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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전3: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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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홍철의 청년 |
참고 : | 2011년 6월 19일 청년회 헌신예배 |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나는 청춘이다.
(전도서 3장 1-22절)
2011년 6월 19일 청년회 헌신예배
말씀증거(1), 홍철의 청년
청춘이란 주제로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제 지난날의 삶은 크게 3가지 주제에 대한 싸움이었습니다.
첫 번째가 어머니와의 싸움입니다. 전 저의 초등학교 시절을 생각하기도 싫어합니다. 그때의 전 심한 말더듬이였습니다. 아직까지 그 버릇이 남아 이렇게 긴장을 하면 말을 더듬는데 그때는 지금과는 차원이 달라 말을 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때문에 겁이 많고 소심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만화책, 책과 함께하며 그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로 찾아오셨던 어머니 덕분에 전 마마보이로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마마보이란 별명이 어린 아이에게 주는 스트레스를 상상하지 못하실 겁니다. 또한 어머니는 초등학생인 저의 성적에 굉장히 민감하셨습니다. 때문에 시험이 끝나면 시험 성적으로 매우 많이 맞았습니다. 기억나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시험이 끝나고 아래층 여자 친구 집에서 놀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들어오시더니 “몇 개 틀렸어?”라고 물으시는 겁니다. 전 자랑스럽게 말했지요. “9개 틀렸어요.” 어머니는 그 집의 파리채를 드시더니 저를 심하게 때리셨습니다. 알고 보니 어머니가 싫어하는 친구 분의 아들보다 제가 시험을 더 못 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말더듬는 아이, 마마보이로서의 초등학교 시절이 지나고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전 결심을 했습니다. 이대로의 나는 안 되겠다. 변해야 한다. 어떻게든 변하자. 그래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어이없게도 안 씻는 것이었습니다. 조용하고 귀하게 자란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아서 한 일이었지요. 옷도 잘 안 갈아입고 같은 옷을 몇 주일 동안 계속 입고 다녔습니다. 이미지 변신은 성공했습니다. 전 반에서 가장 더러운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마보이란 이미지와 반대되기에 마마보이란 이미지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제 삶의 터닝 포인트. 중학교 1학년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제가 공부를 안 한다며 약국에서 잠 안 오는 약을 사오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먹였죠. 전 그걸 먹고 오기로 잠을 잤습니다. 새벽 3시에 어머니께서 절 깨우더군요. 공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생전 처음으로 반항이란 걸 해봤습니다. 내게 왜 이러는 거냐고. 너무한 거 아니냐고. 어머니는 순한 아들이 처음으로 반항하는 것을 보고 놀라 자신도 우셨고 그것으로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아셨는지 제게 생애 최고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제게 준 선물은 바로 자유였습니다. 이제 그 어떤 것에도 간섭하지 않으셨습니다. 일주일동안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3일 4일이 넘어도 신경 쓰지 않으셨고 시험 성적에도 간섭하지 않으셨습니다. 성적은 급격히 떨어졌지만 말더듬이는 사라졌습니다. 웃음이 많아 졌습니다.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아 수다쟁이가 되었고 지금도 굉장히 말이 많습니다. 그리고 소중한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변할 수 있는 것이구나. 어머니도 변할 수 있고 나도 변할 수 있는 것이구나. 나는 성장할 수 있구나. 그리고 어머니도 성장하는구나.
