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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재잘대니 이쁘다
② 친구 같은 아빠가 대세
③ 달랑 딸뿐이라면…
④ 아빠 점점 외롭단다
⑤ 低성장 시대 의식 변화
조선일보 이길성·곽창렬·감혜림 기자 입력 2013.04.22 10:40
'아빠 뭐해?'
'○○○ 생각해~'
'그래 나도.'
'정말~~~♡'
'아빠 어디야? 응'
'회사야.'
'그래. 나 생각하면서 일해?'
'그럼~~~맨날 ○○○ 생각하면서 일하지.'
↑ [조선일보]한 딸바보 아빠가 인터넷에 공개한 딸과의 휴대폰 메신저 대화 내용. 마치 연인의 대화같다. / 네이트 판 화면 캡처
↑ [조선일보]
지난 2월 한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아빠들이 딸바보가 되는 이유 1탄'이라는 글이 올랐다. 필자는 자신을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을 키우는 아빠'라고 했다. 그는 '휴대폰에 메신저 앱을 깔아 줬더니 아빠가 보고 싶거나 심심하면 보내네요.^^ 이래서 아빠들이 딸바보가 되나봅니다.ㅎㅎㅎ'라고 썼다. '아빠들이 딸바보가 되는 이유'는 이후 4탄까지 이어지며 조회 수 145만회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아빠들이 '딸바보'(딸밖에 모르는 바보) 신드롬에 빠졌다. 인터넷에선 딸바보 아빠들의 이야기가 회자된다. 열혈 딸바보 아빠 캐릭터가 드라마와 예능 프로, 영화를 종횡무진한다. 세 살 딸을 위해 '딸바보송'을 발표한 딸바보 가수, 중학생 딸을 위해 청소년 판타지를 쓴 딸바보 무협작가가 등장했다.
딸바보는 마치 이 시대의 부성애를 상징하는 말이 된 느낌이다. 그 부성애는 속 깊고 은근한 대신 적극적이고 공격적이다. 완구업체인 레고가 작년 11월 여아(女兒)용 블록을 내놓으면서 '딸바보 아빠를 위한 행사'라고 내세웠더니 7700명이 몰렸다. 무엇이 아빠들을 딸바보로 만드는 것일까. 사회학자, 가족 전문가, 정신과 전문의에게 대한민국 남자들을 딸바보로 만드는 이유를 물었다.
① 딸은 '공감형 뇌'를 가져
부산 사하구의 한 교회 청년부에서 삼겹살 파티를 했다. 청년부원 속에 세 자매 그리고 형제가 있었다. 세 자매의 아버지는 안수집사, 형제의 아버지는 장로였다. 파티 소식을 들은 두 아버지가 현장에 들렀다. 세 자매는 "아빠!"하고 외치며 일제히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자매들은 저마다 삼겹살 쌈을 내밀었다. 아들 둘을 둔 장로는 멋쩍게 서 있었다. 두 아들은 먼 산만 바라봤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타인의 감정을 알아채고 공감하는 능력을 타고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발달심리학자 사이먼 배런코헨 교수에 따르면 여성의 54%는 공감형 뇌를 갖고 태어난다. 남성은 17%에 불과하다. 신경정신학자인 루안 브리젠딘은 "여성은 하루 2만 단어를 말하지만 남자는 그 3분의 1 수준인 7000단어를 말한다"고 했다. 서강대 전상진 교수(사회학과)는 "여성성의 특성은 남들과 함께하며 소통을 많이 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결국 딸이 더 가족 친화적"이라고 말했다.
② 아빠도 눈높이를 맞췄다
그렇다면 왜 하필 요즘에서야 딸바보가 나타난 것일까. 고려대 이명진 교수(사회학과)는 "아버지상(像)이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속은 깊지만 겉으로는 엄한 아빠 대신 친구 같은 아빠가 이상적인 아빠상이 됐다는 말이다. 최근 1200만 관객을 넘긴 '7번방의 선물'도 딸의 친구 같은 아빠가 주인공이었다. 이 교수는 "아버지들이 드디어 딸과 눈높이를 맞추고 친구처럼 소통하기 시작하면서 딸과의 관계에서 상승효과가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③ 핵가족화로 딸만 둔 아빠 늘어
김광기 인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아들·딸을 여럿 둔 아빠라면 딸만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딸바보가 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딸바보는 대개 딸만 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서울 3040세대의 평균 자녀 수는 1.6명이었다. 전체의 33%는 한 자녀였다. 평균보다 자녀를 더 가지려는 쪽은 누구일까. 한의사인 이성봉(44)씨는 "요즘은 아들만 둔 부모가 딸을 얻기 위해 자녀를 더 가지려 한다"고 말했다.
④ 지지가 절실해진 아빠들
아버지들을 딸바보로 만드는 또 하나의 요인은 조기 퇴직과 고령화다. 은기수 서울대 교수(국제대학원)는 "97년 IMF 사태 이후 한국 사회에서 남자로 살아가는 것이 고달파졌다"고 말했다. 직장이 지지와 유대를 주는 유일한 원천이었는데 그게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시대가 엄습한 것이다. 그런 아빠들에게 딸은 정서적으로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존재가 된다. 특히 딸은 결혼해서도 육아 등을 위해 부모 근처에서 사는 경우가 많다. 딸과의 유대는 노후까지 이어진다. 오성삼 건국대 명예교수(교육학과)는 "딸 낳으면 비행기 탄다는 게 예전엔 딸 가진 부모를 위로하는 차원이었는데 지금은 모범답안"이라고 말했다.
⑤ 저성장 시대에 남아 선호 퇴조
남녀 차별이 일상적이던 과거 고성장 시대에는 남자의 사회적 성공 확률이 여자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부모들은 장남의 성공을 통해 집안을 일으키고, 노후를 보장받았다. 하지만 저성장이 고착되면서 자식의 성공을 통해 노후를 보장받기 어려워졌고, 성별보다 실력을 중시하는 사회로 이동하면서 상대적으로 여자의 성공 확률이 올라갔다. 우종민 인제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가난했던 시절 부모가 자녀에게 경제적 성공을 기대했다면 지금의 부모들은 자녀와의 정서적 유대를 통한 행복을 소중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정신적인 행복감을 더 많이 주는 딸을 자연스레 선호하게 됐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