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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행9:3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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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10·08·13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으나 여전히 이 땅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물론 성령을 통하여 일하시지만 특별히 당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일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하셨던 것과 똑같은 일들을 지금도 교회를 통해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주님께서 당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이 땅에 계실 때 하셨던 일들을 계속하고 계시는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은 28장까지 기록되었지만, 그것으로 종결된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고,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베드로를 통해 일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로서 주님께서 하시던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까?
심방하는 베드로
사도행전의 전반부(12장까지)는 주로 베드로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고, 후반부(13장부터)는 주로 바울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반부인 8:25에서 베드로에 대한 기사가 중단되고 9:30까지 바울의 기사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본문에 다시 베드로의 행적이 기록되어 12장까지 계속되고, 그 후로는 베드로의 행적은 더 이상 기록되지 않습니다. 대신 13장부터는 바울의 행적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베드로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본문이 8:25에서 다시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빌립이 전도한 사마리아를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빌립이 전도한 사마리아를 방문하여 빌립의 사역을 도운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마리아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베드로가 이제 흩어진 교회를 돌아 본 뒤 다시 룻다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32절)
요즘으로 말하자면 베드로는 지금 심방을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심방은 성도의 신앙을 북돋아주며 어려운 성도를 돌아보는 대단히 중요한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심방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심방은 교역자들만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평신도들도 심방해야 합니다. 특별히 권사는 심방하기 위해 세워진 직분입니다. 목자들이 목장식구들을 심방하며 돌보아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권사들과 목자들은 나름대로 성도들의 형편을 잘 살펴서 심방하고 그 결과를 목사에게 알려 주어야 합니다. 이 때 주의해야 할 것은 반드시 목회자의 지도를 받아서 심방해야 하며, 특히 덕을 세우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애니아
베드로가 여러 지방을 순회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 갔는데, 그곳에는 중풍병으로 8년 동안 누워있는 애니아라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베드로는 그 중풍병자를 고쳤습니다. 베드로가 이 중풍병자를 고치는 모습은 마치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네 친구들에게 들려 온 중풍병자를 고치신 장면과 흡사합니다. 주님께서는 그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막2:11) 그러자 그 사람은 즉시 일어나 자기의 침상을 들고 걸어갔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8년 동안 중풍병으로 누워있던 애니아에게 “네 자리를 정돈하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34절) 우리는 베드로가 어디서 이런 능력을 얻었으며, 어디서 이런 일을 배웠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서 이 모든 것을 배웠으며, 더 나아가서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행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능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14:12). 이 약속은 교회가 세워지고 사도들이, 그리고 교회가 주님의 사역을 계승하여 감당해 나감으로써 실현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하심으로 사도들과 교회가 당신의 대변자요 대리자임을 확증해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더욱 능력 있게 복음을 전하려면 이러한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더욱 뜨겁게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애니아에게 명령하자 애니아는 즉시 일어났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고쳐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애니아가 고침 받은 일을 계기로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복음이 능력 있게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35절)
이적을 행한 사람은 베드로였으나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능력이 베드로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결코 하나님 대신에 인간이 높임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중에 누가 신유의 은사를 받아서 병을 고쳤다든지 다른 은사를 통하여 큰일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행하신 분은 오직 주님이시기 때문에 오직 주님께서만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이 영광을 가로채려는 것은 사탄이 주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했던 사람들은 다 이단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영광은 오직 주님께만 돌려야 합니다.
다비다
욥바에는 다비다라고 하는 여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36절) 다비다의 구제는 가장 모범적이고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많아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어떤 여자일까요? 외모가 예쁜 여자가 아름다운 여자일까요? 요즘 여자들은 예뻐지기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외모가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외모가 아름답고 교양도 있으며 성격도 좋고 재능 있는 여자라면 참으로 아름다운 여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이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여자 다비다에 대해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문은 이 여자에 대하여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았다”라고 극히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를 찾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여자는 믿음으로 말씀을 순종하여 남에게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할 줄 아는 여자입니다. 우리 교회 여성도들은 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들이 되기 바랍니다.
