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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화] 토란잎 치마

창작동화 손연자............... 조회 수 1624 추천 수 0 2005.07.07 10:28:44
.........
  효은이는 빈터에 핀 코스모스꽃밭에 들어가 놀았어요.
˝나도 꽃이야.˝
효은이 말에, ˝그래 너도 꽃이란다. 우리랑 같이 노올자.˝
하고 코스모스꽃들이 한들한들, 효은이를 반겼어요.
˝음매애!˝
느티나무 아래에서 송아지가 울어요.
어제 내린 비로 말갛게 씻긴 하늘이 새파래요.
어제 내린 비로 멀찍이 앉은 산도 푸르러요.

˝우리 강아지 어디 있니?˝
호박 오가리를 말리다 말고 할머니가 생각난 듯 효은이를 불렀어요.
˝여어기이!˝
´이´소리가 미루나무 그림자보다 더 길어요. 하지만 할머니는 못 찾고 고개만 둘레둘레 휘둘렀어요. 히힛! 히힛! 효은이 입에서 까만 꽃씨 같은 웃음이 폭폭 터져 나와요.
˝효은아, 저녁밥에 콩 넣어 먹게 울타리콩 좀 까라.˝
´엉? 울타리콩?´
울타리콩을 까면 할머닌 밤을 섞은 콩밤밥을 지으실 거예요. 콩밤밥은 효은이가 가장 좋아하는 밥이에요. 효은이는 꼭꼭 숨은 것도 잊고서 발딱 일어서요. 다복솔 머리에 꽃 한 송이 이고서 효은이는 신나게 뛰어가요.
흰구름이 둥싯둥싯 따라와요.
왈왈 콸콸, 언덕 너머 개울물 소리도 상큼하게 들려 와요.

˝효은아!˝
두성이네 집 앞을 지나는데 두성이 엄마가 불렀어요. 뜀박질은 고대로 하면서 고개만 휙 돌렸지요. 어느 돌담 틈에선가 또르록 또르록, 귀뚜라미가 울었어요.
˝효은아, 우리 두성이 못 봤니?˝
˝못 봤는데요.˝
효은이만 보면 두성이는 졸졸 따라다녀요. 따라다니기만 하면 좋게요. 자꾸 괴롭혀요. 갑자기 뛰어와서 치마를 들춘 게 벌써 몇 번인지 몰라요. 어떤 땐 흙을 퍼다가 머리에다 뿌린 적도 있고요, 방아깨비를 잡아다가 옷 속에 넣은 일도 있어요. 몰래 개구리를 넣어 둔 걸 모르고 운동화를 신었을 때는요, 정말 깜짝 놀라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런 두성이가 어디 있는지 알 게 뭐예요.
˝효은아, 이리 온.˝
두성이 엄마가 손짓을 했어요. 손짓 한 번에 쪼르르 다가가 섰지요. 그랬더니 열쇠 꾸러미를 손에다 쥐어 주었어요. 개울 너머 논에 계신 할아버지한테 빨랑 갖다 드리라고요.
˝우리 할머니가 지금 울타리콩 까랬는데요.˝
˝콩은 이따가 까구 얼른 댕겨와. 할아버지가 기다리셔.˝
˝콩 까는 일을 먼저 시켰는걸요.˝
˝어서 가 봐. 잃어버리면 큰일나니까 조심하구.˝
두성이 엄마가 눈처럼 하얀 박하사탕을 입에다 쏙 넣어 주었어요. 그러곤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휘적휘적 버스 정류장으로 가 버렸어요. 싸아! 박하사탕 향기가 입 안에 가득 찼어요.
˝에잇, 모르겠다. 열쇠 심부름이 먼저다.˝

솔바람이 앞장서서 언덕을 넘었어요.
타박타박 혼자 걷는 오솔길은 심심해요.
˝열쇠야 열쇠야, 대문말고 안방말고 뭘 열래?˝
˝옷장 열고 문갑 열고 쌀뒤주 열지.˝
˝또 뭘 열래?˝
˝꼭 감은 눈 열고, 꽉 다문 입 열고, 콱 막힌 귀 열지.˝
효은이는 열쇠랑 이야기를 하면서 갔어요.
˝열쇠야 열쇠야, 내 말 안 듣는 우리 엄마 귀 좀 찰칵 열어 줘라.˝
엄마는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아빠랑 둘이서만 서울로 갔어요. 외삼촌 생일을 아주 큰 뷔페에서 차린댔는데 효은이가 자고 있는 동안 살짝 가 버렸지 뭐예요.
˝아이쿠!˝
엄마를 원망하느라 돌멩이가 있는 걸 몰랐네요. 효은이는 까치발로 뛰어가 벗겨진 슬리퍼를 다시 신었어요. 이제 개울 건너 토란밭 옆 비닐 하우스만 지나면 두성이네 논이에요. 효은이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언덕을 한달음에 뛰어올랐어요.

