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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동화]그리운 메이 아줌마 (1부)

외국동화 무명............... 조회 수 2292 추천 수 0 2005.06.08 17:3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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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신 날, 오브 아저씨는 트레일러(자동차에 딸린 이동 주택)로 돌아와 예복을 평상복으로 갈아입고는 밖에 있던 시보레 승용차 안에 앉아 그 날 밤을 보냈다.
그 고물차는 언제나 개집 옆에 있었는데, 무성한 잡초에 둘러싸여 언뜻 보면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왜 오브 아저씨가 그 고물딱지를 치워 버리지 않는지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장례식을 치른 뒤 그 안에 앉아 있는 아저씨를 보기 전까지는.
그 때 나는 알았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오브 아저씨는 그 고물차가 반드시 그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고 믿었음을. 그리고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저씨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애틋하게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처음 보았다. 두 분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따금 눈물이 핑 돌곤 했는데, 6년 전, 그러니까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너무 어려서 사랑이 뭔지 생각조차 못했던 시절에도 그랬다.
그러고 보면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을 보고 싶어했나 보다. 어느 날 밤, 오브 아저씨가 부엌에 앉아 메이 아줌마의 길고 노란 머리를 땋아 주는 광경을 처음 보았을 때, 숲 속에 가서 행복에 겨워 언제까지나 울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으니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도 그처럼 사랑받았을 것이다.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날 밤 오브 아저씨와 메이 아줌마 사이에 흐르던 것을 보면서 어떻게 그게 사랑이라는 걸 알았을까? 우리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에 윤기 나는 내 머리카락을 빗겨 주고, 존슨즈 베이비 로션을 내 팔에 골고루 발라 주고, 나를 포근하게 감싼 채 밤새도록 안고 또 안아 주셨던 게 틀림없다.
엄마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어떤 엄마들보다도 오랫동안 나를 안아 주었던 게 틀림없다. 그리고 그 때까지 받은 사랑 덕분에 나는 다시 그러한 사랑을 보거나 느낄 때 바로 사랑인 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아무도 나를 맡으려 하지 않았을 때도, 이모나 삼촌들 손에 끌려 이집 저집 전전할 때도 나는 그 사랑을 가슴 속 깊이 간직했으며, 아무도 나를 친딸처럼 받아들이지 않아도 투정을 부리거나 남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가엾은 우리 엄마는 나를 받아 줄 누군가가 나타날 때까지 내가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사랑을 남겨 두고 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오브 아저씨와 메이 아줌마가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찾아왔고, 조그만 여자애를 보자마자 작은 천사라고 여기며 나를 자신들의 집으로 데려갔다.
집은, 지금도 그렇지만, 낡고 녹슨 트레일러로, 파예트군 한복판에 자리잡은 딥 워트 마을의 산자락에 박혀 있었다. 처음에 그 트레일러는 마치 하늘나라에서 하느님이 가지고 놀다가 어쩌다 떨어뜨린 장난감처럼 보였다. 트레일러는 아래로, 아래로 하염없이 떨어지다가 쿵하고 이 산에 내려앉은 것 같았다. 비록 한쪽으로 기울어져 덜컹거리긴 했지만, 고맙게도 다친 곳 하나 없이.
어쨌든 트레일러는 그만하면 멀쩡했다. 뒷면에 알루미늄칠이 벗겨진 것과 창문 하나가 달아난 것, 그리고 꺼져 가는 현관 계단만 빼면.
오브 아저씨와 메이 아줌마와 함께 트레일러에서 보낸 첫날처럼 천국 가까이 갔던 때는 내 평생 다시없을 것이다. 그곳이 천국이었던 것은, 나이 지긋한 두 분이 낡은 자동차를 집 앞에 세운 순간부터 다 쓰러져 가는 녹슨 트레일러를 어린 꼬마가 살 만한 보금자리로 막 바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오하이오에 사는 친척을 만나러 갔다가 뜻하지 않게 맡게 된 어린아이를 위해서.
몸집이 커서 앞자리에 앉아야 했던 메이 아줌마는 몸을 일으키자마자 그네를 어디에 매달지 얘기했고, 오브 아저씨는 자동차 문을 채 닫기도 전에 나무 위에 지을 집을 열심히 머릿속에 그렸다.
나는 구불구불한 웨스트버지니아의 시골길을 달려오느라 속이 울렁거려서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이고, 또다시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토하지 않고 웃으려고 애쓰면서.
하지만 트레일러 안에 들어섰을 때, 나는 두 분이 많은 것을 바꾸지 않아도 충분히 어린 여자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음을 한눈에 알았다.
메이 아줌마가 불을 켠 순간, 온 벽을 뒤덮은 듯한 선반에 걸린 바람개비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때까지 보았던 바람개비와는 딴판이었지만, 나는 금방 바람개비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오하이오 주 사람들은 바람개비를 울타리에 걸어 놓거나 정원에 세워 놓고 새들을 쫓았다. 그 바람개비는 어느 것이나 거의 비슷했다. 바람결에 빙글빙글 도는 로드러너나 닭이나 오리가 대부분이었다. 만화 주인공들도 인기가 좋았다. 장난꾸러기 고양이 가필드가 산들바람에 미친 듯이 팔을 돌리고 있는 정원들도 많았다.
그 동안 많은 바람개비를 보았지만, 오브 아저씨네 바람개비 같은 것은 처음이었다. 오브 아저씨는 예술가였다. ´예술가´란 단어는 당시 어린 꼬마였던 내가 쓸 수 있는 말이 아니었지만, 바람개비를 보자마자 나는 그 점을 알 수 있었다.
오브 아저씨네 바람개비 중에 가축이나 만화 주인공은 하나도 없었다. 그것들은 ´신비´였다. 오브 아저씨는 그렇게 말했고, 나는 아저씨의 말뜻을 금방 알아들었다.
어떤 바람개비는 천둥치는 폭풍을 나타냈는데, 정말로 천둥치는 폭풍처럼 먹빛과 잿빛을 띠고 있었으며 무시무시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또 천국에 대한 아저씨의 생각을 표현한 바람개비도 있었는데, 언제라도 거기서 천사들이 떨어져 나와 금빛으로 빛나며 유유히 트레일러 안을 날아다닐 것만 같았다.
불과 사랑과 꿈과 죽음이라는 바람개비도 있었다. ´메이´라고 부르는 바람개비도 있었는데, 작은 날개 부분이 다른 바람개비보다 많고 모두 순백색이었다. 그건 메이 아줌마의 ´영혼´이라고 오브 아저씨는 말했다. 그리고 그 날개들이 꽂혀 있는 참나무 가지는 메이 아줌마의 ´힘´이라고 했다.
