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모임 2011.12.2 열린교회
믿음 소망 사랑
믿음은 -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대속 하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과거에 속한 일입니다.
소망은 - 천국을 바라보고 이후에 천국에 이르러 기뻐하는 일이므로 미래에 속한 일입니다.
사랑은 -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로서 오늘, 지금 현재의 일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인 이유를 이제 아시겠지요? ⓒ최용우
사랑과 믿음
최근에 어떤 책을 읽다가 눈이 반짝 뜨이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리새인을 욕하면서 사실은 내가 바리새인이었다는 사실을 안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나는 내 얼굴에 침을 뱉으며 나를 비웃으며 욕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바리새인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위선자들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은 아주 모범적이고 본받을 만한 정통 신앙인 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말했습니다. "믿으라, 그러면 구원을 받으리라." 저도 그렇게 말합니다. "믿고 구원 받으라"
그런데, 예수님은 바리새인처럼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라 그러면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믿음'의 안경을 쓰고 성경을 봤을 때는 성경이 온통 믿음으로 가득했는데, 내가 '사랑'의 안경을 쓰고 성경을 봤더니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아하, 성경은 '사랑'의 책이로구나! 내가 여태 왜 이걸 몰랐지?
결국 예수님과 바리새인의 충돌은 사랑과 믿음의 충돌이었습니다.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예수님을 사랑의 우월권을 인정하지 못한 믿음이 이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믿음이든 사랑이든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지만 바리새인들은 '믿음으로' 예수님은 '사랑으로' 섬기라고 오늘도 여전히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오! 주님,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저도 주님을 사랑으로써 신앙하고 싶습니다. ⓒ최용우
"믿음, 소망, 사랑은 복음의 세 가지 강요(綱要)다.
이 세 가지는 그리스도의 재림, 만물의 회복과 함께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존속할 것이다.
믿음은 인간이 구원을 얻는 원리를 말함이요,
소망은 인간이 장래에 얻을 자기의 영광에 대한 것이요,
사랑은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태도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 자체요, 하나님의 속성이기 때문에 영원히 변화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에 있어선 사랑의 덕은 진리중의 진리요, 길 중의 길이요, 생명중의 생명이요, 진선미의 죄고의 극치이다. 기도교인들에게 다른 덕이 다 갖춰져 있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사랑이 제일인 까닭은 믿음도 소망도 사랑에 의해서 자격을 얻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믿음의 덕이나 소망의 덕의 실행은 최고의 덕인 사랑에 의해서 지탱되고 완성되어야 한다." -엄두섭 목사<영성생활의 향기/은성>
아래의 설교 내용은 인터넷에서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검색어로 찾아낸 설교인데,
글쓴이는 기존 교회의 수준을 너무 무시하면서 자신이 옳다는 주장을 강하게 하였군요.
전형적인 바리사이파식 설교입니다. 물론 내용 전개는 아주 훌륭하게 잘 하여서 이렇게 퍼온것입니다.
에굽 믿음신앙, 광야 소망신앙, 가나안 사랑신앙이라는 논리입니다.
