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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18:18-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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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오늘 기독교의 심각한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의 수는 많으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도 미미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경우와는 정반대 현상입니다. 초대교회는 수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세상을 변혁시키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었습니다. 대개 어떤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은 10% 미만의 소수라고 합니다. 오늘 한국에서 그리스도인은 전체인구의 30% 이상이나 됩니다. 그런데 왜 전체인구의 30%이상이나 되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회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철저한 헌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철저한 헌신자들이었기 때문에 적은 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었습니다. 그들은 극심한 핍박 가운데서도 로마를 변화시켰으며, 온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해 나갔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바로 철저한 헌신입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철저하게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
바울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이면 어디나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고난과 죽음까지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서원을 이행하는 모습입니다.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18하) 바울이 이렇게 머리를 깎은 것은 나실인의 서원을 이행한 것이었습니다. 그 서원에는 일정기간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머리를 깎지 않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민6:1이하). 그것은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을 나타내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왜 이런 서원을 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주님께서 고린도에서 자기를 지켜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린도에서 바울은 매우 지치고 낙심되고 침체되었는데, 주님께서 그에게 많은 은혜를 베푸시며 위로해주셨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이 바울을 해치려고 총독에게 고소했으나, 주님께서는 총독 갈리오의 판결을 통하여 오히려 바울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도 바울을 해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이루셨던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그 은혜를 감사하면서 자신을 다시금 하나님께 드리고자 다짐하는 서원을 이행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께 온전히 헌신하고자 하는 삶은 정기적으로 서원을 행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케나다의 Oswald Smith 목사는 그의 30세 생일 아침에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결심을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종이 되자!” 그 후로 그가 시무하는 교회는 수백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종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결심과 서원을 알리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모든 것을 말씀드리고 자신이 세운 서원을 지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하는 서원을 가지고 있습니까? 지금 그것을 이행하고 있습니까? 바울이 그렇게 험한 고난들을 당하면서도 죽기까지 복음을 위해 충성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늘 하나님께 새로운 서원을 드리고 그것을 진실되게 이행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복음사역에 철저히 헌신된 사람들
철저하게 헌신된 초대교회의 성도들 중에서 대표적인 사람들이 본문에 나오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입니다. 이 부부는 흑해 근처의 본도 출신이었는데, 로마에서 살다가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유대인 추방령 때문에 고린도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난 후 바울의 복음사역을 위해 철저하게 헌신하는 동역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어디를 가든지 따라다니면서 재정적인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직 복음사역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바울에게 말씀으로 철저하게 훈련을 받고 다른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도와줄 수 있는 동역자들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 부부의 헌신을 바울의 헌신과 동일하게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은혜 받았다고 해서 다 목사나 선교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충실한 동역자들이 됨으로써 동일하게 그 사역에 참여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인정해 주십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갈 때 함께 따라갔습니다.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를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18상)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바울을 따라 선교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라 아예 이사를 간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전도하러 간다고 하니까 이 부부가 사업을 정리하고 함께 가겠다고 따라나섰던 것입니다. 이들은 세계선교를 위해 자기 사업을 정리하고 이사하는 결단을 내릴 정도로 헌신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신은 이사할 때 무엇을 가장 먼저 고려하십니까? 이사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교회생활, 신앙생활입니다. 혹시 내가 이사를 감으로 교회를 통해서 말씀을 배우고 훈련받는 일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이사를 감으로써 하나님의 일이 지장을 받게 되지는 않겠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사를 하고 나서 열심이 식어지고 신앙이 약해지는 성도를 간혹 볼 수 있습니다. 이사할 때는 신앙생활, 교회생활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직장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직장이 내 신앙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가장 먼저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직장은 필요한 것이고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주님보다 귀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신앙을 지킬 수 없다면 차라리 직장을 포기하겠다는 단호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서라면 삶의 터전까지도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열정과 용기를 가지고 헌신된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와 같이 헌신된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집에서 모인 교회
고전16:19에 보면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쓴 편지인데,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당시 에베소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어떻게 헌신하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부는 자기 집을 개방하여 예배처소로 사용하게 했습니다. 교회가 처음으로 시작되던 당시에는 교회가 회집할 건물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성도들의 집에서 모였던 것입니다. 만일 오늘 우리 교회가 당장 장소를 성도들의 집으로 옮겨야 한다면 당신의 집을 교회로 개방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자기 집을 교회로 개방한 이들 부부가 얼마나 헌신된 사람들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는 예배와 교육 및 성도들의 영적인 필요를 위해 최대한의 공간들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당분간은 많은 한계를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당장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성도들이 가능한 한 자기들의 집을 개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많은 문제들이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뜻 자기 집을 개방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성도들 가운데서 주님을 위해서 자기 집을 개방하는 헌신된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초대교회가 적은 수의 성도들을 가지고 로마제국을 정복하고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철저한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철저하게 헌신한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목숨까지 아끼지 않는 헌신