메이 아줌마가 머리 위의 선풍기를 켜자, 나는 그 선반 앞에 서서 바람개비들이 일제히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는 몹시 경이로운 광경을 보았다. 마치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라도 된 것 같았고, 마술에 걸린 아이, 선택받은 아이가 된 것 같기도 했다. 그 때의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메이 아줌마는 바람개비로는 모자란다는 듯이, 나를 부엌으로 데려가 찬장과 냉장고 문을 활짝 열고 말했다.
˝서머야, 먹고 싶은 대로 뭐든지 먹으렴. 다른 걸 먹고 싶으면, 오브 아저씨가 엘릿네 가게에서 사다 주실 거야. 마음대로 먹으렴, 아가.˝
오하이오에서, 항상 누군가가 해야만 하는 숙제 같은 신세였던 그곳에서는 먹는 일이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내가 잠깐씩 지냈던 집들은 하나같이 음식에 대해 몹시 까다로웠고, 내가 먹을 음식에 대해서는 특히 더 그랬다.
그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쨌든 나는 어느 단추를 눌러야 컵 속에 먹을 것이 떨어질지 몰라 허둥대는 실험실 속의 생쥐가 된 심정이었다. 우리에 갇힌 채 먹이는 구걸하는 생쥐. 그것이 바로 내 심정이었다.
나는 넋을 빼앗아 갈 만큼 다양한 음식이 들어 있는 메이 아줌마의 찬장 속을 눈으로 더듬었고, 그러면서 다시 자유로워졌다. 초콜릿 속에 바닐라 크림이 든 오리오 쿠키와 고소한 감자칩, 커다란 스니커스 초콜릿 봉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늘 한 번만 먹어 봤으면 했던 조그만 종이곽 주스들도 있었다. 달콤한 마시멜로가 가득 든 봉지와 새콤달콤한 스파게티오 깡통들. 맛있는 꿀이 가득 들어 있는 곰 모양의 플라스틱 통.
냉장고 안에는 얼음처럼 시원해 보이는 진짜 콜라 병들과 커다란 수박 반쪽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고는 ´허시´라고 씌어 있는 진짜 초콜릿 우유였다.
이렇게 불과 꿈의 바람개비들, 반짝이는 콜라 병들과 초콜릿 우유 곽들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 때 여섯 살이었던 나는 마침내 집을 찾았다.

2.
메이 아줌마는 밭을 가꾸다가 돌아가셨다. ´밭을 가꾼다´는 표현은 아줌마가 즐겨 쓰던 말이다. 파예트 군에서는 누구나 밭에 일하러 나간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 말은 어쩐지 흙먼지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투덜대면서 일하는 광경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메이 아줌마는 밭을 ´가꾸었고´, 아줌마가 그렇게 말하면 아주 사랑스런 사람이 머리에 노란 꽃 모자를 쓰고 어깨에 작은 울새들을 잔뜩 앉힌 채 귀여운 분홍 장미를 다듬는 장면이 떠오른다.
물론 메이 아줌마는 평생 꽃 모자 하나 없었고, 아줌마의 밭도 여느 밭들처럼 실용적이었다. 장미나무 대신에 굵은 콩대와 튼실한 배추와 단단한 당근이 온 밭을 차지했다. 그 밭은 믿음직스럽고 정겨웠다.
오브 아저씨도 나도 나중에는, 아줌마가 그 정겨운 밭에서 자라는 사랑스런 채소 사이에 있다가 하늘나라로 떠났으니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줌마는 그 밭에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오브 아저씨가 말했듯이 눈부시게 새하얀 영혼이 되어 천국으로 떠난 것이다.
밭에서 돌아가신 것. 아줌마의 죽음에서 그나마 위안거리는 이것뿐인 듯했다. 나머지는 모두 엉터리 같았다.
아줌마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여섯 달이 흘렀고 오브 아저씨와 나는 아줌마 없이 벌써 두 계절을 맞이했지만, 나는 아직도 아저씨와 둘이서 어떻게 생활을 꾸려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 동안 우리는 그저 아줌마를 그리워하며 가슴 아파했을 뿐,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나는 우리가 이토록 상실감에 휩싸이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분명히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강인한 사람들이었다.
겨울은 한결 힘들었다. 산마을의 2월은 혹독한 시간이다. 아침이면 나는 캄캄한 어둠을 뚫고 통학 버스를 타러 산 아래로 내려갔고, 집 안에 혼자 남은 오브 아저씨는 그런 내 모습을 창 밖으로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나는 허공 속을 떠가는 것 같았다. 예전에 내가 더 어렸을 때는 오브 아저씨나 메이 아줌마가 찻길까지 따라나와 어둠 속에서 덜덜 떨면서, 피가 잘 돌아야 한다며 나더러 발을 구르라고 했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버스의 불빛이 산등성이의 나무들을 가르며 비쳐 나왔고, 이내 누군가가 내 손을 잡고 56번 버스의 덜덜대는 히터 곁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나는 이제 열두 살이고, 통학 버스쯤은 혼자서 타야 한다. 혹독한 2월의 어둠이 내 앞에 불러일으킨 것은 결코 두려움이 아니었다. 산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나는 어떤 것도 두려워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단지 쓸쓸함일 뿐이었다. 등 뒤에는 오브 아저씨가 바람개비들이 잠들어 있는 낡은 트레일러 속에 혼자 남아 있고, 나는 이 캄캄한 길을 혼자 걷는다.
아저씨도 나도 메이 아줌마가 몹시 그립다. 이 어둠, 이 겨울, 그리고 이 차디찬 새벽에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약한 일이다.
그러나 너무나 당혹스럽게도, 너무나 놀랍게도 오브 아저씨는 우기고 있다. 메이가 여기에 있었어. 지금도 있어. 바로 여기에 말야 하고 아저씨는 말했다. 아줌마가 벌써 며칠 전에 집에 돌아와 진짜로 우리와 함께 있다고 말이다.
그 날은 일요일이었고, 아저씨와 나는 우유통을 잘라 새 모이통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저씨가 윗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칼을 내려놓고 뭔가 지나가는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귀를 쫑긋 세웠다.
˝아저씨.˝
하고 내가 불렀다.
오브 아저씨는 무슨 냄새라도 맡으려는 듯 코를 킁킁거리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
나는 다시 아저씨를 부르며 마음 속에서 불안감이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아저씨는 차렷 자세를 명령받은 군인처럼 갑자기 고개를 꼿꼿이 쳐들었다.