두 번째 싸움은 이미 정해진 이상과 기독교 교리와의 싸움입니다. 제 집은 어렸을 때 만화가게를 했습니다. 전 학교가 끝나면 가게를 지키며 그곳의 모든 만화들을 섭렵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 한국 만화들은 주인공들이 입체감이 없었습니다. 하나같이 완벽하고 너무도 착하고 싸움도 잘했습니다. 그리고 그 만화의 주인공들이 하는 사랑은 완벽히 이데아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전 이것으로 사랑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잘 못했습니다. 왜냐면 스스로를 의심했거든요. 어,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완벽히 순수한 사랑이 아닌 것 같아. 외로워서 그런 걸 거야. 성적 만족감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아닐까? 가끔 마음에 드는 처자가 나타나면 어이없게도 만화에 나오는 여주인공을 상상했습니다. 이상의 잣대로 그녀들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억눌렀습니다. 즉, 스스로 사랑을 배울 경험도 하지 않은 채로 마음 속 이상과 비교하며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리고 기독교. 교회에서 전 규범을 배웠습니다. 가치를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아름다운 이상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사랑의 정의. 옳은 것과 그름에 대한 정의를 스스로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그곳에서 주입받았습니다. 안락사는 나쁜 것입니다. 낙태는 나쁜 것입니다. 혼전 성관계는 옳지 않은 것입니다. 동성애는 나쁜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과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제가 주입받은 도덕이 완전히 옳은 것일까요? 다행히 전 몇 가지 경험을 통해서 그렇지 않을 수 있다란 것을 배웠습니다. 첫 번째는 소설이었습니다. 엔도 슈사큐의 소설 ‘침묵’과 ‘깊은 강’ 그리고 ‘천국의 열쇠’. 그것으로 다른 기독교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문학의 소중함은 그것이 이 세상이 옳고 그름이 명확히 결정되지 않은 회색지대라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여러 서사를 접하면서 내가 참으로 알고 있었던 사실이 때로는 그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제가 감히 은인이라 말하는 옛 여자 친구입니다. 소중했던 옛 여자친구. 연애를 하면 자신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찌질 한지. 내가 얼마나 비열 한지. 그러나 사랑받고 사랑하는 경험이 날 성장하게 합니다. 연애는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불교인인 그녀는 저와 연애하는 동안 참으로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여러 고정관념을 깨주었고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풍경을 보여줬습니다. 옳고 그름을 정하는 것은 하나의 방향이 아니란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질문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난 노예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문제의 해답을 남이 준 해답에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전 이것을 청춘의 가장 큰 특징으로 생각합니다. 곧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삶. 해답이 내려지지 않은 채로 항상 고민하고 씨름하는 회색지대. 그것이 바로 청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만약 이 작업이 너무 피곤해 자신 스스로가 지금까지 받아들인 해답으로 안주하고 사고를 멈추는 순간 청춘은 끝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해답을 내려버린 그 순간. 앎을 얻기 위한 행동을 더 이상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남이 준 정의를 시험하고 의심하고 행동으로 알아봐야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 청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세상과의 싸움입니다. 제가 잘 하지 못하는 지금 제 삶의 가장 큰 이슈입니다. 현대의 기독교와 자기계발서가 말하는 것은 비슷해 보입니다. 문제는 너 자신에게 있다. 너를 바꿔라. 그러나 이 가르침에 문제가 있는 것은, 성공을 온전히 그 사람에게만 돌리고 실패한 사람은 그만한 이유가 그에게 있어서 실패했다고 생각하기에 용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사회에 대한 비판과 투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저와 친한 전도사 형은 항상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스스로가 잘 하지도 못하면서 세상,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나쁘다.” 그런가요?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되어야 사회를 비판할 수 있을까요? 성공하면 그때야 비판할 수 있을까요? 테레사 정도의 믿음이 되어야 교회를 비판할 수 있는 것입니까?
전 어머니와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있습니다. 첫 째, 나는 완전하지 못하다. 둘 째, 어머니도 완전하지 못하다. 하지만 나는 변할 수 있다. 그리고 어머니란 세상도 변할 수 있다. 어머니는 정말 감사하게도 그 경험을 제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항상 저 줌으로써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준 것입니다. 나는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도 바뀌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서로 균형이 맞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못하는 것이 있는데, 전 저의 성장과 저와 관련된 세상의 성장만을 원했습니다. 너무 이기적이라 타인의 성장과 타인의 세상에는 무관심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어찌 보면 타인과 자신은 근본적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불교는 연기론으로 이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기에 이것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벗어라. 이것은 불교에만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영국의 신학자 존 던은 이런 시를 썼습니다. “어떤 사람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다. 만일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나가면 유럽은 그만큼 줄어든다. 만일 하나의 영혼이 숨지면 인류의 크기는 줄어든다.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있다” 우리는 마땅히 자신의 성장과 자신의 세계의 성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만 또한 타인과 타인의 세계에도 관심을 기울여야합니다. 자신을 타인으로, 자신의 세상을 타인의 세상으로 확장해야합니다.