만약 아래 글을 쓰신 목사님이 '가나안 사랑신앙'을 본인이 직접 체험하고 그 사랑안에 있다면
아래처럼 살벌하게 글을 쓰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냥 아시기만 할 뿐 '가나안 사랑신앙'에 이르지는
못하신 것 같습니다...이점을 염두에 두고 글을 읽으시면 되게습니다. -옮겨온 이 최용우
고전13장(본문생약)오늘날 목회자들은 물론 교인들도 너무나 잘 알고 누구나 좋아하는 말씀이다. 이 때문에 어떤 가정에서는 이 말씀을 표구를 해서 걸어놓고 묵상을 하며 또한 이 말씀을 복음성가로 만들어서 교인들이 즐겨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무엇을 그리고 어떤 뜻으로 말씀하고 계신지 그 영적 의미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이 말씀 속에는 놀랍게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통해서 천국으로 가는 길이 모두 숨겨져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본문 말씀 속에 감추어져 있는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제 본문 말씀 속에 감추어져 있는 천국으로 가는 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1. 애굽 교회의 믿음 : 그리스도 도의 초보 신앙.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은 오직 믿음이요, 소망은 죽어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그 실천적 삶은 이웃사랑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믿음으로 천국을 가며, 구제활동도 믿음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이들의 신앙생활은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마친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이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구원받은 것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을 믿고,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라는 것을 믿고, 천국 갈 것도 믿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것을 믿고 있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원하는 일들이 앞으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이며, 이미 성취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미 구원을 받은 것으로 믿고,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도 믿고, 천국도 들어갈 것처럼 믿고 있다. 이 때문에 어떤 자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할 때 이미 주신 것으로 믿으며 또한 이미 받은 것으로 믿는다고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씀과 같이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것들이 실제 이루어져서 실체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 믿음은 허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왜 모든 것을 믿을 수밖에 없고 오직 믿음으로 살 수 밖에 없을까? 그 이유는 애굽교회 즉 오늘날 세상교회는 유치원과정의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으로 오직 믿음밖에 모르고 광야의 소망이나 가나안의 사랑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철부지 어린아이들은 부모에게 모든 것을 무조건 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고 또한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애굽교인들은 오직 믿음하나 붙잡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믿음으로 구하고 구한 것을 받기 위해 기복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이렇게 애굽 교회의 교리를 중심으로 하는 기복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초보에 머물러 있는 어린 아이의 신앙이기 때문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바라는 신앙이다. 이 때문에 교인들이 교회에 드리는 헌금도 하나님으로부터 30배 60배 100배의 복을 넘치도록 받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서 내가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 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또한 내가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웃을 구제한다 해도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주며 구제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일 이웃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준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웃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의 몸까지 내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닌가?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과연 어떤 사랑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아가페 사랑으로 그 실체는 하나님의 생명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이 없다면 사람에게 육신적인 도움을 주거나 인간적인 사랑은 할 수 있어도 죽은 영혼을 구제하거나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애굽교회 안에는 오직 믿음과 그에 따른 제사장(목회자)이 있을 뿐 소망이나 사랑은 물론 하나님의 종(모세)이나 하나님의 아들(예수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망과 하나님의 종 모세는 애굽교회를 벗어나 광야교회로 나온 자들에게 있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아들은 광야의 모든 훈련을 마치고 가나안에 들어간 자에게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고 하루속히 애굽의 교리와 기복신앙에서 벗어나 소망의 땅인 광야로 나아가야 한다. 이 때문에 애굽의 교인들이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 기도는 천국이나 하나님의 생명이 아니라 하루속히 애굽 신앙에서 벗어나 광야로 나아가는 것이라야 한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려면 반드시 애굽의 초보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소망의 땅인 광야로 들어가서 율법을 통한 훈련과 그에 따른 시험과 연단을 참고 견뎌내야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있고, 가나안에 들어간 자가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본문 말씀에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사랑이 제일이라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애굽의 기복신앙인들은 믿음으로 구하는 것이며 광야의 율법신앙인들은 소망을 가지고 가나안을 찾아가는 것이며 가나안에 이른 자들은 사랑의 문을 두드려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즉 애굽의 기독교인들은 믿음으로 육신의 복을 구하는 신앙이요 광야로 나온 훈련생들은 소망을 가지고 가나안을 찾아가는 신앙이요 가나안에 이른 자들은 사랑을 소유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기 위하여 예수님께 두드리는 신앙이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인데 이 말씀은 누구나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 신앙의 차원에 따라 애굽에 있는 자들은 믿음으로 구하라는 것이며, 광야에 있는 자들은 소망 중에 찾으라는 것이며, 가나안에 들어간 자들은 사랑의 문을 두드리라고 하신 말씀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은 반드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 즉 하나님의 생명이 성취된 자를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천국을 향해 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믿음, 소망, 사랑과 애굽-광야-가나안은 항상 제시되어 있는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이 사랑이라 말씀하신 것은 사랑이 구원의 완성이며 사랑이 곧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직도 애굽의 교리와 기복신앙에 머물러 있는 자들은 하루속히 출애굽을 하여 소망의 땅인 광야를 거쳐 가나안땅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사랑을 성취해야 한다.