˝이런!˝
나는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에요, 아저씨?˝
아저씨는 앙상한 손가락으로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 속을 쑤셔 대더니 얼빠진 표정으로 땅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뒷주머니에서 회색 손수건을 꺼내 코를 풀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한 번 손수건을 반듯하게 접어 세차게 코를 풀더니, 뒷주머니에 도로 쑤셔넣었다.
아저씨가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전에도 그런 표정을 본 적이 있었다. 아저씨가 어떤 계시 같은 것을 받았을 때 짓는 표정이었다. 오브 아저씨는 심오한 사색가였고, 곧잘 계시를 받곤 했다.
˝그 사람이 우리 곁에 있어.˝
아저씨는 마치 ˝지금은 2월이야.˝하고 말하듯이, 너무도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네에?˝
나는 칼을 옆에 내려놓았다.
˝메이가 우리 곁에 있어. 바로 지금. 하느님께 맹세해. 난 느낄 수 있어. 서머야, 마치 방금 유리잔에 따라서 마신 것처럼 머리에서 발끝까지 말이야.˝
아저씨는 다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아저씨는 평소에도 그다지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저씨는 늘 이카보드 크레인 같은 데가 있었다. 아줌마의 죽음이 그런 아저씨를 더욱더 허깨비처럼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아저씨가 정말로 어떻게 되어 버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줌마를 어떻게 느꼈는데요?˝
아저씨가 어깨 너머로 돌아보았다.
˝뭐라고?˝
나는 다시 물었다.
˝아줌마가 어땠는데요? 그러니까, 뭐랄까, 음, 가볍게, 천사처럼 느껴졌나요? 무슨 말 같은 건 안 했어요?˝
아저씨는 새 모이 자루에 눈길을 돌리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어땠냐면, 예전에 오하이오에 가려고 짐을 쌀 때 같았어.˝
˝오하이오에 가려고 할 때 같았다구요?˝
나는 메이 아줌마가 고작 오하이오에나 가려고 돌아가셨다고는 짐작도 못했다.
아저씨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옛날에 말이야. 우리가 오하이오에 사는 친척들을 보러 가려고 짐을 꾸릴 때마다 그 사람은 가고 싶은 마음 반, 여기 있고 싶은 마음 반이었지. 좀처럼 마음을 정하지 못했어. 여길 떠나 있는 사이에 혹시 집이 없어져 버릴까 봐 걱정하곤 했지. 불이 나서 이 집이랑 바람개비들이 몽땅 타버리면 어쩌나. 물에 휩쓸려 가버리면 어쩌나 하고 말이야. 그 사람은 이 트레일러가 없어지는 걸 아주 끔찍이 두려워했단다. 그러면서도 오하이오에 사는 친척들하고 멀어지면 어쩌나 싶어서 늘 안절부절못했지. 안 보고 지내는 사이에 누군가 덜컥 죽기라도 하는 건 아닌지 싶어서 말이야. 그 사람 부모님이 홍수 때 그렇게 돌아가셨거든. 그래서 이따금은 이곳을 떠나 친척들의 안부를 확인하러 가곤 했지.˝
아저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꼭 그렇게 우리가 오하이오에 가려고 짐을 꾸릴 때 같았단다.˝
아저씨는 내가 이해하리라는 듯 간단히 말했다.
뭐랄까, 물론 나도 이해는 했지만 마음이 썩 편치 않았다. 메이 아줌마가 우리 곁으로 돌아오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또 메이 아줌마가 왔다는 지금도, 그저 아줌마가 마음을 정했으면 싶다. 정말이지 아줌마가 그랬으면 좋겠다. 아줌마가 죽어서 하늘나라로 갈 때 어떤 후회도 슬픔도 근심도 없었으면 했다. 메이 아줌마가 우리에게 밝은 빛을 비추어 주면서, 아줌마는 아주 잘 있다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해 주었으면 싶었다.
나는 정말이지 아줌마가 걱정에 휩싸여 있지 않길 바랐다. 자신의 죽음이 옳았는지, 집 안의 전기 플러그들은 모두 뽑혀 있는지, 스토브는 꺼져 있는지 하는 걱정에.
나는 영혼을 믿는다. 천사라는 말이 더 그럴싸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영혼이 더 정확한 말인 것 같다. 그래서 아저씨가 메이 아줌마가 여기 있다고 하면, 나는 아줌마가 그랬으리라 믿는다.
메이 아줌마도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된다고 믿었다. 아줌마는 홍수 때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가 늘 아줌마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가엾은 메이 아줌마.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아줌마는 겨우 아홉 살이었다. 비는 하루 낮 하룻밤을 내리고도 모자라 이튿날 새벽까지 퍼부었고, 산이 더 이상 빨아들이지 못한 빗물이 시냇물을 덮쳐 6미터나 되는 물기둥으로 솟구치며 메이 아줌마네 식구들이 곤히 잠들어 있는 골짜기에 밀어닥쳤다.
큰물이 거대한 해일처럼 작은 골짜기를 덮쳤고, 마을의 집들은 모두 산산조각이 났다. 커다란 트럭들이 거꾸로 뒤집혀 물살에 둥둥 떠내려갔다. 수많은 나무들이 반으로 쪼개졌다.
아줌마의 어머니는 큰물이 밀어닥치는 소리를 듣고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줌마의 방으로 달려왔다고 한다. 그리고는 자고 있는 어린 딸을 번쩍 들어올려 낡은 양철 빨래통에 집어넣었단다.
그것이 메이 아줌마가 기억하는 전부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줌마는 빨래통에 탄 채 집에서 1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을 둥둥 떠가고 있었고, 물 속에서 허우적대던 늙은 고양이 한 마리를 건져올렸다고 한다. 아줌마의 어머니 아버지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메이 아줌마는 그분들이 아줌마를 지켜보았다고 한다. 혼자서 자라는 동안 아줌마의 마음 속에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또 자신이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일러 주는 강렬한 느낌이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느낌 때문에 아줌마는 그 날 밤 나무들에 둘러싸인 어떤 청년의 차에서 그냥 나와 버렸다. 그분들은 그 수상한 이웃을 믿지 말라고 일러 주었고, 라이스라는 그 청년은 그후 경찰에 붙잡혀 감옥으로 실려 갔다. 그리고 어느 날 두 분은 메이 아줌마에게 오브라는 남자와 평생을 함께 지내라고 일러 주었다.
아줌마는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자신이 오브 아저씨와 만난 다음에야 어머니 아버지가 비로소 마음을 놓고 하늘나라에서 열리는 성대한 잔치에 갔다고. 그리고 아마도 아줌마네 아버지는 하느님의 몸에 묻은 감자 샐러드를 닦고 있을 거라고.
나는 메이 아줌마처럼 좋은 사람은 보지 못했다. 오브 아저씨보다도 훨씬 좋았다. 아줌마는 오직 사랑밖에 없는 커다란 통 같았다.
