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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사63: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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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이사야(152) 마음의 부요를 추구하십시오 (이사야 63장 7-19절)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고민이 무엇입니까? 이름뿐인 신자가 많은 것입니다. 왜 그런 교인들이 속출합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사람을 믿는 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8장을 보면 그런 문제가 초대교회에도 있었습니다. 당시 사마리아 성에는 시몬이란 마술사가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마술에 매료되어 그를 거의 신처럼 떠받들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곳에 전도자 빌립집사가 나타나서 복음을 전하며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시몬을 버리고 빌립에게 몰려들었습니다. 시몬에게서 빌립으로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그 다음에는 또 어디로 몰려갈까요? 왜 그런 일이 생길까요? 그들에게 예수님이 없기에 시몬에게 빠지고 빌립으로 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에서 조사차 사마리아에 와보니까 빌립에게 빠진 사람들 중에 진짜로 중생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믿음생활을 하면서 사마리아 사람들과 같이 되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설교자나 예언자나 치유자를 따라다니면 곧 낭패를 당합니다. 설교자가 전하는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을 전하는 설교자를 바라보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믿음의 대상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교회생활을 할 때도 고린도교회에 4색 당파가 있었듯이 인맥을 중심으로 교회에 다니면 큰 낭패를 당합니다. 믿음생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은혜를 아는 삶입니다. 은혜를 아는 자가 결국 멋지게 쓰임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방랑적 성품을 가졌지만 은혜를 아는 존재가 되니까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비판적 성품을 가졌지만 은혜를 아는 존재가 되니까 출애굽의 민족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다혈질의 성품을 가졌지만 은혜를 아는 존재가 되니까 능력 있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직선적 성품을 가졌지만 은혜를 아는 존재가 되니까 기독교의 뼈대를 세우는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각기 성품이 달랐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 모두가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으려는 존재였다는 사실입니다.
< 마음의 부요를 추구하십시오 >
하나님의 은혜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은혜를 입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자세입니다. 은혜를 잊지 않을 때 은혜가 더해집니다. 기도할 때도 응답받는 기도가 되게 하려면 항상 탄원 전에 감사와 찬송의 기도를 먼저 드림으로 은혜를 아는 자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그래서 선지자는 먼저 본문 7-14절에서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칭송한 후에 15-19절까지 하나님께 새로운 은혜를 구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마음은 은혜를 아는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마음이 얼마나 풍성해지는지 모릅니다. 돈의 풍성함을 구하기 전에 먼저 그런 마음의 풍성함을 구하십시오. 성도라고 해서 돈을 외면할 필요는 없지만 사실상 돈으로 사지 못하는 것도 많습니다.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어도 잠은 못사고, 음식은 살 수 있어도 식욕은 못 사고, 가정은 살 수 있어도 가정은 못 삽니다. 또한 돈으로 약은 살 수 있어도 건강은 못 사고, 사치품은 살 수 있어도 행복은 못 삽니다.
성경적인 부요는 돈 이상의 것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것을 뜻합니다.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믿음의 조상들도 다 문제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결국 참된 부요란 늘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마음이 은혜로 넘치면 가난해도 부유한 것이고 마음에 은혜가 없으면 부자라도 가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부의 주인공이 되려면 먼저 은혜가 넘치는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사람들은 물질적인 축복을 제일로 생각하지만 성도에게 주어진 축복은 물질적인 축복 이상의 것입니다. 즉 구원, 영원한 유업, 보호, 기도응답, 보상, 보전, 승리, 힘, 지혜, 건강 등이 성도에게 주어진 축복들입니다. 그런 축복은 돈으로 못 삽니다. 결국 진짜 부요는 “얼마나 많이 움켜쥐었느냐?”에 달려있지 않고 “얼마나 많이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그 받은 은혜를 이웃과 나누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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