “왜 그런지 아세요?”하고 물었답니다.
“왜요?”하고 남편이 묻자 아내가 대답했습니다.
“남자들은 우리 아내로 하여금 똑같은 소리를 두 번씩 하게 만들잖아요?” 그러자 남편이 뭐라고 했을까요?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하더랍니다. 경청이 어려운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경청은 진지한 집중과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한다면 경청은 가능할 수가 있습니다. 해답은 결국 사랑입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사랑의 첫째 의무는 경청하는 것이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사랑은 이웃의 작은 신음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맹인이 큰 소리가 아닌 작은 신음소리로 외쳤어도 예수님은 여전히 그의 외침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성가에서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라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지상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본문의 맹인처럼 지금도 여전히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기도하면 그는 우리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 경청하심을 믿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도 이웃의 말을 경청하고자 한다면 이웃을 바라보고 그 앞에 머물러 집중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적의 시작인 것입니다.
경청은 이웃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경영 컨설턴트였던 피터 드러커는 “의사소통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말하지 않은 소리를 듣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일찍 심리학자들은 이런 작업을 가르쳐 “제3의 귀(The third ear)로 듣는다”고 말해왔습니다. 상대방은 표면적으로는 나를 공격하고 비난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심층적으로는 나에게 도움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웃을 돕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웃들의 소리를 마음으로 듣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바로 우리의 제3의 귀인 것입니다. 상대방이 아직도 스스로의 마음을 열기를 두려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거든 상대방이 마음을 열도록 그 마음의 이야기에 공감해 보십시오. 아니면 상대의 이야기를 내가 경청하고 있다는 신호로 그의 이야기를 다른 언어로 반복해 보십시오.
심리학자들은 그것을 ‘공감적 경청’ 혹은 ‘반영적 경청’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경청은 이웃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경청은 이웃의 믿음의 소원을 깨우는 것입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 중에는 화술에 능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게티즈버그 연설로 많은 국민들에게 평등과 자유의식을 고양시켰던 링컨, 대국민 라디오연설로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해 대공황을 극복하고 세계의 화합을 이끌었던 루즈벨트, 지지율의 열세를 공개토론방송으로 역전한 닉슨과 같은 대통령들부터 최근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두 당대에 화술로 능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루즈벨트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연설가중 한 명으로 뽑는데, 그 루즈벨트조차 말을 잘한다고 인정했던 프랑스의 한 장관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장관이 업무차 미국에 들렀다는 소식을 듣고 루즈벨트는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장관의 평소 관심사에 대해서 미리 조사한 루즈벨트는 그와 함께 밤새 담소를 나누었는데, 오랜 시간의 대화는 거의 루즈벨트에 의해 진행됐고 장관은 그것에 맞장구를 쳐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루즈벨트의 이야기를 꽤 오랜 시간 들었지만 프랑스의 장관은 전혀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그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을 했습니다. 이윽고 장관이 떠나고 나자, 루즈벨트는 자신의 보좌관들에게 프랑스 장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저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네.”
말을 잘 하기 위해선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좋은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하듯이, 남의 말을 소중히 경청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애쓰지 않고 나의 말을 상대방에게도 쉽게 전하기 위해 먼저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십시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1864년 미국의회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헌법수정안이 통과되기 전에 링컨대통령과 인터뷰를 한 H.B 스보우는 링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습니다.
“그는 온갖 종류의 상충하는 주장, 즉 반대자들과 추종자들, 급진적인 노예폐지론자들과 보수주의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들 모두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의 말을 깊이 생각했습니다. 나는 온갖 종류의 상이한 의견에도 기꺼이 귀를 기울이는 것이 정치가의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 특히, 목회자들에게 특별히 다른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역을 맡기신 것 같습니다. 본 훼퍼는 그 특유의 통찰력으로 경청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공동체 내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마땅히 해야 하는 첫 번째 섬김은 말을 잘 경청하는 것이다.”
경청을 잘하기 위한 5가지 행동 지침서란 글을 보았습니다.
1. 공감을 준비하자 / 대화를 시작할 때 먼저 나의 마음속에 있는 판단과 선입견, 충고하고 싶은 생각들을 모두 다 비워내고 그냥 들어주라는 겁니다. 상대방과 나 사이에 아름다운 공명이 생기도록 준비하십시오.
