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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교회가 해야 할 하나님의 일

고린도후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218 추천 수 0 2012.07.28 2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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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후3:12-18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1.4.3 주일설교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이제 우리교회가 해야 할 하나님의 일
고후 3:12-18

너울이란, 조선시대 부녀들이 바깥출입을 할 때 머리부터 얼굴까지를 가렸던 머리쓰개를 말합니다. 유교통치이념 속에서 삼종지도(三從之道)를 강조하는 내외법(內外法)은 여자들로 하여금 함부로 남자들을 만날 수도 없거니와 친척조차 정해진 촌수 이외에는 만나지 않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래서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너울 등으로 얼굴을 가려 상대편 남자들이 볼 수 없도록 했던 거죠. 우리말에 ‘너울을 벗긴다’는 말은 위장한 것을 벗겨 속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바울은 모세가 자기 얼굴에 너울을 쓴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34:29-35에 나오는 이야기죠. 모세가 두 증거 판을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왔을  때에 그의 얼굴이 빛났고, 사람들은 그에게로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였다고 전합니다. 모세는 사람들 앞에서는 수건을 쓰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그것을 벗었다고 해요. 바울은 이것을 두고, 모세가 자기 얼굴의 광채가 사라져 가는 것을 이스라엘 자손이 보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것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본래 출애굽기에서는 모세가 나쁜 의도로 그렇게 했다는 의미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도 모세 자신을 비난하려는 의도보다는, 유대사람들의 어떤 맹점을 지적하려고 하는 의도로 이런 해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바로 다음 구절에서 잘 나타납니다.

“사실 그들의 생각은 완고해져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그들은 옛 언약의 책을 읽을 때에, 그들의 마음에서 바로 그 너울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14절).

“옛 언약의 책”은 율법서(토라)를 의미하죠. 그것을 “옛 언약”, 즉 “옛 계약”이라고 하는 데서 이미 “새 계약”을 전제하고 있지요. 이것은 유대인들이 율법서의 참 뜻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그들의 마음에 율법주의라는 너울을 덮어 쓰고 있는 것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본래 율법은 사람들을 사랑하게 하고 자유하게 하려는 것이었지만, 율법주의라는 너울은 사람들을 위선과 정죄에 빠지게 하여 사람들을 법 문구와 형식의 노예들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진실을 보지 못하게 가리고 허위의식과 거짓된 권위를 세워서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그들을 노예로 만드는 것을, 바울은 “너울”이라는 은유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는 라 보에티의 “스스로 노예이기를 원하다”라는 글이 나옵니다. 보에티는 자유는 모든 야생동물의 본성이라고 하면서 하물며 가장 자유로운 존재인 인간이 자유보다 굴종을 원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동물들은 자유를 빼앗기면 이내 죽어버린다. 또 큰 동물과 작은 동물은 사람이 잡으려고 하면 부리, 발톱, 뿔 같은 온갖 무기로 저항하며, 그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자유를 소중히 하고 있는지 보여 준다. 그러다가 잡히면, 자신들이 얼마나 큰 불행을 느끼고 있는지를 생생히 표현하고, 그 뒤에도 잃어버린 자유를 계속 탄식하면서, 자신들의 노예상태에 대해 절대로 만족하는 법이 없다.”

그렇죠? 동물들은 정말 야생의 상태에서 가장 아름답습니다. 양계장의 닭이나 돼지우리의 돼지를 보면 불쌍한 생각이 들지만, 하늘로 비상하는 청둥오리 떼, 산 속에서 우연히 만난 다람쥐나 산토끼 같은 것을 볼 때 신기하고 아름답지 않습니까?

저는 어릴 때 냇가에서 피라미와 꺾지, 버들치며 쉬리, 자라며 뱀장어, 메기며 빠가사리 등등 수없는 물고기를 잡으며 자랐습니다. 어쩌다 그것들을 산채 넓은 대야에 넣어두면 금 새 빌빌 거립니다. 넓고 시원한 곳을 헤엄치던 놈들이라 작은 그릇 안에서 그들은 생기를 잃고 마침내 죽습니다. 어떤 물고기는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팔딱 거리다가 금새 죽는 고기도 있습니다.  어렸을 때는 성질한 번 더럽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본성이 자유로운 것들이어서 그렇습니다. 자유로운 존재일수록 구속을 견디지 못합니다. 어항 속의 금붕어가 예뻐서 보다가도 그것들이 갇혀 있고 주는 산소와 주는 먹이로 살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답답해지지 않습니까? 그러나 냇물을 거슬러 힘차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피라미들을 보면 힘이 생기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야생 속에서 자유롭게 사는 동물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에게 이런 기쁨을 줍니다. 그것은 자유 때문입니다. 인간은 본래 자유로운 존재이고 자유를 갈망하기 때문에 자유를 누리는 자연, 동물을 보면 아름답고 마음이 기뻐지는 것입니다.