바울은 롬16장에서 다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롬16:4상) 당신은 주님을 위해서 어떻게 충성하며 헌신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주님의 교회를 위해, 주님의 종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동역자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의 위대한 사역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사역은 바울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목숨까지도 바칠 정도로 헌신했던 많은 동역자들의 몫이기도 했습니다. 틀림없이 이 동역자들은 주님 앞에서 바울과 함께 면류관을 받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이 이러한 동역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아볼로
본문은 또 한 사람의 헌신된 성도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사람은 아볼로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잠깐 사역하다가 예루살렘을 거쳐 안디옥으로 돌아감으로 제2차 전도여행을 마쳤습니다. 그 후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을 시작하여 다시 에베소에 왔습니다. 24절부터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없는 사이에 에베소에 아볼로라는 매우 흥미로운 그리스도인이 왔습니다. 이 사람은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24절)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 대왕이 이상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해 세운 신도시였는데, 당시 로마에 이어 세계 제2의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의 인구는 약 600만 명 정도였는데 주로 애굽인, 로마인, 헬라인,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약 100만 명가량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볼로는 이 도시에서 태어났는데,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아는 사람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성령세례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25절)
이 아볼로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할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의 말을 들었습니다. 아볼로의 실력과 열정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 아볼로는 아직 복음의 충만한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볼로를 자기 집에 초대하여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가르쳤습니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26절)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배운 후 아가야 지방으로 건너가서 더욱 능력 있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여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 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27-28절)
아볼로가 고린도에서 얼마나 능력 있게 복음을 전했는지를 우리는 고전3:6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나니” 바울은 아볼로를 그와 대등한 동역자로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학자들은 아볼로가 히브리서를 기록했다고 주장하는데, 상당히 가능성이 있는 주장입니다. 그는 바울처럼 히브리 종교와 헬라철학에 능통한 대학자로서 그리스도께 사로잡힌바 된 교회의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철저한 헌신의 배경 - 제자훈련
주님을 위해 철저하게 헌신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입니다. 우리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그리고 아볼로와 같은 철저하게 헌신된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헌신된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본문에서 우리는 이 사람들이 철저하게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제자훈련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그리고 아볼로를 비롯한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토록 철저하게 헌신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제자훈련이라는 비결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나 1년 6개월 이상을 함께 지냈습니다. 그들은 함께 장막 만드는 일도 했으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함께 보낸 그 많은 시간에 바울은 이 부부에게 제자훈련을 시켰습니다. 이 부부가 그렇게 헌신된 동역자들이 되기까지는 철저한 제자훈련의 과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세워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의 선교사역을 위해 재정적인 뒷받침을 했고, 자기의 집을 개방하여 교회가 사용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내놓을 정도로 헌신된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바울을 통하여 제자훈련을 받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철저하게 헌신된 동역자들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다시 제자로 양육하는 일까지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제자훈련을 시켰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아볼로였습니다. 아볼로가 에베소에 왔을 당시 바울은 거기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을 만나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당장에 분별해 냈으며, 아볼로를 가만히 불러 그에게 복음의 충만한 것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중대한 일을 멋지게 감당했습니다. 아볼로가 대학자 출신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제자 삼는 사역이 얼마나 탁월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로부터 제자훈련을 받은 아볼로는 초대 교회의 지도자 중에서도 손꼽히는 훌륭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제자훈련의 사명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가장 심혈을 기울이신 것이 제자훈련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직접 선발하셨고, 열둘을 지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공생애의 50% 이상을 12제자를 훈련하시는데 할애하셨습니다. 세계를 복음화하시고자 하는 주님의 비전은 12명의 제자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과연 주님의 비전은 이 제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제자도에 대하여 딤후2:2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우리는 본문에서 이러한 원리를 따라 제자훈련이 이루어진 것을 보았고, 그 결과도 보았습니다. 제자훈련은 주님의 아이디어이며, 오늘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기도 합니다. 제자훈련을 통해서라야 철저하게 훈련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만들어집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께 제대로 쓰임을 받는 충성된 종들이 되려면 철저한 제자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제자훈련을 받은 분들이 모범적이고 충성되게 헌신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고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몇 사람으로는 안 되고, 우리 모든 성도들이 훈련을 받아 주님의 신실한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목사의 책임과 사명은 성도들을 주님께서 원하시는 철저하게 헌신된 제자로 양육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기도로 무장하고 준비하여 제자훈련을 충실하게 받고 주님께 철저하게 헌신된 일군이 되기 바랍니다. 이미 연세가 많아서 훈련을 받을 수 없는 분들은 신앙의 연륜을 살려서 기도에 전념하는 영적인 용사들이 되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놀랍게 사용하실 것이며, 우리 스스로도 놀랄 엄청난 일을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 앞에 설 때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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