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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딤전6: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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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 참고 : | 세광교회 http://sk8404.or.kr |
자족(自足)하는 마음
딤전 6:1-10
2005. 7. 31, 오후
성경은 인간 삶의 표준입니다. 성경대로 믿고 순종하면 정상적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고, 성경을 제쳐놓고 다른 표준에 적응하면 잘못된 신앙인이 됩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수시로 우리 자신의 삶을 말씀으로 조명하고 바로 잡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 본문이 주는 소중한 교훈에 귀를 기울여 은혜의 삶에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1. 다른 교훈을 따라가면 혼란이 일어납니다. (:3-5절)
본문 3절을 보라.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했습니다. 좀더 아래로 내려가 4-5절을 보십시다.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 다툼이 일어나느니라”고 했습니다. 흔하진 않으나 넓디넓은 하늘에서 비행기끼리 충돌하는 사고가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무리 넓은 하늘이라 할지라도 정해진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항로라고 합니다. 비행기가 일단 이륙하면 잠자리처럼 제멋대로 날아다니는 게 아니고 항로를 따라 비행합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항로를 벗어나면 다른 비행기와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땅 위를 달리는 지동차도 차선을 벗어나면 추돌 사고가 일어납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바른 교훈을 따라 살지 않고 잘못된 것을 따라가면 온갖 혼란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이나 교회 생활은 다른 것을 따라가면 혼란이 일어납니다. 건전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세 가지 기둥을 중심으로 삼아야합니다. 그것은 예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기둥입니다. 중심이 흔들리면 혼란이 일어납니다.
2.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넉넉해집니다. (6-8절)
6절을 보면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계속 이어지고 있는 7-8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 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인생이란 가지고 온 것도 없고 가지고 갈 것도 없습니다. 먹고 입고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족한 마음이 있으면 넉넉해집니다. 하루살이 곤충도, 공중을 나는 새 한 마리도 존재 가치가 있고 하는 일이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한평생을 어떤 신앙과 정신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나는 쌓은 지식과 이미 가진 돈과 누리는 조건과 건강을 어떻게 써야 하겠습니까? 가진 것을 족하게 여기십시요. 그것을 바로, 뜻 있게 쓰시기 바랍니다.
3. 과욕은 온갖 해를 가져옵니다. (9-10절)
오늘 9절 말씀은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0절을 보면“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했습니다. 본문 9절과 10절에서 말씀하고 있는“부하려 하는 자들”과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욕심을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하고 지나갈 것은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나 돈을 벌고 싶은 욕망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부자가 되고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때 죄를 짖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돈을 벌어도 정당하게 벌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돈만 된다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그러면 안 됩니다. 사람이 욕심에 사로잡히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고 정신적으로 안정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욕심은 자신을 망칩니다. 가정을 망치고 나라도 망칩니다. 그런데 욕심은 마약과 같아서 곁에서 욕심 때문에 망한 사람들을 두 눈으로 보면서도 욕심을 버리지 못합니다. 돈을 많이 버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돈을 바르게 쓰십시다. 헛된 욕심을 버리십시다. 욕심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지금 세상은 부자신드롬에 빠져있습니다. 어떤 대학교에서는 부자학개론이라는 과목을 만들어서 강의를 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부자가 되는 방법, 재테크 투자로 재산을 늘리는 방법, 심지어 그 대학에서는 부자에게 시집을 가는 방법까지 가르친다고 하니... 돈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 어느 경제연구소에서‘10억’이라는 돈에 대해서 말하기를 “사람이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만질 수 있는 돈”이라고 발표를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1,000억은 하나님이 내려주셔야만 만질 수 있는 돈이고, 100억은 운이 따라야 만질 수 있는 돈이지만, 10억은 열심히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만질 수 있는 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내용이 각종 신문지면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러자 각종 출판사에서는 10억만들기라는 내용의 책을 만들었고, 지금 서점가에서는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10억만들기라는 책이 팔리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들어가 보면 10억만들기에 대한 모임이 수백, 수천가지의 모임이 있고요, 10억을 만드는 방법을 아주 자세하게 소개하고, 그 내용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TV에서는 10억만들기라는 드라마까지 하고 있습니다. 정말 지금 세상은 ‘10억’ 만드는 열풍에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생겨난 또 하나의 열풍이 아침형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모두가 부자가 되기 위한 노력인데요, 아침형인간의 요지는, 아파트에서 검정색 고급승용차가 나오는 시간이 대부분 아침 6시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만큼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기 때문에 부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자가 한번 되어보겠다고 너도 나도 아침형인간이 되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부자에 대해서 열광을 하는 것일까? 조금 더 노골적으로 얘기를 해서... 사람들은 왜 이렇게 돈에 대해서 열광을 하고 있을 것일까? 그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시대가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① 돈으로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돈만 있으면 더 좋은 집에서 살 수 있고, 더 좋은 차를 탈 수 있고, 더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만족을 줄 것이라고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아닙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 5:10)
지금 최고의 부자라고 불리는 삼성의 이건희씨도 절대 자신의 삶을 만족해하질 않습니다.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만족하질 못한 것이고, 부자면 부자인대로 만족하질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족에 대한 기준은 절대 돈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② 이 세상은 돈으로 모든 것을 평가합니다.
