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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행9:19하-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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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10·08·07
당신은 예수님을 만난 후 완전히 변화되었습니까? 성경은 예수 믿고 나면 누구나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갈릴리 해변의 무식하고 거친 어부였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위대한 사도로 변했습니다. 떳떳치 못한 결혼을 다섯 번이나 하고 현재 함께 살고 있는 남자도 제 남편이 아니었던 사마리아 여인은 그리스도를 만나고 자기 마을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악명 높은 세리로 백성들의 원망과 미움을 받았던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 자기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 믿고 변화된 수많은 사람들의 예를 다 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예수님을 만난 후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오늘 우리는 잔인하고 포악한 핍박자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울은 이제 자기가 체포하여 감옥에 넣으려했던 그리스도인들과 믿음의 형제가 되어 교제하며 더불어 지내게 되었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을 있을새”(19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교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특히 이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기 시작한 사람들은 홀로 서기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더불어 서는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교제권 안에서 우리의 신앙은 바르게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4-25) 당신은 형제들과의 교제를 힘쓰고 있습니까? 특히 교회에 새로 나온 분들은 이 복되고 아름다운 교제권 안으로 적극적으로 들어오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전파함
사울의 회심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교육을 받은 논리의 대가요, 유대교의 탁월한 신학자였던 사울이 이제는 열정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20-22절)
사람들은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리스도인들을 혹독하게 핍박하던 사울이 이렇게 복음 전하는 것을 보고 놀라 몰려들었습니다. 사울은 더욱 힘을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의 유대인들을 굴복시켰습니다. 특별히 지식인이요 열렬한 바리새인이었고 핍박자였던 사울의 회심과 복음전파는 당시 세간에 큰 화제 거리였으며, 큰 영향을 끼쳤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여러 날이 지나매
‘여러 날이 지나매’라고 표현된 19절과 23절 사이에는 적어도 2-3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에 사울은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요? 갈1:17-18에서 우리는 이 기간 동안에 사울이 아라비아 광야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다메섹에서 아나니아를 만난 후 아라비아 광야로 갔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아라비아는 사막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왜 사막으로 나갔을까요? 사울은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훈련받기 위하여 아라비아 광야로 나갔던 것입니다.
훈련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사울은 주님을 만난 후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 동안 철저히 외롭고 고독한 가운데 주님과 단 둘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훈련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기 전에 종으로 팔려 가는 것으로 시작하여 많은 훈련을 받았으며, 모세도 미디안 광야에서 무려 40년 동안이나 훈련을 받고 나서야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3년의 공생애를 위하여 30세까지 준비하셨으며,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는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개인적으로 이러한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특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최소한 2-3년은 이렇게 준비하는 기간을 가져야 합니다. 소명을 받았다고 해서 즉시 일하러 갔다가는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우리는 일하러 가기 전에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가져야 하며, 주님의 말씀에 깊이 빠지고 깊이 기도하며 준비하는 기간을 가져야만 합니다. 이렇게 충실히 준비하고 나서야 주님을 위하여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양육을 받고 훈련 받기를 힘써야 합니다. 준비되지 못하고 일하면 일을 망치고 손해를 가져옵니다. 준비된 만큼, 말씀으로 무장된 만큼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일군들을 양성하기 위해서 2년 과정의 제자 훈련을 필수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최소한 7년 이상의 정규과정을 거치며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충실하게 훈련될수록 좋은 사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핍박
아라비아 광야에서 주님과 진지한 시간을 보낸 후 사울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왔습니다. 본문은 그 기간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여러 날이 지나매’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 훈련과정을 보낸 후 사울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왔습니다. 과거에는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여 감옥에 넘기려고 다메섹을 방문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다메섹에 나타난 것입니다. 아라비아에서 다메섹으로 돌아 온 사울은 그리스도를 전파했으며, 그로 인하여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과거에 철저한 바리새인이요 교회를 핍박하는 데 앞장섰던 사울이 이렇게 돌변하자, 사울이 자신들에게 큰 손해와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고후11:32에서 바울은 자신을 해하기 위하여 유대인들이 다메섹에서 세웠던 계획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유대인들은 아레다(아라비아)에서 온 방백들과 더불어 사울을 잡기 위하여 성문을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이 사울에게 알려져서 사울은 그의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성을 탈출했습니다.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23-25절)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는 이렇게 고난이 따릅니다. 초대 교회 이후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O.M.선교회의 본부에는 순교자 23명의 사진이 걸려 있는데, 그들은 거의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양화진에는 우리나라에 와서 많은 고난을 당했고 순교를 당하기까지 했던 선교사들이 누워있습니다. 복음이란 그렇게 값싸게 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열정과 수난과 헌신을 통하여 전해집니다. 헬라어의 증인(μαρτυς)라는 말이 순교라는 단어와 관련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Bonhoeffer는 “고난은 참된 제자의 상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제자들의 의심
이와 같이 다메섹에서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던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아마도 그곳이 사울에게는 가장 안전한 곳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은 아직 사울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26절) 그들은 사울이 회심하기 이전의 행적에 대하여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을 의심하며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이려 했으며, 제자들은 사울을 의심하면서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사울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사울의 입장이 딱했지만 예루살렘의 제자들을 무조건 나무랄 수만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때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바나바였습니다.
