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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마14:·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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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김동호 목사 |
| 참고 : | 2010.2.14 |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마 14:·3-21.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기적은 참으로 놀랍고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솔직히 기적에 신앙의 가장 큰 의미를 두지는 않습니다. 제가 예수를 믿는 가장 큰 이유는 기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적보다 제가 중히 여기는 것은 말씀입니다. 그리고 구원입니다. 저는 특별한 하나님의 기적이 없다고 하여도 말씀 때문에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적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적을 믿습니다. 성경의 모든 기적을 저는 믿습니다.
중학교 때 친구들에게 전도를 하였더니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신 것을 가지고 아이들이 빈정거렸습니다. ‘오른 발 빠지기 전에 왼 발 놓고, 왼 발 빠지기 전에 오른 발 놓았냐?’며 놀렸습니다. 그 때 저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너희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이고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이다. 사람이 물위를 걸었다.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물에 빠지셨다. 이것 역시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세상에 물에 빠지는 하나님이 어디 있냐? 사람이 물 위를 걸었다면 문제가 되지만 하나님이 물 위를 걸으신 것이 뭐가 이상하냐?.....’
저는 기적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기적이 없어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지만 저에게도 기적이 나타난다면 사양할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저에게, 저의 삶에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분명 축복일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예수 믿고 사는 삶에는 언제나 기적이 따른 다는 것입니다. 제 삶에도 언제나 간증할만한 기적이 늘 있어 왔습니다. 그것 때문에 흥분하고, 그것 때문에 감격하고 그것 때문에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기적이 늘 있어 왔습니다.
특별히 최근에 저는 정말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일을 경험하며 흥분하며 감격하고 있습니다. 탈북자들과 가난한 이웃들을 위하여 재단을 세우고, 저들을 위하여 어렵다고 하는, 아니 불가능하다고 하는 공장을 세워 운영을 하고, 아직은 조심스러운 면이 아직 없지 않지만 세상이 함께 놀라 준 성공을 거두고 하는 일들이 제게는 말도 못할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적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기적입니다. 보리 떡 다섯 개와 물 고기 두 마리로 오 천 명이 먹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는 기적이지만 하나님께는 언제나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평범한 일일 것입니다. 그와 같은 기적이 일어났을 때 가장 기뻤을 사람이 누굴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구보다도 자기의 도시락을 내 놓은 어린 아이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도시락을 내 놓으면 점심을 굻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작은 헌신 같아 보였어도 점심을 굶는 고통을 감내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헌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작은 헌신을 귀히 보시고 오 천 명이 먹고도 남는 기적을 일으키셨던 것입니다.
아이의 헌신이 없었다면 기적도 없었습니다. 그 아이의 헌신과 믿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육적으로도 배부름을 얻었지만 그와 비교되지 않게 영적인 배부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벳세다 광야에서 있었던 기적의 주인공은 오병이어 자신의 점심을 내 놓은 아이였습니다. 그날 그 아이는 예수님의 능력을 덧입어 자신의 작은 헌신으로 오 천 명을 먹이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벳세다 광야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여자와 아이들을 제외하고도 오 천 명이나 되었던 사람들이 좇아 왔습니다. 제자들은 저들이 허기 져서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염려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만 말씀하시고 이제 저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야만 한다고 예수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아주 엉뚱한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저들에게 먹일 떡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토를 달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항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때 제자들은 말도 되지 않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어린 아이가 내어 놓은 오병이어를 예수님께 들고 왔다는 것입니다. 굶주린 오 천 명의 군중에게 오병이어의 도시락은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그것을 예수님에게 들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제자들에게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들의 힘이 모자란다고 모든 일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작던 크던 자신의 최선을 다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을 아마 믿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때에는 하나님을 계산에서 뺍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면 할 수 있는 일이고,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면 당연히 할 수 없다고 포기하고 단정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오병이어 기적에서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없다고 모든 것이 다 안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할 수 있다고 모든 것이 다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오늘 우리는 지난 주 광고 드린 바와 같이 아이티를 위하여 헌금을 합니다. 