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헌 성경책에 새 찬송가를 붙이면서

요한계시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092 추천 수 0 2012.07.28 23:59:00
.........
성경본문 : 계2:1-6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1.2.13주일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헌 성경책에 새 찬송가를 붙이면서  
계2:1-6

요한 계시록은 폭군 네로 밑에서 모진 박해를 받는 교회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쓴 글입니다.  우리는 계시록의 공동체가 복음서의 여타 공동체와 동일한 공동체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계시록 공동체의 기록물인 계시록을 깊이 있게 보겠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흔히 ‘첫사랑을 회복하라’ ‘첫 사랑을 회복하라’하는데, 그 ‘첫사랑’이란 게 뭘 말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자는 이미 일어난 일, 혹은 앞으로 이루어 질 일들에 관해서 말하기 전에 소아시아와 헬라에 있는 일곱 교회에 대하여 간절한 勸勉의 말을 적었습니다.

일곱 교회 중 첫째로 언급이 된 교회는 에베소 교회죠. 계시록에 보면 오른 손에 일곱별을 쥐고 일곱 등경 사이를 거니시는 분,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분이 에베소 교회가 각 가지 고난을 참으면서 악한 자들을 물리치고 사도가 아닌 자들을 가려내어 거부한 것 등을 칭찬하면서 그러나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지적했어요.

그게 처음에 가졌던 사랑을 저 버렸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칭찬할 것이 있다고 해도 첫 번 사랑을 버린다면 쓸 데 없다는 것이겠죠. 첫 번 사랑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첫 번 사랑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선 그것을 어떻게 잃게 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을 회복할 수 있으니까요.

성서를 보면 하나님은 첫 번 사랑을 몹시 중요시합니다. 그것은 연애사건 과도 비슷합니다. 예레미야 2장에 있는 야훼의 말씀을 들어 보세요.

“야훼께서 나에게 이런 말씀을 내리셨다.
‘예루살렘에 가서 거기 사는 사람들에게 똑똑히 일러주어라.
나 야훼가 하는 말이다.
씨뿌리지 못하는 사막에서
나를 따르던 시절
젊은 날의 네 심정,
약혼 시절의 네 사랑을 잊을 수 없구나.
이스라엘은 나에게 깨끗하게 몸바쳤었지.
소출 가운데 맏물이었다.
누구고 그들을 집어먹은 자들은
그 죄를 면치 못하여
재앙을 당하고 말았다.’”

이 것은 야훼 하느님이 노예로 고생하던 이스라엘을 바로의 손에서 탈출시킬 때를 노래한 것입니다. 그가 사랑하는 이스라엘을 노예로 집어먹은 애굽에 재앙을 내리고 사랑하는 백성을 광야로 이끌어 냈을 때 야훼와 이스라엘은 약혼한 남녀와도 같이 서로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이 야훼와 이스라엘 사이의 사랑이란 이스라엘을 향한 야훼의 불타는 사랑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의 사랑에 감격하여 이스라엘이 그의 약혼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약혼녀가 매정하게도 야훼를 배반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시절을 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첫 사랑을 되찾아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이게 ‘첫 사랑’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경우도 꼭 같다는 것입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에 있는 정치, 문화와 그리고 종교의 중심지였스니다. 그 곳에는 아르데미 여신의 유명한 신전이 있어서 많은 종교인들을 끌어 모았니스다. 로마 황제 가이사를 섬기는 신전도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유대교도 허용이 되어 미란노라고 하는 회당에서 유대인들이 그들의 전통을 지켰습니다. 그 곳은 강을 끼고 있는 항구 도시여서 상업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곳에 바울은 석 달 동안이나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고 그릇된 종교와 문화에 매몰되었던 무리들이 깨닫고 생명의 길로 돌아섰습니다. 새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생명의 주님과 에베소 교회 사이에, 그리고 복음을 전한 바울과의 사이에는 깊은 사랑의 관계가 형성이 됐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도시에 큰 폭동도 일어나기도 했으나 그들의 따뜻한 사랑으로 이를 다 극복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처음의 사랑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일곱 등대 사이를 거니시는 그에게는 그것이 그렇게 안타까웠습니다. 한 마리 양을 잃은 목자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일곱 등대 사이를 거니는 그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어떻게 첫 사랑을 잃었는지를 살펴서 그 사랑을 되찾으라고 간곡히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기 위해서는 먼저 어떻게 그 사랑을 잃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랑이 식어 가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로 자기만 생각하고 상대방을 생각을 하지 않는 데서 옵니다. 대부분의 우리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합니다. 그것이 상대방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자기 느낌만이 중요합니다. 상대방이 어떻게 느끼는지는 무관심합니다. 자기 생각만이 중요합니다. 상대방의 생각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를 위해서 소유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자의 마음에는 사랑이 발붙일 여지가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가정도 깨어지고 사회도 분열이 됩니다. 나라와 나라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교회 안의 분열도 이런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옵니다. 이런 삶의 자세를 버려야 사랑이 싹틉니다.

