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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시19: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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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라
본문: 시19:7∼11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시19:7)
빅토리아 여왕은 64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든 위대한 왕입니다. 전 왕인 윌리엄 4세가 죽던 날 밤 전격적으로 차기 왕에 선택된 그녀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제가 영국의 왕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통치하게 해주시옵소서!” 그 기도대로 빅토리아 여왕은 영국을 다스리면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후일 인도의 왕자 한 사람이 정치를 잘하는 비결에 대해서 물었을 때 여왕은 가까이 있는 성경을 펴들고는 “바로 이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많은 부분이 헝클어져 있습니다. 이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고 안정과 질서를 회복하는 길은 바로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사형수들의 수기를 모은 ‘내 영혼을 받으소서’라는 신앙 간증집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사람을 잔인하게 16명이나 죽인 김대두씨의 실화가 실려 있습니다. 그는 사형집행 전에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는가?”라는 집행관의 질문에 “저는 이미 죽었어야 할 몸이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주님을 믿고 구원받게 해주셨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영영 이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나라에 가서 다시 만날 것입니다. 목사님,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동석했던 목사님이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누가복음 23장 42∼43절 말씀을 읽어주시자 김대두 씨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큰 소리로 아멘을 외쳤고 찬송을 부르며 평화롭게 천국으로 갔습니다.
세상이 살인마라고 정죄했던 한 사형수가 옥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예수님을 만났고, 산 소망을 찾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오늘날 이 시대의 진정한 위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말씀에 대한 무지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 박식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하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아모스 선지자는 이 시대의 위기를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아모스 8:11)
영적 전쟁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예수님의 시험과 전신갑주의 비유에서(엡 6:10∼20)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3대 시험(마 4:1∼11)을 보면 세 번 모두 사탄을 말씀으로 물리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씀을 성령의 검(엡 6:17)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전신갑주에서 다른 모든 무기는 방어용인데 반해 검만이 공격용 무기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탄이 이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영적 전쟁에서 이 말씀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단들을 보면 정통적인 교회보다 말씀을 더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외모만 보면 이단 여부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언젠가 어떤 이단 종파 사람과 논쟁을 한 적이 있는데 나보다 성경을 더 많이 인용하는데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훈련이 되어서 성경 가운데 저들의 주장과 관계가 되는 구절만 달달 외우면서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성경을 인용은 하지만 그 말씀의 뜻은 변질시킵니다. 즉 성경의 텍스트(text)를 인용할 때에 문맥(context)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인용하기 때문에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고리식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탄의 하수인인 이단에게 승리하려면 그들의 전술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단들은 말합니다. 성도들은 성경을 잘 모른다. 그러므로 성경만 인용하면 성도들은 두 손 든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알되 그 배경과 내용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며 최소한의 신학적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의 능력에 대해서는 히브리서 4장 12절에 잘 언급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그러면 말씀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첫째는 인격으로서의 말씀인 그리스도, 둘째는 기록된 말씀인 성경, 셋째는 선포된 말씀인 설교가 있습니다. 어떤 형태든 말씀으로 싸울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배우고,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줄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소성케 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한다”(7절)고 했습니다.‘영혼을 소성케하다’는 ‘생기를 돌려주다’‘북돋워주다’의 의미입니다.
이는 마치 한여름에 가물어서 비가 오지 않으면 농작물이 말라비틀어지고 시들어가지만 아침 이슬이나 단비를 맞을 때 생기가 나고 활력을 되찾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죽어 가는 영혼, 시들어 가는 영혼을 되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8장 1절 말씀을 보면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라에게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워터게이트 앞 광장에 모여 새벽부터 정오까지 성경만 읽는데도 모든 백성이 그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오늘날에 그렇게 하면 아마 오전 7시만 넘어도 10%도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말씀에 대한 목마른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서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거의 7시간을 서서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들은 말씀에 귀를 기울였고, 그 다음날에도 말씀을 듣기 위해 에스라 앞에 모였습니다. 그처럼 말씀에 대한 갈증이 있는 곳에 부흥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한 교회의 영적 수준과 한 영혼의 영성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말씀을 어떻게 받고 있느냐?”를 보면 그대로 알 수 있습니다. 그때 에스라가 율법책을 펴니까 모든 백성이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에스라가 하나님을 송축하자 백성들은 “아멘! 아멘!” 하고 화답했습니다. 그처럼 말씀에 아멘의 심령으로 화답하고 말씀의 권위를 높이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만, 말씀을 우습게 알면 아무리 그럴듯하게 신앙생활을 해도 성령의 역사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도 우리를 높여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높인다는 것은 결국 말씀을 높이는 것입니다. 누가 내 말을 잘 들으면 “저 사람이 나를 높여주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말을 잘 듣는 것은 인격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잘 듣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표시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합니다(7절). ‘우둔한 자’는 미련한 자를 가리킵니다. 미련한 자는 구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잠언 17장 15절에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 미련한 인생을 하나님을 아는 지혜로운 인생으로 바꾸어놓습니다.