진정한 구제
다비다는 많은 선행과 구제를 했는데, 그 한 예로 과부들의 옷을 지어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들을 다 내보이거늘”(39절)
그녀에게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었습니다. 구제와 선행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다비다는 가난하고 불쌍한 과부들을 위해 손수 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이 너무나 메말라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늘 우리는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도와주기 전에 이것저것 따지면서, 그런 사람은 도와 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도와야겠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고, 결국은 구제를 실천하지도 못하게 됩니다. 나는 목사로서 이런 저런 사람들을 도와주자고 말했다가 꼼꼼히 따지는 바람에 무안을 당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그러나 다비다가 그런 식으로 구제를 했을까요?
오늘 교회에 구제가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당신이 살고 있는 모습을 되돌아보기 바랍니다. 물론 어렵게 검소하게 사는 분들이 많은 줄 압니다. 그러나 어려운 이웃들을 생각할 때 내가 지금 사는 모습이 좀 사치스럽고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까? 당신은 오직 당신의 가정과 가족들을 위해서만 돈을 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어려운 이웃을 향하여 눈을 돌립시다. 그리고 따지지 말고 어려운 이웃을 도웁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에게 관심이 많으시고 기뻐하시며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하고 구제와 기도를 힘쓰던 이방인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행10:4) 가난한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함으로 구제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다비다의 죽음
그런데 이렇게 착하고 아름다운 다비다가 죽었습니다. 다비다가 죽자 사람들은 그녀를 씻겨서 다락에 뉘어 놓고 룻다에 있는 베드로에게 사람 보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베드로가 룻다에서 중풍병자를 고쳤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베드로가 오면 다비다를 살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들은 다비다를 그냥 장사지낼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아쉽고 애석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청하여 오게 했습니다.
욥바에 온 베드로는 감동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과부들이 다비다가 생전에 자기들에게 지어 준 겉옷과 속옷을 가지고 와서 보이면서 베드로 곁에 서서 울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들을 다 내보이거늘”(39절) “다비다가 우리에게 지어 준 옷입니다. 그녀는 평생을 이렇게 착하게 살았습니다.” 과부들은 평소에 다비다가 자기들에게 보여 준 사랑과 애정을 생각하면서 울음을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사람은 죽어봐야 안다고 합니다. 당신이 죽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와서 울어 주겠습니까? 예수님을 죽이려고 베들레헴 근방의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들을 다 죽였던 잔인한 헤롯은, 평생에 못된 짓을 너무 많이 해서 자기가 죽을 때 백성들이 울지 않을 것이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지도자들을 많이 잡다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죽을 때 그들을 모두 죽여서 백성들이 많이 울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헤롯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모두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죽음을 잘 준비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오래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건강하게 많은 것을 누리며 사느냐 하는 것도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한 인생을 살았느냐, 사람들이 애석해하고 와서 울 만한 인생을 살았느냐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다비다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와서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감동 받는 베드로
과부들이 베드로 곁에 서서 다비다가 자기들에게 지어 준 옷을 내어 보이면서 우는 것을 볼 때 베드로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베드로는 마음이 감동되어서 하나님께 기도할 마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사람들을 다 물리치고 다락에 올라가 다비다를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40상)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 이렇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려는 그의 눈물겨운 모습, 주님을 위해 충성하기를 사모하는 그의 열심, 교회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봉사하려고 애쓰는 그의 모습을 생각할 때 마음이 뜨거워지고 기도할 마음이 더욱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탄식만 나오고 기도가 잘 안 되는 때도 있습니다. 당신의 믿음과 열심과 선행, 모든 행동이 목회자를 감동시켜 당신을 위해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귀하게 응답하시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마음이 뜨겁게 감동된 베드로는 사람들을 다 내어 보내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베드로는 “다비다야 일어나라!”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죽었던 다비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40절)
베드로가 어떻게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이런 일을 행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어디서 그렇게 배우고 훈련을 받았을까요? 우리는 그 대답을 막5:35-43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베드로가 다비다를 살리는 장면과 비슷합니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하신 것과 똑같이 모든 사람을 밖으로 내어 보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똑같이 말했습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예수님께서는 “달리다굼”즉 “소녀야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베드로가 행한 두 번의 이적은 모두 예수님의 모범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베드로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으로 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모든 일들을 통해 오직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주님의 사역을 계승한 교회
오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씀을 전파하시고 가르치시고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오늘 교회가 해야 할 일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습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베드로의 사역을 통해 이 문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교회가 주님의 일을 감당케 하시려고 교회에게 능력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14:12).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24:49) 교회가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를 갈망하면서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성령을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더욱 뜨겁게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충만을 받고 능력 있게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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