행11:24에 보면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4:36에서는 자기의 밭을 팔아서 사도들에게 가져올 만큼 헌신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를 소개했습니다.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27절) 바나바는 사울이 어떻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었는가 하는 것과, 그가 변화된 즉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전파하기 시작한 일, 그리고 그 후 약 3년 동안 아라비아 광야에서 자신의 허물된 옛날을 청산하고 새로운 소명을 받고 돌아온 일 등을 자세히 말해주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은 신임할 만한 바나바의 말을 듣고 사울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바나바는 바울과 같이 위대한 사도는 아니지만, 사울이 위대한 사도가 되게 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장차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보는 영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나바가 가지고 있었던 또 한 가지 귀중한 점은 화해자의 모습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오해와 손해를 받을 소지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을 소개하고 변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당신은 오늘 교회에서 바나바와 같이 화해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에 바나바와 같은 성도가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헬라파 유대인들
이제 예루살렘 교회에 받아들여진 사울은 거기서도 복음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그는 특히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변론했는데, 스데반도 헬라파 유대인들과 논쟁을 했었습니다. 사울 역시 헬라파 유대인이었습니다. 스데반이 헬라파 유대인들과 변론할 때 사울도 스데반의 변론을 들었으며, 그 일로 인하여 유대인들은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 때 사울은 스데반이 죽는 것을 마땅히 여기며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울이 스데반처럼 이 헬라파 유대인들과 변론을 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이 하던 일을 이어 받아 했던 것입니다.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28-29절)
사울도 한 때는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그들과 함께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울이 갑자기 예수를 믿고 그분을 전하자 헬라파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안 믿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그들과 함께 술도 마시고 놀러 다니기도 하다가, 이제 예수 믿고 교회로 들어오게 되면 옛날의 친구들과 예전처럼 어울릴 수 없게 됩니다. 그럴 때 세상 친구들은 우리를 배신자 취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 이럴 수 있어? 이제 의리를 끊겠다는 거냐?”는 등의 비난을 듣게 되며 핍박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믿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서도 여전히 옛날 세상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은 아직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 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예전처럼 그들과 어울릴 수 없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헬라파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신앙적으로 볼 때 사울은 하나님께 돌아온 것이지만, 세상적으로 볼 때는 배신자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픔과 어려움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배신자가 되기 싫어서 여전히 그들과 적당히 어울리고 교회도 적당히 나오고 하면서 양다리를 걸치다가는 아무리 오래 믿어도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서는 세상에 대하여 부득이 배신자가 되며 핍박을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교회가 평안하며 든든히 서감
31절은 지금까지의 기사를 정리하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이 말은 지금까지 초대 교회의 모든 역사를 염두에 두고 기록한 말입니다. 지금까지 초대 교회에는 무슨 일들이 있었습니까?
사실 지금까지의 교회의 역사는 형통한 역사가 아니라 핍박으로 점철된 역사였습니다. 사도들은 채찍에 맞고 위협을 당했으며, 스데반은 단 한 번의 설교를 한 후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극심한 핍박이 일어나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각지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교회의 전진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흩어진 성도들은 그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으며, 기세가 등등하던 핍박자 사울은 주님 앞에 거꾸러져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복음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숱한 핍박을 당했으나 교회는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갔습니다. 만사가 형통했기 때문에 평안하고 든든히 서 간 것이 아니라, 이 모든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역사로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갔다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평안하고 든든합니까? 이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평안하고 든든합니까? 성도는 돈이 많고 세상의 권세와 명예가 있어서 평안하고 든든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날마다 새롭게 부어주시는 은혜 때문에, 성령께서 위로해 주시기 때문에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성도는 평안하고 든든한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하심으로 평안하고 든든합니까?
진정한 그리스도인 되며 주님의 일에 쓰임 받는 제자가 되려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체험이 있어야만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주님을 위해서 죽기를 각오할 수 있겠습니까? 아직도 여러분의 인격과 삶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체험이 없는 분들은 정말 진지하게 주님을 만나기 위해 기도하기 바랍니다. 주님은 살아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당신이 그렇게 진지하게 기도할 때 반드시 말씀해 주시고 만나주실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며 주님께 쓰임 받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을 만나는 것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또한 영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주님 앞에서 나의 성품과 인격이 변화되기 전에는 주님의 일에 제대로 쓰임을 받을 수 없습니다. 충실하게 예배에 참석하며, 날마다 진지하게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쓰실 만한 사람들로 준비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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