보에티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보다 저급한 동물조차 마지못해 하면서 가까스로 길들여지고 있는데, 원래 자유롭게 살기 위해 태어난 인간이 그 본성을 완전히 바꾸어, 자유에 대한 추억도 그것을 되찾고자 하는 욕구도 다 잃어버렸다는 건 얼마나 괴이한 얘기인가!”

그러면서 실례로 전제군주들이 백성들을 어떻게 길들이는가를 보여줍니다.

“아시리아의 역대 왕과 그 뒤 메디아의 왕들은, 민중이 자신들을 이상하고 거대한 인물로 상상하고 영원히 그 망상에서 깨어나지 않도록, 가능한 한 민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볼 수 없는 것을 과장되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아시리아 왕정 하의 민중은 그 비밀 덕택에 노예제도에 길들여졌고, 군주를 아는 자가 적으면 적을수록 스스로 노예가 되어갔던 것이다. 또 때로는 원래 왕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채,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왕의 존재를 믿고 그것을 두려워했다. 이집트의 초기 왕들은, 민중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는 반드시, 나뭇가지를 들고, 또는 머리에 불을 얹고 가면을 쓰고 나가서, 민중에게 외경심을 불어넣으려 했다.”

이러한 속임수는 참 우습기도 하고 허술해 보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허술한 함정에도 민중들은 걸려드는 법입니다. 전제 군주들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복종과 노예적인 봉사뿐만 아니라, 언제나 자신을 신으로 숭배하도록 민중을 길들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모세가 얼굴에 너울을 쓴 것을 비판하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위험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예언자요 지도자라 할지라도, 그 얼굴에 너울을 씌워서 뭔가를 은폐하고, 그리하여 백성들에게 거짓 권위를 세우고, 그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그들을 노예화한다면, 그 너울은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훌륭한 율법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읽는 사람의 마음에 너울이 덮여서, 그것이 사람들을 억압하고 노예로 만드는 도구로 변질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먼저 그 마음의 너울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너울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만 비로소 제거될 수 있다고 합니다(14절).

“오늘날까지도, 그들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그들의 마음에 너울이 덮여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주께로 돌이키면, 그 너울은 벗겨집니다.’”(15-16절)

여기서 14절 말씀이 한 번 더 반복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도’를 강조한 것은 모세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즉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라는 의미겠죠? 아무리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어왔어도, 그 너울이 벗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소용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해오고, 전통적으로 해오고, 습관적으로 해온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보에티는 사람들이 노예가 되는 원인에 대해서 몇 가지를 듭니다.

첫째는 습관입니다.

아무리 혈통이 뛰어난 말이라 해도 처음에는 재갈을 물어뜯지만 나중에는 그것을 가지고 놀게 되고, 처음에는 멍에를 지는 것을 거부하며 소란을 피우지만, 마지막에는 사뭇 자랑스러운 듯이 마구를 달고 유유히 걸어가게 되는, 그것이 습관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은 항상 국왕의 신민으로서 그에게 복종해 왔고, 자신들의 조상도 그랬기 때문에, 자신들은 당연히 지금의 노예상태에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에게 폭압을 가하는 군주의 권력을, 그것이 긴 역사를 가졌다는 이유로 억지로 정당한 것으로 믿으려 합니다.

