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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다 귀한 것 .....

사도행전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849 추천 수 0 2011.07.14 23:5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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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20:13-28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생명일 것입니다. 사람이 생명을 잃어버린다면 아무리 많은 것을 얻는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생명보다 귀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명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사명을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알고 이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고 하나님 앞에 설 때 영광스런 상급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명이 가장 귀한 줄로 알고 오직 이 세상에서의 삶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고 하나님 앞에 설 때 내놓을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될 것입니다. 결국 사명은 이 땅에서의 삶을 더욱 가치 있고 복되게 만들어 줍니다. 당신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그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본문에서 우리는 사명에 사로잡힌 사람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그 사명을 위해 생명까지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이고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당신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그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향함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을 서둘렀는데, 그것은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에서 그의 동행들을 배로 보낸 후 걸어서 앗소로 향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을 배에 태우려고 앗소로 갔습니다.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13절)
  바울이 왜 일행과 함께 배를 타고 가지 않고 혼자 걸어서 앗소로 갔을까요? 많은 추측이 있지만 그 중에서 한 번 생각해 볼만 것은, 바울이 혼자서 묵상하는 기회를 갖기 원해서였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드로아에서의 긴 설교와 3층에서 떨어져 죽었던 유두고를 살려낸 일이 있은 후, 바울은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면서 오직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사역자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특히 요란하고 떠들썩하고 많은 사람들의 갈채를 받은 성공적인 사역이 있은 후에, 사역자들은 고갈되고 기진해지기 쉽습니다. 만일 주님과의 내밀하고 풍성한 교제를 통하여 재충전을 받지 않는다면, 그는 더 이상 성공적인 사역을 감당할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심지어는 우리 주님께서도 때로는 밤이 새도록 아버지와 내밀하게 교제하는 시간을 가지시곤 하셨습니다. 목회자에게 묵상과 기도의 시간이 없어지면 그는 병들고 고갈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도 병들기 쉽습니다. 그래서 목회자에게 홀로 있는 시간을 최대한 배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 분주하고 복잡하여 조용히 묵상하는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과의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갖지 못하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주님의 뜻을 분명히 깨닫기도 어렵습니다. 주님과 단둘이서 조용한 시간 갖기를 힘쓰는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바울은 앗소에서 승선하여 일행과 합류하여 항해를 계속했는데, 미둘레네와 기오 섬, 그리고 사모 섬을 지나 밀레도에 도착했습니다. 바울은 도중에 에베소를 방문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왔는데, 그 이유는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일 바울이 에베소를 방문했더라면 3년 동안이나 정들었던 성도들의 만류를 뿌리치지 못하고 얼마간 그곳에 머물러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을 서두르기 위해 에베소를 그냥 지나쳐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베소에 들르지는 못했지만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을 밀레도로 청하여 그들에게 고별인사를 하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교회를 맡기면서 그들에게 교회를 잘 돌볼 것을 당부했습니다. 20:17-38에 나오는 바울의 고별사는 매우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설교입니다.

    전하는 말씀과 일치되는 삶
  

바울은 그의 고별 설교를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 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17-18) 바울은 말로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삶과 행동으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전도자는 그가 전하는 말씀과 그의 삶이 일치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의 메시지는 약화되고 허탄한 것이 되고 맙니다. 설교자에게 가장 어렵고 부담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는 실천하지도 않으면서 아무리 웅변적으로 외쳐봐야 그것은 허공을 울리는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설교자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로 자기가 고백하는 신앙과 행위가 일치되고, 전하는 복음과 삶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간혹 우리는 신앙과 생활이 이중적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신앙생활 잘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이 고3이 되면 교회도 잘 보내지 않고 오로지 공부하라고 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자녀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늘 기도하고 교회도 열심히 나가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행동으로 신앙을 부인해 버리는 경우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의 그런 모습들은 자녀들의 신앙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당신은 신앙과 삶이 일치되고 있습니까? 생활과 행위로 내가 전하는 복음을 확증하고 있습니까? 신앙과 생활이 일치되는 것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바울은 누가 보아도 그가 전하는 복음과 행위가 일치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것은 에베소에서 3년 동안이나 함께 지냈던 사람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말과 행동, 신앙과 삶이 일치되는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겸손
  

바울은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동안 그가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와 그의 행함이 일치되는 진실된 자세를 견지했으며, 겸손과 눈물과 인내로 그의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19절)
  바울은 특별한 열심과 능력으로 복음을 전했던 위대한 사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수많은 영혼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게 하셨으며, 세계 각처에 많은 교회를 개척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이 사역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놀라운 이적들을 수도 없이 나타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결코 교만해지거나 남을 멸시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한다 해도 겸손하게 섬기는 자세가 없으면 사람들은 그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겸손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전도할 때도 겸손이 필수적입니다. 전도할 때 우리는 ‘논쟁에는 지고 전도에는 승리해야’ 합니다. 논쟁에 이기려고 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들을 이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논쟁에서 이길 때, 상대방은 “네 말이 맞기는 맞다마는 내가 예수 믿나 봐라”라고 마음을 닫아 버립니다. 그러면 논쟁에 이긴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종인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겸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겸손하지 못하면 우리는 주님의 종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비결도 겸손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유지하는 비결도 겸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겸손한 자에게 임합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십니다. 당신이 만일 은혜가 메말라 고생하고 있다면, 지금 당신이 겸손을 잃고 있지는 않은지를 점검해 보기 바랍니다. 만일 겸손을 회복하지 않으면 결코 은혜가 회복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겸손해지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것 밖에는 없게 됩니다. 겸손한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눈물
  