이번에 아이티를 위한 우리 교회의 헌금 목표는 일 억 원입니다. 저는 오늘 이 헌금에 참 기대가 많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평소보다 더 마음을 쓰는 것이 올해 우리가 교회가 준비해야 할 새 부대 중에 하나라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과 다음 주일에 하는 헌금으로 목표한 것이 달성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음을 모아 주시고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2천 여 명의 출석 교인이 다 오늘 본문의 아이 같은 마음으로 참여한다면 우리의 작은 헌금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의 기적을 아이티에서 일으키시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얼마 전 저는 북한 위하여 10년 이상 사역하고 계시는 어느 선교 단체 사람들로부터 요즘 북한이 매우 어렵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북한이 한 해에 필요로하는 식량은 650만 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작년 북한이 생산한 식량은 411만톤으로 올해 239만톤의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 동안에도 북한의 식량 생산은 언제나 필요에 미치지 못했었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시장이랄 것도 없지만 시장이 형성되어 식량과 물자들이 매매 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북한에서 실시한 화폐개혁이 실패하여 그나마 돌아가던 시장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화폐개혁의 실패로 물가가 폭등하고 있다고 합니다. 몇 달 사이에 쌀값이 10배에서 20배 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물가가 오르니 쌀이나 물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장에 내 놓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마나 운영되던 시장이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북한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쌀이 없어서 굶어 죽는 것이 아니라 쌀이 시장에서 유통되지 않기 때문에 벌써 굶어 죽는 다는 것입니다.
북한 사역을 하시는 분으로부터 지금 당장 쌀 몇 백 톤만 있으면 그것을 시장에 오르기 전 값으로 유통시키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쌀을 매점매석하고 내놓지 않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어 쌀을 시장에 내놓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쌀 몇 백 톤으로 굶어 죽어가는 북한 주민을 다 먹여 살릴 수는 없지만 그것을 통하여 시장의 기능을 전과 같이 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지금 이 심각한 위기를 완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설교 시간에 구체적이고 자세한 이야기를 다 드릴 수는 없으나 외국 시민권을 가지고 북한에서 사업을 하고 계시는 분이 계십니다. 카메라가 디지털화 되면서 옛날 방식의 필름 인화기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애물단지가 된 필름 현상기계들을 모아 북한 들여보내 그것으로 필름 현상소를 운영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크지는 않지만 실제로 북한에서 그것을 통하여 돈을 벌고 있습니다. 그 분은 그렇게 북한에서 번 돈을 가지고 중국에서 콩을 사서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 북한의 어린이들을 위하여 매일 콩우유를 만들어 아이들을 먹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북한 주민들의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본인으로부터 직접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장 3억 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합니다. 그 돈이 모아진다면 캘리포니아산 쌀을 사서 한 시 바삐 북쪽으로 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오르기 전 값으로 쌀을 시장에 풀고 싶습니다. 저는 시장을 모릅니다. 사업도 모릅니다.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혹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새터민들을 위하여 박스 공장을 세울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걱정을 하였습니다. 걱정하는 분들에게 저는 ‘하나님은 뒀다 어디 쓸거냐?’며 말씀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염려하고 걱정하던 박스 공장은 기적과 같이 현재 흑자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고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나라를 믿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나라가 못하는 일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십니다. 오늘 본문의 어린 아이처럼 예수님의 손에, 하나님의 손에 올려 지면 나라가 못할 일을 우리도 할 수 있게 됩니다. 3억 원으로 북한 주민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30억 원으로도 못하고, 300억 원으로도 못하고 3,000억 원으로도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3억 원이라고 하여도 하나님의 손에 들려져 쓰임 받는다면 북한 주민의 문제가 그 3억 원이 오병이어가 되어 다 풀리고도 남을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굶주린 군중을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그런데 제자들은 그 말씀에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림도 없었지만 오병이어를 들고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저는 그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그 믿음위에 역사하셨습니다.
