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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시10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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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 참고 : | 2012.10.15 주일 예배-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감사해야 할 5대 주제 (시편 107편 1-9절)
< 개척자의 축복 >
1620년 11월 21일, 102명의 순례자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66일 만에 신대륙의 플리머쓰(Plymouth)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곧 전염병으로 그해 겨울에 거의 절반인 46명이 죽었습니다. 이듬해 3월 어느 날, 근처의 한 선장으로부터 영어를 배운 사모셋(Samoset)이란 인디언이 순례자의 처소에 나타나 하룻밤을 지낸 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스콴토(Squanto)란 인디언을 데려왔습니다. 스콴토는 식물을 심고, 낚시하고, 사냥하고, 이웃 종족과 거래하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그 이웃 종족의 추장은 마사소이트(Massasoit)였습니다.
1621년 여름, 순례자들이 북쪽 해안의 인디언들과 거래를 시작할 때 스콴토는 그들의 안내자 겸 통역사 역할을 했습니다. 그 거래는 잘 이뤄졌고 그해 가을의 수확도 신대륙에서의 둘째 겨울을 나는데 충분한 옥수수를 수확했습니다. 순례자들은 스콴토와 이웃 인디언 종족에게 감사했고 무엇보다 하나님께 감사해서 그해 10월에 리더인 브래드포드(Bradford)가 감사절을 지킬 것을 선포했습니다.
그날 마사소이트 추장이 초대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고도 없이 하루 일찍 90명의 인디언들과 함께 왔습니다. 그 많은 숫자를 보고 순례자들은 그들을 대접하다가 식량이 줄어서 겨울나기가 힘들어지면 어떡하나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그는 부하들과 오면서 5마리의 사슴 요리와 12마리의 칠면조 요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감사절 준비를 도우면서 옥수수 빵 제조법과 여러 요리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때 인디언들이 가르쳐준 특별한 먹거리가 항아리에 옥수수 낱알을 구워 펑 터뜨려서 만든 팝콘이었습니다.
그때 순례자들도 최고의 요리로 파티를 준비했고 즐겁게 파티하면서 그들은 총과 화살을 쏘는 경쟁도 했습니다. 그때 인디언들은 몇몇 순례자 젊은이들이 보여준 달리기와 레슬링 시합을 특별히 좋아했습니다. 파티가 즐겁게 진행되자 마사소이트 일행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아서 파티가 3일 동안 더 연장되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그곳에 배 한 척이 새로 도착해 35명이 새로운 이주자가 생겼습니다. 새 식구가 더해져서 잠시 기쁨이 넘쳤지만 후속 이민자들은 음식, 옷, 도구, 침상 등을 하나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몇몇 리더들은 냉철하게 겨울을 나려면 모든 배급을 절반으로 줄이자는 가슴 아픈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해 겨울 그들은 무서운 기근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다 살려면 극도로 배급을 줄여야 했기에 나중에는 하루에 옥수수 낱알 5개만 배급하며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결국 한 명도 기근으로 죽지 않고 마침내 봄이 왔습니다. 사람이 늘어서 전년보다 더 경작지를 확대했는데 얼마 후 무서운 가뭄이 닥쳤습니다. 12주 동안 계속된 가뭄으로 작물은 말라갔습니다. 마침내 공적인 기도일이 선포되고 그날 그들은 모든 일손을 멈추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 당일 아침에도 하늘은 여전히 맑았습니다. 그날 8시간을 계속 기도하는데 해산 직전에 사방에서 먹구름이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부터 감미로운 비가 13일 간 계속 내리면서 말라가던 농작물들이 빠르게 소생했습니다.
그해 풍성한 수확을 했고 둘째 추수감사절 파티가 열렸습니다. 마사소이트가 다시 초대되었습니다. 그때도 그는 120명의 용사들을 데리고 파티에 참석하면서 역시 사슴고기와 칠면조고기를 가지고 와서 기쁜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러면서 순례자들의 삶은 점차 안정과 번성을 향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의 번성 상황은 임마누엘 앨담(Emmanuel Altham)이 동생에게 쓴 편지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동생! 이곳 경작지는 환상적인 상태네. 사람들도 다 건강하네. 이곳의 4-5가정은 풍족하게 살고 나머지 가정들도 점차 좋아지고 있네. 이곳의 고기잡이는 상상을 초월해서 한 시간 정도면 대구 100마리도 잡을 수 있네. 많은 좋은 음식들과 좋은 것들이 넘쳐서 자네와 같이 나누고 싶네. 이곳 포도는 최상품이고 견과류와 가축들도 많네. 정말 믿기 힘들 정도로 이곳은 하나님의 무수한 축복이 넘치는 곳이네.”
