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이사야의 영적 상상력

이사야 정용섭 목사............... 조회 수 2595 추천 수 0 2012.10.08 14:25:08
.........
성경본문 : 사35:5-10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2012.9.9 주일 http://dabia.net/xe/610305 

jys.jpg 정용섭 목사

 

이사야의 영적 상상력

이사야 35:5-10, 창조절 둘째 주일, 2012년 9월9일

 

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8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9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10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오늘의 제1 독서인 사 35:5-10절을 읽으면서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또는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제 각각일 겁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말씀이 전혀 가슴에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고 말입니다. 그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사야가 뭔가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성경을 골고루 아는 분들은 이와 비슷한 내용을 신약성경에서도 읽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을 겁니다.

 

사 35:5절은 마 11:5절과 그 병행구인 눅 7:22절에서 그대로 인용되었습니다. 사 35:5절은 이렇습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마 11:5절은 이렇습니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그 대목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초기 기독교의 인식을 이해하는데 중요합니다. 감옥에 갇힌 세례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3) 이 질문은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가 맞는지 대답하라는 요구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바로 이사야 35:5절을 인용한 그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대답은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게 아닙니다. 이사야의 예언을 통한 간접적인 것입니다. 그 대답만으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라는 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습니다. 여기에 얽힌 전반적인 맥락을 알려면 우선 맹인 운운하는 이사야의 이 예언을 정확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묵시문학적 영성

본문에는 여러 유형의 장애가 열거됩니다. 맹인, 못 듣는 사람, 저는 자, 말 못하는 자입니다. 이사야는 이런 분들이 장애를 극복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도대체 그런 날이 언제일까요?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요? 이사야의 이런 예언이 성취되었을까요? 그의 말은 실제적인 게 아니라 단지 종교적 상징에 불과한 것일까요? 여러분들은 그의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어느 정도 감은 잡았을 겁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모든 장애도 해결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일단 옳은 말입니다. 문제는 그런 생각과 믿음이 오늘 우리의 삶을 추동해가는 능력으로 자리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 능력이 없다면 이런 믿음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선 장애문제를 우리가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사는지를 보십시오. 나, 또는 우리 가족에게 장애인이 없으면 그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그런 사태를 외면합니다. 장애가 추상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제가 1980대 초 독일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 경험한 것입니다. 곳곳에 장애인들이 많았습니다. 학생들이 사용하는 식당인 멘자에도 두 팔이 없어서 발로 식사를 하는 장애우들도 거리낌 없이 들어왔습니다. 거리에도 장애인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장애인들을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독일에 특히 장애인이 많아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게 대한 선입견이 커서 그들이 활동하기 어려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지금 장애인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2012 런던 패럴림픽(Paralympics)이 열리고 있습니다. 8월30일부터 9월10일까지입니다. 이번 패럴림픽 개회식에 호킹이 참석했습니다. 그는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1) 사람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답이 정해진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각각 사람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2) 자신의 망가진 발만 보지 말고 하늘의 별을 보라. 우주의 차원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가 없습니다. 이런 세계관으로 세상과 사람을 본다면 무엇을 먼저 다루어야 할지 알게 될 것입니다. 예컨대 남북관계를 우호적으로 바꿔서 절약할 수 있는 10조원 정도를, 또는 4대강 사업에 들었던 22조원을 장애인의 생존을 위한 사업에 투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이건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형제들 중에서 장애가 있는 형제가 있다면 부모는 당연히 그 장애 아이를 우선적으로 생각할 겁니다.