2.광야교회의 소망 :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위해 시험연단을 받는 신앙
광야는 소망의 땅이다. 즉 광야에는 애굽의 믿음이나 가나안의 사랑은 없고 오직 소망만 있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출애굽하여 광야로 나온 자들은 사랑이 있는 가안 땅을 소망 중에 바라보며 광야의 모진 훈련과 시련들을 참고 견디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유분방한 애굽의 존재(자칭 아들)가 광야에서 죽지 않으면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없고 광야의 존재가 죽지 않으면 가나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부활)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광야에는 하나님의 종 모세와 율법이 있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모지 사막과 같은 광야에는 만나와 불 뱀과 전갈이 있을 뿐 애굽에서 먹던 진수성찬의 양식(유교병)이나 부귀영화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광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예수)이 있는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모진 시험과 연단을 통해서 영적 준비를 시키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켜 광야에서 모진 훈련을 받게 하신 것은 예수가 계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백성들이 모세를 따라 출애굽을 하여 광야에 들어가 40년 동안이나 훈련을 받은 것이다.
[신명기 8장 1절-6절]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 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심이니라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 하였느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 지니라.
상기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고 번성하여 열조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오늘날 명하는 명령을 지켜 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이 세우신 종이나 아들을 통해서 하신다.
이 때문에 하나님이 세운 종이나 아들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이 곧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요 종이나 아들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십년 동안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은 광야의 시험과 연단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을 낮아지게 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순종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광야의 훈련을 통해서 마음이 낮아지지 않고 교만한 상태에서 명령에불순종을 한다면 결국 멸망을 당해 지옥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어지는 말씀은 광야에서 너희 열조도 알지 못한 만나를 먹이시는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 수 있는 것은 돌비에 기록된 말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운 종이나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고 순종을 하느냐 아니면 불순종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은 두려워하지만 하나님이 세운 종이나 아들의 말씀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말씀에 불순종 하고 원망불평을 하다가 결국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을 당한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이 모세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모세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세는 이스라엘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 말씀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이 세우신 모세도 가나안에 계신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역할을 할 뿐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리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모세나 율법 안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출애굽도 못한 애굽의 거짓목자와 삯군 목자들이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혼을 구원하고 살린다고 큰 소리치고 있다. 이 때문에 본문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들과 은사를 받아 방언과 예언을 하는 은혜 자들이 있고 또한 기독교밖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천사의 말을 전한다는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자신이 재림 예수라는 자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천사의 말을 하고 방언과 예언을 하며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알고 있어도 사랑, 즉 하나님의 생명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는 쭉정이와 같이 죄를 사해주거나 죽은 영혼을 살릴 수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자는 예수님이나 사도들과 같이 죄인들의 죄를 사할 수 있고 죽은 자를 살릴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예수님(사랑)이 계신 가나안땅은 출애굽 한자들이 광야의 훈련을 모두 마치고 광야의 시험에 합격된 자들이 들어가는 곳이다.
만일 광야의 훈련이 힘들다고 원망불평을 하거나 도중에 실족하는 자들은 광야에서 죽게 된다. 출애굽 하여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당한 것은 광야의 훈련을 참고 견디지 못하고 모세와 하느님을 원망하며 불평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나안 땅을 소망 중에 바라고 잘 참고 견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에 들어간 것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히 3장 15절-19절]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서 업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함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상기의 말씀에 유의해야 할 점은 이 말씀이 곧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의 음성은 오늘날 살아계신 모세나 하나님의 아들이 존재할 때만 들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의 음성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으면 절대로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오늘날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모세나 아들이 없다면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은 직접들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오늘날도 예전과 같이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모세도 있고 하나님의 아들도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모세와 아들의 말씀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마음을 강퍅케 하여 모세나 아들을 부정하거나 이들이 전하는 말씀을 배척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멸하신 것과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멸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불모지 사막에 불과 구름기둥, 그리고 전갈과 불 뱀이 있는 광야로 이끌어내어 연단을 시키는 것은 애굽의 존재(자아)가 죽지 않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날 수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대장장이가 쓸모없는 무쇠 덩어리를 풀무불 속에 집어넣어 불에 달군 뒤 망치로 두드리다가 갑자기 찬물에 넣어 시킨 후 다시 불과 물속에 넣고 두드리는 일들을 반복하면서 단단한 강철로 만든 후에 사람이 필요한 각종 도구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미물과 같이 쓸모없는 애굽의 존재들을 광야로 이끌어내어 풀무불 속과 같은 광야의 시험과 연단을 통해서 애굽의 육신적인 존재를 죽이고 다시 영적인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하시려는 것이다.
