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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반사와 무조건 반사
‘세상에 이런 일이 가능할까’라는 정도로 기상천외한 현상들, 이른바 인간의 초능력이랄까 그런 것들을 보기도 한다. 사실 인간의 잠재 능력은 참으로 무한하다. 그런데 무한한 잠재 능력이 어떤 때에 일어나느냐 하면, 무아지경에서 무아삼매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공통된 이야기다.
서구의 유명한 과학자, 보어(Bohr)란 사람이 이런 실험을 했다고 한다. 자기 동료에게 권총을 주고(물론 가짜 총이지만) 자기가 나타나면, 출근을 할 때나 사무실에 나타나거나 복도에서 만날 때면, 자신을 향해서 총을 쏘는 시늉을 하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의도하지 않고 그에 대응해서 옆구리에 찬 총을 빼는 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동료들은 미리 ‘보어’를 의식하고 총을 빼고 보어 자신은 의식하지 않고 불현듯 총을 빼는 그 차이가 무언가를 실험했다는 것이다, 즉 의식하는 행위와 의식하지 않은 행위의 차이, 조건반사와 무조건반사와의 차이를 알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실험을 해 보니까 거의 십중팔구, 상대방을 미리 의식하고 총을 쏘는 것 보다 의식하지 않고 총을 빼는 행위, 무의식적 행위가 더 빠르다는 것이다, 즉 의도적으로 미리 준비하는 행위, 나타나기만 하면 쏠 것이라고 준비하는 행위보다 그런 의식 없이 자신의 육감에서 총을 바로 뽑는 게 더 빠르더라는 것이다,.
이게 무얼 말하는 것일까? 우리가 이른바 의식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인간의 잠재가능성이 오히려 의식에 의해서 차단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표면에 떠 있는 의식이 발동하고 있기 때문에 잠재의식, 또 그 심층부에 있는 심왕식(心王識)이라고 표현하는 무의식이 발동하지 못하는, 말하자면 내가 갖고 있는 원래적 능력이 한껏 분출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의식이란 것은 표피적인 분출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감각하고 의식하고 행동해야하지만 그러나 이 의식이라는 것이 전체적인 메카니즘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이상으로 의식이 관여할 때, 필요이상으로 의식이 관여할 때는, 오히려 능력이 저하되어 버린다.
비근한 예로 우리가 운동선수들에서 그런 경우를 많이 본다. 권투를 하든 야구를 하든 축구를 하든 한방에 케이오 시켜야지, 홈런 한방 날려야지, 이번에 한골 꼭 넣어야지 ....이렇게 의식적으로 자신을 강제 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의식이 과도하면 오히려 실패한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서 그 결과는 좋지 않다는 것,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상황에 대한 분석 판단 결정까지는 의식적으로 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의식이 행위나 행동체계를 눌러버리고 간여를 해버리면 오히려 자신의 능력이 떨어져 버린다. 운동에서 이런 것은 자주 보는 바다.
그러니까 정말 자기 능력은 무한한데 내 의식, 표피적인 내 생각으로 통제를 해버리니까 진짜 내 힘이 안 나온다는 거다. 이런 게 다소 과학적으로 해명이 미치지 않는 범위지만 어쨌거나 그런 현상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미루어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현상을 만들어 내는 당사자 주인공이 바로 사람이다. 초능력이란 것, 특별한 사람만에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종교적인 영역과도 사실 상관 없다. 신(神)과 관련시킬 문제도 아니다. 그런 문제들에 우리가 좀 더 밝을 필요가 있다. 인간능력의 개발문제, 그 능력의 근원에 밝을 필요가 있다.
소박하게 말하면 그렇다. 우리 의식세계가 교란되어 있고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가 지니고 있는 본래적 능력, 불교적인 표현으로 ‘여의보주’라 하는데,여의주의 능력을 가로 막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말 우리의 의식계가, 갓 난 아기들처럼 별 생각이 없이, 정말 자연스럽게 정돈되어 있고 오염되어 있지 않다면 평소에 그렇게 훈련이 되어 있다면, 그것이 ‘자기개발’의 첩경일 것이다, 의식이라는 억지에 짓눌리지 않는 것이 자신의 능력이 자연스럽게 발휘될 수 있는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