옛날 어린 시절 단 것이 없을 때를 기억하시지요? 그때 단 것에 목마른 시골 어린아이들은 신나게 꿀벌을 잡아먹던 때가 있었습니다. 고무신짝을 벗어서 살금살금 꿀벌이 앉아 있는 꽃으로 다가가 고무신짝으로 꽃을 덮으면 십중팔구 꿀벌이 고무신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고무신을 사정없이 7∼8번 돌린 후 땅으로 내동댕이칩니다. 그러면 꿀벌이 정신을 잃고 나자빠져 있습니다. 그때 재빨리 꿀벌의 두 날개를 잡고 손톱으로 항문 속에 있는 침을 빼어냅니다. 그리고는 침을 뺀 곳을 입으로 쪽쪽 빨아먹으면 꿀이 감칠맛 나게 나왔습니다. 바로 이 꿀맛 때문에 옛날 시골 아이들은 봄이 되면 꿀벌을 잡아먹느라 야단법석이었습니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이처럼 꿀이 귀했다면 시편이 기록되던 3000년 전에는 어땠겠습니까? 그러나 그처럼 꿀이 귀하던 때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은 꿀보다 더 달다고 했습니다. “주의 말씀이 어찌 그리 단지요 꿀보다 꽃송이보다 더 다니이다”(시 119:103)
송이꿀 보다 더 달고 우리 영혼에 유익한, 하나님의 말씀을 늘 사모하고 가까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5, 16)
바울 사도는 디모데후서 3장에서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른다고 하면서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교만하고 부모를 거역하는 등 온갖 죄를 범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런 말세에 바로 서서 사명을 감당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려서부터 배우고 확신한 성경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배우기 시작합니다. 잘 배울 때 그 사람은 그 사회에 적응하여 생존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배우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행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젖을 빨기 시작합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본능적으로 젖을 빨고 생존하게 됩니다. 그러나 점점 인간이 성장하면 본능을 뛰어 넘어 그 사람이 살아가야 할 문화를 배우고 학문을 익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회에 뒤떨어져 낙오자가 되게 됩니다. 배운다는 것은 배운 그 내용이 그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고 행동을 불러일으키게 되어 마침내 그의 인생을 좌우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잘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배우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단순한 인생사의 살아가는 요령의 말씀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에 의하여 그의 인생이 크게 좌우되고 영생의 문제와 연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고 읽고 묵상하며, 특히 마음에 감동으로 다가오는 말씀을 부여잡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YMCA의 창설자인 조지 윌리엄은 1840년 런던에서 옷가게를 하는 점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전15:2)라는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아 나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말씀만 굳게 붙들면 반드시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청년 동료들 몇몇이 주말마다 모이게 된 것이 YMCA의 모태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의 심령과 골수를 쪼개고 우리의 죄악을 밝히 드러냄으로써 죄인임을 깨닫고 고백하게 하는 공의의 말씀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도피처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속죄의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시는 은혜의 말씀,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옛날 한 임금의 이야기입니다. 임금이 백성의 마음을 알아보고자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길 한복판에 커다란 돌을 갖다 놓고 숨어서 지켜보았지요.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저 돌을 비켜 지나가며 투덜거리고 돌에 걸려 넘어질 뻔하여 욕을 하지만 치우지 않고 그냥 지나갑니다. 그런데 어느 채소장수 노인이 마차를 타고 오다가 돌을 보고는 낑낑대며 힘들게 돌을 치웁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밑에는 황금덩이가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 곁에는 이런 편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이 돌을 치우는 자가 이 금덩이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임금으로부터”
인간의 행복은 어디 있을까요. 인생의 길에 우연히 행복을 만나면 행복한 것이고 원치 않은 고난을 만나면 불행한 것일까요. 물론 사람은 환경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환경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이든 임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입니다.