오브 아저씨와 내가 몽상에 빠져 헤매고 다닐 때도, 아줌마는 늘 이 트레일러에서 우리가 돌아왔을 때 아늑하게 쉴 수 있도록 집 안을 정돈해 두었다.
아줌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했고, 누가 어떻게 행동하든 간섭하지 않았다. 아줌마는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를 다 믿었고, 그 믿음은 결코 아줌마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아줌마를 배신하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사람들은 아줌마가 자신들의 가장 좋은 면만 본다는 점을 알고, 아줌마에게 그런 면만 보여 줌으로써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했던 모양이다.
오브 아저씨도 온종일 바람개비나 만지작거리는 해군 출신의 상이 군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나도 몇 년 동안 이집 저집 떠돌아다닌 고아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았다. 아줌마는 아저씨와 나의 자랑이었다.
우리는 강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강하지 않다. 그리고 이제 오브 아저씨의 찢어진 가슴을 치유할 길을 찾지 못하면, 아저씨도 돌아가시고 말 것 같다.
아저씨마저 메이 아줌마의 뒤를 좇아 떠나 버린다면, 나는 저 바람개비들에 둘러싸인 채 혼자 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밤 같은 정적 속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날개를 달라고,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진짜 날개를 달라고.

3.
만약 클리터스한테 메이 아줌마가 돌아왔다고 한다면, 그 애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겨 버렸을 것이다. 클리터스는 죽은 사람의 혼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마치 그 이상한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다는 듯이.
정말이다. 지난 가을 클리터스가 고물 자동차 주위를 얼쩡거릴 때, 나는 아저씨한테 저런 아이와는 상대하지 말라고 했다. 클리터스네 식구가 롤리 군에서 이사 온 뒤부터 1년 동안 클리터스와 함께 통학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그 애는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었다.
맨 처음 왔을 때, 클리터스는 감자칩 봉지를 모았다. 그러자 전교생이 그 애한테 주려고 갖가지 과자 봉지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저마다 역사책 갈피에서 납작하게 눌린 반짝거리는 과자 봉지들을 꺼내 뒷자리에 앉은 그 애한테 앞다투어 전해 주곤 했다. 나는 거기에 끼지 않았다. 저 미친놈,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 다음에는 단추였다. 그 다음에는 숟가락 모으기. 그 애는 식물 채집에도 열을 올렸지만, 얼마 못 가서 자기는 식물가꾸기에는 영 소질이 없다며 그만두었다. 그러고 나서는 포장지 수집 열풍이 불었다. 클리터스는 생일을 맞은 아이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사진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거기에다 진득이 마음을 붙인 것 같았다. 1학년이라면, 아니 딥 워터 중학교 학생이라면 클리터스가 사진을 모은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이가 없었다.
작년 11월부터 클리터스가 오브 아저씨의 고물차 주위를 얼쩡거리기 시작하면서, 오브 아저씨와 나도 그 사진들을 잘 알게 되었다. 그것도 너무 많이.
우리가 클리터스를 가운데 두고 소파에 바짝 붙어 앉아 책 표지며 시리얼 상자에서 오려 낸 얼굴 사진이며 ´라이프´ 잡지에 실린 사진들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광경을 보았다면, 메이 아줌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는 신문에 실린 사교 단체의 사진이나 잎차 포장지에서 뜯어 낸 통통한 아기곰 사진을 찬찬히 구경했다. 부동산 소식지에 실린 꿈의 저택 사진과 ´아홉 개의 목숨´이라는 고양이 먹이통에서 오려 낸 고양이 사진도.
클리터스는 ´이야기가 담긴 사진´을 찾는다고 한다. 그리고는 자꾸만 나더러 자기 사진에 어울리는 얘기를 써 달라고 치근덕거린다. 작문 시간에 레이시 선생님이 내가 쓴 글들을 칭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낡아빠진 비닐 여행 가방 속에 있는 사진들을 뒤적이며, 클리터스의 말처럼 ´공동 작업´을 하는 건 죽어도 싫다. 안 봐도 뻔하다. 나랑 클리터스가 콘플레이크 상자에서 오려 낸 사진을 보며 그 속에 숨은 의미를 찾아내려고 애쓰는 꼴이라니. 하느님, 맙소사.
클리터스는 혹시 그 고물차 바닥에 옛날 신문들이 깔려 있지 않을까 하고 살펴보던 중이었다. 그 날은 메이 아줌마 없이 고통스런 추수 감사절을 보낸 다음 날, 그러니까 토요일 아침이었다.
오브 아저씨가 창 밖을 내다보다가,
˝저 아인 누구냐?˝
하고 물었다.
˝클리터스 언더우드라는 아이예요.˝
나는 느닷없이 우리 집 마당에 나타난 클리터스를 보고 입이 딱 벌어져서 대답했다.
우리는 클리터스가 자동차 뒷문 손잡이를 잡고 낑낑대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저 고물 손잡이를 훔쳐 갈 셈인가?˝
오브 아저씨의 물음에 나는 ˝글쎄-요.˝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오브 아저씨는 클리터스를 조금 더 지켜보더니, 이윽고 식탁 의자에 걸쳐놓았던 외투를 집어들었다.
내가 물었다.
˝어디 가세요?˝
˝인사 하러.˝
오브 아저씨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과연 짐작대로 오브 아저씨는 혼자 돌아오지 않았다. 그 괴짜 클리터스 언더우드와 함께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낡아빠진 자기 여행 가방을 고물차 옆 덤불에서 챙겨 가슴에 꽉 끌어안은 그 괴짜 녀석과 함께.
˝서머야, 안녕!˝
그 애가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나는 장단을 맞춰 주기 싫어서 그저 ˝응˝하고 시큰둥하게 대꾸하고는, 그 애 입에서 지겨워서 더는 못 있겠다는 소리가 나오게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클리터스는 돌아가지 않았다. 우리 집에 그냥 있었다. 꼬박 일곱 시간이나. 그 애는 오자마자 점심을 먹고 놀다가, 저녁까지 얻어먹고서야 돌아갔다. 그 괴짜 클리터스 언더우드와 함께 보낸 끔찍한 일곱 시간이란……!
그런데 희한하게도 오브 아저씨는 그 애를 아주 좋아했다. 지난 여름 메이 아줌마가 우리 곁을 떠난 뒤로 오브 아저씨가 무슨 일에 흥미를 보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클리터스가 마치 제 집처럼 편안히 죽치고 앉아 여행 가방 속에 든 사진들을 보여 주면서 간간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자, 오브 아저씨는 얼굴이 환해지면서 흥미와 활기가 넘쳐났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오브 아저씨는 클리터스네 부모님은 잘 몰라도 파예트 군에 사는 클리터스네 친척들은 몇 사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 언더우드가 더럼의 기계 공장에서 일한다는 얘기와 베티 언더우드가 금발을 검게 물들였고 차고를 고쳐 도예점과 종교 서점을 차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반가워했다.
