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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찬송의 신비한 능력

시편 이한규 목사............... 조회 수 3005 추천 수 0 2011.08.12 23: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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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66:8-15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감사 찬송의 신비한 능력 (시편 66편 8-15절)

 

 < 찬송소리를 듣는 3부류 >

 목회를 하다 보면 가끔 힘든 일을 만납니다. 저는 처음에 귀국해서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 출신의 동역자가 한 명도 없는 상태에서 외로운 개척자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힘든 일을 만나면 더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 힘든 상황을 극복하는 저 나름대로의 비결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찬송입니다. 저는 힘들 때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잘하셨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고 반드시 합력하여 선이 이뤄질 줄 믿습니다.” 그런 찬송고백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본문 8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송축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왜 송축하라고 명령합니까? 사람들의 찬송과 칭찬과 격려를 들어야 하나님의 마음이 안정되고 힘이 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사실상 찬송은 ‘하나님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찬송은 저주와 두려움과 부정적인 큰 기운을 막아주는 영적인 성벽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찬송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우리의 송축 소리로 들리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신 하나님이기에 큰소리로 찬송하지 않아도 그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찬송을 다 아십니다. 그런데 왜 찬송소리로 크게 들리게 하라고 하십니까? 그것은 우리의 찬송소리를 들어야 할 3종류의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3종류의 존재는 누구일까요?

1. 자기 자신

 사람은 불안정한 존재이기에 끊임없는 칭찬과 격려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많이 칭찬해주시고 격려해주십시오. 그러나 열심히 칭찬해주고 격려해주어야 할 제일 첫 번째 존재는 바로 자신입니다. 그래서 찬양소리가 자기 귀에도 들리게 해야 합니다.

 자신 속에 찬양하는 마음이 끓어올라서 그 애끓는 소리를 밖으로 터뜨리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입으로 “좋으신 하나님! 감사해요! 찬양해요!”라고 하면 그 찬양이 주변 환경으로 퍼지면서 신비한 영적인 빛도 같이 퍼져나갑니다. 그러면 어둠의 기운이 힘을 잃습니다. 더 나아가 그 찬송소리가 한 바퀴 순회해서 다시 자신의 귀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마음과 영혼의 깊은 곳으로 쑥 침잠됩니다.

 그때 영혼에 생기가 넘치게 되고 신비한 믿음이 생기면서 자신의 찬송소리로 인해 자신의 영혼이 살아납니다. 결국 자신의 입에서 나간 찬송소리는 자신을 위한 소리가 됩니다. 그런 놀라운 역사가 있기에 하나님은 찬송소리로 들리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 유혹의 소리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소리들은 처음에는 달콤하게 들리지만 결국은 가정을 망치고, 삶을 망치고, 영혼을 망칩니다. 게다가 신문과 방송을 보면 온통 절망적인 얘기들이 무수히 들립니다. 그렇다고 귀를 막고 살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찬송소리를 많이 들리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그렇게 찬송하면 하나님은 크게 인식되고 문제는 작게 느껴지면서 그때부터 ‘곤란한 문제’는 오히려 ‘찬란한 전망’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2. 자신 옆에 있는 사람

 왜 자신 옆에 있는 사람에게 찬송소리를 들려주어야 합니까? 그들도 격려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옆 사람이 어떤 문제로 신음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가 어제 혹은 지난주에 어떤 아픔을 당해서 낙심한 상태인지 잘 모릅니다.

 그 사정을 몰라도 내 입에서 감사와 찬송소리가 터져 나와 그 소리가 그의 귀를 통해 그의 심령 속으로 침잠되면 그의 내면에서 믿음의 불꽃이 점화되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맞아! 이 일에도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을 거야. 앞으로는 좋아질 거야. 나는 이 상황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어!” 그러면서 영혼에 생기가 솟구치고 견고한 믿음이 건축됩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목회자는 최선을 다해서 말씀 준비를 해야 하고 성도는 최선을 다해서 감사와 찬송소리를 입 밖으로 내야 합니다.

 교회가 인물을 많이 내려면 교회에 감사와 찬송소리가 넘치게 해야 합니다. 각 가정에서도 감사와 찬송소리가 넘치게 해야 합니다. 설교할 때 희망을 주는 말씀이 선포되면 큰 힘을 얻습니다. 그런 말씀선포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찬송소리입니다.

