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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행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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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10·04·30
사탄의 시험
사탄은 끊임없이 교회를 공격해 왔습니다. 사탄은 유대 관원들을 통해 교회를 핍박했으며,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통해 교회를 부패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탄의 공격과 시험은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박해와 내적인 부패에 의하여 교회를 공격하는 일이 실패하자, 사탄은 이제 교회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본분으로부터 다른 데로 관심을 돌리게 함으로써 교회를 약화시키려고 했습니다. 만일 사도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소명, 즉 기도하고 말씀 전하는 책임을 소홀히 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교회는 허약해지고 쉽게 무너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탄은 교묘하게 시험을 해왔습니다. 사탄의 이 공격은 지금까지의 공격 중에서 가장 교묘한 것이었습니다. 교회의 선한 사업 중의 하나인 구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성령이 충만한 초대 교회 성도들이 자기들의 소유를 팔아서 사도들에게 가져왔던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돈으로 구제를 하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당시 교회의 지도자들이었던 사도들이 이 일을 주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에 이 구제와 관련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불평이 시작되다.
우리는 초대 교회가 완벽한 교회인 줄로 알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가운데서 나날이 부흥하던 초대 교회 안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상에 있는 교회들 중에 문제가 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문제들을 어떻게 잘 극복해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당시 초대 교회 안에는 히브리파와 헬라파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전자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살아왔던 유대인들이었고, 후자는 고국을 떠나 흩어져서 헬라 문화의 배경 아래서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그 문화적인 배경이 달랐습니다. 그런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불평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매일의 구제에 있어서 헬라파 과부들이 히브리파 과부들에 비하여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에 제자의 수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1절) 그토록 아름답고 힘 있게 부흥하던 초대 교회는 바야흐로 위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당시 사도들이 깨어 있어서 이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여 적절하게 대처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교회는 큰 상처와 해를 당했을 것입니다.
원인 - 문제의 본질
사실 초대 교회에서 발생한 문제는 히브리파와 헬라파 유대인들 사이의 문화적인 차이나 불공평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도들은 여기에 보다 본질적이고 깊은 차원의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구제 사업이 그들의 시간을 많이 빼앗아 주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일, 즉 말씀전파와 가르치는 일, 그리고 기도를 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일로 바빠서 자신들의 본분에 충실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도들은 문제점을 분명하게 파악했습니다.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2절) 예루살렘 교회에 믿는 자들이 매우 많아지자, 이제 구제하는 일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사도들이 다 맡아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도들은 과중한 일을 감당하느라고 너무 바쁘게 되었고, 그들의 가장 중요한 본분이었던 기도와 말씀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사탄이 사용하고 있는 작전 중에서 가장 재미를 많이 보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합니다. ‘목사들을 바쁘게 만들어라!’ 오늘 목사들이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어떤 목사는 많은 모임에 참석하느라고 얼마나 바쁜지 거의 하루도 집에 붙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목사가 어떤 설교를 할지는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그 교회 성도들은 얼마나 굶주리고 허약해지겠습니까? 교회를 공격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목회자를 공격하는 것인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하면서도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방법이 바로 목사를 바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런데 목사가 스스로를 바쁘게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교회가 목사를 바쁘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많은 목사들이 말씀 사역에 집중하는 대신 행정적인 일이나 목사가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잡무에 압도되어 버립니다. 교인들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이러한 일들을 목사가 필요 이상으로 짊어지고 바쁘게 뛰어 다니는 동안에 목사의 설교와 가르침의 수준은 점점 낮아집니다. 목사가 연구하거나 기도할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목사로 하여금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도록 최대한 협조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가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그 본분을 떠나서 여러 가지 일들을 혼자서 해나가게 될 때 나타나는 또 한 가지 폐단이 있습니다. 그것은 목사가 모든 일을 다 하기 때문에 평신도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은사를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혼자서 과도한 일들을 감당하는 것은 자신과 교회에 큰 손해가 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가 만난 위기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사탄은 교묘히 교회의 지도자들을 바쁘게 만들어서 교회를 공격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이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여 적절하게 해결해 나갔습니다.
해결책
문제가 생길 때 우리가 가장 많이 취하는 자세는 그만 두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표를 던지고 직장을 떠나버리는가 하면, 이혼하여 끝장을 내버리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다가도 문제가 생기면 그만 두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구제처럼 교회의 중요한 사역들은 그렇게 쉽게 중단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도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사도들은 우선순위를 분명히 함으로써 이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구제하는 일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가장 우선적인 사역은 말씀을 전파하는 사역입니다. 구제하는 사역이 귀한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이 사도들의 본질적인 사역을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초대 교회의 가장 시급한 일은 사도들을 기도와 말씀전파 이외의 모든 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4절) 교회 안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기도와 말씀이 다른 것에 의하여 희생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그 어떤 행사도 말씀과 기도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약화되면 교회가 다른 일들을 아무리 많이, 그리고 활발하게 한다고 해도 그 교회는 약화되고 변질되고 결국에는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경우에도 교회는 말씀과 기도를 희생시켜서는 안 됩니다.