 

장애 문제는 단순히 육체적인 장애만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를 방어할 수 없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그들이 누군지를 여기서 제가 일일이 열거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이사야의 외침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사실만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경쟁력만을 최고의 가치고 여깁니다. 그게 자본주의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이게 인간 본성에 더 어울리는 원리인지 모르겠습니다. 경쟁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공동의 삶을 추구했던 현실사회주의인 공산주의는 실패한 실험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경쟁력은 아주 매력적입니다. 거기서 성취감도 주어지고 돈도 주어집니다. 좋은 대학교를 나와 스펙을 쌓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그러면서도 성격도 원만하고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면 교회에서 최고의 신랑감, 또는 신붓감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으로부터 경쟁력이 전혀 없거나 현격히 떨어지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야 한다는 명령을 듣습니다.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그 나라, 그 통치, 그 세계를 기다릴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에서 강력하게 추구하라는 명령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게 지금처럼 재물보다 하나님을 더 섬기거나 양쪽을 적당하게 겸해서 섬기는 이 사회에서 가능할까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사야는 왜 불가능한 것을 선포한 것일까요? 이 불가능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앞에서 저는 맹인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이 마 11:5와 눅 7:22절에서 인용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 즉 구원자냐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맹인이 보고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리는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일부 장애인을 고치기도 했지만 모든 장애인을 고친 것도 아닙니다. 인류 역사에서도 장애인은 여전히 그 장애를 안고 살아야만 했습니다. 장애가 없는 세상은 이사야의 선포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불가능했던 것처럼 불가능한 일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복음서를 읽어야 합니다. 복음서 기자들이 말하려는 요점은 이 불가능한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질적으로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선포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런 질적으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그런 영적 상상력을 삶의 중심이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맹인이 본다는 말은 전적으로, 질적으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표징입니다. 맹인이 보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질적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복음서 기자들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묵시문학적 상상력 가운데서 그런 꿈을 꿀 수 있었습니다. 그 꿈이 복음서 기자들에게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사야의 예언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하나님의 대로(大路)

이사야 선지자의 이 예언은 그냥 골방에 앉아서 기도하다가 얻은 영적 경험이 아닙니다. 이 예언은 기원전 6세기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바벨론 제국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모든 것은 파괴되었습니다. 맹인이 되었고, 말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광야와 사막과 메마른 땅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고국인 가나안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암담한 현실이었습니다. 모두가 절망할 수밖에 없었을 때 이사야는 그 모든 것이 새롭게 변한다는 사실을 내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그는 맹인이 보며 ... 그리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이라(사 35:6)고 묵시문학적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이사야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서 ‘대로’를 말합니다. 거룩한 길인 이 대로는 다음과 같이 묘사됩니다.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사 35:8) 9절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올라가지 않으며,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다닐 수 있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구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부터 돌아오는 것을 가리킵니다.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라.”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는 것은 곧 맹인의 눈이 밝아지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리는 것과 같습니다. 억눌린 자들, 자기를 방어할 수 없는 자들이 여호와의 도움으로 대로를 활개 치며 다니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의 이런 예언, 이런 꿈, 이런 상상력은 인류 역사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요? 이미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의 역사에서는 실현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말씀은 공허한 것일까요? 공허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라는 표현에 주목하십시오. 이사야는 현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을 포로로 잡아간 바벨론 제국은 막강했습니다. 그리고 매력적이었습니다. 채찍과 당근을 적당하게 사용할 줄 아는 이데올로기이며, 국가체제였습니다. 이사야는 자신들의 힘으로는 그 제국을 벗어날 수 없다는 그 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경험하고 있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도 두려운 상황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지금 세상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걱정과 근심이 하나도 없다고 말입니다. 돈도 적당하게 있고, 건강도 괜찮고, 자식들도 잘 크고, 노후보장도 잘 되어 있다고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운명을 누리며 사는 건 좋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옆으로 돌리면 이사야 시대처럼 맹인, 광야, 사막, 포로와 같은 운명을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고 외칩니다. 속량은 노예를 다시 돈 주고 원상회복 시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 그 일을 하십니다. 그분이 대로를 내셨습니다. 놀라운 영적 상상력입니다.