바울은 눈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말은 바울의 사랑과 동정을 엿보게 하는 말입니다. 불쌍한 사람들을 볼 때, 죄인들을 볼 때,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 바울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불쌍히 여겼던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바울은 주님을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주님께서도 사람들을 얼마나 불쌍히 여기셨는지 모릅니다. 주님께서는 그 불쌍한 사람들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시곤 하셨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렇게 힘썼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눈물이 너무 메말라 버린 것 같습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위하여, 어려운 우리의 이웃을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죄를 회개하면서 눈물을 흘려 본 때가 언제입니까? 특히 연약하고 어려움을 당하는 형제를 위해 눈물 흘릴 줄 아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눈물은 우리의 영성을 측정해 볼 수 있는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스스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은혜가 풍성할 때는 눈물을 잘 흘립니다. 그러나 은혜가 메마른 때에는 좀처럼 눈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감당하기를 갈망하면서 눈물 흘리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형제의 고통과 아픔을 보고 눈물을 참지 못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간구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죄를 회개하며 눈물 흘리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물을 귀하게 여겨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보시면 마음이 약해지시는 분이십니다. 눈물 있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인내
  

바울은 유대인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는데, 그러한 간계들을 참았다고 했습니다. 이고니온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죽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들은 깡패들을 동원하여 바울을 핍박했습니다. 바울이 그들을 피하여 베뢰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자, 그들은 그곳까지 쫓아와서 무리를 선동하여 바울을 대적했습니다. 고린도에서는 갈리오가 신임 총독이 된 것을 기회로 삼아 바울을 고소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바울의 동족인 유대인들이 이렇게 바울을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러한 유대인들과 싸우지 않고, 이 모든 것을 참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인내하지 않으면 복음을 전하기 어렵습니다. 불신자들에게 전도할 때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들에게 핍박을 당하거나 싫은 소리를 많이 듣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참지 못하면 영혼을 얻을 수 없겠기에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다 참고, 자존심 짓밟혀가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내는 또한 신앙인격의 성숙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참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신앙과 인격이 미숙한 사람입니다. 부부 싸움을 할 때도 참는 사람이 더 성숙한 사람입니다. 왜 늘 나만 져야 하느냐고 하면서 억울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참을 줄 아는 것은 성숙의 증거이며, 참지 못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증거입니다. 당신은 얼마나 참고 있습니까? 당신은 복음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전도하기 위하여, 주님의 일을 위하여, 형제를 세워주기 위하여 얼마나 참습니까?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26절).
  

26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거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바울이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다고 말한 것은, 자신은 에스겔과 같은 파수꾼으로서 사명을 다했으므로 이제 어느 누가 심판을 받는다 해도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엄숙한 선언입니다(cf.겔33:1-16). 그는 누구에게나 주저함이 없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전해야 할 말씀을 사람의 눈치 보느라고 전하지 못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전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세입니다.
  목사가 여러분들에게 좋은 말만 해주기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정말 해야 할 말, 하기 어려운 말을 해야 좋은 목사입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에게 책망하고 바른 말 해주는 것이 그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듣기에 거북하다고 해서 말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영혼에 대하여 하나님께 책임을 추궁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목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 주저함 없이 말씀을 선포하고 권면하며 책망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여 믿음으로 바로 서기를 힘써야 합니다.

    성령에 사로잡힘
  

바울은 자기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은 성령에 매여 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22절)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은 자기의 뜻대로가 아니라 성령의 강권적인 인도하심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지만, 아는 것이 있다면 결박과 환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밖에 없었지만, 주저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성령님께 강하게 사로잡혀서 가는데 무슨 일을 당할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하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시고 무장시키십니다.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순종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환난을 각오함
  

성령님께 강하게 사로잡힘을 받아, 성령 충만하여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과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피하려 하지 않았으며,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3-24절) 바울은 이미 주님께 온전히 헌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만나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상관이 없었던 것입니다.
   “새벽 닭 울 때 난 괴로웠어/ 풍랑이 일면 난 무서웠어/ 하지만 이제 두렵지 않아/ 이 세상 끝까지 주님을 위하여 죽을텐데 … ”(친구의 고백 3절) 주님을 위하여 죽기를 각오하는 제자들이 됩시다. 그러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생명입니다.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들, 심혈을 기울여서 몰두하고 있는 일들도 생명보다 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우리의 생명은 헛된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때 우리의 인생은 진정으로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인생이 됩니다. 이 사명은 살고 죽는 문제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생명보다 더 중요한 사명을 알고, 이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위해 자신을 제물로 드릴지라도 기뻐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빌2:17-18). 살고 죽는 것, 편한 것과 고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에 충실할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 바울과 같이 주님을 위하여,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는 충성된 제자들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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