2. 상대를 인정하자 /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잘 집중하여 상대방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인정하라는 겁니다. 상대를 완전한 인격체로 인정해야 진정한 마음의 소리가 들립니다.
3. 말하기를 절제하자 / 말을 배우는 데는 2년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데는 6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누구나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상대를 이해하기 전에 내가 먼저 이해받고 싶은 욕구가 앞서기 때문입니다.
4. 겸손하게 이해하자 / 겸손하면 들을 수 있고, 교만하면 들을 수 없다는 겁니다. 경청의 대가는 상대의 감정에 겸손하게 공감하며 듣는 사람입니다. 항상 겸손한 자세로 상대를 이해하십시오.
5. 온몸으로 응답하자 / 경청은 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눈으로도 하고, 입으로도 하고, 손으로도 하는 것이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계속 표현하십시오. 몸짓과 눈빛으로 반응을 보라 상대에게 진정으로 귀 기울이고 있다는 신호를 온 몸으로 보내십시오.
경청은 한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을 해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소자 한 사람에게 한 것이 곧 주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를 떠나 경청하는 자세를 기르십시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십시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8:47)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해야 합니다.
“내 백성이여,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시78:1)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사28:23)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렘13:15)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청종하는 자에게는 복이 임하거니와(출23:21, 22, 사55:2, 렘38:20), 듣기를 거절하고 등을 돌린 자에게는 화가 임할 것입니다.(레26:21, 렘18:10)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형제사랑의 시작도 그들의 말을 잘 듣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분의 말씀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 분의 귀도 주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형제에게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워서 형제를 유익하게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리스도인 특히, 목사들은 종종 자신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항상 무엇인가를 말하고 무언가를 주어야하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형제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더 큰 봉사가 될 수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좋은 경청자가 되는 것입니다. 좋은 제자가 되려면 잘 경청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좋은 경청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무엘처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너희가 오늘 날 내 음성듣기를 원하노라”(시95:7),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계2:7)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아니할 때 이런 경고를 주십니다.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슥7:3)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 것처럼 성경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귀를 기울여만 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처럼 “아침마다 나의 귀를 깨우쳐 학자(제자)처럼 알아듣게 하옵소서”(사50:4)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우리는 부부간에도 다 마음을 열고 서로가 서로에게 귀기울인다면 사랑의 공동체가 더 공교해질 것이고 부모와 자녀들이 열린 마음으로 귀르 기울인다면 세대간의 벽도 무너지고 더 잘 이해하고 수용하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도 귀를 기울여 그들이 교회에 무엇을 원하는 가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세상사람들의 문화적 상황이나 절실한 필요에는 거의 무관심한 채 복음을 닫고 세상에 가서 우리의 메시지만을 전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성서는 가난하고 굶주린 자들, 가지지 못하고 억눌린 자들의 고통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잠21:13)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시94:9)
그런데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무관심과 무시의 뚜렷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은 사랑과 겸손과 존중의 표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귀의 속삭임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의 말에 귀를 세우고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 기도: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주님!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소망이며 생명입니다. 주님 말씀을 사모하고 경청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조심성 없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도록 저에게 겸손함과 온유한 성품을 허락하여 주시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로서 저의 입에 천국언어 담기를 소망합니다. 경청으로 상대방을 먼저 존중하게 하소서. 누구에게나 관심을 보이는 넓은 마음을 갖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묵상:
0 상대방의 말을 끊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0 같이 이야기를 하는 그 사람이 이 순간 최고로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본문: 막10: 46- 52
한 젊은이가 대중 연설과 웅변술을 배우려고 소크라테스를 찾아갔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젊은이는 이 위대한 철학자에게 자신이 소개되는 순간부터 유창하게 계속 이야기를 쏟아 내놓았습니다. 그 젊은이가 너무 오래 이야기하는 바람에 소크라테스는 지혜의 핵심부는 고사하고 그 가장자리에서 흘러나온 말 한마디도 제대로 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소크라테스는 그 젊은이의 손을 입으로 가져가 거침없이 쏟아지던 젊은이의 입을 막았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여보게 젊은이! 자네에게는 수업료를 두 배로 받아야 할 것 같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불평을 했습니다. "수업료가 두 배라구요? 대체 왜 그런 거죠?" 소크라테스는 그 이유를 이렇게 답했습니다. "왜냐하면 말일세, 자네를 훌륭한 지도자로 만들려면 자네에게 두 가지 원리를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네. 첫째는 혀를 자제하는 법을 배워야만 하네. 그리고 나서야 혀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걸세."