알고 보니 클리터스네 부모님도 오브 아저씨만큼이나 나이가 지긋하고 바깥에 잘 나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마도 그 때문에 클리터스와 오브 아저씨가 그렇게 쉽게 친해진 듯했다. 클리터스는 나이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익숙했다. 게다가 오브 아저씨는 자기보다 더 괴짜인 사람은 누구든지 좋아했다.
우리가 소파에 앉아서 클리터스의 사진들을 구경하는 동안, 텔레비전에서는 <로렌스 웰크 쇼> 혼자 떠들고 있었다. 그 쇼는 아주 오래 된 프로그램이었는데, 애청자들이 많아서 계속 방영되고 있었다.
우리는 오브 아저씨가 바비 인형과 켄 인형이 탱고를 추는 장면을 보는 동안만 그 여행 가방에서 눈을 떼었다. 오브 아저씨는 탱고를 무척 좋아했다. 클리터스는 싱글벙글거리며 탱고 춤을 구경하다가, 춤이 끝나니까 박수를 쳤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다시 사진으로 돌아갔다.
˝이 사진은 이발소에서 얻은 거예요.˝
클리터스는 번지르르한 남자가 머릿기름을 선전하는 사진이 담긴 두꺼운 종이를 꺼내며 말했다.
˝이 사진을 보면요, 머릿기름을 바른 남자가 너무 깔끔을 떤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이 사람은 항상 손톱에 낀 때를 빼고, 코털을 뽑고, 이를 쑤시죠. 아마 자가용 서랍에는 이쑤시개가 통째로 들어 있을걸요. 틀림없이 자기 겨드랑이 냄새까지 킁킁 맡을 거라구요.˝
나는 그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오브 아저씨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 머릿기름 사나이한테 호기심이 생기는지, 클리터스의 똥똥한 손에서 그 광고지를 건네 받아 찬찬히 들여다보기까지 했다.
오브 아저씨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클리터스에게 말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구나. 겨드랑이 얘기만 빼고. 이 사람은 비위가 약해서, 겨드랑이 냄새는 못 맡을 거야. 하지만 다른 이야기는 다 맞는 것 같군.˝
우리는 11월부터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머릿기름 바른 남자가 겨드랑이 냄새를 맡느냐 안 맡느냐 하는 따위 이야기들을.
그래도 나는 클리터스가 고맙다. 그 애가 크리스마스 아침에 1000조각짜리 그림 퍼즐을 가지고 온 덕분에, 오브 아저씨는 끔찍한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클리터스의 말로는, 자기랑 부모님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칠면조를 먹고 선물도 주고받아서, 정작 크리스마스 아침에는 할 일이 없다고 했다.)
클리터스는 오브 아저씨와 나란히 앉아 12시간 동안 줄곧 조각 그림만 맞추었다. 그림 조각들은 거의 갈색이었다. 갈색 모래밭에 갈색 피라미드, 갈색 사람들.
내가 보기엔 완전히 고문이었다. 하지만 클리터스와 오브 아저씨는 어항을 앞에 둔 고양이들처럼 그 놀이에 푹 빠졌고, 나는 두 사람이 행복하게 몰두할 수 있도록 냉동 칠면조를 다섯 마리나 데워서 내놓고 몇 번이고 콜라 잔을 채워 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아저씨가 사다 준 필리스 휘트니의 책을 읽었다. 필리스 휘트니의 소설은 언제 봐도 재미있다. 무엇보다도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메이 아줌마를 잊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지금, 우리는 암울한 2월의 한가운데 와 있다. 살며시 다가오는 메이 아줌마와 조금씩 멀어져 가는 오브 아저씨, 그리고 지푸라기 하나라도 붙들려고 애쓰는 클리터스와 나.
메이 아줌마는 이 곳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딥 워터로 이사온 일을 두고 곧잘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아줌마는 물이나 비라면 벌벌 떠는 사람이었는데, 하느님께서 아줌마의 유머 감각을 시험하려고 딥 워터(우리 말로 ´깊은 물´이라는 뜻)라는 곳에 보금자리를 주셨다면서 말이다.
아줌마는 결코 하느님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메이 아줌마는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자기가 어디서 사는지 말해주곤 했는데, ´딥 워터´라고 말할 때마다 보란듯이 씨익 웃으며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 마치 하느님을 장난스레 팔꿈치로 쿡 찌르기라도 할 듯이.
지금 메이 아줌마가 여기 있다면, 나와 클리터스에게 말했을 것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려는 것들은 꼭 붙잡으라고.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가도록 태어났으니 서로를 꼭 붙들라고. 우리는 모두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게 마련이니까.
아줌마는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 곳이 이 세상만이 아니라고 일러 주곤 했다. 이 세상의 삶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을 모두 얻지 못한다고 실망하지 말라고. 또 다른 생이 우리를 기다린다고.
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메이 아줌마와 나는 생각이 달랐다. 나는 나한테 행복이 다시 찾아오리란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오랜 세월을 외톨이로 지냈던 나는, 오브 아저씨와 메이 아줌마를 만나 지낸 세월 자체가 바로 죽어서 간 천당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멋진 일이, 어떻게 나한테 또다시 일어난단 말인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클리터스는 나더러 꼭 세파에 찌든 노인네 같다고 한다. 잘못하다간 내가 대형 할인점에서 계산대 출구를 지키는 의심 많은 아줌마들처럼 될 거란다.
한 번은 그 애가 말했다.
˝서머야, 그 돌덩이를 좀 내려놔. 그렇게 무거워서 어떻게 사냐?˝
내가 그렇게 애늙은이가 되어 인생의 무게에 허덕였던 것은 메이 아줌마가 우리 곁을 떠났기 때문이다. 오브 아저씨는 메이 아줌마의 빈자리를 메꾸어 줄 사람이 필요했고, 나는 내 나이가 쉰 살이라면 그 빈자리를 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하지만 요즘 오브 아저씨한테 위안이 되는 사람은 오직 그 괴짜 클리터스뿐인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메이 아줌마 차례다. 아줌마가 잠시만이라도 우리 곁에 머물러 줄 수 있다면…….

4.
˝야, 이것 좀 봐.˝
나는 통학 버스 통로로 손을 내밀어, 클리터스가 건네 주는 것을 받아들었다.