가장 비극적인 현실인데... 심지어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여기 계신 분 중에 한분이 엄청난 부자가 되셨습니다.(lotto) 그러면 그 분의 인격이 갑자기 달라져 보입니다.
예전에는 빠글빠글한 파마머리에 몸빼바지가 잘 어울리는 분이었는데, 갑자기 그분이 고상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마디 한마디 말하는 것도 교양 있어 보입니다. 돈이 사람을 바꾸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 모두가 돈 있는 사람에 대해서 모든 것을 갖춘 사람으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창시자 칼 막스는 돈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못 생겼지만 아름다운 부인을 살 수 있다. 나는 못 생긴 사람이 아니다. 왜냐하면 돈으로 미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앉은뱅이에게 돈은 스물네 개의 다리를 만들어 준다. 나는 사악하고 한심하며 양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돈은 나를 존경받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의 가치평가의 기준은 돈이 아니라 영혼입니다. 사실 그럴 것이 온 우주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00억을 가진 사람이나, 100만원을 가진 사람이나, 100원을 가진 사람이나 다 하나님의 보시기에는 거기에서 거기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가치평가의 기준은 돈이 아니라, 그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믿음에 따라 평가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③ 세상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평안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평생 안식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 그런데 실제로 돈 많은 부자가 평안합니까?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평안은 돈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세상이 주는 평안은 고작해야 약 기운을 빌리는 거짓평안입니다. 돈이 절대로 우리에게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절대 돈이 악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악한 것이지, 돈 자체를 악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부자들도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마가’가 있습니다. 오순절날 성령이 임할 때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마가가 어느 정도로 부자였느냐하면, 120명을 자신의 집에서 먹여주고, 재워줄 정도로 부자였습니다. 집도 굉장히 큰집이었습니다. 안방도 아니고 다락방에 120명이 들어갈 정도니까... 아무튼 엄청난 부자였던 것 같습니다.
또 한명의 쓰임 받은 부자를 들라고 하면, 자주 장사 루디아를 들 수 있습니다. 루디아의 직업은 상인입니다. 쉽게 얘기해서 의류방직판매회사 사장이었습니다. 루디아는 자신의 집을 빌립보 교회로 세우고, 빌립보 교회의 터를 닦는 중요한 인물로 쓰임을 받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돈을 도구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돈을 어떻게 바라봅니까? 자기 모든 인생의 본질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돈의 노예가 되고, 돈이면 다라고 생각하고 사는 불쌍한 인생으로 전락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돈을 도구로 바라보고, 도구로 사용할 줄 아는 진정한 믿음의 백성들이 되셨으면 합니다.
1) 세상의 재물이 주는 것은 허무함 뿐입니다. (7-8절)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제가 어렸을 적에 이런 이솝우화를 동화책으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3일 동안 굶은 여우가 있었습니다. 여우가 먹을 것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어떤 작은 굴을 발견합니다. 굴 속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우는 낑낑대면서 힘들게 힘들게 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갔더니 온갖 산해진미가 다 있는 것입니다. 여우는 배가 터질 정도로 굴 속에 있는 모든 음식을 다 먹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굴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배가 불러가지고, 굴 밖으로 나오질 못 하는 것입니다. 굴 입구에 배가 끼어가지고 이젠 나가지도 못하고,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결국 여우는 3일을 굶은 후에야 낑낑대면서 겨우 나올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굴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3일을 굶었었는데, 다시 3일을 굶어야 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얘기!!!