훌륭한 지도자는 언제나 경청하는 사람입니다. 경청하는 것이 바로 훌륭한 지도자가 배우는 방법입니다. 경청하는 것은 훌륭한 지도자가 무슨 일이 필요한지를 평가하는 방법입니다. 불행하게도 때때로 우리가 신속하게 듣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는 말하는데 너무 빠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 귀와 한 입을 주셨으므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말하는 것의 두 배만큼 듣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은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우리가 이 성경 구절의 처음 두 가지 명령을 순종한다면 세 번째 명령은 자동적으로 따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한다면 자연히 성내기는 더뎌질 것입니다. 연구에 의하면 듣는 방식에는 네 가지 기본 형태가 있다고 합니다.
"판단하며 듣는 사람" - 이런 부류의 사람은 미리 자신의 마음을 정해 놓고 진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비평적이고, 부정적이며 선입견에 사로잡혀있습니다. 17%의 인구가 이런 부류에 속합니다.
"질문하며 듣는 사람" - 이런 부류의 사람은 경청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계속해서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은 대화에서 중요하지만 곧 쓸모 없어집니다. 26%사람이 이런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조언을 하며 듣는 사람" - 더 많은 수(35%)의 사람들이 이 부류에 속합니다.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신속한 평가를 내릴 만큼 충분히 듣고 나면 상대방이 원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 조언을 상대방과는 상관없이 전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접근해갈 때 생기는 문제점은 무슨 조언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실제로는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당신은 상대방이 하는 말 전부를 듣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감정이 입을 하며 듣는 사람" - 22%만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접근법이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기분까지도 알아내기 위해 듣는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의 음색이나 얼굴 표정, 제스쳐와 같은 비언어적인 표현에도 주의를 기울입니다.
오늘부터는 귀로만 듣지 마시고 눈으로 들으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뭔가 새로운 것을 얻게될 것입니다.
경청은 귀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도 하고, 입으로도 하고, 손으로도 하는 것입니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계속 표현하십시오. 몸짓과 눈빛으로 반응을 보이십시오. 상대에게 진정으로 귀 기울이고 있다는 신호를 온몸으로 보내십시오.
아라비아 속담에 "듣고 있으면 내가 이득을 얻고, 말하고 있으면 남이 이득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철원의 군인교회에 가서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부대 지휘관은 자기 사무실로 안내해 직접 차를 끓여 주며 여러 차례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그는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습니다. 사무실 한쪽에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고 쓰인 액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들음으로써 마음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경청’이란 책을 읽다가 아주 좋아서 써놓았다고 했습니다.
살면서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는 큰 이유는 경청 결핍 때문입니다. 귀 기울여 들어주고, 공감하고, 존중해주면 싸울 일이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물질을 얻는 것보다 귀합니다. 하나님께서 입은 하나, 귀는 둘 만드신 이유는 경청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청득심의 대가이십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귀 기울이시고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경청하시듯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면 그분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 가난한 이웃들의 신음소리에 귀를 열면 그들을 주께로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잠31:2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2:29)
가정불화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할 일이 무엇입니까?
어린아이와 이야기 할 때에는 그들과 시선을 맞추고, 무엇인가 말하려고 할 때는 참고 기다리며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을 제거하고, 당신의 반응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고, 질문을 통해 관심과 흥미를 보여주십시오.
또한 청소년과 대화를 할 때에는 10대들은 독립적인 존재가 되려고 애쓰면서 권위를 거부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10대에게 귀 기울일 때 기억해야 할 5가지의 비결은 너무 많은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비판을 할 때는 가려서 하라.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10대가 말하고 싶어 할 때는 들어주십시오. 대화하기 적당한 장소를 찾으십시오.. 다음으로 노인의 말은 가슴으로 들어라. 푸대접을 받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노인들은 무례한 대접에 민감합니다.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고 비판을 하며 재축을 하고 얕보는 태도로 이야기하면 화가 나고 당황합니다. 이 경우 노인은 자신이 무능하고 아이같은 대접을 받는다고 느낀답니다.
