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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과 고난의 왕

마태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1987 추천 수 0 2013.04.03 18:3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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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21:1~11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2013.3. 24 주일 참사랑교회 http://charmsarang.onmam.com/ 

섬김과 고난의 왕     마 21:1~11

 

만일 여러분의 인생이 일주일 남았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남은 일주일도 평소와 별 다름 없이 살겠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인생을 제대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지키며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하여 살아가는 성도라면, 언제 주님께서 부르셔도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내 인생이 이제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심정으로 한 번 살아보십시오. 인생 살아가는 모습이 달라질 것입니다.

 

마지막 일주일을 앞두신 주님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의 삶을 일주일 남겨두신 시점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의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하나님이시며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이제 일주일 후에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길, 고난과 죽음의 그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그 일을 위해 오셨고, 오직 그 일을 위해 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한 치의 오차나 소홀함도 없이 오직 그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영원히 멸망당할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비천한 자리에 오셨고, 가난과 슬픔과 고난과 멸시와 천대를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몸을 화목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시기 위해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공생애의 마지막 일주일을 남겨놓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 한 주간은 예루살렘 입성으로 시작되는데,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 날을 종려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이 날 사람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주님을 환영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날의 예루살렘 입성은 주님께서 왕이시며 메시아이심을 공개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종려주일 이후의 한 주간을 고난주간으로 지킵니다. 이 한 주간 주님께서 십자가로 향하는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고난을 당하신 이 한 주간을 대략 살펴보기로 합시다.

 

마지막 한 주간

 

주님께서는 안식일인 토요일에 벳바게에 도착하셔서 안식일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러니까 지금으로 하면 주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월요일에는 성전을 청결하게 하셨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화요일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셨으며,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주님께 무슨 권세로 성전에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으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하는 질문으로 응수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의 비유와 악한 종들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화요일에는 가룟 유다의 반역이 있었습니다. 수요일에 관한 기록은 없습니다.

목요일에는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드셨고, 겟세마네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목요일 밤에 체포되셔서 금요일 새벽까지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금요일에는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토요일에는 무덤에 계셨으며, 주일에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렇게 고난 당하셨던 바로 그 한 주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한 주간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경건하게 보내도록 합시다. 그렇게 보내는 가운데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과 말로 다할 수 없는 크신 은혜를 새롭게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환호하는 무리들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셨습니다. 예루살렘에 거의 도착하셨을 때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어 나귀를 끌어오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1-2)

 

제자들은 나귀를 끌고 와서 그 위에 자기들의 옷을 얹었습니다.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6-7)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에 펴며, 종려나무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8-9)

 

이때는 유월절 절기였기 때문에 전국에서, 그리고 외국에 나가 살고 있던 모든 유대인들까지 다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이는 유대인들이 최대 200백만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모여든 수많은 무리들이 환호하면서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예수님을 왕, 메시아로 환영함

 

그날 무리들이 겉옷을 길에 펴며 예수님을 환영한 것은 예수님을 왕으로 맞이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행동이었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예후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 그의 동료 장군들이 이렇게 했습니다.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가져다가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이르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왕하9:13) 종려나무가지는 승리를 상징하는데, 이것을 들고 흔드는 것도 왕을 영접하는 의식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 이튿날에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12:12-13) 큰 무리가 종려나무가지를 길에 펴거나 흔든 것 역시 예수님을 왕으로 환영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왕으로 환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메시아로 환영한 것이었습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9) 이 말씀 중에서 다윗의 자손은 특별히 메시아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환영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로 환영했던 것입니다. 오랫동안 많은 핍박과 설움을 당해온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가 오셔서 자기들을 구원하실 것을 고대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루살렘에 모인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구약에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아로 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드디어 때가 왔는가?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메시아셨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한사코 숨기려 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셨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 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조용히 산으로 떠나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6:15) 그밖에도 주님께서는 소경을 고치신 후(9:30), 병자들을 고치신 후(12:16),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은 후(16:20) 등 여러 차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경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만은 달랐습니다. 주님께서는 무리들이 환호하며 주님을 영접할 때 기꺼이 받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것을 시기하여 금하라고 했을 때 주님께서는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19:40) 주님께서는 자신이 왕이시며 메시아이심을 공공연하게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이시며 왕이신 주님