방금 읽은 본문의 말씀과 그 맥락을 같이 하는 얘기가 아닌가싶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지고 갈 것도 없습니다. 결국 공수래 공수거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이 세상의 재물에 대해서 그렇게 목숨을 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나중에는 아무 것도 못 가지고 가기 때문에... 어차피 3일을 굶어야 굴 밖으로 나올 수 있으니까..
(잠 23:4-5)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찌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재물에 날개가 생겨서 독수리처럼 날아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왜 독수리처럼 입니까? 비둘기나 참새는 새장에 가둬놓을 수 있지만, 독수리는 새장 안에 가둘 수 없는 새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재물이라는 것이 지금 내 손에 있다 하더라도 가둘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재물이라는 것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어떤 때에는 큰돈이 생긴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보면 그 돈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어디에다 썼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정말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 돈인 것 같습니다. 미국의 1달러짜리 지폐 뒷면에는 날개가 그려져 있습니다. (정말 독수리의 날개가 그려져 있습니다.)
재물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피와 땀을 쏟습니다. 재물을 위해서 모든 열정을 다 바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도 하고, 시위현장 같은 곳을 가면 한 푼이라도 더 받겠다고 멱살도 잡고, 때리기도 하고, 맞기도 합니다.
이 모두가 허무한 돈을 위해서 애쓰는 사사로운 지혜의 모습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정말 어리석은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돈이 가져다주는 병폐는 허무뿐만이 아닙니다.
2) 돈은 시험과 올무와 정욕과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한다는 것입니다.(9절)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쉽게 얘기하면 돈의 노예로 사느냐? 돈을 지배하며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에 허덕이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을 엄청 밝히면서 돈에 얽매여가지고 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의 노예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돈만을 위해서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런 사람들의 대부분이 돈을 밝히는 것만큼 그렇게 잘 살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돈을 위해서 열심히 살면, 부자가 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를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돈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반대로 돈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별로 돈을 밝히는 것 같지도 않고, 돈을 위해서 사는 것 같지도 않은데, 어느 날 보면 집이 바뀌어 있습니다. 돈에 대해서 항상 느긋한 것 같은데, 차가 고급차로 바뀌어 있습니다. 뭘 하든지 그 사람에게는 돈이 따라다니는 것 같습니다.
잘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성도님들의 주위에도 이런 분들이 한 분씩은 계실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돈을 지배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인생의 목적을 돈에다 두질 않는 사람들입니다.
본문은 뭐라고 하고 있습니까? 돈이 인생의 본질이 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결국에는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돈을 벌 때에 즐겨 사용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속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개처럼 벌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돈만 버는 것은 절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돈을 개처럼 벌어서는 안 됩니다. 돈을 벌 때에도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방식대로 벌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돈을 개처럼 번다면 돈의 노예입니다. 결국 침륜과 멸망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것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난해지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땅에서 부자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아니, 오히려 더 정확하게 말씀을 드린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부자로 살기’를 원하신다고 하기보다는, ‘잘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돈을 벌 때에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벌고, 돈을 쓸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써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돈을 지배하는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함이 일만 가지 복의 뿌리입니다.(10절)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여기에서는 하나님과 돈 사이에 무엇이 우선이냐? 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돈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돈은 절대 악한 것이 아닙니다. 돈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돈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자신이 돈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눅 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과 돈 중에서 무엇이 우선입니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을 선택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돈을 달라고 하실 때에, 내가 돈을 드리지 않는 것은 내가 돈을 소유하지 않아서... 라는 것입니다. 바로 돈이 나를 소유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주인은 돈이 된다는 것입니다.
방금 읽은 눅 16:13에서 말씀하기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돈과 하나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쭙겠습니다. 성도님들의 주인은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잊지 마십시오. 세상 재물에 대해서 우리는 잠시 빌려쓰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려서 우리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모든 재물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살 수 있는 만큼 사용하라고 주시는 것이 바로 돈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돈에 대해서 청지기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돈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만약에 돈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한다면 곧, 돈의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돈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잊어선 안될 것입니다. 세상은 돈에 미쳐있습니다. 그리고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마치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돈의 노예가 아닌,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심으로 돈을 지배할 줄 아는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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