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5.5 주일예배
장소 도토리교회
설교 김대철 목사
성경 눅16:1-8
제목 살 궁리
사람은 누구나 살다보면 어려움을 만난다. 즉 위기를 겪게 된다. 그러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태도는 다양하다.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살고자 하는 사람과 살고자 하는 꿈을 버린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살고자 하는 사람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살 궁리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우기의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직면하기 싫어한다. 그 문제를 회피하고 자꾸 도망을 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만한 시험을 주신다. 감당하면 화가 변하여 복이 된다. 위기를 극복하면 마음도 넓어지고 더 큰 인격을 소유하게 된다. 본문에 등장하는 청지기도 인생 최대의 위기를 당한다.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 불의한 청지기는 살 궁리를 한다.
1. 시대적 배경
예수님 당시 팔레스틴에는 부재지주가 많았다. 로마의 시민권자나 외국에 살고 있는 부유한 유대인들이 팔레스틴 여러 지역에 포도원과 같은 경작지를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직접 경작지를 관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 땅을 여러 사람들에게 소작을 주고 그 소작농들을 관리해줄 한명의 청지기를 세운다.
그런데 소작농들이 몇 년이 지나도 얼굴 한번 보이지 않는 주인에게 제때에 소작료를 내지 않아 주인에게 많은 빚을 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청지기는 이 소작농들을 관리해야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에 주인의 재산을 중간에서 착복하고 도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처럼 불성실한 청지기는 땅 주인이 찾아왔을 때 엄히 문책을 당하고 쫓겨나는 것이 당연하다.
이 비유는 예수님의 비유 중 가장 난해하고 어려운 비유중 하나이다. 정직하지 못한 청지기가 칭찬을 받는 것이다. 유대인이 유대인에게 돈을 빌려주면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출 22:25, 레25:36, 신23:19). 그러나 그 당시 대부하는 자들은 이 법을 교묘한 방법으로 빠져나간다. 당시 사람들은 기름과 밀을 화폐 대용으로 사용하였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무엇을 빌렸든지 기름과 밀로 반환하였다.
청지기가 할인해준 것은 이자였다. 이자는 주인 몰래 청지기가 챙기는 몫이다. 청지기는 실직이라는 위기에서 여러 채무자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덕분에 빚진 사람들은 원금만 지불하면 된다.
돈을 더 만들기 위해서 고리대금을 하여 많은 이자를 받고, 그 중에 일부를 또 착복하여 개인적 용도에 썼을 것으로 가정할 수 있다. 그러한 고리대금 때문에 사람들이 주인을 욕하기 시작했고, 그 소식이 돌다돌다 결국 주인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청지기는 위기에 처하자 자기 계략에 말려서 높은 이자를 물고 돈을 빌려 썼던 채무자들을 불러서 그들이 전에 쓴 빚 문서를 정상적으로 수정해 주고, 불리하게 부과했던 높은 이자를 과감하게 탕감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2.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불의한 청지기
마태복음 21장 33절 이하에 보면 포도원 농부 비유가 나온다.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타국에 가면서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세로 준다. 그리고 소출이 있을 때 종들을 보내지만 농부들이 그 종들을 죽이고 돌로 친다. 그래서 더 많은 종들을 보내지만 농부들은 종들을 죽인다. 이번에는 주인이 아들을 보냈지만 농부들은 상속자인 아들을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고자 하는 음모를 꾸민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청지기는 주인이 자신을 불의하다고 여기고 청지기 직무를 빼앗고자 할 때, 그 주인의 계획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주인을 배반을 계획을 세우거나, 주인을 죽일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즉 자신의 과거를 그대로 인정하고 살 궁리를 한다. 청지기 직분을 빼앗긴 후에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런 자리로 전락한 자신을 인정한다.
이 비유의 청자는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삶의 형태를 비판하고 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규칙을 세우고 그 규칙을 준수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형식(규칙)만을 중시하여 본질을 해치는 경우가 있다. 헬라문화의 공세 속에서 민족 정체성과 신앙을 지키려 했던 그들은 자기 의를 내세우는 방향으로 변질되었다. 그들은 경건의 전문가가 되었고, 해박한 성경 지식으로 사람들을 억눌렀다. 성경보다 정통을 앞세우고, 세상과 구병을 외치다가 세상과 분리되어 버렸다.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안식일 병자를 고치는것을 비난했고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은 것을 비난했다.
그들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 도다 (눅11:42).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은 기뻐하는 도다 (눅(11:43).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눅11:39)라고 예수님께 지적받았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한다(눅12:1).
3. 나가는 말
이 비유의 배경에는 잘못을 지적받았는데도 고치려하지 않고 오히려 그 잘못을 말한 사람을 없애려고 하는 바리새인들이 있다. 바리새인들은 그 당시 신앙인이고 존경받는 사람들이지만 오히려 불의한 일을 저질은 청지기의 미래를 대비한 대책마련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누가 비난을 하면 그 비난을 하는 사람을 죽여서 그들의 잘못된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위선을 지적한 예수님을 죽일 궁리를 항상 했었다. 누구든지 과거에는 잘못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김대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