청춘은 성장의 시기입니다. 청춘은 세상을 받아들이고 자신과 세상의 소통의 방식을 결정하는 시기입니다. 청춘으로 살고 싶으신가요? 현재 자신의 모습을 완성된 것이라 보지 말아야 합니다. 현재 사회의 모습을 완성된 것이라 보지 말아야 합니다. 보수란 가치를 내세우기엔 우리의 마음은 너무나 푸릅니다. 언젠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더 사랑 많은 나의 모습과 더 밝은 세상을 보여줄 수 있도록 청춘을 이어나갑시다.
말씀증거(2), 박민혜 청년
안녕하세요. 청년회 박민혜입니다.
오늘 설교 주제는 ‘나는 청춘이다’ 입니다.
제가 훌륭하신 선생님들 앞에서 감히 설교를 한다는 것은 주제넘은 일인 것 같고, 저는 담담히 저의 얘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그렇다고 간증을 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1997년 대학을 들어갔습니다. 사실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그저 남들과 같이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선배들을 쫓아다니며 먹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고 끝없는 수다로 밤을 지세우곤 했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그 해 겨울, 우리나라는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습니다. 도서관은, 단지 모이는 장소일 뿐이었던 선배들은 갑자기 책상에 앉아 토익 공부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안 하던 걸 하려니 가방만 공부하는 시간이 더 많긴 했지만 그래도 적어도 하는 척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많은 선배들이 취업에 실패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다 결국 졸업 후 후배들에게 실망만 안겨주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당시 제 동기들은 자원해서 부랴부랴 군대를 갔습니다. 해병대로, 공군으로, 의경으로, 당시 사회 분위기로는 부모님께 경제적 부담을 덜어 드리는 일이 가장 큰 효도였습니다. 공대 출신인지라 대부분의 동기들이 남자들이었기 때문에 전 캠퍼스에 외로이 남게 되었습니다. 후배들은 학부 체계로 대학에 입학하여 원하는 전공에 들어가기 위해 또다시 입시생처럼 공부를 했습니다. 저처럼 멋모르고 놀던 대학생은 줄어들었습니다. 공부에 그다지 뛰어난 면모를 보이지도 못 했고, 천구도 없고, 선후배도 없는 저는… 방황의 연속이었습니다. 성년이 된 이후 제 인생에 제 1의 암흑기를 맞이하게 되지요.
이건 아니다 싶어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습니다. 홀로 여행을 하면서 제가 얼마나 나약한 아이인지, 그야말로 얼마나 작은 우물 안의 개구리였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 왔을 때는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약간은 알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열심히 공부도 했고, 경제적 독립을 위해 아르바이트로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졸업식 당일 저는 미취업 상태였습니다. 같이 졸업을 했던 동기, 선후배들 중 자신이 만족하는 회사에 취업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습니다.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저는 평소보다 밝게 웃어야 했습니다. 졸업 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회사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시간이 날 때면 같은 처지의 친구와 도서관에서 만나 토익 공부를 하고, 어떻게 자기 소개서를 쓸지, 어떻게 면접을 봐야할지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취업 스터디인 셈입니다. 정말 하루하루 불안한 나날들, 영영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또다시 암흑기였습니다. 하지만 몇 개월 후 운 좋게 남들이 말하는 대기업에 취업을 해서 암흑기가 끝을 맞는 듯싶었습니다.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으며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될 것 같았습니다. 여의도 고층 빌딩으로 출근하면서 마치 내가 커리어 우먼이 된 것 같았습니다. 석박 사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제가 석박사가 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 현실은 달랐습니다. 매일 아침 커피포트에 물을 채우고, 커피를 타고 담당임원의 심부름을 하며 제가 제 동기들과 다른 업무를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같은 층에 있던 나이 많은 사원 언니가 탕비실로 불러 회사 생활 똑바로 하라고 충고하기도 했습니다. 아, 여직원은 그냥 직원과 다른 의미였습니다. 여직원은 사무실의 살림을 잘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시스템을 효율화 하는 건 조금 못 해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다 할 수 있는데 쓸데없는 일만 시키고 중요한 일은 왜 못 하게 하는지 화가 났습니다. 당시 철이 없어서 제가 제 능력을 과대평가한 면도 있지만 여직원으로 분리되는 것만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다시 암흑기입니다.