북한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북한을 위하여 나서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자기가 먹을 점심인 오병이어를 내 놓은 아이처럼, 그것을 들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 제자들 처럼 우리도 그렇게 한다면 오병이어의 기적은 오늘도 일어나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도 제 오병이어를 먼저 내 놓으려고 합니다. 설교하는 제가 먼저 내 오병이어를 내 놓아야만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래야만 이 일에 하나님이 기름 부어 주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모으고자 하는 액수의 십일조를 먼저 내 놓겠습니다. 그 돈은 제 아내가 아이를 위하여 졌던 빚을 갚기 위하여 모았던 돈입니다. 빚은 조금 천천히 갚아도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로 하였습니다. 때문에 그 돈은 내 놓으면 저도 조금은 배가 고파야 하는 돈입니다.
여러분들도 이 설교를 듣기만 하지 마시고 동참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믿음위에 예수님께서 2천 년 전과 똑같이 역사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 주일 설교를 매주일 들으시는 분들이 수 만 명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는 듣기만 하지 마시고 듣고 구체적으로 행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오병이어를 모아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평생 설교하면서 설교 원고에 은행구좌를 올려놓고 헌금과 모금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갑자기 진행되는 일이라 모금을 위한 은행구좌를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높은 뜻 숭의교회 이름으로 되어 있는 계좌를 임시로 이용하려고 합니다. 기업은행 148- 04- 31- 69- 04- 040 높은 뜻 숭의교회입니다. 헌금을 보내주실 때 ‘북한 돕기 헌금’이라고 써서 보내주시면 굶주린 북한 동포를 돕고 살리는 일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기적을 믿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기적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에는 그 기적을 목도한 사람이 있고 그 기적의 중심에 선 기적의 당사자들도 있습니다. 저는 기적의 구경꾼이 아닌 기적의 당사자가 되고 싶습니다. 특별히 저는 오병이어 기적의 주인공이 되고 싶습니다.
평양에 몇 번을 갔었습니다. 호텔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주기도문으로 기도를 하곤 했었는데 북한 호텔에서 드리는 주기도문은 참으로 은혜가 많았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이름이 철저히 땅에 떨어진 땅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면 정말 전율이 느껴지곤 했었습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 우던 평양 땅에 다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는 기도도 참 감동이 컸었습니다. 그런데 특히 북한에서 감동적이어서 더욱 간절했던 주기도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특히 먹을 것이 넘쳐나서 다이어트를 염려하는 남한 땅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는 간절하지도 못했고 은혜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어서 수 백 만 명씩 죽어가는 북한 땅에서 그 기도는 정말 절박했었습니다. 그 기도를 할 때마다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과 고통이 있었습니다.
북한 동포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라고 기도할 때마다 눈물이 흘렀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눈물만 흘리지 말고, 기도만 하지 말고 우리보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오병이어를 먼저 내 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첫 번 째 이적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이었습니다. 그 기적을 행하시기 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종들에게 미리 한 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무슨 말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종들은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빈 포도주 항아리에 물을 가져다가 부으라고 하셔도 그렇게 했었고. 그 물을 떠다가 주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오늘 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병이어 보잘 것 없는 것으로는 오 천 명을 먹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에 그것이라도 들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순종이 기적을 낳았던 것입니다.
굶주려 죽어가는 북한 주민을 향하여 예수님은 오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 아이처럼, 예수님의 제자들 처럼 오병이어를 예수님께 내어 드리는 순종으로 굶어 주는 가는 북한 주민을 살려내고도 남는 오늘 이 시대의 기적을 연출해 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2)
마 14:13-21.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하나님은 미디안 광야에서 양이나 치고 있던 모세에게 나타나 애굽으로 가서 내 백성을 구원해 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부담이 되는 말씀의 한계를 넘는 수준의 말씀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모세의 심정을 생각해 봅니다. 그때 모세의 심정은 ‘부담을 느낌’이 아니라 ‘어처구니 없음’이었을 것입니다.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말씀이었으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도 그렇게 여러 차례, 하나님이 노를 발하실만큼이나 사양하고 거절을 하였겠습니까?
