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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고후5:1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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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고린도후서(19) 하나님에게 몰입되십시오 (고린도후서 5장 11-16절)
<스스로 자랑하지 마십시오 >
바울은 하나님 무서운 줄 알고 항상 근신하는 마음으로 진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하나님도 알고 양심적인 고린도 교인들도 알기를 원했습니다(11절). 즉 사도 바울은 자신이 높아지려는 마음은 하나도 없이 오직 복음을 전하려는 순수한 동기로 사역하고 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렇게 순수하게 복음을 전하면 되지 왜 자랑으로 들릴 수 있는 여러 가지 말로 자신을 변증합니까? 천거서를 비롯한 외적인 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거짓교사들의 꾐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12절).
당시 외모로 자랑하는 거짓 선지자들은 주로 무엇을 자랑했습니까? 주로 3가지를 자랑했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육신적으로 직접 목격한 것을 자랑했습니다(16절). 둘째, 예루살렘 교회의 천거서를 가진 것을 자랑했습니다(고후 3:1). 셋째, 그들은 자기들이 특별한 환상과 계시를 받았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14년 동안 숨겨두었던 삼층천에 올라간 환상을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고후 12:1-7).
사도 바울이 본문의 말을 한 요지는 무엇입니까? 육체를 자랑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조금만 남보다 낫다고 하면 육체를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런 본능을 어떻게 이겨냅니까? 천국 상급을 꿈꾸며 살면 됩니다. 교회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러나 봉사의 목적이 현세의 축복이 되면 안 됩니다. 2가지 삶이 있습니다. ‘삯 받는 삶’과 ‘상 받는 삶’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인정을 상 받는 삶에 관심이 많아야 합니다.
사람이 세상적인 모습으로 자랑하려는 이유는 오히려 세상적인 관점에서 자신을 낮고 천하게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랑은 치유되어야 합니다. 잘한 일에 대해서 긍지를 가지는 것은 중요하지만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자랑은 금물입니다. 어떻게 자랑의 병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 더욱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해결책입니다. 성도는 예수님 외에 자랑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 하나님에게 몰입되십시오 >
성도는 때로 좋은 의미에서 미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내는 것을 보고 미쳤다고 비방해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물론 도덕과 윤리를 떠난 광신적인 신앙은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좋은 의미에서 미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마가복음 3장 2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바울도 그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변명하자 베스도가 변호하는 그를 향해서 말합니다. 사도행전 26장 2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사도 바울은 남들이 미쳤다고 해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바울은 스스로 자신이 주를 위해 미쳤다고 합니다(13절). 무엇에 미쳤을까요? 주님과 복음전파에 미쳤습니다. 그처럼 좋게 미치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180도로 미치면 이상하지만 완전히 360도로 미치면 본연의 자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처럼 남과 다른 거룩한 삶 때문에 미친 소리를 듣는다면 그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왜 바울이 주를 위해 미쳤습니까? 자신을 위해 죽은 주님의 강권적인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14절).
세상적인 사랑은 대부분 이기적 동기에 기초합니다. 그래서 부부라도 서로를 위해 죽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도 쉽지 않습니다. 부모를 위해 죽는 자식은 거의 드물고 자식을 위해 죽는 부모도 사실상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모도 자식도 아닌 자신과 같은 사람을 위해 그리스도가 돌아가셨다는데 그 사랑을 어떻게 외면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에 깊이 빠진 것입니다.
요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적 없이 살아갑니까? 무기력과 무감동은 대부분 목적의식의 결여 때문에 생깁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분명히 바라보고 살 대상을 가졌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위해 죽었다. 넌 나를 위해 살지 않겠니?” 그 사랑을 접하고 바울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전파하는 일에 자신의 삶을 바쳤습니다. 그처럼 주님을 사랑하고 전하는 일에 깊이 몰입되어 하나의 뜻대로 인생을 보람 있게 사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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