억새꽃 아래로 누르스름한 개울물이 왈왈 콸콸 기운차게 흘러가요. 그런데 어제 내린 비 때문인가 봐요. 징검다리가 안 보여요.
˝두성이 엄마가 빨랑 가라고 하셨는데…….˝
효은이는 사방을 휘이 둘러봤어요. 돌아서서 또 한 번 휘이휘이 둘러봤어요.
아무도 없어요.
옳다꾸나.
얼른얼른 후닥닥 새로 산 원피스를 벗었지요.
억새풀이 고개를 숙이길래 속옷도 잽싸게 벗었답니다.
효은이는 옷들을 둘둘 말고 그 위에 슬리퍼를 얹고는 두성이 엄마처럼 머리에다 이었어요. 그런 다음 조심조심 개울로 들어섰어요. 발등에서 발목으로, 발목에서 무릎으로, 개울물은 점점 차 올랐어요.

바람도 없는데 억새풀이 수상쩍게 흔들렸어요.
´혹시 두성이?´
˝저리 가!˝
소리를 꽥 질렀지요. 가슴이 콩닥콩닥 방망이질을 했어요. 마음이 급해진 효은이는 그만 물 밑의 자갈돌을 밟고 말았어요.
기우뚱, 철썩!
머리에 인 보따리가 떨어졌어요.
옷들이 넘실넘실 물결을 타고,
슬리퍼가 숨었다 나왔다 숨바꼭질을 하고,
손을 뻗어 잡으려 하면 사알짝 비켜 가고, 따라가면 고만큼 또 멀어지고.
효은이는 열쇠가 떨어질까 봐 가슴에다 꼭 안았어요. 그래서 강장강장 뛰어가 옷들을 잡지도 못했어요. 옷이랑 슬리퍼가 눈앞에서 남실남실 멀어졌어요.

효은이는 들국화 떨기 속에 쪼그리고 앉았어요. 개울물이 방울방울 땅으로 떨어지자 등에 닿는 가을볕이 따가워요. 보랏빛 국화꽃 향내도 알싸하고요.
˝어떻게 하지?˝
잔뜩 걱정을 하고 있는데 자박자박, 저벅저벅, 풀 밟는 소리가 가까워 와요. 누구든 오기만 해 봐라. 효은이는 발 밑의 돌멩이를 집어 들었어요. 그러면서도 웅크릴 대로 웅크려서는 꽃무더기 속으로 파고들었답니다.
˝효은아, 너 거기서 뭐하니?˝
저런! 두성이였어요.
˝난 몰라. 들켰잖아.˝
효은이는 고개를 폭 숙이고 눈도 꼭 감은 채 힘껏 돌멩이를 던졌어요. 야속하게도 돌멩이는 개울물에 풍덩! 빠져 버렸답니다.
˝허허허.˝
˝헤헤헤.˝
웃음이 쏟아졌어요.
얄미운 두성이가 배를 잡고 웃었어요. 효은이는 소리소리 질러서 두성이를 쫓아 버렸어요.

할아버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눈에 다 아셨어요.
˝효은아, 옷부터 잡지 그랬어.˝
˝아, 안 돼요. 열쇠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해요? 할아버지랑 두성이 엄마랑 두성이랑 다들 집에도 못 들어가고 저녁도 못 먹잖아요.˝
˝그러니까 제 옷보다 남의 집 열쇠가 더 소중하다 그 말이렸다?˝
효은이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어요. 할아버지는 열쇠 자국이 또렷한 효은이의 손을 덥석 잡았어요. 그러곤 오래오래 문질렀어요.
˝그런데 할아버지.˝
˝왜?˝
주름살 가득히 웃음을 띠었지만 효은이는 주저주저 머뭇거려요.
˝우리 효은이가 할 말이 있는 게로구나. 걱정말고 어서 하거라.˝
˝저, 두성이가요.˝
˝옳지, 두성이가.˝
˝나 빨가벗은 거 다 봤잖아요.˝
˝그랬지.˝
˝저어, 그러면요. 나 두성이하구 결혼해야 되는 거예요?˝
효은이가 울상을 지었는데도 할아버진 껄껄껄 웃으셨어요. 들국화 떨기가 푸르르 흔들릴 만큼 커다랗게요. 할아버지가 웃는 걸 보니까 안심이 되었어요. 효은이는 그제서야 배시시 웃었답니다. 국화꽃 향내가 짙어진 걸 보면 꽃들도 쿠룩쿠르룩 웃나 봐요.
˝자, 업혀라.˝
효은이는 두성이가 몰래 훔쳐볼까 봐 얼른 할아버지 등에 업혔어요. 효은이를 업은 할아버지가 막 비닐 하우스를 돌 때였답니다. 갑자기 커다란 토란잎을 든 두성이가 툭 튀어나왔어요.
˝두성아, 그건 뭐냐?˝
˝치마예요. 효은이 입힐라구요.˝
두성이가 고개를 돌린 채 토란잎 치마를 내밀었어요.
˝이거 입어, 효은아.˝
˝저리 가, 빨랑 가라니까!˝
얼굴이 빨개진 효은이가 악을 썼어요. 깜짝 놀란 두성이는 토란잎 치마를 던져 주고 자전거보다 더 빠르게 달아났어요. 할아버지가 다시 껄껄 웃었어요. 효은이는 도망가는 두성이를 할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살짝 훔쳐보았어요.
산마루 위로 노을이 번지고 있어요. 저 노을빛에 어느 집 뜰에선가 새파란 풋감들이 폭 익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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