즉 복된 환경의 문제 이전에 복된 사람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복된 믿음과 복된 인격의 사람은 어떤 환경에 있든지 복을 받고야 마는 것입니다. 복된 환경을 만나도 복된 인격이 없다면 그것은 복(福)이 아니라 화(禍)가 될 수 있습니다.
동양적 복의 개념은 그가 어떤 사람인가와는 상관없이 그저 피동적으로 복만 누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수단과 방법은 가리지 않고 복만 쟁취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복의 개념은 복을 받을 만한 사람이 먼저 되고, 나아가 복을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복된 인격을 갖추면 복이 따라오는 것이고, 복의 근원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시편 1편 1절 첫 마디의 ‘복자(福者)’, 복 있는 사람이 되면 복된 환경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몇 가지 비결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악인과 의인의 기준을 자기 꾀로 사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분별력과 통찰력을 갖고 사는 가로 보고 있습니다.
둘째,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인은 목적과 목표 없이 되는 대로 살고 본능 주도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셋째,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사는 인생은 겸손해지기보다는 자기를 믿고 자기 힘, 돈, 건강, 자기 철학을 믿음으로써 갈수록 방자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오만한 자는 철저하게 인간의 능력에 경의를 표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넷째, 복자(福者)가 되는 비결은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즐거워하여 주야로 그 율법을 묵상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 인생의 제한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말씀을 꿀보다 달다고 고백하며 즐거워합니다. 기차는 레일 위를 달릴 때는 자유롭지만 벗어나면 탈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앙인이 걸어가야 할 인생의 진정한 레일입니다. 진리의 레일 위를 달릴 때 우리는 후회 없는 인생을 살고 복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세상 것에 대해서는 No!,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순종하는 데에는 언제나 Yes! 입니다.
성도 여러분. 영적인 부동자세로 복된 환경이 굴러 들어오기만을 바라지 말고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면서 복된 인격을 갖춘 자로 세상을 이기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위대한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에 이민 가서 루터교회에 출석하다 한국에 돌아온 한 여 성도가 간증을 했습니다. 나이 육십이 되도록 주일예배에는 거의 빠지지 않았으나, 주일에도 낮 예배만 끝나면 파티에 참석해 술을 먹고 춤을 추며 세상의 쾌락을 좇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에 온 다음부터는 주일 예배는 물론이고 수요일 저녁과 금요일 철야예배까지 참석하여 뜨겁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은혜를 받고 나니 말씀이 그렇게도 달고 맛있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전에는 교회에 성경책도 안 가지고 가서 그저 비치해 둔 것으로 한두 줄 읽는 정도였으나 이제는 하루 종일 성경을 읽어도 너무나 좋아서 도저히 성경을 손에서 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시편기자는 주의 법을 사랑해서 그것을 종일 묵상한다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 받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주님의 발아래 앉아서 간절히 말씀을 사모했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 시대는 예수님 당시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말씀을 듣고 읽고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좋지 않습니까?
미국 농담에 거북이 교인 (Turtle Christian)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는 9일간 먹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은 12일간이고 개는 20일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북이는 500일을 먹지 않아도 살고 뱀은 800일을 견딥니다. 곤충들은 1200일을 음식 없이도 생존합니다. 그래서 참다운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 없이 사는 신자를 거북이 크리스천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들은 매일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시119: 148)
러시아 선교에 평생을 바친 피터 다이넥가라는 분이 관광객으로 위장하여 소련 사람들에게 성경을 전해 주는 일을 하였는데 한 번은 이 다이넥가 선교사가 소련의 어느 호텔에 묵으면서 "하나님, 이 성경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제가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성경을 잘못 건네 주면 큰일나기 때문에 성경 건네 줄 사람들을 분별할 수 있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기도 중에 성경을 펼쳐 놓았는데 호텔 여 종업원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성경을 보더니 갑자기 그녀의 눈에 광채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하나님이 저 여인에게 이 성경을 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계속 그 여인을 주시했습니다. 그녀가 가까이 오더니 그 성경을 만져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선교사는 웃으면서 만져도 좋다고 말하며 이 성경을 갖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그 여인은 갑자기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감사하다고 몇 번씩이나 인사를 하고 성경을 품에 안으면서 "저는 이 성경을 갖기 위해서 20 년간 기도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제가 직접 읽어보기를 얼마나 소원했는지 모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는 성경이 너무 흔하게 우리 주변에 널려 있기 때문에 성경의 가치를 잘 모르고 있을지 모릅니다. 성경은 하늘로부터 온 한 통의 편지이며 하나님의 뜻은 성경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책이 있다면 어떤 책일까요? 그것은 성경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얼굴이 다른 것처럼 견해 또한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최고의 학자와 석학들은 거의 다 성경말씀이야말로 이 세상의 귀한 책들 중에 가장 귀한 책으로 꼽습니다.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