벳세다 광야에 여자와 어린아이를 뻰 오 천 명의 사람들의 모였습니다. 제자들은 저들이 걱정되었습니다. 모두 먹지 못하고 허기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이제 저들을 그만 돌려보내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치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셨던 것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보낼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그 말씀 역시 어처구니가 없는 말도 안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처구니 없는 말씀은 똑 같은데 모세와 제자들의 반응은 서로 달랐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노를 발하실만큼 여러차례 거절하고 사양하였는데 제자들은 단 한 마디의 질문도 없이 정말 그렇게 하려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였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 최선이 초라한 오병이어에 불과했지만 저들은 그것을 들고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모세가 몰랐던 것이 있습니다. 모세의 착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있는 아주 보편적인 착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애굽으로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고 말씀하시니까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다 해내어야만 하는 줄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자기가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당연히 답은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물론 자신들이 하여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그 일은 최선을 다하여 해야만 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 천 명도 먹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그 일을 행하실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때문에 오 천 명은 고사하고 50명도 먹일 힘이 없었던 저들이지만 어처구니 없어 하지 않았습니다. 부담스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아이의 오병이어 밖에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12 정탐꾼들이 여리고를 정탐하고 돌아왔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 한 나머지 열 정탐꾼들의 보고는 절망적이었습니다. 가나안 족속은 다 거인들이었습니다. 저들이 보기에 가나안 족속과 자신들을 비교해 보면 자신들은 마치 메뚜기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니 가나안 정복은 불가능한 일 즉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결론이 논리적으로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의 착각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저들이 그 일을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똑같은 정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올라가자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에게 그와 같은 힘과 능력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에게는 불가능한 일 같아 보여도 하나님이 가나안에 들어가라 말씀하셨다면 자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저들을 가나안에 들어가게 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몇 년 전 열매나눔재단을 세우고 재단이 새터민들을 위한 공장을 세우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염려했었습니다. 그리고 공장설립을 반대하고 실제로 재단의 사무총장을 찾아가 하지 말라고 이야기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분들이 그렇게 반대를 한 것은 당시 우리가 새터민들을 위하여 공장을 세우고 그것을 운영하여 저들의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나선 것은 위에서 말씀드린 모세와 오병이어와 가나안 정복 사건과 똑같은 유형과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그 일을 강행한 것은 우리에게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일은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힘으로 그 일을 하면 우리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그런 일도 능히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감사하고 감사한 일은 그 일은 우리의 믿음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와 같은 승리와 성공을 맛보게 되었을 때 그와 같은 일이 마치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된 것과 같이 착각하게 하려고 하지만 저는 거기에 속지 않으려고 힘써 노력합니다. 그리고 늘 기도합니다. ‘교만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어리석어 지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는 것과 같은 어리석고 교만한 착각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여리고성에 성공하고 아이성에서 무너지는 실수를 범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늘 기도합니다.
우리의 힘을 생각하면 모든 일이 다 불가능하고, 우리의 힘을 의지하면 실제로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힘을 생각하면 Nothing is impossible입니다. 애굽으로 가라 할 때 모세는 알았어야 합니다. 가서 내 백성을 구원하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그냥 가면 된다는 것을 알았어야 합니다. 믿었어야 합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예수님이 말씀하셨다면 얼른 눈치를 채야만 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힘 좀 쓰시겠구나 하는 눈치를 채야만 합니다. 제자들은 아마 그 눈치를 챘던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오병이어를 들고 예수님 앞에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 눈치가 믿음이었고, 그 믿음이 기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정탐 결과 가나안 사람들은 거인과 같고 자기들은 스스로 보기에 메뚜기 같아 보였어도 하나님이 가나안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셨다면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눈치를 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외쳤어야 합니다. ‘올라가자. 저들은 오늘 우리의 밥이다.’
이성만 있고 논리만 있었던 그러나 믿음은 없었던 저들은 저들의 확신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구경도 하지 못하고 결국 40년 동안을 광야에서 방황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죽어야만 했습니다. 모세가 끝까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애굽에 가지 않았었다면 모세는 그냥 미디안에서 양만 치다가 초라하게 죽었을 것입니다.