오래 된 사진으로, 조금씩 스러져 가는 새벽빛처럼 빛이 바랬는데, 아기가 찍혀 있었다. 하얗고 풍성한 가운을 입은 아기가 들판 한복판의 높다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기의 긴 옷자락이 의자를 거의 가린 채 커튼처럼 늘어져 있어서, 얼핏 보면 아기가 공중에 붕 뜬 채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묘한 사진이네.˝
내가 사진을 돌려주며 말했다.
˝이런 건 박물관에 걸려야 돼.˝
클리터스는 기름기 흐르는 머리카락 한 올을 눈가에서 걷어 내며 말했다.
클리터스의 머리카락은 검고 곧았는데, 내 눈에는 기름때가 잔뜩 낀 것 같았다. 클리터스는 딱히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는 않지만, 목욕을 자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참고 참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어서야 겨우 샤워나 하는 그런 아이일 것이다.
클리터스가 말을 이었다.
˝이게 바로 초현실이라는 거야. 실제 사물을 태피 사탕처럼 죽죽 늘여서 형태를 완전히 뒤틀어 놓은 것 말이야. 거 있잖아. 헨리 할머니가 주름살을 편 것처럼 말이야.˝
나는 웃음이 나왔다. 헨리 할머니는 1학년 미술 선생님인데, 쪼글쪼글해지는 얼굴이 고민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딥 워터에서 유일하게 주름살 제거 수술을 받았는데, 찰스턴 시까지 나가서 술을 받았지만 다른 마을 사람들도 그 얼굴만 보면 수술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헨리 선생님의 팽팽한 얼굴살은 꼭 갑자기 탁 풀려서 마을 반대쪽으로 팅 하고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 사진 어디서 났는데?˝
나는 사진을 한 번 더 보려고 클리터스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응, 데이비스 아줌마한테 가게에서 뭐 사다 드릴 거 없냐고 물어 보러 갔었거든. 그 때 아줌마한테 내 가방을 보여 드렸더니, 나더러 집 안으로 들어오라는 거야. 그러더니 벽장문을 열고 맨 꼭대기 선반에서 커다란 상자를 내리더라고. 어, 그런데 그 상자 속에 이런 게 잔뜩 들어 있지 뭐야. 꼭 금광이라도 발견한 기분이었어.˝
˝그럼 아줌마가 사진을 주었단 말이야?˝
클리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몽땅 가져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냥 잠자코 있었어. 상자에 든 초콜릿을 하나씩 맛볼 때처럼 사진들을 들춰보기만 했지. 그렇게 몇 시간이고 죽치고 앉아 사진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어. 아줌마는 애당초 나한테 사진을 줄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 하지만 결국 사진 한 장이라도 쥐어 줘야 내가 갈 거라는 것을 눈치챘지. 그래서 이 사진을 준 거야.˝
나는 허공에 둥실 떠 있는 아기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아줌마가 골라 준 거야, 아니면 네가 고른 거야?˝
˝내가 골랐어. 이렇게 초현실적인 걸 놓칠 수는 없지.˝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넌 정말 못 말리는 아이야. 어떻게 무슨 곰팡이처럼 남의 집에 꾹 눌러앉아 있다가, 기어코 사진을 얻어 올 수가 있지?˝
클리터스는 사진을 한 번 더 보고는, 수학책 갈피에 끼워 넣었다.
˝무슨 소리, 아줌마도 좋아하셨어. 그 아줌마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구.˝
하지만 나는 다시 말도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다. 나는 클리터스 앞에서는 언제나 고개를 젓는다. 마치 그 애가 내 생활에 자꾸 끼여들기를 바라거나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을 그애한테 끊임없이 일깨워 주어야 한다는 듯이.
˝오브 아저씨는 어떠셔?˝
클리터스가 물었다.
오브 아저씨. 유난히 추웠던 오늘 아침, 오브 아저씨는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늘 마시던 코코아도 타지 않았다. 아저씨는 내가 깨어 일어나 도시락을 싸서 제 시간에 집을 나서는지 지켜보았다. 하지만 코코아는 마시지 않았다.
˝잘 지내셔.˝
나는 대답했다.
클리터스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치 내 눈 속에 떠오른 아저씨의 모습을 보고 아저씨의 상태를 짐작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하지만 나 역시 아저씨의 속마음을 알지 못해서 클리터스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글쎄…… 메이 아줌마가 찾아왔다는 사실만 빼면. 하지만 클리터스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어차피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 날 밤 저녁을 먹은 뒤, 클리터스는 오브 아저씨한테 직접 그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클리터스야, 너는 사후 세계라는 걸 믿냐?˝
오브 아저씨가 클리터스에게 블랙 커피 한 잔을 건네 주며 물었다.
클리터스는 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잠깐 들른 참이었다. 클리터스는 기도를 하려고 교회에 간 것은 아니라고 했다. 기도회가 끝나면 반드시 도넛을 주니까 간다나.
나는 그 때 역사 숙제를 하느라 신문에서 여성 참정권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아저씨의 말을 듣고 숨을 죽였다.
˝물론 믿죠.˝
클리터스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대답했다. 기다란 머리카락 한 올이 금방이라도 커피에 빠질 것 같았다.
˝한 번 갔다 온 적도 있는걸요.˝
오브 아저씨의 얼굴이 환해진 순간, 내 얼굴은 어두워졌다.
˝설마.˝
˝아마 일곱 살 때였을 거예요.˝
클리터스는 안락의자에 등을 기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전날 밤에 우리 할아버지가 큰병을 앓다가 돌아가셨거든요. 이튿날 식구들은 모두 슬픔에 잠긴 채 장례식 준비를 하느라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난 혼자 강가에 가서 장례가 끝날 때까지 물수제비나 뜨기로 했죠. 어유, 그런데 강둑에 서서 돌을 던지다가 그만 물에 빠졌지 뭐예요? 진짜로 죽는 줄 알았어요. 발이 미끄러졌는지 어쨌는지 강물에 빠진 거예요. 헤엄은 조금도 칠 줄 모르는데, 하지만 하느님 말씀이 다 맞더라구요, 아저씨…….˝
오브 아저씨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똑바로 앉아 클리터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난 죽었어요. 정말요. 그 때 눈앞에서 한 줄기 빛이 비치길래 그 빛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어요. 그리고 그 빛을 따라가다 보니까, 갑자기 사방이 눈부시게 하얘지더니, 하느님께 맹세컨대, 할아버지가 나를 바라보며 웃고 계시지 않겠어요? 또 믿기 어렵겠지만, 3년 전에 죽은 내 강아지 키케로도 내 곁에 있었고요.˝
클리터스는 잠깐 이야기를 멈추고 커피를 몇 모금 마셨다. 그러는 동안 오브 아저씨와 나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폭탄을 앞에 둔 사람처럼 그 애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우리는 숨죽여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를 막 끌어안고 키케로도 토닥여주면서 좋아하고 있는데, 문득 말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클리터스야, 이제 집에 가려무나.´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요. 나더러 집에 가라고요. 그러더니 할아버지와 키케로가 가물가물 멀어져 가면서, 갑자기 엄청나게 춥고 온몸이 묵직해지는 거예요. 꼭 흠뻑 젖은 양탄자를 둘둘 감고 있는 것처럼요. 정신을 차려 보니까, 나는 미친 듯이 웩웩 토하고 있고, 윌리 삼촌이 나더러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면서 때려죽일 듯이 난리를 치고 있더라구요.˝
클리터스는 오브 아저씨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젠장.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저씨가 큰 소리로 말했다.
