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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고후8:1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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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고린도후서(34) 나눌 때 필요한 4대 자세 (고후 8:10-15)
>1. 좋은 결단을 이행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어려운 교회를 돕는 문제에 대한 자신의 뜻만 나타내고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10절). 아무리 대의명분이 커도 헌금은 결코 강요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화법으로 1년 전에 했던 선한 다짐의 실천을 도전합니다. 선한 다짐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다짐을 이행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왜 고린도 교회는 그 1년 전에 했던 자발적인 헌금 다짐을 이행하지 못했습니까? 교회 내부적인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그처럼 선한 다짐의 이행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에 가난한 마게도냐 교인들이 큰 구제헌금을 예루살렘 교회로 보냈습니다. 그 모습에 도전을 받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도 작정한 것을 이행해야 유익이 있음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처럼 작정만 잘하는 신앙인이 되지 말고 작정한 것을 잘 이행하는 신앙인이 되십시오.
2. 있는 대로 헌신하십시오
고린도 교인들도 구제 헌금을 드리려는 마음과 열정이 있었지만 자꾸 실행을 주저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마음에 감동이 되는 대로 실행하되 특별히 현재 있는 대로 헌신하라고 궈면합니다(11절).
요즘도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좋은 다짐을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큰 것을 준비해서 크게 헌신하려고 하기보다는 현재 있는 대로 헌신하면서 앞으로 크게 헌신할 꿈을 품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므로 헌신을 미루지 말고 현재 마음에 있는 감동대로 할 수 있는 만큼 하십시오.
3. 하나님께 드린다고 생각하십시오
본문 12절에서 “있는 대로 받으신다.”는 말의 주어는 ‘하나님’입니다. 구제헌금을 실제로 받는 사람은 예루살렘 교회이지만 큰 의미에서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헌금은 누군가를 부조하려고 드리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식을 가지면 한 손이 하는 일을 다른 한 손이 모를 정도로 “내가 어떤 사람에게 준다!”는 의식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은 물질을 통해 마음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없는 물질을 빚을 내서 드리거나 약속어음을 남발하듯이 말로만 드리겠다고 하지 말고 현재의 수준에서 있는 대로 드리면 그것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헌금의 양’을 보시지 않고 ‘헌금에 담긴 믿음과 마음’을 보십니다. 많이 가진 사람이 있는 범주에서 최선을 다해 드리는 것과 적게 가진 사람이 있는 범주에서 최선을 다해 드리는 것의 가치는 동일합니다.
4. 나눔으로 평균케 하십시오
당시 일부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자신들에게 헌금을 많이 거둬서 예루살렘 교회를 살찌게 하려는 친 유대적인 경향을 가진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누구는 받고 누구는 주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있는 자는 없는 자와 나누려는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평균인의 삶을 지향하라고 합니다(13-15절).
항상 평범한 사람으로 머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 계획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비범하게 되십시오. 인물이 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축복 계획을 멋지게 이행하십시오. 다만 비범하게 되고 인물이 된 후에는 자신의 능력과 재화를 나눔으로 평범한 사람의 자리로 내려가는 복의 근원과도 같은 역할을 하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복이요 진정한 인물 되는 삶입니다.
공산주의의 이상은 ‘평균하게 하는 것’인데 왜 그 좋은 이상을 꽃피우지 못하고 수많은 폐해를 남기며 지금 사라져가고 있습니까? 자발적인 감동을 따라 나누지 않고 강제적으로 분배하는 면에서 평등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인간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에 하나님도 건드리시지 않았던 ‘자유의지’를 말살하고 평등을 강조하다가 하향평준화가 되어 함께 가난해지고 함께 망하게 된 것입니다.
반대로 자유를 만끽하는 나라들의 문제는 부의 편중과 빈곤층의 확산입니다.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합니까? 의로운 부자의 자발적인 헌신이 필요합니다. 결국 모든 부자들은 나눔의 책임이 있습니다. 결국 선교와 구제는 하나님이 정하신 아름다운 분배의 방법입니다. 헌금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주님께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과 같은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사실상 말로 “하나님! 제 생명을 드립니다!”라고 하는 것보다 구체적으로 호주머니를 비우는 태도가 더 생명을 드리는 것에 가까운 태도입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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