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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19:8-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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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우리의 신앙생활 중에서 가장 신나고 행복하고 기쁠 때는 언제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실 때입니다. 당신은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평생 이런 경험도 없이 일생을 마친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불행하고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12). 주님의 이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져 지구상의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엄청난 일들을 이루어 냈으며, 지금도 그런 일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 큰일을 행할 교회와 종들을 찾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 이렇게 쓰임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떤 교회와 사람을 쓰실까요?
에베소
에베소는 오늘의 터키 지방에 해당하는, 당시 로마가 지배하던 아시아의 수도였습니다. 해양도시인 에베소는 로마와 동양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정치, 종교,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에베소의 시장에는 세계 각지에서 모아 온 화려한 예술품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이 에베소에서 가장 중심적인 것은 아데미 여신을 숭배하기 위해 세워진 신전이었습니다. 이 신전은 상인들에게 돈벌이를 시켜주는 곳이었기 때문에, 에베소의 상업적인 번성과 이 신전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희곡 “실수의 코메디”에서 에베소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마을이 사기로 가득 찼다고 말한다/ 눈을 속이는 재빠른 요술쟁이들/ 사고를 바꾸어 놓는 흑암의 마법사들/ 육체를 불구로 만들며 영혼을 죽이는 마녀들/ 양가죽을 쓴 사기꾼들, 재잘거리며 입방아를 찧어대는 협잡꾼들/ 그리고 그와 같이 많은 죄악의 방탕이 가득 찼다…” 에베소는 마술과 주문과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들과 온갖 종류의 마술하는 사기꾼들로 인하여 들뜨고 흥분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당시 에베소의 이러한 분위기는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의 분위기와 많이 흡사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들이 조사를 해봤더니 학생들 중 40%가 부적을 지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에는 정식으로 세금을 내는 점성가들 4만 명이 있는데, 그 수는 카톨릭 신부보다 많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점을 치는 것과 사주보는 것, 그리고 고사를 지내는 것 등 미신적인 풍습이 얼마나 많습니까?
에베소에서의 바울의 사역
바울은 에베소에서 약 3년을 머물면서 사역했는데, 바울이 그의 전도여행 중 한 곳에서 이렇게 오래 머문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고린도전서를 기록했는데, 그 편지에서 자기가 에베소에 그렇게 오랫동안 머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고전16:8-9) 에베소는 우상과 죄악이 심한 곳이어서 바울은 거기서 많은 대적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만났던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은 그에게 오히려 전도의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대적자들은 오히려 바울을 승리자로 만들어 주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이러한 에베소에 오게 됨으로 성령께서 이곳에서 역사하실 기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에베소에서 악한 영들을 파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에베소는 복음을 받아들여 예루살렘과 안디옥에 이어 기독교의 중심지, 이방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곳으로부터 온 아시아에 복음이 퍼져나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위대하고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것은 성령님으로 하여금 우리가 복음 전하는 곳과 우리가 전도하는 사람의 심령 가운데 역사하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사람이 구원을 받고, 사회가 변화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일은 이렇게 위대하고 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한 마음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실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가장 복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회당에서
바울은 어디서나 그랬던 것처럼 에베소에서도 먼저 유대인의 회당에서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회당에서 석 달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했습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8절)
복음 전하는 일은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것이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건설하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것만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충성하며 교회에서 봉사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세계선교를 위해 힘쓰며,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전도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어 갑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오늘 우리를 통하여 확장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택함을 받고 쓰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영광스럽고 복된 일입니까?
바울은 이와 같이 유대인의 회당에서 석 달 동안 하나님 나라를 강론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마음이 완악하여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말씀을 비방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9상)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강퍅해졌기 때문인데, 이것은 심판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완악하게 내버려 두시는 것보다 두려운 심판은 없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강퍅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혹시 지금 당신의 마음이 굳어져 있지는 않습니까? 그보다 두려운 일은 없습니다. 마음을 열어 겸손하게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두란노 서원에서
바울은 회당에서 석 달 동안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강론했는데, 그들이 듣지 않고 오히려 비방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날마다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9하) 두란노 서원은 아마도 두란노라는 이름을 가진 철학자나 수사학 교사, 혹은 의사가 자기의 학생들을 가르치던 곳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이 서원에서 바울은 2년 동안 안식일만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설교하고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10절) 이 말씀은 두란노 서원에서 바울에게 말씀을 배운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바울이 2년 동안 두란노 서원에서 강론한 것은 아시아를 복음화하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집중적으로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제자훈련을 받는 성도들은 집중적으로 양육을 받게 됩니다. 목사는 이 분들을 위해서 매일 기도하며, 그들의 신앙을 밀도 있게 점검하며 지도합니다. 이런 특권은 우리 교회 성도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제자훈련은 우리가 주님의 충성되고 능력 있는 종이 될 뿐만 아니라, 세상을 복음으로 정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제자훈련에 참여하여 충성되고 능력 있는 일군들로 준비되는 성도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희한한 능력
고린도에서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어려움을 당했을 때, 주님께서는 밤에 환상을 통하여 바울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주님께서는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심으로 바울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11-12절).