˝천당이다! 그래 넌 천당에 갔다 온 거구나. 클리터스!˝
클리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틀림없어요.˝
˝그렇다면 네가 나 대신 메이하고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구나. 그 사람이 얼마 전부터 자꾸 날 찾아오는데, 영혼의 목소리 같은 건 들어 본 적이 없어서 통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그러니까 통역해 줄 사람이 필요하단다.˝
클리터스는 입이 쩍 벌어졌다.
˝메이 아줌마가 아저씨한테 말을 했다고요?˝
˝두 번.˝
두 번이라고? 나는 한 번으로만 알고 있는데. 아저씨랑 새 모이통을 만들던 때, 그러니까 맨 처음 것만. 갑자기 가슴이 쓰라렸다. 오브 아저씨가 두 번째 일은 내게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리고 이제 아저씨가 모든 것을 털어놓는 상대는 내가 아니라 클리터스라는 사실 때문에.
나는 어느 때보다도 아저씨한테서 멀어지고, 아저씨는 아저씨대로 나는 나대로 홀로 떠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동안 아저씨는 우리 둘 다 그토록 잘 알고 있는 이 세상의 삶을 제쳐 두고, 어쩌면 메이 아줌마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 하나만으로 또 다른 생에 이르러 보려고 애썼다니.
나는 어떻게 해야 아저씨를 내 곁에 붙들어 놓을 수 있을지 몰랐다. 아저씨는 이미 죽은 자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클리터스가 아저씨에게 말했다.
˝하지만 아저씨, 나는 무당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걸요. 물론 한 번 갔다 온 적이 있으니까. 영혼 세계가 영 낯설지만은 않아요. 방학 때 놀러 갔다 온 곳을 생각하는 것 같달까. 그렇다고 영혼들이 전하는 말 같은 걸 들어 본 건 아니에요. 아는 영혼도 없고요. 그러니까 개인적으로 말예요.˝
오브 아저씨는 그 말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상관없어. 저 세상에 갔다 왔으니까, 뭔가 달라도 다를 거야. 네가 우리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지 몰라.˝
오, 맙소사! 클리터스가 뭔가 구실을 얻어서 지금보다 더 자주 우리 집에 들락거리게 되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오브 아저씨는 이제 클리터스가 저승 세계와 통하는 안테나라도 되는 양 우리 집에 붙박아 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줌마는 클리터스를 알지도 못하잖아요.˝
어떻게든 아저씨의 헛된 바람을 깨뜨리려고, 나는 어설픈 항의를 했다.
하지만 오브 아저씨는 클리터스를 바라보며 빙긋 웃고는 그 애의 무릎을 톡톡 쳤다.
˝직접 만나지 못했어도 그 사람은 이 아이를 알아볼 게다. 서머야.˝
아저씨는 클리터스의 호기심 어린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어쩌면 메이는 지금까지 우리랑 같이 이 아이의 사진을 구경하고 있었을지도 몰라. 그 사람은 클리터스를 알고 있어. 이 아이의 강아지까지 알고 있을 거라구.˝
그러고 나서 아저씨는 차츰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더니, 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순간 어느 때보다도 지쳐 보이는 아저씨를 보며, 나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클리터스와 나는 서로 멍하니 바라보았다.

5.
저승 세계의 안테나가 우리 집에 다시 찾아왔을 때, 아저씨는 그 아이를 데리고 메이 아줌마의 텅 빈 밭으로 나갔다. 애처롭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그 겨울, 두툼한 외투와 털장화를 신은 우리 세 사람은 말라 죽은 식물 줄기들 가운데 서서 한때 그 흙으로 모든 것을 키웠던 한 여인이 생명의 신호를 보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인이 키운 것은 비단 식물들만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메이 아줌마가 정말로 나타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브 아저씨는 필사적이었고, 온 마음을 다해 기적을 믿는 것을 보자 나도 마음 한 구석으로는 아줌마의 따스한 영혼이 날아와 우리 곁에 살포시 내려앉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다.
메이 아줌마는 생전에 우리를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았고, 자신이 필요한 곳에 늘 있어 주었다. 아줌마가 그렇게 미더운 기억만을 남겨서, 우리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천진한 희망에 더욱더 매달렸던가 보다.
클리터스는 이 모든 일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이야기하고 설명하는 쪽은 항상 오브 아저씨였고, 그 애는 처음으로 아무 말 없이, 마치 아주 어린 아이처럼 순순히 아저씨를 따라서 죽은 콩대와 브로콜리 사이를 지나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한 여인이 사랑한 곳으로 나아갔다.
아저씨는 바로 그 곳에서 메이 아줌마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클리터스의 눈앞에 메이 아줌마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 주면, 그 반향이 밭을 가득 채우고 퍼져 나가 아줌마를 우리에게 데려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 틀림없다. ´귀가 따갑도록 말한다.´는 말처럼.
그렇게 우리는 서 있었다. 외투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아저씨는 클리터스를 바라보고, 클리터스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는 땅바닥을 내려다보면서.
오브 아저씨는 메이 아줌마가 생전에 얼마나 훌륭한 아내였는지, 그리고 아저씨와 나에게 얼마나 상냥하게 대해 주었는지 이야기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조금 놀랐다. 아저씨가 굵직굵직한 일들을 이야기할 줄 알았으므로. 이를테면 아줌마가 3년 동안 아저씨 몰래 꼬박꼬박 적금을 부어서 아저씨나 너무너무 갖고 싶어하던 비싼 대패톱을 사 준 일. 내가 수두에 걸려 열이 펄펄 끓고 헛소리를 해댈 때, 너무 아파서 차라리 죽고 싶었을 때, 아줌마가 무려 32시간 동안 눈 한 번 붙이지 않고 나를 간호한 일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하지만 아저씨는 그렇게 훌륭한 일들은 입에 올리지도 않고, 사소한 일들만 골라서 이야기했다. 아줌마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아저씨의 아픈 무릎을 연고로 문질러 주어서, 아저씨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걸어다닐 수 있게 해주었던 일. 내가 꼬마였을 때, 아줌마가 집안일을 하다 말고 밖에서 그네를 타고 노는 나를 창 너머로 내다보며 ˝서머야, 우리 귀여운 아기.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아기.˝하고 다정하게 불러 주던 일.(나는 아저씨의 말을 듣고서야 그 일이 생각났다.) 이렇듯 그 동안 아저씨가 마음 속에 소중히 간직했던 따스한 기억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흘러나왔다.