그런데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이 진노하시어 광야에서 모두 멸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순종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출애굽을 하여 광야로 나아가 시험과 연단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3.가나안교회의 사랑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신앙
가나안 땅에 사랑이 있다는 것은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계시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가나안에 계신 예수를 만나려면 반드시 출애굽을 하여 광야의 훈련을 통해 시험과 연단의 과정을 모두 마친 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도 애굽 교회에는 애굽의 목자만 있고 광야교회에는 광야의 목자만 있고 참 목자인 하나님의 아들은 가나안 땅에만 계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유, 초등학교에는 유, 초등학교 선생님만 계시고 중, 고등학교는 중, 고등학교선생만 계시고 대학교수는 대학교에만 계시는 것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먹는 양식도 각기 다른데 애굽의 교인들이 먹는 양식은 누룩이 들어있는 유교병이며 광야로 나온 광야교인들이 먹는 양식은 무교병이며 가나안에 들어간 자들이 먹는 양식은 생명의산 떡이다.
성경이 말하는 유교병은 삯군목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여 만들어낸 각종교리들을 말하며 무교병은 조금도 가감되지 않은 하나님의 율법을 말하며 산 떡은 산자, 즉 하나님의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말한다. 이렇게 유초등과정의 애굽과 중고등과정의 광야에는 지금까지 예수님이 없었지만 대학과정의 가나안 땅에는 예수님이 항상 계시며 지금도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애굽 교회에는 예수가 없어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이며 광야에서는 예수를 거울, 즉 율법과 모세를 통해서 희미하게 바라보는 것이며 가나안에 들어간 자들은 예수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면해서 직접 보는 것이다. 이렇게 가나안에 이른 자들은 지금도 예수님을 대면하여 보고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듣게 되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가나안에 이른 자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산떡)을 날마다 일용할 양식으로 먹음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되어 하나님의 사랑(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은 믿음과 소망의 과정을 마치고 가나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때 성취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상기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이 성취되면 오래참고, 온유하고,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일 생각하지 않고, 불을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고 말씀하고 있다. 만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이 성취되어 이런 마음으로 변화된다면 이 세상이 곧 천국이라 외치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루속히 출애굽을 하여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사랑을 성취해야 한다.
이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도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상기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이 성취되면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금까지 알고 있던 지식적인 말씀도 폐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온전한 사랑이 오면 지금까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는 것들도 모두 폐하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신앙이 어릴 때 하던 예언이나 방언이나 지식적이 말씀들은 애굽교회와 광야교회에서 잠시 필요했던 것이기 때문에 가나안교회에 들어가 신앙이 장성하면 모두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국으로 가는 길과 구원의 과정을 성경을 통해서 애굽-광야-가나안 그리고 믿음 소망 사랑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이렇게 천국으로 가는 길에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는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사랑이 구원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목회자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이러한 구원의 과정과 천국으로 가는 길을 모두 무시하고 오직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천국도 광야와 가나안을 통과하지 않고도 들어 갈 수 있다고 교인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경을 통해서 두 길을 제시하고 있는데 하나는 문이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은 생명의 길이며 또한 길은 문이 넓고 길이 평탄하여 누구나 예수를 믿기만 하면 쉽게 들어갈 수 있다는 멸망의 길이다. 이러한 생명의 좁은 길은 참목자가 인도하며 멸망의 넓은 길은 삯군목자와 거짓목자들이 인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거짓목자와 삯군목자가 인도하는 멸망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왜냐하면 참 목자가 인도하는 생명의 길은 애굽-광야-가나안을 통해서 들어가기 때문에 너무 힘들고 어려운 반면에 거짓목자나 삯군목자가 인도하는 멸망의 길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누구나 쉽게 애굽에서 직접 천국으로 들어 갈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올바른 생명의 길을 가야하며 아무리 쉽다 해도 멸망의 길을 가서는 안 된다. 이상과 같이 하나님은 천국으로 가는 길을 고린도 전서 13장을 통해서 자세히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목회자들이 이러한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지금도 천국을 예수를 믿기만 하면 들어간다고 교인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글을 통해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분명히 알게 된 자들은 지금이라도 멸망의 길과 삯군목자로부터 벗어나 생명의 길과 참 목자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영접해 주실 것이다.
그 속을 들여다 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