둘째로 그릇된 환경이 우리들 속의 사랑을 시들게 합니다. 에베소라는 곳이 그렇습니다. 에베소에는 아르데미 여신을 섬기는 화려한 신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두 이 신전에서 우상을 섬기고 복을 받으려고 합니다. 가이사 황제를 신격화한 신전도 있습니다. 이 신전에 와서 충성을 올려야 출세를 합니다. 거기에는 율법을 강조하는 유대 회당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이 선민이요 이방인들을 개로 여깁니다. 이 도시는 또 상업이 발달된 항구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자기중심적인 문화를 조장 했던 거죠. 이런 문화 속에서 사랑이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문화의 영향을 극복 해야 사랑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를 둘러싼 문화의 영향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셋째로 끊임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안아주고 돌봐주는 사랑의 원천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사랑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사랑을 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응하지 않으면 시들어집니다. 주변에서 모진 바람이 불어오면 돌아서고 맙니다. 달콤한 유혹이 문을 두드리면 변신하고 맙니다. 애굽의 노예들을 이끌어내신 야훼의 사랑처럼,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하신 예수님의 사랑처럼 한없는 사랑이 우리를 둘러싸지 않는다면 우리의 사랑은 메마르고 맙니다. 어떻게 그런 사랑과 항상 같이 살 수 있을 까요?

어떻게 처음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을 까요? 다시 사랑의 생수를 마시면서 사는 길이란 무엇일까요?

첫째로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는 일에서 시작이 됩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삶이란 분열과 죽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돈 모으는 것을 목적으로 산 세리장 삭개오가 목말라 하지 않았습니까? 돈과 명예를 자랑한 부자 청년도 삶의 허전함을 견디지 못해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까? 다섯 남편을 가져봤어도 목이 갈해서 견디지 못했던 사마리아 여인처럼 자기만 생각하는 삶이란 죽음으로 향한 삶이라는 것을 절감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도 사랑의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스스로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자부하면서 이방인들을 무시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기의 의만을 주장한 그는 “오호라, 나는 비참한 사람이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자리에서 구해 줄 것인가?” 라고 비명을 질렀었습니다.

둘째로 서로 용서하고 도우면서 사는 사랑의 심정을 달라고 갈구해야 합니다. 사람이 곤궁함에 처하면 사랑의 원천들이 다 말라버립니다. 불행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을 보세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어려서부터 경쟁사회에서 산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샘 줄이 다 말라버렸습니다. 우리는 솔직히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술 중독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술 중독에서 해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동지들의 도움을 받아들이려고 할 때라야 재기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메말랐다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히 사랑의 심정을 달라고 하나님께 갈구해야 합니다.

난쟁이 삭개오가 뽕나무 위에 올라가듯이,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달려와서 무릎을 꿇듯이,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듯이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갈구해야 합니다. 애굽의 노예들이 갈구했듯이, 갈릴리의 농민들이 호소했듯이, 평화로운 통일을 갈망하는 남북한의 민중들이 평화통일을 애원하듯이 사랑의 영을 갈구해야 합니다.

셋째로 그렇게 기원할 뿐만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해서 그렇게 살아봐야 합니다. 사랑의 행위를 해 보아야 합니다. 젖 먹는 힘을 다해서 나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자를 사랑해 봐야 합니다. 손해를 볼 것처럼 느껴도 우리는 사랑해 보아야 합니다. 실망할 것이 두려워도 나를 주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사셨던 것처럼.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사랑했던 것처럼 우리는 이를 악물고라도 사랑의 행위를 해 보아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콜럼비아 대학의 총장 조지 럽(George Rupp)이 그 자리를 버리고 현재 이라크에서 생수를 보급하고 물을 깨끗하게 하는 일의(sanitation)책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일찍 프린스톤 신학교를 졸업하고 예일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하바드 대학 신학부의 젊은 학장으로 있다가 컬럼비아 대학의 총장으로 임명이 된 훌륭한 지도력을 가진 분입니다. 당시 그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고 어떠한 협조도 얻을 수 있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버리고 갈 곳을 몰라 헤매는 이민들을 돕는 일에 착수했습니다. 학원에서 가르치는 일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과 같이 사는 보람찬 삶을 원해서였습니다. 그는 이라크 전쟁이 끝나면서 이라크 주민들에게 생수를 보급하고 그들의 삶의 주변의 물을 깨끗하게 하는 일의 책임 맡았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그가 고백한 말이 내 마음을 뜨겁게 했습니다. 그는 “떠돌이들의 구체적인 욕구를 돕는 것처럼 축복된 삶이 없다. 절망에 빠졌던 무리들이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일어서는 것을 보는 기쁨이야말로 나의 삶에 보람을 준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런 기쁨이란 자기를 주는 삶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은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런 삶에서 우리는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같이 있겠다고 하신 다시 사신 예수님의 사랑과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첫 번 사랑을 되찾는 길입니다.