 

이사야의 영적 상상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우리를 자기연민으로부터 구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업적과 종교적 업적이라는 부담감을, 그 채무를 변제해주셨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그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신가요? 또는 믿기 힘들다는 생각도 듭니까? 저는 그 대답을 매주일 설교 때마다 말씀드렸습니다. 그래도 믿어지지 않는다면 기독교 신앙을 초보부터 다시 배워야 합니다. 그 사실을 믿기는 하지면 여전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지 않았나요? 노래와 희락과 기쁨과 즐거움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했나요? 그런 분들도 기독교 신앙을 초보부터 다시 배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사야의 영적 상상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삶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맹인이 볼 것이며, 사막에 시내가 흐르는 세상입니다. 속량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거룩한 대로를 노래하면서 걷게 되는 세상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을 얻고 슬픔과 탄식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 새로운 세상이 궁극적으로는 미래의 사건일 뿐만 아니라 은폐의 방식으로는 지금 여기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속량 받은 사람들에게!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7402 마태복음 카터 대통령의 별난 식사기도 마6:10  박신 목사  2012-10-13 2897
7401 마태복음 천사들을 싫컷 부려 먹어라 마6:10  박신 목사  2012-10-13 2073
7400 마태복음 왕의 자리에서 내려 오시오 마6:10  박신 목사  2012-10-13 1975
7399 마태복음 정신병원에서 왕노릇하는 신자 마6:10  박신 목사  2012-10-13 2536
7398 마태복음 자동응답기를 달아 놓으신 하나님 마6:9  박신 목사  2012-10-13 2076
7397 요한복음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 요1:43-45  강요셉 목사  2012-10-11 2600
7396 마태복음 비어있는 집의 우환 마12:43-45  강요셉 목사  2012-10-11 2474
7395 로마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면 롬12:1-2  강요셉 목사  2012-10-11 2881
7394 요나 삶의 내리막길과 오르막길 욘1:1-17  강요셉 목사  2012-10-11 2745
7393 갈라디아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 갈6:7-9  강요셉 목사  2012-10-11 2199
7392 이사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기도 사58:3-10  한태완 목사  2012-10-11 3876
7391 요한복음 안식과 주일 요5:10-18  하용조 목사  2012-10-10 2233
7390 이사야 장애물을 극복하자 사14:12-32  최장환 목사  2012-10-10 5356
7389 예레미야 들어야 할 알람소리 렘11:1-23  최장환 목사  2012-10-10 5218
7388 창세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심 창1:1  한태완 목사  2012-10-08 2191
7387 베드로전 나그네의 삶 벧전2:11  한태완 목사  2012-10-08 3332
7386 마가복음 제자 공동체의 위기 막9:42-50  정용섭 목사  2012-10-08 2099
7385 예레미야 예레미야의 탄원기도 렘11:18-23  정용섭 목사  2012-10-08 2348
7384 마가복음 사탄의 유혹 막8:27-38  정용섭 목사  2012-10-08 2509
» 이사야 이사야의 영적 상상력 사35:5-10  정용섭 목사  2012-10-08 2595
7382 야고보서 세속주의와 싸우라! 약1:19-27  정용섭 목사  2012-10-08 2517
7381 창세기 꿈과 희망 창12:1-4  조용기 목사  2012-10-08 2377
7380 갈라디아 믿음의 단계 갈5:16-26  조용기 목사  2012-10-08 2327
7379 누가복음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아야 눅18:1-8  조용기 목사  2012-10-08 2277
7378 히브리서 믿음이란? 히11:1  조용기 목사  2012-10-08 2671
7377 시편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오나? 시121:1-2  조용기 목사  2012-10-08 2574
7376 요한계시 4종류의 말을 탄 자들 [1] 계6:1-8  강종수 목사  2012-10-07 2346
7375 호세아 하나님 알고 배우기를 힘쓰라 호6:3  한태완 목사  2012-10-05 2708
7374 누가복음 가나안 눅17:20-21  황성현 목사  2012-10-04 4687
7373 마태복음 사랑과 용서 마6:14-15  한태완 목사  2012-10-04 2914
7372 아가 하나님의 처방전 아8:1-14  최장환 목사  2012-10-02 5128
7371 잠언 균형잡힌 신앙생활 잠15:1-17  최장환 목사  2012-10-02 5741
7370 시편 행복은 마음에 달려있다. 시51:10  한태완 목사  2012-10-01 3321
7369 요한이서 이단 요이1:9  황성현 목사  2012-10-01 4775
7368 요한계시 흰 말 탄 자 계6:1-2  강종수 목사  2012-09-30 1969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