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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출27:1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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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 참고 : | 2012.10.18 새벽예배-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출애굽기(80) 좁은 문으로 들어가십시오(동문)
(출 27장 16-19절)
성막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동편에 단 한 개 있습니다. 그래서 동문이라고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동문을 통과하지 않고 울타리를 넘어 성막으로 들어가면 죽임을 당했습니다. 울타리가 율법을 상징한다면 동문은 문이 되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왜 많은 사람들이 좁은 문을 싫어합니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좁은 곳에 갇혀서 불행하게 사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믿는 문은 처음만 좁은 문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넓어집니다. 반면에 세상적인 문은 처음에는 넓은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좁아집니다.
서울 강남의 화려한 술집에서 나이 든 회장들과 같이 다니는 미모의 20대 여인들을 봅니다. 겉모습만 보면 그들은 보통 사람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게 삽니다. 그러나 현재만 화려하고 현재만 넓습니다. 5년 후에 그들의 길은 좁아져 있을 것이고 10년 후에는 그 길이 더욱 좁아져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신실한 성도의 길은 처음만 좁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길이 넓어지다가 나중에는 길이 없어집니다. 특별히 따로 “여기는 길이고, 여기는 들판이다”라고 할 것도 없이 다 길이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장만을 목표로 뛰다 보면 자꾸만 넓은 길을 찾습니다. 그래서 교회성장 세미나는 있는 대로 다 쫓아다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미나를 다닌다고 모든 교회가 다 영락교회나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되겠습니까? 큰 교회가 걸어온 길이 다 똑같이 적용되면 다 큰 교회가 될 텐데 그렇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것을 찾아 그것을 최대한으로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은사가 없는 성도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곰도 뒹구는 재주는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름 없는 들풀조차 이 땅에 그냥 보내지 않는 것처럼 어떤 사람에게 어떤 재능을 주지 않고 그를 이 땅에 보내는 법이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자기에게만 주어진 자기의 재능이 있습니다. 그 재능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빛을 발할 때 그 재능은 은사가 됩니다.
자기 은사는 팽개치고 남의 은사만 쫓아다니면 일의 성취는 없고 계속 은사 집회만 찾아다니는 ‘은사 집회 순례자’가 되거나 계속 세미나만 다니는 ‘세미나 순례자’가 됩니다. 그래서 뜻 있는 목회자는 한국 교회는 ‘교회성장 방법 세미나’가 망쳤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넓은 문보다는 오히려 좁은 문을 통해 더 큰 축복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또한 좁은 문으로 들어갈 때 삶의 의미와 보람도 훨씬 커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 치우치지 마십시오 >
동문은 어떤 모양으로 되어 있을까요? 동문은 나무로나 놋이나 다른 단단한 금속재료로 만들지 않고 네 가지 색상의 실, 즉 청색 실, 자색 실, 홍색 실, 가늘게 꼰 베실(흰색 실)을 엮어서 만들었습니다(16절). 또한 문을 받치고 있는 기둥은 네 개 있었습니다. 이 네 개의 기둥과 네 가지 색상은 흔히 4복음서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마태복음은 자색 실처럼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강조되었습니다. 마가복음은 홍색 실처럼 종으로 오신 예수님이 강조되었습니다. 누가복음은 흰색 실처럼 죄 없는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이 강조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청색 실처럼 생명의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이 강조되었습니다. 결국 동문은 만왕의 왕이요, 겸손한 종이요, 참 인간이요, 참 신이신 예수님을 잘 상징하는 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문이신 예수님을 소개하는데 4복음서를 두셨습니까? 그것은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하시고 고려하셨기 때문입니다. 4복음서가 대상으로 하는 독자는 각각 다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 마가복음은 로마인, 누가복음은 세계인, 요한복음은 과거, 현재, 미래의 전 인류가 대상 독자입니다. 그처럼 대상 독자가 다르기에 각 복음서마다 핵심 내용과 특징이 조금씩 다릅니다.
유대인을 위한 마태복음은 족보가 나오면서 구약이 많이 인용되고 가르침이 많습니다. 로마인을 위한 마가복음은 가르침보다는 실제 사건과 사역에 대한 얘기가 많습니다. 전 세계인 모두를 위한 누가복음은 소외된 계층 사람과 소외된 지역 사람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넘치는 얘기가 많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모든 인류를 위한 요한복음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보편적 이성으로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복음을 조직적으로 재구성했습니다.
동문을 구성하는 4개의 색상과 4개의 기둥은 구원의 길은 하나지만 삶의 길은 다양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런 다양성을 인정할 때 가장 바람직한 사역이 이뤄지고 가장 바람직한 인간관계가 형성될 것입니다. 교회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기도 스타일도 다양하고 봉사 스타일도 다양합니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떤 공동체에 있든지 어떤 사상을 가지든지 극좌나 극우는 지극히 조심하십시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발걸음이 될 때 가나안의 축복이 가까워집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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