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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고후1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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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고린도후서(40) 견고한 진을 파하는 힘 (고린도후서 10장 1-6절)
< 겸손과 온유와 관용 >
당시 바울의 대적자들은 바울이 가까이 있을 때는 비굴하게 행동하고 멀리 떨어져 편지를 쓸 때는 강한 어조로 말한다고 하면서 바울은 용기도 없고 우유부단한 사람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사람 앞에서 겸비한 태도를 취한 것은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온유와 관용으로 그들을 권면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언급합니다(1절). 사실 겸손과 온유와 관용은 예수님의 제일 뚜렷한 성품이고 성도가 가장 추구해야 할 성품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그런 성품이 대적자들에 의해 훼손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2절).
사도행전 16장 말씀을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실상 할례는 성도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의식입니다. 구원에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 다른 것은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게 했을까요? 유대인과의 원활한 관계를 위해서였습니다.
디모데의 부친은 헬라인입니다. 또한 당시 이방에 살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의 유대인들보다 덜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이방인과 결혼도 했고 무할례로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통파 유대인들 사회에서 보면 할례가 없으면 이방인이기에 유대인을 전도하려는 바울에게 디모데가 할례를 받지 않은 것은 장애물입니다. 그런 장애와 갈등을 피하려고 할례를 받게 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관용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관용은 필수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능률과 비능률이 문제를 떠나 안 해도 될 일을 기쁨으로 하십시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여성들이 화장하는 것도 큰 봉사입니다. 매일 많은 시간을 바쳐서 치장해서 보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줍니까? 늘 웃는 것도 남을 기분 좋게 하는 최대의 봉사입니다. 그처럼 자신에게는 유익이 없어도 남의 영혼을 위해서 때로는 불필요하고 쓸 데 없는 일도 기꺼이 하는 관용정신을 실천하십시오.
< 견고한 진을 파하는 힘 >
당시 사도 바울은 일부 고린도 교인들과 언쟁이나 갈등을 표출하는 육신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기를 원했습니다(3절). 진정한 승리의 원천은 육체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4절). 사람들이 싸울 때 내세우는 육체적인 것에는 돈, 학력, 명예, 논리력, 화술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승리의 원천은 온유와 관용과 겸손과 같은 영적인 것이고 그런 영적인 것은 사단의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한 힘입니다.
성도가 깨뜨려야 할 가장 견고한 사단의 진은 바로 ‘생각의 진’입니다. 생각을 잘 지키십시오. 생각에는 평안을 주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이 있고 불안과 두려움을 주는 마귀가 주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 생각의 싸움에서 승리하십시오. 기독교를 대적하는 가장 견고한 진 중의 하나는 공산주의나 인본주의나 이슬람교가 아니라 바로 ‘생각의 진’입니다. 귀신은 생각 속에 찾아와 “키가 작다! 못났다! 더럽다! 너는 행복할 수 없다!”고 속삭여 열등감과 죄책감을 주고 행복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그런 소리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미국의 한 남자가 아내가 너무 싫어 이혼한 후, 결혼상담소에서 자기 이상형을 찾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혼상담소에서 컴퓨터에 입력된 3만 명의 여성 중에 한 여성을 골라주었는데 사진을 보니까 얼마 전에 이혼한 자기 부인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아내나 남편을 바꾸면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행복하게 살려면 배우자를 바꾸기 전에 자기를 바꾸십시오. 자기를 바꾸지 않으면 배우자를 아무리 잘 바꿔도 소용이 없습니다. 배우자를 두고 다른 이성을 만나면 처음에는 신날 것 같지만 함께 살면 한 달도 살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지금이 제일 낫다, 나는 지금 이 상태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행복의 길을 찾아보십시오. 행복한 가정이란 문제가 없는 가정이 아니라 문제를 극복하는 가정입니다. “너는 행복할 수 없다!”는 마귀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 행복할 수 없는 성도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제 차를 정비하듯이 말씀과 기도를 통해 자기를 정비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만큼 마음은 견고한 요새가 되고 그러면 결코 그 마음의 평안을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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