지금으로부터 200여년도 더 된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당시에는 성경이 널리 보급되지 않아서 값이 매우 비쌌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사서 볼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매리 존스라는 한 시골 여성은 성경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남의 집에서 일을 하며 푼푼이 돈을 몇 년 동안 모아서 성경을 살 돈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일반 서점에서 판매하지 않았기에 그것을 구입하려 40km가 넘는 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힘든 여정 끝에 마침내 성경을 손에 든 그녀는 지금까지의 피곤은 온데 간데 사라진 듯 춤을 추듯 뛰어 다녔습니다. 메리에게 성경을 팔았던 점원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메리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메리의 이야기는 곧 온 영국으로 퍼졌으며 곧 메리와 같이 말씀을 사모하는 많은 사람들의 열정이 뭉쳐 하나의 운동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1904년 영국엔 성서협회가 창설되어 성경의 출판보급을 원활히 하고 가격을 대폭 낮추어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을 기점으로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와 미국까지 성서협회가 설립되었습니다.
메리는 자신의 성경을 사모하는 마음이 어떤 결과를 일으킬지 몰랐습니다. 메리는 그저 말씀을 사모하고 기뻐했던 것뿐이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성령님은 역사하십니다. 이제는 어디서나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성경이라고 해서 우리의 열의까지 식어선 안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도 사모하십시오.
성도여러분,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받고 받은 대로 행하며 실천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삶을 안내해주는 이정표입니다. 그 말씀을 따라 가면 언제나 길이 있습니다. 길에도 바른 길이 있고 잘못된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제부터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그분의 뜻대로 이끌려 사는 귀한 삶의 주인공들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아름다움 생을 펼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진리 되신 하나님, 달고 오묘한 그 말씀 내게 허락하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주의 말씀을 통해 저희들의 영혼이 소성케 되고, 우리가 지혜로운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말씀을 사모하는 열정을 주옵소서. 주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달게 느끼도록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살아 역사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환란가운데도 하나님의 말씀이 제시하는 방법만을 찿게 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보배로우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2부: 분반(구역)공부 자료
1. 말씀: 신앙과 말씀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고 우리의 삶이 변화되는 것은 우리가 받는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사람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고 그 말씀이 자신을 변화시키리라는 믿음을 갖기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포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때 우리의 믿음이 굳게 설 수 있고 그 믿음의 그릇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데살로니가전서 2:13)
* 기도: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도 우리 가운데 살아서 역사하고 계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들이 언제나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믿음 위에 굳게 서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2. 묵상 및 토의
0 악해지는 세상에서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 승리합니까?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 안에 거합니까?
0 설교자의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있는가?
0 하나님의 음성을 가까이 두고 수시로 들을 수 있는데도 다른 방법으로 구하려는 신자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0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느낀 점이나 앞으로의 나의 결심, 각오, 다짐 등을 이야기 해보세요
3. 예화(1): 말씀을 먹으라
김익두 목사는 원래 황해도 깡패요 그 당시 소도둑으로 소문난 사람일 뿐만 아니라 술김에 하는 행패는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였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갑자기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누구보다 선한 사람이 되어 전도하러 다니니 전에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 참으로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도대체 자네는 그 좋아하던 술과 담배를 끊고 이런 모습으로 요즘 어떻게 살아가나? 그 때 김익두 목사의 대답은“나는 요즘 약 두첩씩을 매일 먹고 있다네”. “뭐야? 약을 두첩씩 먹고 있다고?”