손을 잡아줌으로써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확신을 주고, 시선을 마주침으로써 흥미와 관심을 보여주고, 이미 몇 번 들은 이야기라도 집중하여 들으십시오.
한 심리학자는 오늘 가정문제의 대부분은 배우자들 특히 남편들이 경청만 배워도 해결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남편이 집에 와서 내가 오늘 직장에서 들었는데 여자가 남자보다 갑절이나 하루에 더 많은 말을 하고 산다(남자는 1만 5천, 여자는 약 3만 단어의 말)고 하더라고 하니까 아내가 “왜 그런지 아세요?”하고 물었답니다.
“왜요?”하고 남편이 묻자 아내가 대답했습니다.
“남자들은 우리 아내로 하여금 똑같은 소리를 두 번씩 하게 만들잖아요?” 그러자 남편이 뭐라고 했을까요?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하더랍니다. 경청이 어려운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경청은 진지한 집중과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한다면 경청은 가능할 수가 있습니다. 해답은 결국 사랑입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사랑의 첫째 의무는 경청하는 것이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사랑은 이웃의 작은 신음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맹인이 큰 소리가 아닌 작은 신음소리로 외쳤어도 예수님은 여전히 그의 외침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성가에서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라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지상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본문의 맹인처럼 지금도 여전히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기도하면 그는 우리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 경청하심을 믿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도 이웃의 말을 경청하고자 한다면 이웃을 바라보고 그 앞에 머물러 집중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적의 시작인 것입니다.
경청은 이웃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경영 컨설턴트였던 피터 드러커는 “의사소통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말하지 않은 소리를 듣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일찍 심리학자들은 이런 작업을 가르쳐 “제3의 귀(The third ear)로 듣는다”고 말해왔습니다. 상대방은 표면적으로는 나를 공격하고 비난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심층적으로는 나에게 도움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웃을 돕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웃들의 소리를 마음으로 듣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바로 우리의 제3의 귀인 것입니다. 상대방이 아직도 스스로의 마음을 열기를 두려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거든 상대방이 마음을 열도록 그 마음의 이야기에 공감해 보십시오. 아니면 상대의 이야기를 내가 경청하고 있다는 신호로 그의 이야기를 다른 언어로 반복해 보십시오.
심리학자들은 그것을 ‘공감적 경청’ 혹은 ‘반영적 경청’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경청은 이웃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경청은 이웃의 믿음의 소원을 깨우는 것입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 중에는 화술에 능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게티즈버그 연설로 많은 국민들에게 평등과 자유의식을 고양시켰던 링컨, 대국민 라디오연설로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해 대공황을 극복하고 세계의 화합을 이끌었던 루즈벨트, 지지율의 열세를 공개토론방송으로 역전한 닉슨과 같은 대통령들부터 최근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두 당대에 화술로 능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루즈벨트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연설가중 한 명으로 뽑는데, 그 루즈벨트조차 말을 잘한다고 인정했던 프랑스의 한 장관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장관이 업무차 미국에 들렀다는 소식을 듣고 루즈벨트는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장관의 평소 관심사에 대해서 미리 조사한 루즈벨트는 그와 함께 밤새 담소를 나누었는데, 오랜 시간의 대화는 거의 루즈벨트에 의해 진행됐고 장관은 그것에 맞장구를 쳐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루즈벨트의 이야기를 꽤 오랜 시간 들었지만 프랑스의 장관은 전혀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계속해서 그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을 했습니다. 이윽고 장관이 떠나고 나자, 루즈벨트는 자신의 보좌관들에게 프랑스 장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저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네.”
말을 잘 하기 위해선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좋은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하듯이, 남의 말을 소중히 경청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애쓰지 않고 나의 말을 상대방에게도 쉽게 전하기 위해 먼저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십시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1864년 미국의회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헌법수정안이 통과되기 전에 링컨대통령과 인터뷰를 한 H.B 스보우는 링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습니다.