그 묘사에 의하면 당시 신대륙은 에덴동산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 풍성한 소식을 듣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이민 가고 싶었겠습니까? 어떻게 그런 축복이 있게 되었습니까? 매일 옥수수 낱알 5개를 배급받아 살았던 초기 개척자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척자의 축복은 어느 축복보다도 큽니다. 그래서 조만간 고생한 것 이상으로 넘치게 보상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척자의 삶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 감사를 잊지 마십시오 >
현대인의 가장 안타까운 모습이 무엇입니까? 개척자의 축복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4천 년 동안 칭송받습니까? 그의 개척정신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일행과 롯의 일행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롯은 현재가 좋은 소돔 땅을 선택해서 망했지만 아브라함은 척박한 헤브론 땅을 선택해서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당대에 좋은 선택보다 미래에 좋은 선택을 한 것입니다.
사람 마음속에서는 수시로 아브라함의 길과 롯의 길이 싸웁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길을 따르십시오. 현재의 아름다움만 보고 선택하면 실패합니다. 아름다운 버섯에는 대개 독소가 있고 오히려 못생긴 버섯이 유익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만 바라보고 내일을 포기하지 말고 내일을 위해 오늘의 즐거움을 희생하십시오. 롯은 현재의 좋은 목초지를 선택했다가 망했지만 아브라함은 내일의 힘든 개척지를 선택해서 축복 받았습니다.
현재 모습만 보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요새 세상을 보면 실망스런 부분도 많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물론 허무한 낙관주의도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힘든 현실 중에도 찬란한 희망의 끈은 죽도록 놓지 마십시오. 모든 것이 무조건 다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란 말이 아니라 희망을 가지고 현재의 삶과 일에 의미를 두란 말입니다. 희망은 깃털처럼 포근한 것입니다. 그래서 희망만 있으면 그 인생은 결코 추락해 죽지 않습니다.
희망이 있으면 시각도 긍정적이 됩니다. 같은 장미를 보고 어떤 이는 꽃을 보고 감탄하지만 어떤 이는 가시를 보고 불평합니다. 같은 아침 이슬을 마시면서 벌은 꿀을 만들지만 뱀은 독을 만듭니다. 같은 소아마비에 걸렸어도 어떤 사람은 거지가 되지만 루즈벨트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똑같은 설교를 듣고 어떤 이는 ‘상처’를 받지만 어떤 이는 ‘상처 치유’를 받습니다. 결국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문제로 보는 절망적인 마음이 문제입니다.
조지 워싱톤은 많은 유명인들이 그를 배척했고 벨리포지에서 그의 군인들이 양식과 장비 없이 맨발로 눈 위를 걸었지만 결국 독립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링컨은 대통령 취임 연설을 하러 워싱턴에 갈 때 기차표를 사려고 돈을 꿔야 했습니다. 시저와 나폴레옹은 인생 초기부터 간질로 고생했지만 세계를 호령했습니다. 그처럼 현재의 모습에 좌절하지 말고 내일의 희망을 가지고 나가십시오.
20년 전에 제가 처음으로 기독교 선교연맹(The 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 약칭 The C&MA) 교회를 한국에서 개척할 때 비빌 언덕이 없었습니다. 물질도 없었고 사람도 없었습니다. 너무 외로웠습니다. 당시 시한부 종말론으로 이단에 대한 경계가 심했기에 이름이 생소한 저희 교단을 알리는 일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 후 교단 이적의 유혹을 무수히 받았습니다. 그래도 개척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남다른 축복을 믿었고, 무엇보다 저희 선교연맹이 가진 건전한 선교마인드가 한국 교회에 절실히 필요하다고 믿었기에 외로운 길을 고수했습니다.
그렇게 만 20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제 한국 목회자들의 절반쯤은 ‘기독교 선교연맹(C&MA)’ 교단이 어떤 교단인지 압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도 평신도들은 저희 교단을 잘 모릅니다. 그래도 20년 전보다는 주로 오피니언 그룹에서 좋은 교단으로 인식하고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저의 꿈은 한국에 나눔을 최대 가치로 삼아 선교하는 중형교회 5개 정도가 세워질 수 있는 길을 닦는 것입니다. 어차피 저는 선봉에서 개척하는 입장이기에 교회성장이란 측면은 일정 부분 희생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희생의 피를 밟고 다음 세대에는 중흥의 꽃을 피우고 아름답게 성장하는 중형 교회들이 반드시 생길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말할 것입니다. “훌륭한 선교 교단입니다. 나눌 줄 아는 그 비전에 저희도 동참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나눔의 비전을 가지고 저희 교단으로 몰려올 때가 올 것입니다. 그리고 중흥을 이끌 인물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중흥을 이루면 나중에 그들은 말할 것입니다. “한국에서 분당 샛별교회가 초창기에 힘들게 씨를 뿌렸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말 한 마디 듣는 보람을 꿈꾸며 계속 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달려가십시오.