얼마 전 여러분 교회의 담임 목사인 문희곤 목사로부터 자기가 잘 알고 있는 분들로부터 북한이 올해 아주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들은 북한을 위하여 오래 전부터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화폐개혁의 실패로 물가가 폭등하기 시작하였답니다. 그래서 불과 몇 달 만에 쌀 값이 10배에서 20배나 올랐답니다. 누가 쌀 몇 백 톤만 사주면 그것을 시장에 풀어서 시장을 정상화시키고 싶다는 이야기를 그 분들이 하였답니다. 문 목사님이 그와 같은 이야기를 저와 의논하였습니다.
저는 참 부담스러웠습니다. 요즘 저는 열매나눔재단의 후원금 모집 때문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우리 높은 뜻 교회가 재단을 세울 때 20억 원은 현찰로 내 놓았고 50억 원은 일 년에 10억 원 씩 5년 동안 내기로 작정하고 서울시로부터 허락을 받았습니다. 이제 앞으로 2-3년 후면 우리 교회가 매년 재단에 내는 10억 원의 돈이 끝나게 됩니다. 저는 재단의 이사장으로서 그 일이 끝나기 전에 최소한 일 년에 10억 원 정도의 후원금을 모아야만 합니다. 10억 원을 한 번 모으는 것도 쉽지 않은데 해마다 10억 원을 후원금으로 모아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제 거친 표현대로 하자면 마치 앵벌이를 하듯 사방을 돌아다닙니다.
작년 말 높은 뜻 하늘 교회의 이상윤 목사와 함께 아프리카 케냐를 다녀왔습니다.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수련회가 있었는데 그 수련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갔었습니다. 케냐를 갔다가 우리 선교사들 자녀들이 많이 다니고 있는 선교사 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참으로 좋은 학교였습니다. 그 학교에서 우리나라 선교사 자녀들이 돌봄을 받고 있었습니다. 도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한국교회도 큰 교회가 되었는데 아직도 도움을 주지 못하고 도움만 받고 있는 것이 부끄러워 학교에 헌금을 작정하고 돌아와 5만 불을 만들어 보내드렸습니다.
그런데 문 목사님으로부터 북한 이야기를 또 들은 것이었습니다. 한 3억 원 정도의 재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때 제 마음에 번개처럼 떠 오른 생각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아이구 하나님 또요?’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순종하기로 하였습니다. 문 목사님을 통하여 하나님이 또 오늘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부터 헌금을 작정하고 오늘 본문과 제목으로 지난 주 평광교회에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설교 중에 모금을 위한 은행계좌 번호까지 불러드렸습니다. 우리 높은 뜻 교회 홈페이지 게시판 사랑방에 ‘내 팔자’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면서 또 북한 이야기를 하였고 북한돕기 은행계좌도 올렸습니다.
어제까지 총 366명이 110,924,859원이 모금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놓고 이런 저런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선 366명이 일 억 원이 넘는 돈을 헌금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그것은 헌금을 한 분들이 일인당 30만 원 가량을 평균적으로 헌금을 했다는 뜻이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5천 원을 보내신 분들도 있습니다. 만 원을 보내신 분들도 있습니다. 과부의 엽전 두 푼과 같이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신 정말 귀한 헌금이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런데 평균이 30만 원이었다는 뜻은 보내신 분들이 작든 크든 자신의 최선을 다하시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정말 고맙고 놀라웠습니다.
제 주일 설교를 주일 교회에서 직접 들으시거나 인터넷이나 방송을 통하여 듣고 보시는 분들이 한 5만 명 이상은 되지 않나 파악하고 있습니다. 최소한으로 생각해도 3만 명은 되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 설교도 그 정도의 숫자가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설교를 듣고 5천 원 만 원이라도 은행계좌를 확인하고 입금하신 분의 숫자는 366명이었습니다. 줄잡아 1%의 교인만이 설교를 듣고 반응을 하였다는 것을 뜻합니다.
저는 이런 분석을 하면서 느닷없이 예수님이 하신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열 문둥이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이 저들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들이 순종하여 가다가 나음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중에 한 사람만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때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다는 것입니다.
