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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내 눈 똑바로 쳐다봐!

마태복음 박신 목사............... 조회 수 2014 추천 수 0 2012.04.27 06: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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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7:28-29 
설교자 : 박신 목사 
참고 : http://www.nosuchjesus.com 
너 내 눈 똑바로 쳐다봐!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침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7:28,29)

복음서는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상대로 율법을 풀어 설명하고 천국에 대해 강화할 때에 권세가 있어 모든 사람들이 탄복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가르쳤기에 권세가 있었을까요? 가슴을 파고드는 우렁찬 목소리로 가르치면서 그 교육 방법과 기교가 뛰어났는지 또 가르침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이적을 보여주었기 때문인가요?

성경을 해석할 때는 행간(行間)의 의미를 추측하기 전에 가장 먼저 본문의 뜻에 충실해야 합니다. “권세 있는 자” 같이 가르쳤다고 합니다. “권세 있게” 가르친 것이 아니라 “권세 있는 자”가 가르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비슷한 의미인 것 같지만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로 해석하려면 가르치는 방법에 주목해야 하는 반면에 후자는 권세와 권세를 가진 사람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만 분석해 보아도 이미 반 이상 해석이 된 셈입니다. 권세란 항상 그것을 가진 사람과 연결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쉬운 예로 무역회사 사장이 올해 수출 목표가 1억불이니 전 사원더러 열심히 일해서 달성하라고 명령하면 권세가 있습니다. 사장은 사원들이 일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을 마련해 주며 각 부서마다 권한도 나눠줍니다. 또 열심히 일한 만큼 보상을 해주는 반면에 목표 달성에 기여하지 못한 자들은 감봉 내지 파면해버립니다. 자기가 한 말에 전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는 자가 말해야 권세가 따라 붙습니다.  

또 어떤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자가 하면 권세가 생깁니다. 공원 관리인이 저녁 9시 이후에는 공원을 출입할 수 없다고 제지하는 것과 지나가는 어른이 밤이 늦었으니 공원에 들어가 놀지 말라고 말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전자는 반드시 그 말대로 따라야 하지만 후자는 단순히 참고로만 하면 됩니다. 말하는 자의 맡은 직분, 즉 이미 법적으로 부여된 권력이 있기 때문에 권위가 섭니다.    

나아가 공부는 하지 않고 실컷 놀다가 외출하고 온 부모에게 공부 했다고 거짓말 한 자식 앞에서 부모가 “너 내 눈 똑 바로 보고 정직하게 말해!”라고 하면 권세가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윤리적 문제를 떠나서 부모와 자식이라는 개인적이고도 인격적인 관계가 전제되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약속을 위반한 친구에게 피해를 당한 자는 사과를 요구할 수 있지만 제 삼의 친구는 함부로 그 일에 개입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자기가 한 말을 책임질 수 없고, 그런 말을 할 권한과 자격이 없으며, 아무런 개인적 인격적 관계없이 제 삼자가 말하는 것들은 권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따르면 서기관들의 가르침에는 권세가 없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럼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분명히 회당에서 율법을 가르칠 권한과 자격이 있고, 그 가르친 대로 따르지 않으면 공회에서 처벌할 수도 있으며, 회당에 모인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알았지 않습니까?

서기관들은 가르칠 권세는 가졌지만 가르치는 내용에 대한 권세를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그 말에 대한 권세를 가진 자로서 가르쳤기 때문에 어떻게 가르쳤던 권세가 나타난 것이고, 서기관들은 아무리 권세 있게 가르쳐도 그 말에 대한 권세가 있는 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권세가 안 나타난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서기관들은 단지 율법 교사의 입장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라고 간접화법을 사용해 가르친 반면에, 예수님은 율법을 베푼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직접화법을 사용해 바로 대놓고 명령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것이 너희에게 도움과 유익이 될 것이다”는 식의 권면 내지 충고의 방식으로는 말씀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탄복하기 전에 어떻게 가르쳤습니까? 본문 바로 앞의 성경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해 주라,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등등 전부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아니 질 수 있는 자로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라는 선언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또 가르치는 형식도 그와 같았습니다. 문법상의 주어가 당신이었을 뿐 아니라 말씀한 내용을 책임질 주체도 당신이었습니다. 율법을 읽은 후 단지 강론만 하는 서기관들과는 그 권세가 판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선포한 선지자와도 달랐습니다. 그들은 꼭 “여호와가 가라사대”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대언(代言)했습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크다는 침례 요한도 “메시야가 곧 오실 것이다. 그가 심판을 주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바로 인자요 메시야요 성자다”라고 선포했습니다. 미친 사람 아니면 과대망상증 환자라야 말할 수 있는 내용인데도 전혀 그렇게 여겨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말씀의 내용과 말을 한 자 사이에 어떤 모순과 갈등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 청중의 대부분은 예수님과 개인적 인격적인 관계가 없었습니다. 특이하고 젊은 랍비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자, 호기심으로 기웃거린 자, 비방할 허물을 찾아내려는 자,  잘하면 병 고침을 받을까하고 온 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자들이 예수님의 말씀 앞에 꼼짝 못하고 오금이 저리고  심장이 두근거렸던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유대인들에게 “이 분이 꼭 해야 할 말이다. 그 말을 이분이 책임을 질 수 있다. 이분이 아니고는 감히 이런 말을 할 권한이 있는 자는 없다. 거기다 우리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 같다. 심령의 숨긴 것까지 끄집어내시는 분이다.”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그들의 가슴을 친 것입니다.  

지금 2천 년 전에 있었던 사건을 풀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는 오늘 날의 신자도 예수님이 자기에게 “권세 있는 자”로서 말씀하고 있다는 확고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이니까 당연히 권세 있는 말씀이겠거니”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기록된 글을 통해 지금 나에게 개인적 인격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직접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예수님이 바로 그 순간에도 신자더러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너! 지금 내 눈 똑바로 쳐다보고 들어! 원수를 사랑해!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 네 존재와 삶과 인생 전부를 산제사로 드려! 좁은 길로 가! 세상에선 머리 둘 곳이 없어야 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 복음을 전하다 보면 핍박 받는 것은 당연한 거야! 환난 중에 오히려 감사하고 천국의 소망을 키워!”라고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강압적으로 명령만 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부모보다도 더 우리를 사랑하는 애끓는 심정으로, 단지 공부 안 하고 거짓말한 잘못을 범한 자식을 향해서가 아니라, 그냥 두면 영원한 멸망으로 굴러 떨어질 자를 붙들고,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신자가 성경을 대할 때에 “말씀대로 이렇게 하면 형통하고 복 받겠지. 대적에게 신원해 주고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어 정신적 평강을 얻을 수 있겠지”라고 기대하거나, “원수를 사랑하도록 노력해야지”라고 잠시 반성하고 결단해 보는 정도가 되어선 안 됩니다. 말씀을 볼 때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심장이 뛰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늘의 신령한 권세에 붙잡혀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으로 인해 신자의 삶과  인생 뿐 아니라 존재 자체가 완전히 뒤집어지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성경이, 아니 하나님이 지금 내 눈을 똑 바로 쳐다보고 내 심령을 완전히 꿰뚫어 아시면서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감히 그 말씀을 함부로 대하며 심지어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7/12/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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