“그는 온갖 종류의 상충하는 주장, 즉 반대자들과 추종자들, 급진적인 노예폐지론자들과 보수주의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들 모두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의 말을 깊이 생각했습니다. 나는 온갖 종류의 상이한 의견에도 기꺼이 귀를 기울이는 것이 정치가의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 특히, 목회자들에게 특별히 다른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역을 맡기신 것 같습니다. 본 훼퍼는 그 특유의 통찰력으로 경청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공동체 내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마땅히 해야 하는 첫 번째 섬김은 말을 잘 경청하는 것이다.”
경청을 잘하기 위한 5가지 행동 지침서란 글을 보았습니다.
1. 공감을 준비하자 / 대화를 시작할 때 먼저 나의 마음속에 있는 판단과 선입견, 충고하고 싶은 생각들을 모두 다 비워내고 그냥 들어주라는 겁니다. 상대방과 나 사이에 아름다운 공명이 생기도록 준비하십시오.
2. 상대를 인정하자 /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잘 집중하여 상대방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인정하라는 겁니다. 상대를 완전한 인격체로 인정해야 진정한 마음의 소리가 들립니다.
3. 말하기를 절제하자 / 말을 배우는 데는 2년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데는 6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누구나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상대를 이해하기 전에 내가 먼저 이해받고 싶은 욕구가 앞서기 때문입니다.
4. 겸손하게 이해하자 / 겸손하면 들을 수 있고, 교만하면 들을 수 없다는 겁니다. 경청의 대가는 상대의 감정에 겸손하게 공감하며 듣는 사람입니다. 항상 겸손한 자세로 상대를 이해하십시오.
5. 온몸으로 응답하자 / 경청은 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눈으로도 하고, 입으로도 하고, 손으로도 하는 것이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계속 표현하십시오. 몸짓과 눈빛으로 반응을 보라 상대에게 진정으로 귀 기울이고 있다는 신호를 온 몸으로 보내십시오.
경청은 한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을 해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소자 한 사람에게 한 것이 곧 주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를 떠나 경청하는 자세를 기르십시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십시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8:47)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해야 합니다.
“내 백성이여,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시78:1)
“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사28:23)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라”(렘13:15)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청종하는 자에게는 복이 임하거니와(출23:21, 22, 사55:2, 렘38:20), 듣기를 거절하고 등을 돌린 자에게는 화가 임할 것입니다.(레26:21, 렘18:10)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형제사랑의 시작도 그들의 말을 잘 듣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분의 말씀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 분의 귀도 주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형제에게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워서 형제를 유익하게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리스도인 특히, 목사들은 종종 자신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항상 무엇인가를 말하고 무언가를 주어야하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형제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더 큰 봉사가 될 수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좋은 경청자가 되는 것입니다. 좋은 제자가 되려면 잘 경청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좋은 경청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무엘처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너희가 오늘 날 내 음성듣기를 원하노라”(시95:7),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계2:7)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아니할 때 이런 경고를 주십니다.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슥7:3)
그리스도인들은 마리아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 것처럼 성경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귀를 기울여만 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처럼 “아침마다 나의 귀를 깨우쳐 학자(제자)처럼 알아듣게 하옵소서”(사50:4)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우리는 부부간에도 다 마음을 열고 서로가 서로에게 귀기울인다면 사랑의 공동체가 더 공교해질 것이고 부모와 자녀들이 열린 마음으로 귀르 기울인다면 세대간의 벽도 무너지고 더 잘 이해하고 수용하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도 귀를 기울여 그들이 교회에 무엇을 원하는 가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복음주의자들은 세상사람들의 문화적 상황이나 절실한 필요에는 거의 무관심한 채 복음을 닫고 세상에 가서 우리의 메시지만을 전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성서는 가난하고 굶주린 자들, 가지지 못하고 억눌린 자들의 고통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잠21:13)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시94:9)
그런데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무관심과 무시의 뚜렷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은 사랑과 겸손과 존중의 표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귀의 속삭임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의 말에 귀를 세우고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 기도: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주님!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소망이며 생명입니다. 주님 말씀을 사모하고 경청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조심성 없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도록 저에게 겸손함과 온유한 성품을 허락하여 주시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로서 저의 입에 천국언어 담기를 소망합니다. 경청으로 상대방을 먼저 존중하게 하소서. 누구에게나 관심을 보이는 넓은 마음을 갖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묵상:
0 상대방의 말을 끊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0 같이 이야기를 하는 그 사람이 이 순간 최고로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