매주 제 설교를 들으시는 교인들 중에는 스스로를 김동호 목사 설교 매니아라고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곳, 저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자기 스스로를 제 팬이라고 소개하시는 분들도 꽤나 많습니다. 저는 이번 한 주간 북한돕기 헌금으로 입금되는 헌금을 보면서 감사하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면서 또 한편 ‘그 팬과 매니아들은 다 어디 있는가?’라는 엉뚱한, 참으로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디오 광고 중에 학원 광고가 하나 기억 납니다. 여자 중학생 하나가 택시를 타고 대치동으로 가자고 합니다. 대치동에는 유명한 학원들이 많은데 그 중에 한국 중학생 3%가 다니는 학원으로 가자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기사가 3%가 다니는 학원엘 가려면 대치동으로 가지 말고 어느 학원으로 가야한다고 대답합니다. 광고의 끝은 ‘나도 오늘부터 3% 중학생’입니다.
아마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3% 안에 든다면 그 아이의 앞날은 상당히 밝을 겁니다. 1% 안에 든다면 그 아이의 앞날은 훨씬 더 밝을 겁니다. 평균적으로 말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그 1% 안에 든다면 여러분은 기쁘실 겁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자랑스러우실 겁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그것을 노골적으로 또는 은근히 자랑하실 겁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높은 뜻 교회 사랑방 게시판에 ‘내 팔자’라는 제목으로 며칠 전에 글을 올렸습니다. 제법 많은 분들이 들어오셔서 보셨고 꽤 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 중에 홍길동이라는 이름으로 달린 댓글이 참 맘에 들었습니다. <으이구!!! 진짜루 미치겠네...돌겠네...진짜.....백수된지 7계월짼데..... 김목사님 땜시.........................................................이체합니다. (2010.02.18 19:18) >
그 홍길동이라는 분은 세상에서는 백수인지 모르겠으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1%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7개월째 백수이면서도 때문에 은행이체가 그 누구보다도 힘들고 부담스러웠을 터인데도 그렇게 손 빨리 반응하는 것을 보면 1%가 아니라 0점 몇 퍼센트의 교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공부에도 욕심을 가지고, 자리에도 욕심을 가지시듯 하나님께도, 믿음에도 욕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1% 교인에 한번 도전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생각에는 힘들것 같고 부담스러울 것 같지만 뜻밖에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정말 이해가 됩니다. <내 멍에는 쉽고 가볍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도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에게로 오면 쉬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쉼을 주시겠다시면서 또 멍에를 메라는 말씀이 웬 말씀입니까? 언어적인 표현을 생각하면 짐보다 멍에가 더 무겁습니다. 짐을 지고 무거워하는 사람에게 멍에를 메라는 것은 참으로 억지입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맞습니다. 쉼을 얻으려면, 무거운 짐을 벗으려면 멍에를 메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멍에 같습니다. ‘애굽으로 가서 내 백성을 구원하라.’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가나안에 들어가라.’‘북한의 내 백성을 섬기라.’등등 참 다 멍에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멍에는 참 이상합니다. 세상의 멍에는 벗으면 가볍고 메면 무거운데 예수님의 멍에는 벗으면 무겁고 메면 가볍습니다.
오병이어의 뜻은 그냥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오병이어의 의미는 그것이 아닙니다. 오 천 명을 먹이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은 기적의 오병이어입니다.
99%의 크리스천들에게 오병이어는 그냥 오병이어일 겁니다. 죽을 때까지. 그러나 1%의 크리스천에게 오병이어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적의, 능력의 오병이어일 것입니다. 멍에를 메지 않고 편히 예수를 믿으려고하면 할수록 삶은 피곤하고 무겁고 힘들 것입니다. 댓글을 달아 주신 홍길동님과 같이 진짜루 미칠 것 같아도, 돌아 버릴 것 같아도, 그러면서도 하나님 때문에 그분의 표현대로 하자면 하나님 땜시 순종하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기적으로 충만한 삶이 될 줄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과 같이 오 천 명을 먹이고 나라와 민족을 축복하는 큰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도 안 되는 말씀을 우리에게 하고 계십니다. 오늘 설교 말씀에는 또 몇 퍼센트의 교인이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이해가 되든 안 되든, 부담이 되든 안 되든 생각하지 말고 순종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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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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