그런 은혜와 중흥의 때를 준비하면서 가져야 할 무엇보다 중요한 성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성품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아름다운 덕목은 감사입니다. 이제 감사를 체질화시키십시오.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은 감사할 일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한 최고로 축복을 예비하는 길도 감사입니다.
< 감사해야 할 5대 주제 >
감사와 관련된 신비한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하면 감사거리가 더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 감사거리가 하나씩 벽돌처럼 쌓이면서 비전과 행복 건축이 이뤄집니다. 그러므로 감사거리를 찾아 열심히 감사하십시오. 무엇에 대해 감사해야 할까요?
1. 하나님의 선하심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 구절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식 때 낭송하던 송영구입니다. 그때 사회자가 “여호와께 감사하라!”라고 읽으면 회중은 후반부 이하를 함께 읽었습니다. 특히 이 구절은 제일의 감사조건이 바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감사’임을 가르쳐줍니다.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빛은 하나님의 선하심의 빛입니다. 그 빛은 세상의 어떤 빛보다 부드럽고 포근하고 밝습니다. 그 빛이 있으면 세상은 밝아 보이고 그 빛이 없으면 세상도 어둡게 보입니다. 그 빛이 뚜렷하면 삶에 생기와 신바람이 넘치게 됩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항상 동행하시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항상 선하다고 믿으면 그 삶에 절망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믿음은 캄캄한 밤 인생을 환한 대낮 인생으로 만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면 만사형통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때로 고통의 가시밭길로 인도하십니다. 성도란 고난과 실패가 없는 초인이 아니라 고난과 실패 중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사람입니다. 성도도 병에 걸릴 수 있고, 아무리 기도해도 병이 낫지 않을 수도 있고, 때로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예기치 못한 슬픔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난 중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감사하는 믿음이 참된 믿음입니다.
2. 하나님의 구원하심
본문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이 시는 바벨론 포로 귀환이란 가슴 벅찬 역사적 체험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찬양한 시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이 구절에 나오는 ‘대적’은 바벨론을 뜻하지만 크게 보면 역경과 고통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그 고통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본문 4-5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이 묘사는 포로 귀환 후의 혼란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지만 많은 현대인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기도 합니다. 현대인의 삶을 특징을 몇 가지 단어로 표현하라면 방황, 주림, 목마름, 피곤 등으로 묘사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 방황과 목마름과 피곤이 있습니까? 대개 보면 돈 때문입니다. 돈이 있으면 편안은 얻습니다. 그러나 돈에 집착하면 평안을 잃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목적으로 살면 영혼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생활 속의 구원도 허락하실 것입니다. 분명한 구원의 확신은 분명한 축복의 확신으로 발전합니다. 즉 구원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면 신기하게 생활 속의 구원도 따라옵니다.
3. 하나님의 인도하심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합니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어렵고 힘들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의인의 최대 자원이기도 하지만 고통 받는 성도의 최대 자원이기도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가장 바른 길로 인도해주시고 마침내 안식처로 이끌어주십니다(7절).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복은 어떤 복보다 큰 복입니다.
시장에서 어린애가 엄마를 잃으면 “엄마!”하고 웁니다. 그러면 곧 엄마가 와서 말합니다. “왜 울어! 바보같이!” 그 엄마의 말은 이 시간에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왜 울어! 바보같이!” 이제 하나님의 선한 인도를 믿고 낙심하거나 울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감정으로 받지 말고 감사하는 성품으로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감정으로 받으면 쓰러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계속 고난이 펼쳐지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성품으로 받으면 하나님이 그를 최선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신비하심
본문 8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인생은 신비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수시로 신비한 기적을 통해 성도의 삶을 이끌어주십니다. 그 신비에 대해 자세히 다 알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신비한 은혜가 있음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자연에는 무수한 하나님의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욱 신비한 일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처럼 부족한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쓰임을 받습니까? 아무리 연구해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쓰시니 얼마나 신비한 일입니까? 자신의 부족함에 한탄하지 마십시오. 자신이 부족한 줄 알면 오히려 하나님이 도우시고 자기가 제일인 줄 알면 오히려 하나님이 떠나십니다.