유대사람들은 오랫동안 해오던 습관대로 하는 것만 생각했지 그것을 새롭게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이 주께로 돌이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우리를 덮고 있고 너울, 고정관념, 나쁜 습관은 우리가 주께로 돌아서는 행동이 없이는 벗겨지지 않고 고쳐지지 않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이미 고정 관념이 지배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성경을 많이 읽지 않아서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잃고 희망을 저버린 것입니까? 오히려 그들은 누구보다도 성경을 많이 읽습니다. 하지만 이미 고정관념과 교육받은 것이 너울로 덮여 있어서 성경의 의미를 곡해하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서 결국은 자기들의 아집과 독선을 뒷받침하는 데 써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께로 돌아서지 않는 한, 성령의 도우심으로 새롭게 깨닫지 않는 한 그 너울은 걷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의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남의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자신을 돌아보아야겠지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우리 마음을 덮고 있는 너울은 없는지, 나도 모르게 습관이 되어서 나를 얽어매고 있는 것은 없는지, 나도 모르게 중독이 되어 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 성경과 상관없는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술 중독도 무섭고 담배 중독도 무섭지만, 더 무서운 것은 이렇게 습관과 인습을 따라서 내가 오랫동안 해 온 경험을 따라서 고정 관념을 갖고서 마음에 너울을 덮고서 성경을 보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입으로 읽고 마음으로는 이미 정해진 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로 돌아서지 않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않고는 이 너울이 걷히지 않습니다.

보에티가 말하는 노예가 되는 둘째 원인은 인간 세상의 욕망을 장려하는 일입니다.  

그는 키루스가 리디아인의 수도 리디아를 점령한 일을 예로 듭니다. 그는 그 아름다운 도시를 파괴하고 싶지 않았고 오랫동안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즉, 그 도시에 술집과 유곽, 극장 같은 유흥시설을 만들고, 주민들에게 그것을 이용하라는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이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어서, 그 뒤 그는 리디아인과 전쟁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 가엾은 민족은 거기서 다양한 오락을 만들어내어 그 즐거움에 빠져들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인은 리디아인의 이름에서 따온 ‘ludi’라는 말을 ‘소일’(消日)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답니다. 작은 새가 그물에 걸리는 것보다, 물고기가 낚시 바늘에 걸리는 것보다, 가느다란 깃털로 입술에 살짝 기름을 발라주기만(가려운 곳을 살짝 긁어주기만) 해도 일반민중이 이내 노예로 전락하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목사로써 이 기간이 되면 늘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뭣 때문에 종교 전통을 습관처럼 지키는지, 늘 앵무새처럼 같은 이야기를 망가진 녹음기 틀 듯’해야 하는지, 그게 자꾸 가슴을 후벼 팝니다. 그래서 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이 오늘의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교회는 그것을 기리면서 어떤 것들을 변화하는 동력으로 삼아야 하나?’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제 목회는 바울이 말하는 그 너울, 교회 전반에 짙게 깔려 있고, 다수의 교회 지도자들이 뒤집어쓰고 있는 그 허위의 너울을 벗기는 일이라고해도 지나치지는 않습니다. 제 설교 자체가 이미 읽는 것에서부터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요즘은 아주 적극적으로 ‘성서 새로 보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아직 공개를 하지 않고 있으나, 월요일에 하는 신우회 모임에서 펼쳐내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홈 페이지 [월요 예배]라는 곳에 매 주 원고가 실립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제게 이런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 또렷하게 마음에서 자리 잡고 떠나지 않는 생각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좀 더 적극적으로 교회와 교우들의 너울을 벗기는 삶을 살라는 명령입니다. 그동안 사실 저는 우리교회 밖의 이들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만 있었지 달리 어떻게 해보려는 마음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적극적으로 울타리를 생각지 말고 교우들에게 덮어 씌워진 너울을 걷어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든다는 것입니다. 심방 중에 몇몇 분들에게는 미리 말씀을 드린 것이지만, 이제는 내 교회 남의 교회 따지지 말고 여러분도 적극적으로 너울을 걷어주는 일에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게 이번 사순절에 우리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우리가 지킬 바른 절기라고 여겨집니다.    

이것은 저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울도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 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께서 하시는 일입니다”(18절).

바울도 우리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비전을 제시하고 있지요? 모두가 마음을 덮고 있는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고 더 큰 영광에 이르는 비전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이신 주,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 교회가 할 일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날의 교회는 참으로 많은 너울을 교우들에게 씌우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를 만들어 내는 곳이 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이 비난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자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덮어 쓰고 있는 너울도 걷어 줍시다. 적극적으로 그렇게 합시다. 이게 이 시대의 선교입니다. 사순절은 너울을 벗고 자유로 나아가는 문입니다. 너울을 벗어야 자유 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을 이제 우리가 적극적으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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