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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출26:1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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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 참고 : | 2012.10.10 새벽예배-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출애굽기(75) 어깨동무하며 갑시다(성막 널판) (출애굽기 26:15-30)
본문에는 성막 널판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성막 널판 하나의 높이는 10규빗(4미터 50센티)이고, 하나의 널판 넓이는 한 규빗 반(67.5센티)입니다. 널판은 성소의 남편에 20개(30규빗), 북편에 20개(30규빗), 그리고 서편에 6개(9규빗)가 연해 있음으로 외벽 뼈대를 이룹니다. 또한 서편 모퉁이 편에 2개의 작은 모퉁이 널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편의 총 널판 수는 8개가 되고 입구 쪽 동편에는 널판이 없기에 전체 성막 널판 수는 48개가 됩니다.
성막 널판은 성소 전체의 틀을 이루면서 동시에 광야의 비바람과 모래바람으로부터 성소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기에 널판 하나하나가 다 중요합니다. 성막 널판은 한 명 한 명의 교인과 같아서 ‘지체’란 표현을 씁니다. 예수님이 구원받은 성도에게 베푸신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는 몸 된 교회의 지체가 되는 축복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안에서 성도들이 함께 지어져 간다고 고백합니다(엡 2:21-22).
바울이 위대한 종이었지만 혼자 일하지 않고 함께 일했기에 큰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신약 성경에는 바울을 감동시킨 인물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의 따뜻한 사랑을 항상 잊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 빌립보 교인은 바울의 옥중수발을 위해 에바브로디도 집사를 파송했고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인들의 헌금을 들고 자원해 그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바울만큼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아리스다고도 마찬가지입니다(골 4:10). 그는 설교했다는 기록도 없고 기도나 전도를 많이 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상하게도 그는 바울이 힘들 때마다 항상 곁에 있었습니다. 바울이 너무 힘들어 주저앉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고난의 현장에 같이 있어주었던 아리스다고와 같은 사람들로 인하여 바울은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런 조력자들이 없었다면 바울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처럼 드러나지 않은 은밀한 헌신자도 다 소중한 존재입니다.
< 널판 받침과 널판 띠 >
성막 널판은 각 널판 하나에 은 받침 두 개씩 두고 그 위에 세웠기에 총 48개의 성막 널판과 96개의 은 받침이 있었습니다. 이 은 받침이 든든하게 성막 널판을 받쳐주기에 성막은 견고하게 지어질 수 있었습니다. 성막 널판을 위해서 48개의 널판과 96개의 은 받침을 동원했어도 그것만 가지고는 사막의 강한 바람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서쪽, 남쪽, 북쪽에 있는 각각의 널판마다 다섯 개씩의 띠로 널판 전체를 든든하게 묶었습니다(26-28절).
그 다섯 개의 띠 중에 4개의 띠는 밖에서 볼 수 있고, 한 개는 중간띠는 널판 사이에 넣어서 연결시켰기에 밖에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중간띠는 성도들의 가슴과 가슴을 이어주는 ‘예수님의 사랑의 띠’라고 할 수 있고, 보이는 4개의 띠는 어깨와 어깨를 함께 하도록 만드는 ‘성도들의 사랑의 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슴이 관통된 상태에서 어깨와 어깨를 함께 한 어깨동무 친구가 되어 서로를 살려주는 존재가 될 때 그 공동체는 가장 강력한 비전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어깨동무 친구의 정신’을 가지고 남을 살려주고 높여주고 축복해주십시오. 행복은 더불어 누려야 참 행복입니다. 지금 결혼 적령기에 있는 사람의 35% 이상이 독신입니다. 그들 중에 쾌활하게 사는 사람도 내심으로는 고독감으로 인한 깊은 불행감이 있습니다. 그처럼 고독감에 시달리면서도 왜 결혼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행복을 남에게 주고 싶지 않고 누구에게도 봉사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중매할 때 보면 남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 “내가 저 사람으로 어떻게 행복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만 열심히 계산합니다. 자기만 행복하고 자기만 즐기고 살겠다는 사고방식은 결국 자신을 무서운 함정에 빠뜨려 영영 헤어 나올 수 없는 불행으로 몰게 됩니다. 반면에 이기적인 계산 없이 “내가 누구를 행복하게 해줄까?”를 생각하면 행복과 축복은 결코 그를 비켜가지 않을 것입니다.
행복은 이기적으로는 얻지 못합니다. 남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나도 행복해지고 남을 축복해주어야 나도 축복 받습니다. 만약 내가 축복한 사람이 축복 받을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그 빌어준 복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결국 남을 축복해 주는 장사는 한 번도 밑지는 일이 없는 최고의 장사입니다. 항상 남을 축복해주는 훌륭한 영적 장사꾼들이 되어 더욱 큰 축복을 예비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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