 성도들이 힘차게 찬송하면 사람들이 궁금해 합니다. “도대체 저들은 왜 저렇게 힘차게 찬송할까? 왜 저들은 저렇게 괜찮다는 말과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까?” 그렇게 궁금해 하면서도 감사와 찬송소리를 계속 듣다 보면 자신 안에서도 신비하게 믿음과 희망의 불꽃이 점화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힘찬 찬송소리로 삶의 용기를 주십시오. ‘잔소리’는 적게 하고 ‘찬소리(찬송소리)’를 많이 들려주십시오.

 요새 자녀들이 지나친 입시경쟁에서 얼마나 지쳐 있습니까? 그런 자녀들에게 집에서도 잔소리만 하면 그 자녀들이 어떻게 희망과 용기를 얻겠습니까? 이제 자녀들에게 이런 찬송소리를 들려주십시오.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이 시련은 하나님의 결재 하에 이뤄진 일인 줄 믿습니다. 지금은 힘들어도 반드시 선한 결말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그런 식으로 자녀들이 부모의 감사와 찬송소리를 들으면 인생길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물론 억지로 그런 소리를 자녀 듣는 데서 내지 말고 평소에 그런 감사와 찬송소리가 넘치게 하십시오. 그러면 자녀들도 무의식중에 하나님이 좋으신 하나님임을 느끼면서 그 심령 속에 믿음의 기초가 든든하게 형성됩니다. 그리고 어느 때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말이 나갑니다. “친구야! 모든 것이 잘 될 거야. 걱정하지 마.” 어른들 앞에서도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저씨! 힘내세요.”

 그런 말을 들으면 너무 철이 들고 신기해서 어른들이 묻습니다. “얘야! 너는 어떻게 그런 말까지 할 줄 아니?” 그때 자녀가 말할 것입니다. “아빠와 엄마가 항상 그렇게 말씀하세요.” 얼마나 대단한 교육입니까? 그런 자녀가 어떻게 인물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찬송소리를 많이 들려주십시오.

 부부들도 서로 ‘잔소리’를 그치고 서로 ‘찬소리’를 많이 들려주십시오. 이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참소리는 바로 ‘찬소리’입니다. 어떤 아내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는 역사적인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진짜 역사적인 사명은 ‘찬소리’를 많이 들려주는 것입니다. 부부는 잔소리를 통해 서로의 심령을 질질 끌리게 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앵앵거리지 말고 찬송소리로 서로를 격려해주십시오.

 남편들은 밖에 나가면 일에 치이고, 문제에 치이고, 고객에 치이고, 상사에 치입니다. 그렇게 치이다가 귀가했는데 집에서 아내에게까지 치이면 그 남편이 어디서 힘을 얻겠습니까?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큰 문제에 치이는 것이 아니라 문제 같지도 않는 일상적인 문제에 치이는 고통입니다. 많은 아내들이 그런 고통을 겪는데 거기에 잔소리를 해대면 그 아내가 어디서 힘을 얻겠습니까? 이제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감사와 찬송소리로 서로를 열심히 격려해주십시오.

 어떤 아내는 남편에게 이렇게 윽박지르며 전도합니다. “여보! 당신 믿지 않으면 지옥 가요! 이제 종말이 다가왔는데 지옥 갈래요?” 그 전도를 받고 어느 남편이 교회에 나가고 싶겠습니까? 아마 믿지 않는 남편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쳐요? 빨리 그런 교회에서 나와요.”

 반면에 어떤 아내는 이렇게 찬송하며 전도합니다. “여보!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에요! 제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그러면 누가 교회에 나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심지어는 믿지 않는 남편조차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쳐요? 좋은 교회군요. 나도 나중에 때가 되면 나갈 테니까 일단 당신만이라도 열심히 다녀 봐요.”

 때로는 불신자나 제 3자가 어떤 교회가 바른 교회인지를 더 잘 판단합니다. 우리 교회는 어떻게 가르치는 교회가 되어야 할까요? 당연히 후자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처럼 교회와 가정을 찬송소리가 넘치는 환경으로 만드십시오. 조용히 있지만 마십시오. 가정 분위기가 너무 조용해서 다운되는 상황이 되면 자꾸 업 시키십시오. 그래서 자신의 믿음을 건축하고 옆 사람의 믿음의 건축도 도우십시오.