숙고 끝에 회사를 나와 몇 개월간 내가 무엇을 하면 즐거워할지 고민하다 드디어 대학원에 진학하였습니다. 말 그대로 열정 달랑 하나로 뒤늦게 대학원에 입학했기 때문에 동생들과의 실력 차이가 컸습니다. 학부 기초 실력도 부족했고 나이도 많았고 무엇보다 공부에 습관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했습니다. 이 땐 제가 등록금을 냈고, 제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었고, 제가 선택한 인생이었으니깐 요. 내 인생의 황금기입니다.
지금은 제가 원하던 분야에 취업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너무 운이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과연 해피엔딩일까요. 하고 싶은 일을 하더라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 안 한 여자 직장인은 일이 안 풀려도 감정표현을 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명품 가방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게 저의 품격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주말에 회사를 나가면 안 좋습니다. 주말에 할 일 없는, 재미없는 사람으로 봅니다. 이것들 말고도 조직 생활에서는 수많은 것들로 남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음, 그래도 이것들은 직장이 없던 시절을 생각하면 행복한 고민입니다.
365일 중 300일은 입병을 달고 다니고 거의 매일 사무실을 불을 끄고 나오더라도 늘 부족한 것 같습니다. 난 정말 잘 하고 싶은데, 더 이상 똑똑해질 순 없는 걸까 괴롭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잘 하는 것이 차이가 있는 걸까 생각합니다. 그럼 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합니다. 늘 진로 고민입니다.
이기적인 사람들과 함께 조직 생활을 하면서 ‘이기적인 것이 옳다’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일하면서, 나도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옳을까 고민합니다. 특히나 전 증권회사에 다니고 있어서인지 어떤 가치든 화폐, 돈으로 판단하는 이 논리가 맞는지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아, 청춘은 방황의 다른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 – 이 단어는 교과서에서 청소년기 사춘기 시절을 가리키는 말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인생에 질풍노도가 없었던 시절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매 순간 사소한 결정에서부터 중요한 진로 문제까지 갈등과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제가 정말 똑똑한 아이였다면 제가 했던 방황들은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전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평범한 사람으로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생긴 자연스러운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사람이라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제 주변 사람 모두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각자의 꿈을 위해 피땀 흘리고 있습니다.
졸업하고 미취업 상태일 때 친구와 왜 우리가 서류에서 떨어질까, 면접에서 떨어질까, 원인 분석을 하면서 저희가 내린 결론은 이랬습니다. ‘우리 탓이 아니다’ 결국 치열해진 취업난 때문에 실력보다 운이 작용하는 것이지, 우리가 못난 탓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시대가 우리를 좌절하게 만들었구나.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시대 탓만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 안에서 지금도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청년들의 고민입니다. 저의 뒷세대, 앞세대들이 각자의 시대에 맞는 조금씩 다른 주제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경제 논리’로 좌우되는 일이 특히나 많은 것 같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종교가 인생의 항로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무엇이 중요한 가치일까 판단하는데 중심은 제가 갖고 있는 종교관이었습니다.
여러분, 어떤 고민을 갖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자녀분들, 친구 분들, 선후배들은 어떤 고민을 갖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저의 바람은 더 이상 각자 인생의 방향을 사회가 결정짓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소수가 만들어놓은 정치 논리, 경제 논리로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복하고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도록 고민하고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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