우리는 다 예수님의 사랑에 접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사랑할 수 있게 된 분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맛보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참 삶의 길이라고 믿어 그의 제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연약해서 첫 사랑을 쉽게 잃어버리죠. 다시금 자기중심주의로 전락을 합니다. 우리들이 사는 문화가 이것을 조장해 줍니다. 우리의 현실이 이것을 눈감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랑의 샘이 날로 말라가고 삶이 공허해집니다. 삶에 갈증이 생깁니다. 누군가가 와서 나를 이해해 주고 사랑해 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예수를 잘 믿는 진실한 교인으로 보이려고 합니다. 자기는 성실한 교인이요 문제는 다른 교인들에게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이런 믿음의 교만으로 나타나기를 잘합니다.

우리는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쉽게 첫 사랑을 잊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혼자의 힘으로 그 사랑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겸손히 사랑의 영을 부어달라고 기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를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때 영으로 우리와 같이 계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되고 그 고귀한 첫 사랑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주변에 생명을 살리는 하늘나라가 생성하는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7165 마태복음 인간은 과연 간사한가? 마5:1-3  박신 목사  2012-08-04 2068
7164 마태복음 순종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 마26:39  박신 목사  2012-08-04 2558
7163 마태복음 복음의 화룡점정(畵龍點睛) 마26:39  박신 목사  2012-08-04 2002
7162 마태복음 순종하지 못하는 첫째 이유 마26:39  박신 목사  2012-08-04 2526
7161 마태복음 정작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 마26:39  박신 목사  2012-08-03 2111
7160 마태복음 다시 일곱 귀신이 들지 않으려면? 마12:43-45  박신 목사  2012-08-03 3337
7159 마태복음 평생에 한 번은 꼭 들어야 할 말 마12:38-42  박신 목사  2012-08-03 2579
7158 마태복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는 뜻은? 마6:33  박신 목사  2012-08-03 5485
7157 마태복음 성령을 훼방하는 죄란? 마12:31-37  박신 목사  2012-08-03 2240
7156 마태복음 십 점 만점에 십 점인가? 마5:3  박신 목사  2012-08-03 2009
7155 마태복음 하나님 아들이 왜 인자라고 강조하셨나요? 마26:64  박신 목사  2012-08-03 2004
7154 마태복음 새벽기도마다 받는 마귀의 시험 마4:5-6  박신 목사  2012-08-03 2467
7153 신명기 격려와 용기 신7:1-16  최장환 목사  2012-07-31 5739
7152 민수기 넉넉한 마음 민22:1-20  최장환 목사  2012-07-31 5374
7151 마가복음 사랑이 풍성한 세상 막12:28-34  김필곤 목사  2012-07-30 3042
7150 히브리서 믿음에 뿌리 내린 세상 히11:1-7  김필곤 목사  2012-07-30 3397
7149 누가복음 정의가 숨 쉬는 세상 만들기 눅19:1-10  김필곤 목사  2012-07-30 2851
7148 요한복음 죽음이 정복된 나라 요11:17-27  김필곤 목사  2012-07-30 2987
7147 로마서 죄가 왕 노릇 못하는 나라 롬5:12-21  김필곤 목사  2012-07-30 2809
7146 누가복음 좋은 이웃되기 눅10:25-37  김필곤 목사  2012-07-30 4771
7145 누가복음 적극적인 도전 눅5:17-26  김필곤 목사  2012-07-30 5754
7144 욥기 고난의 임계점 앞에서 욥1:13-22  김필곤 목사  2012-07-30 4346
7143 사사기 열악한 환경 극복 삿4:1-10  김필곤 목사  2012-07-30 5359
7142 출애굽기 대표강점 쓰임받기 출36:1-7  김필곤 목사  2012-07-30 5585
7141 갈라디아 개신교와 로마 카톨릭과의 차이점 갈1:7  한태완 목사  2012-07-29 7513
7140 누가복음 부활, 그 후에 될 일 눅24:13-35  허태수 목사  2012-07-28 2159
7139 고린도후 예수 믿는 사람에게 ‘고난’은 부끄러운 일인가? 고후1:3-7  허태수 목사  2012-07-28 2210
7138 마가복음 백남준 & 예수 막9:33-37  허태수 목사  2012-07-28 2001
7137 고린도후 이제 우리교회가 해야 할 하나님의 일 고후3:12-18  허태수 목사  2012-07-28 2218
7136 마가복음 무엇이 우리를 위함인가? 막15:29-39  허태수 목사  2012-07-28 1888
7135 사도행전 선장과 장로 또는 목사 행27:37-44  허태수 목사  2012-07-28 2290
7134 마가복음 예수님이 왜 고난을 받으셨나? 막3:20-29  허태수 목사  2012-07-28 2739
7133 출애굽기 넓이와 길이’ 그리고 ‘높이’ 출14:21-25  허태수 목사  2012-07-28 2732
» 요한계시 헌 성경책에 새 찬송가를 붙이면서 계2:1-6  허태수 목사  2012-07-28 2092
7131 마태복음 소말리아 해적들을 위한 기독론적 변론 마28:16-20  허태수 목사  2012-07-28 4206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150 세종시 보람1길12 호려울마을2단지 201동 1608호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