 

주님께서는 그 동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심을 숨기셨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이렇게 공공연하게 자신을 나타내셨을까요? 이제 마지막 일주일이나마 제대로 된 대접을 받으시고자 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십자가에 죽으시기 직전에, 자신이 누구신지를 사람들에게 분명히 나타내신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분은 비천하고 가난하게 사셨으며, 미움과 천대와 적대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히 한 선량한 사람이 억울하게 고난당하고 죽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 왕이신 그분, 아무 죄도 없으신 주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모든 고난을 당하시며, 이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십자가를 바로 앞에 두신 시점에서 주님께서는 이 사실을 분명히 나타내고자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주님은 천하고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미움과 적대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고, 그분을 핍박하며 죽였습니다. 이사야는 이것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53:4) 그러나 그분은 그런 취급을 당하실 죄인이 아니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으며, 만왕의 왕이셨습니다. 하나님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지금 십자가를 향해 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겸손하신 평화의 왕

 

그러므로 무리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그리고 메시아로 환영한 것은 당연하고 옳은 일이었습니다. 천하에 예수님보다 높고 크신 왕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분은 친히 하나님이시며,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무리들이 예수님을 이렇게 환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던 그런 왕은 아니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마태는 이것을 가리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4-5) 이것은 스가랴 9:9의 성취였습니다. 스가랴는 네 왕이 임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왕이십니다. 그런데 군마를 타지 않으시고 나귀를 타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군사적인 영웅으로서의 메시아, 정치적인 왕으로서의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메시아라면 당연히 당당한 군마를 타셔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왕이신 주님은 겸손하게 나귀를 타셨습니다. 그분은 가장 높고 위대한 분이시면서 가장 낮고 초라하게 사셨습니다. 나귀를 타신 우리 왕은 겸손하시며 인자하시고 온유하신 평강의 왕이십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전능하신 왕이십니다. 이 왕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주님께 무엇을 기대하는가?

 

제자들을 비롯한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고 기대했던 메시아는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영웅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로마의 세력을 몰아내시고 다윗 시대와 같은 풍요롭고 의로우며 강력한 왕국을 건설하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특히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왕위에 오르시면 한 자리씩 차지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실 것이었습니다.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싸우던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0:28)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의 영광과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지금 고난의 마지막 길을 가고 계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왕으로 영접하며 환호했지만, 사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바로 앞에 두고 계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주님을 왕으로, 하나님의 메시아로 환영하고 있는데, 도대체 주님께서는 왜 고난의 길을 걸어 십자가를 향해 가셔야만 했을까요? 바로 우리 때문입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이기적이면서도, 주님을 위해서는 인색하기 그지없는 우리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신 주님을 위해 아무것도 내어놓지 않으려는 우리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생명까지 주셨건만, 여전히 남을 미워하고 비난하고 헐뜯는 우리 때문입니다. 패역하고 완악하기 짝이 없는 우리, 그래서 스스로는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는 우리, 영원히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서 주님께서는 끝까지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오늘 주님 앞에 나와서 무엇을 구하며 기대하고 있습니까? 여전히 개인적인 욕망과 이익과 만족만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직도 자아가 살아서 자기중심적인 삶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나에게 주님을 위해서 나를 드려 헌신하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이 있습니까?

 

고난주간에 우리가 할 일

 

우리는 이제 고난주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한 주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겠습니까? 먼저 하나님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서 나를 위해 종의 되셨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주님께서 종이 되셨다면 나는 더욱 종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나를 위해 종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고난을 당하셨으며,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주님을 위해 종이 되며, 형제를 위해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이 고난의 길이라 해도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종의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시고 왕이시면서 나를 위해 종이 되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겸손히 섬기는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한 주간 우리는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기도하면서 경건하게 보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기만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주님을 위해 충성할 것을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고난 당하시고 죽으셨으니, 이제 모든 죄를 버려야 하겠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 나를 위하여 종이 되셨으니 이제 내가 주님을 위해 종이 되기를 결단해야겠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으니 이제 내가 주님을 위해 죽기를 각오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주님을 위해 고난의 길 가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길입니다. 이 한 주간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가운데 죽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사랑의 주님을 뜨겁게 체험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남은 인생은 온전히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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