3. 사단 마귀

 왜 성도가 하나님을 찬양합니까? 하나님이 무엇을 주었고 앞으로 줄 것이기 때문에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기에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도 찬양하십시오. 그 찬송소리를 나도 듣고, 내 이웃도 듣지만 사단 마귀도 듣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공포영화를 보면 공포에 젖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우리의 찬송소리를 들으면 공포에 젖어 발광합니다.

 태초에 사단은 하나님처럼 경배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사 14:13).” 그리고 천사의 무리 3분의 1을 데리고 반역을 일으켰다가 결국 천국에서 내쳐졌습니다. 그런데 세상으로 쫓겨 내려온 사단은 여전히 옛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성도들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려고 갖가지 유혹을 합니다. 심지어는 광야에서 예수님까지 유혹하며 자신에게 절하면 천하만국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집요합니까?

 지금도 사단은 갖가지 유혹을 통해 경배를 받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때 성도가 하나님을 큰소리로 경배하면 사단은 미쳐서 날뛰게 되고 온갖 슬픔과 탄식으로 좌절하게 됩니다. 즉 마귀는 성도의 입술에서 “좋으신 하나님! 찬양합니다.”라는 찬송소리가 나오면 질투심에 젖어 이렇게 발광할 것입니다. “으악악! 누가 도대체 저런 소리를 해! 도대체 누구야! 분당 샛별교회의 어느 집사야! 어느 권사야! 미치겠네.” 문제를 만났을 때 자신이 미치지 말고 감사와 찬송소리로 사단을 미치게 하십시오.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도가 분명히 알아야 할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단 마귀는 전지한 존재가 아니기에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의 의도와 생각을 읽을 수 없습니다. 그처럼 사단은 우리의 속마음은 모르고 입에서 나온 말만 알기 때문에 입에서 나오는 말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있어도 입으로는 결코 “무서워요! 두려워요!”라고 하지 마십시오.

 속으로는 무섭고 두렵고 힘들어도 그 마음을 사단은 모르니까 입으로는 사단이 들으라고 믿음의 말을 하십시오. “나는 강하다. 나는 이길 수 있다.” 그러면 마귀는 그의 속마음은 모른 채 그 입에서 나오는 말만 듣기에 그가 강한 믿음이 있는 줄 알고 공격을 멈추고 결국 도망치거나 쫓겨날 것입니다.

 무속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귀신을 쫓아낸다고 할 때 어떻게 합니까? 사람을 때리고 무서운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나 때리면 사람만 아프지 귀신은 하나도 아프지 않습니다. 또한 무서운 표정을 하면 귀신은 하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만 두려움이 생깁니다. 결국 그런 무속신앙은 더 사람을 두렵게 만들고 더 귀신의 역사를 강하게 만듭니다. 마귀는 구타와 무서운 표정으로 도망가지 않고 오직 믿음의 말과 감사와 찬송소리로 도망갑니다.
   
 이제 이런 믿음의 말과 감사와 찬송소리를 많이 내십시오. “좋으신 하나님!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런 소리를 계속 들으면 마귀는 발광하며 소리칠 것입니다. “으아악! 저 소리를 더 이상 못 듣겠다. 못 견디겠다. 미치겠다. 마귀 살려!” 그렇게 발광하고 도망칠 때 마귀의 견고한 진이 무너질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두려움과 낙심, 절망과 질병 등 모든 저주의 기운도 사라질 것입니다.

 이제 일어나 힘차게 찬송하십시오. 마귀가 찾아와 두려움과 낙심과 슬픔과 병을 주려고 하면 그때는 거꾸로 그 마귀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돌려주고 하나님을 힘차게 찬송하십시오. 그러면 마귀는 견디지 못하고 결국 줄행랑을 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마귀를 무장해제 시켰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을 힘차게 찬송하십시오 >

 예수님이 십자가 질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때 예수님은 매도 맞고 조롱도 당하다가 결국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때 마귀와 귀신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둘 때를 지켜보며 곧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을 기대하면서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지막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제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나이다.” 그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상상력을 동원해 그때 상황을 그려보십시오.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곧 지옥에서는 대 연회가 펼쳐졌습니다. 사단과 귀신들은 지옥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고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팥빙수를 먹으면서 서로 자축했습니다. 지옥 밴드도 크게 흥을 돋우면서 밤새 파티를 벌였습니다. 그렇게 37시간을 연속해서 파티를 벌이는데 갑자기 지옥의 마귀와 귀신들은 저 문 밖에서 어떤 발자국 소리를 들었습니다. “탁! 탁! 탁!...” 지옥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발자국 소리였기에 갑자기 그 파티장이 침묵에 휩싸였습니다.

