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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개발의 두 가지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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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기개발’ 생활문화의 트렌드로서 자리잡고 있다.
나날이 치열해지는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또 경쟁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 자기개발이 강조된다.
그래서 두뇌개발, 학습개발, 능력개발, 기능적 개발 등
다양한 개발을 말하고 있다.
자기개발의 본래적 정의는 무엇일까?
아주 간략하게 말한다면 자아의 끊임 없는 확대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잠재적 가능성과 능력을 현실화시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인식을 확장하고 삶의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 자기개발일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도 분명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세상을 향한 약탈자로서 자기를 개발하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
세상을 향해 열어가는 개발일까?
2.
자기개발에 의한 자아의 확대실현,
이를 고전적 표현을 빌리면 소아적(小我)에서 대아(大我)로
나를 발달시키는 것이다.
인식의 확장이든 삶의 방식의 개선에서든,
그만큼 생각이 커지고 사람이 커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소아에서 대아로 발달해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 사고 방식을 고집하고
그에 국집하는 만큼 사람은 작아지고
그것으로부터 탈출하는 만큼 사고가 커지고 사람이 커진다.
그러니까 사람이 커진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에 세상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욕망관철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요구를 향해서 - 종교적 용어로는 ‘부름’이라고 해도 좋다
- 자신을 열어가는 것이다.
세상을 향해 자신을 열어가고 세상과 소통하는 것,
그것이 자기개발의 본래적 의미다.
그러니까 자기 욕심으로 세상과 마주하고
세상의 약탈자로서 자기를 개발한다면
그것은 개발이 아니라 자신을
더욱 황폐하고 피폐하게 만들어가는 것일 뿐이다.
마치 부동산개발, 투기적 개발이
세상을 혼탁하게 하고 어지럽히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세상을 향해 열어가는 사람,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사람은
세상에 받아들여지겠지만
세상을 지배하고 약탈하고자 하는 사람이
세상과 사람에 받아들여질 수는 없다.
한때의 기교나 사기로 속일 수는 있을 지 모르지만.
3.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을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이 말도 그렇다.
세상과의 소통반경이 확장되는 것,
소아에서 대아로 발달하는 인간발달의 과정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도 잘 못 읽으면,
지배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수신제가를 하고 그 다음에 나라를 다스려먹고
세상을 평정하는 위대한 지배자로 군림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이해하게 된다.
세상을 약탈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원전의 본래의미는 전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가(家)를 자기 몸처럼 생각하면
가(家)를 다스릴 수 있을 것이고
나라를 자기 몸과 같이 할 수 있다면
나라를 다스릴 것이고
천하를 자기 몸과 같이 한다면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는 그런 의미다.
그래서 수신(修身)을 기초로 한다.
자기 몸처럼 할 수 있는 반경이 어디까지냐? 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자기개발’의 의미를 다시 정돈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나와 세상의 관계설정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관계설정이 빗나가면 자기개발은 빗나가기 마련이다.
예컨대 두뇌개발이란 것도 그렇다.
세상을 약탈대상으로 보는 약탈적 머리를 쓰는데서야
잔머리는 굴릴 수 있어도 큰 머리는 나올 수 없다.
정말 큰 머리는, 머리가 열리는 것은
세상을 향해서 자신을 열어가는 데서만 나올 수 있다.
단적인 예를 들자. 환자로부터
어떻게 돈을 뜯어 낼 것인가로 궁리하는 그런 의사들에서
의술이 개발될 수 있을까?
아니면 환자를 자기 몸처럼 생각하고
세상을 향해서 인술을 펼치고자 고민했던
의사들 손에서 의술이 개발될 수 있을까?
이렇게 세상을 약탈대상으로 삼는 자와
세상을 가꾸는 삶을 사는 자의 길은 극명하게 갈라진다.
세상과의 관계설정에서 그렇게 갈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