일군들을 택함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기로 한 것은 당연한 일이며 현명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계속해 오던 구제사역은 누가 감당할 것입니까? 사도들은 교회로 하여금 이 일을 감당할 사람들을 택하게 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3절)
교회에는 구제뿐만이 아니라 그 외에는 다른 중요한 일들이 많습니다. 행정, 재정, 선교, 교회 음악, 멀티미디어, 건물이나 차량관리 … 이 모든 일들을 누가 다 감당할 것입니까? 평신도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따라 각각 사역의 전문가들이 배출되어야 합니다. 평신도들 가운데서 행정 전문가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선교에 관한 전문가, 관리에 대한 전문가, 교회 음악에 대한 전문가도 평신도 가운데서 나와야 합니다. 교회에는 각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는 이러한 평신도들을 발굴하고 양육하여 유능하고 신실한 일군들로 세워 다함께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도록 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사역들을 감당할 평신도 사역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으로 준비되는 일입니다.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기 위해 구제를 맡길 사람들을 택하게 했습니다. 특히 교회의 일군들을 택하는 일에 있어서 분명한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회계 업무에 밝은 사람이 아니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지식과 능력과 열심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라야 합니다. 이러한 교회의 일군은 하나님 말씀을 통해 양육되고 준비되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준비되지 못한 사람들은 지식과 경험이 있다 해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의 중요한 사역들을 그르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훈련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함부로 일을 맡길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 나오는 일곱 집사 중에서 스데반과 빌립을 잘 알고 있는데, 그들은 얼마나 말씀에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까? 우리 교회에서 항존직(장로, 권사, 안수 집사)을 받을 분들은 반드시 제자 훈련을 성실하게 받아야만 합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을 선택함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기 위하여 구제 사역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이 일은 누가 감당할 것입니까? 초대 교회는 집사들을 세워서 이 일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5-6절)
그런데 구제사역을 감당하게 하려고 세운 사람들의 이름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들이 모두 헬라파 유대인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편중된 인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문제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매일의 구제에서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헬라파 사람들, 즉 자기들의 과부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무시당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중에서 일곱 사람을 선택하는 멋있고도 은혜로운 일을 함으로써 진정으로 강한 교회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제가 있을 때 과감하게 양보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정신입니다. 오늘 우리게 이러한 정신이 얼마나 아쉽습니까?
선택의 기준
그렇다고 해서 헬라파 유대인들 중에서 아무나 선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택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사역을 위한 일군을 선택하는 기준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성령은 충만한 것 같은데 지혜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일을 맡겨 놓으면 신앙적이기는 하지만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일을 처리합니다. 지혜는 있으나 전혀 성령 충만하지 못한 사람은 비신앙적인 방법으로 일을 처리합니다. 따라서 이 두 종류의 사람은 교회의 사역에 합당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초대 교회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들을 택하여 세웠습니다.
우리 교회는 일 년 후에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를 뽑을 것입니다. 이 일은 우리 교회 역사상 대단히 중요하고 뜻 깊은 일입니다. 어떤 사람을 장로로 세우느냐에 따라 교회의 앞날이 크게 좌우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세워야 할까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지금부터 잘 준비하고 세심하게 관찰하여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교회의 지도자로 세울 수 있도록 합시다.
그 결과
초대 교회는 사탄의 교묘한 시험을 받았으나 이와 같이 문제를 훌륭하게 처리했습니다.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게 했으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군들을 세워서 구제의 사역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그 결과 초대 교회는 더욱 놀랍게 부흥해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7절)
여기서 우리는 교회 부흥의 비결을 찾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무엇보다 우선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 말씀과 기도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는 말씀과 기도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군들이 세워져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더욱 힘차게 부흥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사역 - 말씀
교회의 가장 위대한 사역은 말씀사역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으로만 죄인이 거듭날 수 있으며, 이 말씀으로만 사람이 진정으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으로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 없이는 어떻게 구제하고 봉사할 것인지도 배울 수 없습니다. 말씀 없이는 좋은 일군이 세워질 수 없습니다. 말씀이 살아있는 한 그 무엇도 교회의 전진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놓쳐 버리면 교회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는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교회는 목사로 하여금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도록 기도와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배우며, 말씀을 통하여 교회의 여러 가지 사역을 위하여 준비되어야 합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군들이 많이 세워져서 교회의 여러 사역들을 충성되고 아름답게 잘 감당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교회는 견고하게 성장해갈 수 있습니다. 말씀 위에 굳게 서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능력 있고 충성되게 주님을 섬기는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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