어느 날, 한 목사님이 신학교를 졸업 후 시골 교회로 부임했습니다. 그곳에서 낡은 양복 한 벌로 4년 동안 크게 고생했습니다. 얼마나 초라하게 보였는지 한번은 더운 여름날 심방을 갔다 오는데 참외장사를 하는 한 집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시원한 그늘에서 참외 좀 잡수시고 가세요.” 그러면서 참외를 내놓았는데 보니까 멍든 것과 반쯤 상한 것 등 못 팔 것만 내놓았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자기 처지를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난을 통해 욕심과 교만이 깨져 마침내 감리교 최대 교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커지면서 요새는 한국에서 가장 지탄 받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무서운 현실입니다. 그처럼 낮아지면 하나님이 높여주시지만 높아지면 하나님이 낮추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높아지지 말고 그저 하나님이 신비하게 써주는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그 감사를 받으시고 정말 신비한 은혜를 매일 소리 없이 내려주실 것입니다.
5. 하나님의 채워주심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살면서 만족하며 살려면 먼저 하나님의 은혜로 풍성하게 채움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도 바울처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이 나올 수 있습니다. 가끔 보면 물질은 없어도 믿음은 부요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처럼 세상 것은 조금 부족해도 믿음을 가지고 계속 하나님의 채워주시는 은혜를 받으면 그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은혜가 넘치는 사람은 “어떻게 성공했느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대답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성공보다 은혜가 중요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풍성한 채워주시는 은혜가 없었다면 이제까지 살 수도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깊이 인식하기에 은혜를 아는 사람은 항상 감사의 고백이 넘치게 됩니다. 그처럼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감사하면 하나님의 채워주시는 은혜가 그의 삶에서 결코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1808년 비엔나에서 하이든의 <천지창조>가 연주될 때 그곳에 작곡자 하이든도 참석했습니다. 연주 후 감격한 청중들이 모두 기립해 갈채를 보내자 늙고 병든 하이든이 간신히 일어나 조용히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작품은 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박수를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의자에 앉다가 실수해서 뒤로 넘어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처럼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십시오.
< 범사에 감사하며 사십시오 >
마지막으로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이 삶으로 표현된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가 바로 ‘나눔’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나누는 경지까지 가야 진짜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가끔 보면 많은 것을 가졌지만 잘 쓰지 못하고 죽어간 비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부자라도 누구보다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마치 종자를 까먹는 농부와도 같고 펌프의 마중물을 마시는 어리석은 사람과도 같습니다.
옛날에 펌프로 물을 끌어올릴 때 오래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리 펌프질을 해도 물이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땅속에 물이 있어도 펌프물이 말랐기 때문입니다. 그 땅속의 물을 펌프로 끌어올리려면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필요합니다. 그처럼 심령에 생수가 넘치게 하려면 나눔을 통해 마중물을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나눠야 할 생수까지 마시면 자신 안에서 생수가 솟아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봉사도 잘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나눔을 잘하십시오.
지금 영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참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누구보다 필요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만족하고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가끔 보면 불편한 환경에서 어눌한 설교를 들으면서도 최고로 은혜 받는 교인이 있습니다. 반면에 오케스트라에 맞춰 찬양하고 하늘의 천사처럼 설교해도 은혜 받지 못하는 교인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은혜에 열린 감사하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습니다.
시골에 한 연못이 있었습니다. 연못 동쪽에는 불평 많은 물망초가 살았습니다. 그 물망초는 매일 물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물방개가 스쳐가도 신경질을 냈습니다. 반면에 연못 서쪽에는 감사하는 수련이 살았습니다. 그 수련은 자신이 물에 살면서 항상 청결하게 사는 것을 감사하며 어쩌다 물잠자리가 잠시 들러도 반겨 맞이했습니다. 얼마 후, 물망초가 사는 연못 동쪽에는 찾는 존재가 끊겨 물 파래만 가득 끼면서 물망초도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반면에 서쪽에 사는 수련은 크게 번성했습니다.
이제 불평하는 물망초가 아닌 감사하는 수련처럼 사십시오. 항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지족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은 그 마음에 예수님이 살아계시는 중요한 표시입니다. 17세기의 작가 아이작 왈튼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두 곳의 거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늘의 보좌이고 또 하나는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신비한 축복을 체험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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