 그 침묵 속에서 저벅저벅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는 더욱 커졌습니다. “탁! 탁! 탁!...” 지옥의 마귀와 귀신들은 공포에 휩싸여 서로를 돌아보았습니다. “도대체 이 발자국 소리는 무슨 소리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듣는 발자국 소리였습니다. 분명히 그 발자국 소리는 지옥 파티에 초청 받지 않는 존재의 발자국 소리였습니다. 그때 가장 담대한 마귀가 떨리는 소리로 외쳤습니다. “누구야! 누가 도대체 이 지옥의 파티장에 겁 없이 찾아와!”

 마침내 발자국 소리의 주인공이 나타났습니다. 마귀들은 그분을 보고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그분을 바로 영광체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불꽃같은 눈으로 공포에 젖은 지옥의 마귀와 귀신들을 바라보며 그들 앞으로 걸어오셔서 말씀했습니다. “열쇠 내놔!”

 그때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지옥과 죽음의 권세를 박탈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런 감격적인 은혜를 입고 어떻게 찬송소리가 힘차게 나오지 않겠습니까? 이제 힘차게 찬송하십시오. 감사의 톤을 높이고 찬송의 볼륨을 올리십시오. 때로 시련이 있어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찬송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본문 10절 말씀에서도 “주께서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다.”고 했습니다. 성도의 고난은 결국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그처럼 시련이 있어도 감사와 찬송소리만 잃지 않으면 시련은 곧 지나가고 그 후에는 더욱 복된 인생이 펼쳐질 것입니다. 어려움도 지나고 나면 다 인생의 좋은 보약이 됩니다.

 요새 경제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드디어 분당에도 만 원짜리 냉면이 등장했습니다. 물가가 치솟으니까 앉은 자리에서 월급이 20-30% 강탈당한 느낌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얼마나 낙심이 됩니까? 물가안정이 최고의 국가경영이란 말이 정말 실감나는 시기입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재정적으로 힘든 분들이 꽤 있는 줄 압니다. 그래도 ‘선교’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매진하는 선교중심적인 교회의 교인답게 전방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님들에 비해 좋은 환경에서 지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십시오.

 경제가 어려우니까 후방의 지원이 줄면서 요새 선교사님들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특히 화려한 사역보고를 할 것이 별로 없는 5년 이하의 초임 선교사님들은 더욱 어렵습니다. 우리가 돕는 선교사들 중에도 차가 폐차되어 고생하는 선교사님, 이사비용이 없어서 고생하는 선교사님. 예배당 건축을 시작해서 외벽까지 올렸다가 3주째 하늘만 쳐다보고 눈물짓는 선교사님 등 고생하는 선교사님들이 많습니다.

 서울 강남의 사랑의 교회는 교회건축을 위해 2천 평 대지를 1000억에 매입했습니다. 그 건축에 대해 비판의 소리가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그 문제 자체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평당 5천만 원이라는 땅값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그 땅 한 평만 가지고도 선교사님들에게 새 차 2대, 중고차 4대를 사드릴 수 있고, 100평짜리 벽돌예배당 한 채를 지어드릴 수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이제 한국 교회와 성도는 재원의 효율적인 배분 문제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며칠 전에 한 선교사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제가 먼저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때 선교사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먼저 전화해주셔서 감사해요. 요새는 제가 전화를 해도 목사님들이 잘 받으려고 하지 않고 아는 친구들도 잘 받으려고 안 해요.” 지금 예배당 공사를 하는 것을 알고 부담을 느끼고 전화조차 잘 받으려고 안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외롭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위로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선교사님! 힘내세요.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이 시련이 나중에는 소중한 간증거리가 되도록 저도 기도할게요.”

 때로 거룩한 뜻을 품고 나가도 시련의 순간을 만납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은 그를 풍성한 축복으로 이끄실 것입니다(11-12절).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늘 감사와 찬송소리가 입술에서 끊이지 않게 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문제는 해결되고 나중에는 “그 시련이 내게 큰 유익이 되었구나!” 하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살면서 어두운 터널을 만나도 쉽게 포기하지 말고 터널 끝에 보이는 작은 빛을 바라보며 희망을 잃지 말고 하나님을 힘차게 찬송함으로 결국 축복 받고 승리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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