“그렇다네! 이 약을 먹으니 술과 담배와 향락보다 더 즐겁고 좋은 엄청난 축복이 쏟아지네 그려”. 그러자 친구들이 무척이나 궁금해하며 우리도 좀 가르쳐 주게나. 하며 졸라댔습니다. “ 정 그렇다면 가르쳐주지. 그 두 첩의 약이란 신약과 구약이라는 약일세. 이 약만 먹으면 몸과 마음의 어떤 병이라도 모두 고칠 수 있지” 라고 했습니다. 그 후 그는 친구들에게 정성스레 신약과 구약을 먹여 그들의 몸과 정신의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1:2)
* 예화(2): 불타버린 서고(書庫)
20여 년 전 출판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해 겨울이었습니다. 당시 책을 쌓아 두는 서고가 신설동에 있었는데 그 건물에 화재가 났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서고 두 곳 중 큰 서고는 화를 면했습니다. 그러나 재산이라고는 서고에 쌓인 책이 전부였던 저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하나님,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저는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했습니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평소에 즐겨 암송하며 묵상하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장 28절)
이 말씀이 생각나자 제 마음은 근심에서 기쁨과 감사로 바뀌었습니다. 두 서고가 다 타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은 것, 서고 하나가 물세례를 받았지만 바닥에 있는 책 외에는 닦아서 쓸 수 있는 것 등 감사할 일이 많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낙심이 빠졌을 때 암송하던 말씀이 떠오르게 하셔서 저를 위로하시고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성경암송의 즐거움에 빠져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여운학(사랑의 편지 발행인)
* 예화(3): 집을 잘 짓는 지혜
우리 모두는 집을 짓고 삽니다. 육신을 위해 집을 짓고 살면서 동시에 영혼을 위한 집도 짓습니다.
‘영혼을 위한 집을 짓는다’라는 것은 ‘인격’이 집을 짓는 것이며 ‘성품’이 집을 짓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어떤 인격을 가지고 있느냐, 어떤 성품을 가지고 있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인격과 성품이 바로 그 사람 전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재료를 똑같이 주셨습니다. 집을 짓는 데 필요한 철근, 목재, 시멘트, 타일, 유리 등 모든 것을 동일하게 주셨습니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두 사람이 집을 짓기 시작했는데, 1년 후에 큰 차이가 났습니다. 한 사람은 그 재료를 잘 이용해서 쓸모 있고 아름답게 집을 지었으나, 다른 한 사람은 집을 짓지 못하고 재료를 그대로 방치한 것입니다. 세월이 지났지만 그 사람은 지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는 나이를 먹어도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예전과 똑같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또한 건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설계도입니다. 집을 지을 때 절대로 설계비를 깎으면 안됩니다. 또한 설계도를 무시하고 시공하면 안됩니다. 설계도대로 해야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복된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 예화(4): 말씀을 사모하라
오랜 세월 동안 항해를 해온 선장이 어떤 모임에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혼자서 배를 타고 항해할 경우에 가장 위험한 때는 언제일 것 같습니까?" 그러자 참석자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폭풍이 몰아칠 때"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혼자서 항해할 경우, 가장 위험한 때는 폭풍우가 몰아칠 때가 아닙니다. 있는 힘을 다해 상황과 싸우기 때문에 목숨을 잃는 경우가 드뭅니다. 제일 위험한 때는 바람도 잔잔하고 날씨도 쾌청한 때입니다. 마음에 아무런 긴장이나 조심이 없어 갑판을 걷다가 떨어져 바다에 빠지는 일이 자주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커다란 문제가 있거나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보통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말씀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인생이 평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일이 드물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힘만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제나 말씀을 사모하며 말씀을 지키기 위해 늘 노력하는 자세가 꼭 필요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시19:7)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시119: 148)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내가 주의 율례를 길이 끝까지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시119:112)
* 예화(5): 하나님 말씀의 위력
1517년 10월31일 독일의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 계시판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내걸면서 로마 교회의 타락상을 비판했던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의 선봉자 이었습니다. 그의 비판에 대해 로마교회는 즉각 반격하고 보름스에서 열리는 회의에 루터를 소환하였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그에게 호의적인 성주들의 도움을 받아 피헤 다니며 틈틈이 라틴어로 되어있던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 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평신도 들이 성경을 접할수 있었습니다. 루터에게는"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즐거움이니다"(시119: 143) 라는 말씀이 그대로 적용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고통과 좌절을 가져오는 환난이 닥치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평안해 보이는 가정이나 교회 혹은 단체에도 내부적으로는 문제나 갈등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악에 뿌리박은 인생사의 기본적인 법칙이기도 합니다. 그때에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은 바로 하나님 말씀에서 찿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인도하는 방법을 즐거운 마음으로 신뢰 할 때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인생사에 대한 해결책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 묵상: 성경을 소중히 생각하며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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