이것은 어떤 마술적인 행위가 아니라 주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도 있었습니다. 가련한 한 여인이 가만히 뒤로 와서 주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주님께서는 그녀의 믿음을 보시고 그녀의 혈루증을 고쳐주셨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거하시기 위해 나타내신 이적이었습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바울이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이지 바울이 능력을 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다만 하나님께 충성하여 쓰임 받은 사람일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캐더린 쿨만이라는 사람은 일생 동안 수만 명의 병을 고쳤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그것을 자신의 영광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의 권능로 돌렸습니다. 그녀는 「나는 기적을 믿는다」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이 책에 기록된 어떤 기적도 행한 바 없으며, 어떤 사람의 병도 고친 일이 없다. 나는 병을 고치는 아무런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여러분을 위대한 의사에게 인도할 수 있고, 그 길을 여러분에게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것뿐이다. 나머지 일은 여러분과 하나님께 맡길 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때, 우리는 언제나 바울이나 케더린 쿨만처럼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여 응답 받을 때도 역시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자기가 한 것처럼 생각하여 교만해지면 안 됩니다.
유대인 마술사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나타내신 놀라운 능력은 당시 에베소의 마술사들이 행하는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은 바로 그 마술사들이었습니다. 떠돌아 다니는 유대인 마술사들은 바울을 흉내 내어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 보려고 했습니다. 본문은 그 중에서 특이한 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스게와라는 제사장의 아들들도 이런 일을 했습니다. 그러자 악귀가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고 하면서, 악귀 들린 사람이 스게와의 아들들에게 뛰어올라 그들을 잡아 뜯었습니다. 이들은 얼마나 급했던지 옷을 벗어 던진 채로 피를 흘리면서 도망쳤습니다(13-16절).
예수 이름에는 분명히 영혼을 구원하고,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효험은 기계적인 것이 아니며, 아무렇게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예수 이름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혹시 귀신이 당신에게도 이렇게 하지 않을까 겁이 나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주님께 대한 진실된 믿음과 열심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명할 때 귀신이 두려워 떨며 도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에베소의 마술사들처럼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문처럼 사용하여 귀신을 물리치려고 한다면, 귀신이 오히려 우리를 눌러 이겨 버릴 것입니다. 귀신은 누구보다 가짜를 잘 식별할 줄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실되고 열심 있는 믿음을 가지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악한 영을 물리치는 능력 있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에베소의 복음화
마술사들이 예수 이름을 빙자하여 악귀를 좇아내려다가 크게 봉변을 당했다는 소문이 에베소 온 시내에 퍼지자,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예수의 이름을 높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술을 행하는 사람들은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살라 버렸는데, 그 책값은 무려 은 오만이나 되었습니다. 그것을 현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수십억 이상이나 됩니다.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과거의 죄악을 버리고 이제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단호한 결심을 나타냈습니다. 에베소에 회개와 부흥의 불길이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에베소는 초대교회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과거의 죄악과 불신앙적인 습관들에 대하여 이처럼 단호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부흥은 철저한 회개로부터 옵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회개할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하실 것이며, 우리 가운데 놀라운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흥왕함
20절은 본문의 결론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바울이 유대인의 회당에서 석 달 동안 강론하며 권면한 일과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설교하며 가르친 일,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신 일, 그리고 마술사들이 예수 이름을 도용하여 귀신을 쫓아내려다 악귀에게 봉변을 당한 일들은 결과적으로 에베소에 복음이 힘 있게 전파되게 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여 이렇게 큰 성과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순조롭게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 많았습니다. 먼저 동족인 유대인들의 극심한 반대와 비방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에베소는 영적으로 대단히 적대적인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썼습니다(엡6:12). 또 에베소의 상인들은 바울이 자기들의 사업을 방해했다고 생각하여 큰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당한 어려움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눌리며, 위협을 받고, 반대와 핍박을 당하면서도 바울은 에베소에 약 3년 동안이나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형편 가운데 있으면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고전16:8-9) 우리 같으면 “대적하는 자들이 많고 형편이 좋지 않으니 일을 포기해야겠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이 어려움을 통하여 복음 전하는 기회를 얻게 되겠기 때문에 에베소에 더 오래 머물면서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오늘 이 지역에 복음이 힘이 있게 전파되기를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바울과 같은 자세를 가집시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우리는 복음전파의 사명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에 대해 이처럼 헌신된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감당하고자 할 때, 우리가 힘써 전하고자 하는 그 말씀이 능력이 되어 모든 어려움과 악한 영들의 방해를 물리치고 이 땅을 복음으로 정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명을 과연 누가 감당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위대하고 놀라운 일을 감당할 교회와 일군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바울처럼 복음에 대한 헌신적인 열심과 겸손함, 그리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충성할 때, 오늘도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이렇게 쓰임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놀라운 일을 능히 감당하는 성도들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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