클리터스는 줄곧 하늘을 쳐다보다가 이따금 아저씨를 돌아보며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클리터스는 귀덮개가 달린 털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한순간 나는 클리터스가 그 귀덮개를 펄럭거리며 찰리 브라운 만화에 나오는 스누피처럼 날아올라 밭을 가로질러 사라지는 장면을 떠올리고는 미친 듯이 낄낄거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 모자는 얌전히 있었고, 클리터스도 아주 진득하게 아저씨가 하고 싶어하는 말을 다 들어 주었다. 마치 장례식에 온 듯한 느낌, 얼어붙은 땅에다 사랑하는 애완 동물을 방금 묻은 듯한 느낌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 상황은 메이 아줌마의 장례식보다 더 장례식답고 푸근했다.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저씨와 나는 그저 트레일러 안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몇날 며칠이고 엉엉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럴 짬도 없었다.
사람들은 결혼을 하거나 교회에 다니거나 아이를 키울 때와 마찬가지로 친척이 죽어서 슬픔에 잠기는 시간도 정해진 틀에 따르기를 바란다.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저씨와 나는 장례식장을 찾아가 사무적인 일들을 처리하고, 목사를 찾아가 종교 절차를 얘기했으며, 그 전에는 얼굴도 보기 힘들었던 수십 명의 친척과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그들이 준비한 음식을 먹어야 했고, 그들의 포옹을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가 혹시 신경 쇠약에 걸리지 않았나 하고 안색을 살피는 눈길도 그대로 받아 낼 도리밖에 없이 사교계의 명사라도 된 듯했고, 그렇게 우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목놓아 통곡할 기회조차 빼앗기고 말았다. 사람들은 우리가 어떤 틀에 맞춰 슬퍼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지금 이 황량한 밭에 서서 메이 아줌마를 되살리려는 오브 아저씨의 말소리를 듣고 있으려니까, 이미 장례식을 통해 정리되었어야 할 뭔가가 비로소 내 안에서 정리되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클리터스는 장의사도, 목사도, 친척들도 하지 못한 일을 우리에게 해 주고 있었다. 그 애는 두툼한 입술을 꾹 닫고 오브 아저씨의 넋두리 한마디 한마디를 귀담아 들으면서 더없는 위안을 안겨 주었다.
클리터스에게는 내가 미처 몰랐던 능력들이 있음을, 나는 차츰 깨달아갔다. 말을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정확히 가려 내는 능력도 그 중의 하나였다.
오브 아저씨는 마침내 메이 아줌마를 기리는 찬양의 잔을 다 비우고 나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는 클리터스를 따라 하늘로 눈길을 돌렸다. 나도 홀린 듯이 아저씨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까마귀 한 마리가 머리 위로 날아갔다. 아저씨의 가쁜 숨소리와 콧물이 흐르기 시작한 클리터스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 주위는 죽은 듯이 고요했다.
클리터스도, 나도 아저씨가 먼저 움직이기 전까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는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듯 고개를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이윽고 아저씨가 ´후-´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자, 우리는 아줌마가 아저씨에게 오지 않았음을 알았다. 아저씨는 힘겹게 고개를 내젓더니, 텅 빈 트레일러 쪽으로 혼자 걸어갔다.
우리는 아저씨가 언덕을 넘어 트레일러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서로 마주 보며 실망이 깊게 밴 한숨을 쉬었다.
˝계속 저러다간, 병이 나거나 정신이 나갈지도 몰라.˝
이런 말을 하다 보니, 울컥 목이 메고 눈물이 핑 돌았다.
클리터스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덕분에 아저씬 할 일이 생겼잖아.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말이야.˝
나는 고개만 가로젓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일이 나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는지, 클리터스에게는 말하기 싫었다. 나는 아저씨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수 없었다. 아저씨 곁에 남아 아저씨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 그게 내 고통이었다.
클리터스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아저씨가 아줌마를 느낀다는 말 안 믿지, 그렇지?˝
나를 나무라는 듯한 말투였다.
나는 클리터스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내가 믿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이야?˝
클리터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 상관없어. 다만 네가 좀더 상상력이 있을 줄 알았거든. 너는 어쨌든 작가니까.˝
˝난 작가 아냐.˝
˝아 그래. 절대 아니지.˝
클리터스는 짜증이 역력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너, 나한테 설교하지 마.˝
나는 소리를 지르거나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었지만, 그 어느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클리터스가 더 이상 나를 몰아붙이지 않기만 바랄 따름이었다.
클리터스는 멀리 숲을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아줌마가 아저씨한테 준 건 바로 그걸 거야.˝
나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뭐라고? 아줌마가 뭘 줬다고?˝
클리터스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더니, 마른 브로콜리 잎사귀 하나를 만지작거렸다.
˝너도 알겠지만, 오브 아저씨의 바람개비는 그게 뭔지 한 눈에도 알아볼 수 없어.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건 하나도 없지. 아저씨는 현실에 존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아저씨는 마당을 꾸밀 장식품 따윈 안 만들잖아. 예술 작품을 만들지. 나는 아저씨가 왜 바람개비들을 마당에 내다 걸지 않는지 알아. 아저씨는 이웃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생각 같은 건 없거든. 메이 아줌마는 그런 아저씨에게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를 준 거야.˝
클리터스는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저씨에게는 상상의 세계가 있어, 서머 너랑 똑같이. 하지만 넌 항상 그걸 떨쳐 버리려고 애쓰지.˝
클리터스한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이길 수 없을 것 같았고, 이 세상 삶에서는 어떤 일에서도 정상에 오를 수 없을 것 같았다. 심지어 내가 왜 클리터스를 그토록 싫어했는지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클리터스보다도 못한 아이였다.
나는 돌아서서 걸어갔다. 머릿속이 아득했다. 나야말로 둥그런 양철 빨래통을 타고 빙글빙글 돌면서, 6미터 높이로 치솟은 물에 휩쓸려 이 산에서 떠내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딥 워터에서 영원히 길을 잃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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